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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일제, 육아휴직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노동은 밥이다』 노동운동 대부 이용득의 34년,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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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인류가 기원한 시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용득 저자는 이를 공기와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노동’이라는 두 글자는 그의 삶에 지워진 무게였고, 풀어야 할 숙제였다. 『노동은 밥이다』는 촉망받는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우연한 계기로 노동운동에 투신한 뒤 평생을 바친 한 남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단지 개인의 비망록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의 삶 자체가 우리나라 현대 노동운동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사관계, 노동자들의 복지 문제는 여전히 심심치 않게 언론의 도마에 오르곤 한다. 그런데 보통 그 패턴은 비슷하다. 우선 노조에서 임금인상과 처우개선 등을 이유로 파업에 돌입한다. 전투적인 구호를 쓴 머리띠와 깃발을 들고 대개는 광화문이나 청계천 일대에서 교통 불편을 야기하는 파업이다. 이어지는 것은 시민의 불편에 대한 우려와 파업에 부정적인 여론이다. 그러면 기업은 마지못해 협상에 들어가고 노조가 요구하는 조건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타협안을 내 놓는다. 노조가 받아들이면 파업은 끝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계속된다. 만약 파업이 평소보다 길어질 경우, 정부가 개입한다. 여기서 개입이라는 것은 중재라고도 할 수 있지만, 최근까지는 보통 ‘공권력 투입’이 일반적이다.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뉴스를 통해 보이는 패턴만 되짚어보면 이렇다.

 

만나고-이용득

 

노동운동이 가져다 준 것들


사실 ‘노동’이라는 단어는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터부시됐다. 이념적인 단어로 치부되며 언급되는 동시에 핸디캡을 안고 가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오늘날의 상황도 그리 다르진 않다. 노조활동, 파업 등을 사회불안, 시민불편 등의 소재로 관행인 보도를 반복하는 뉴스의 시각 때문이다. 또한 역대 대부분의 정부가 노조의 파업을 강력하게 진압해 온 풍경으로 인해 ‘노동운동’이라는 단어는 사실 많은 대중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 이르러 몇몇 대기업 노조, 철밥통으로 일컬어지는 공기업 노조들의 파업은 ‘황제노조의 파업’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언뜻 이들의 행위는 그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동자 전체를 대표한다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역시도 끊임없는 편 가르기를 하며 대중들에게 피로감을 유발시킨 것 역시 잘못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그들의 노동운동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는 듯 누리고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주 5일제, ‘육아휴직제’ 등이 그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인 2002년 은행권이 처음 시작한 ‘주 5일 근무제’와 1985년 상업은행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육아휴직제도’가 이끌어 낸 우리사회의 변화는 실로 엄청났다. 여가생활이 늘어나며 각종 문화활동이 활발해졌으며, 많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삶의 질’을 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이끈 사람의 이름이 ‘이용득’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오히려 그 본인조차도 구태여 생색내지 않은 탓에 정부정책 정도로 여겨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전설적인 한국노총 ‘용팔이’ 위원장, 한국 노동계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그가 최근 자신의 한평생과 현대 노동운동사의 이슈와 문제를 한 권의 책,『노동은 밥이다』에 담았다.  1982년 대졸과 고졸 간 호봉의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상업은행 노조 대의원이 되면서부터 시작된 노동운동가로서 그의 삶은 상업은행 노조위원장, 금융노련 위원장, 금융산별노조 위원장을 거쳐 세 차례의 한국노총 위원장을 역임하며 34년간 이어졌다.

 

만나고-이용득

 

노동계의 대부, 지난 시간을 회고하다


초로의 작은 체구, 평생을 노동자의 권리와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투쟁한 투사의 첫인상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굵고 울림 있는 음성으로 털어 놓는 지난 이야기들은 그가 ‘용팔이’ 이용득 위원장임을 새삼 확인시켰다. 그가 노동운동을 통해 평생 추구했던 것은 노동계의 통합과 노조의 정치세력화, 중앙단위 노사관계 구축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이 너무나 컸기에 그 어느 것 하나도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의 지난 이야기와 더불어 그가 절감한 한국 노동운동의 문제와 한계, 숙제에 대해 들어봤다.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잘 정리된 현대노동운동사를 보는 듯했습니다. 책을 쓰시게 된 동기를 ‘후배들과 일반국민을 위해’라고 하셨는데, 원고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것이 있다면?


대개 노동운동은 언론에 투쟁하는 모습만 비춰진 탓에 국민들에게 부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었어요. 그런 국민들에게 노동운동이 꼭 필요한 것임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지금 제가 주장하는 노동운동의 사회적인 기능, 산별노조와 중앙노사관계 구축, 노조의 정치세력화 같은 것이 사실 좀 어려운 내용이에요. 물론 이제까지 함께 노동운동을 한 후배들은 이해가 빠르겠지만, 국민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부터 바꾸고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마치 제 자랑 같기도 하고 해서 몇 가지를 빼기도 했는데, 그러다보니 또 노동운동의 흐름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지더군요. 한정된 한 권의 책에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좀 고민을 했죠.

 

현재 한국노총 상임고문이자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으로서 노동계와 정치계에 양쪽에 몸담고 계신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노동운동가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노동운동에 입문하던 시절을 돌이켜 봤을 때 지금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상업은행에 입사했을 당시 저는 사내에서 좋은 평을 받는 직원이었어요. 당시에는 상고출신들이 직원의 절반 이상인데다, 저는 상고출신으로 입사해 드물게 주경야독하며 대학을 다녔거든요. 또 1979년 쯤 상업은행 행보에 서울서 부산까지 사이클을 타고 여행한 여행기를 싣게 되면서 유명세를 좀 탔죠(웃음). 그 후로 사내 행사 같은 것을 도맡아 하게 되면서 더 알려지게 됐고요. 그러다 1982년에 고졸과 대졸의 호봉차를 4호봉에서 5호봉으로 늘린다는 방침이 알려졌어요. 결국 후배들이 찾아와서 “형님이 나서야 된다”고 하더군요. 상황을 보니 그게 맞고 정당하다 싶더군요. 물론 인사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제게 “당신은 야간대학 다니니까 나중에 졸업하고 나면 학력 인정받는데 왜 이런데 나서느냐”고 말리더군요.

 

그렇게 시작한 노조 활동은 바로 탄압이 들어왔습니다. 회사가 저를 바로 암사동에 지점 전산부로로 발령을 낸 거죠. 그 당시 살던 곳이 수유리고 학교가 명륜동인데 직장을 암사동으로 해 놓으니 학교를 다닐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노조에다가도 이야기하고, 회사에다가도 원대복귀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노조도 어용이었던 셈이죠. 결국 내가 들어가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노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니냐’란 생각으로 잠시동안만이라고 다짐하고 시작한 것이 평생이 된 셈이에요. 그 뒤로 노조 위원장 선거에 나가서는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보니까 계속 하게 된 측면도 있어요(웃음). 사실은 노조를 하면서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민주화투쟁 과정을 거치고 하면서 떠나질 못했죠. 그 시절을 겪고 나서도 노동운동의 바른 방향을 찾다보니 어느새 34년이 지났네요(웃음).

 

노동운동가로서 상업은행 노조위원장, 금융노련 위원장, 금융산별노조 위원장, 한국노총 위원장 3차례 역임하셨고 한국노총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전태일 노동자상’까지 수상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이뤄낼 것은 다 이뤄내신 듯한데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삶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제 성격이 하나를 정하면 그거 외에는 다른 길을 쳐다보지 못해요. 노동운동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희생도 제가 자청을 한 것이고요. 그러나 외부보다는 내부적인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어요. 위원장 선거에서 떨어진 반대파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각종 사업 방향에 딴죽을 걸 때는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나’하는 회의도 생겼죠. 여러 가지 고민 끝에 2008년 은퇴를 선언한 뒤 은행 임원으로 가 억대 연봉을 받던 시절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죠. 노동운동은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었으니까요.

 

가족들의 희생도 적지 않았을 듯한데요. 미안함도 크실 것 같습니다. 


처음 노동운동을 시작했을 때 은행은 참 좋은 직장이었어요. 그때는 빨리 시급한 것만 해결하고 직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데, 노총위원장까지 되고 한국노동계의 대부로 불리는 지경까지 오다보니 미안한 점이 많죠. 지금도 노조를 계속하는 사람들은 공장이나 제조업 출신들이 대부분이에요. 은행원으로 평생 노동운동했던 사람은 없었죠. 그러다보니까 가족은 물론 주변에서 그렇게 말렸어요. 하지만 노동운동으로 감옥 생활도 하게 되고 해고도 당하고 하면서 제 스스로 ‘숙명적 길’이라 생각했죠. 요즘 아내는 제게 “당신은 당연히 이 길이였다”고 이야기해요. 또 아들이나 딸도 나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는 것이 고맙죠. 

 

아버지가 노동운동가라는 점이 자녀들에게 미친 영향도 컸을 텐데요.


아들은 이 책 나오자마자 5권을 사서 사인해달라고 하더군요. 친구들에게 돌린다고요. 자식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사회에 대해서 시시비비는 구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특히 아들과 저는 제일 죽이 잘 맞는 술친구기도 하죠(웃음).

 

노동운동가로서 보람을 느낀 다양한 순간에 대해 책에서 언급하셨지만 그중에서도 손꼽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주5일제 근무를 시행 할 때인 것 같아요. 주 5일제가 논의되던 시기는 제가 수감되어 있을 즈음이었는데, 당시에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주류였어요. 그러다 결국 산업별로 순차적 시행이 대안으로 떠올랐는데, 그렇게 되면 정착이 안 될 것 같았죠. 산별로 시행이 되면 금융권이 제일 늦게 가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전체적인 속도가 더뎌질 것이 뻔했어요. 전체적인 속도를 빨리 내기 위해서는 금융권이 먼저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죠. 은행이 주5일 근무를 하면 일반 회사도 도입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크리스마스 특사로 2001년 출옥 후 첫 사업으로 한 것이 금융권의 주 5일근무제 쟁취였어요. 2001년 12월 24일 나와서 2002년 5월23일 최종 협상에서 청와대와 합의를 봤어요. 여성육아휴직제 시행 당시와 마찬가지로 그 5개월 동안 모든 관련된 책임자들, 이를테면 노사정위원장, 노동부도 사용자들, 청와대 등을 돌아다니며 공감대를 넓히는 작업을 했죠. 

 

노동운동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고 할 수 있어요. 산업혁명 이후에 유럽에서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6~18시간 근무를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그랬고요. 전태일 열사 같은 분들도 그래서 생겨났죠. 그런 상황을 노동운동을 통해 12시간, 10시간, 일 8시간 근무제로 줄여나간 거예요. 국민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일일 8시간 근무제는 그야말로 피의 산물입니다. 

 

만나고-이용득


 
풀지 못한 숙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구하는 이상향과 우리나라 노동계의 현주소는 여전히 괴리가 있다. 노조의 정치세력화와 중앙단위 노사관계 구축, 범 노동계의 통합은 아직까지 그가 풀지 못한 숙제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치며 그는 역순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방안을 이야기한다. 역시 아직까지 이런 주장은 그의 목소리 하나뿐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과업을 수행 중에 있는 학생’, ‘정책연대의 실상을 살피는 관찰자’, ‘노동자들의 심부름꾼’으로 스스로를 표현하시기도 하셨는데요. 현재 한국노총 상임고문이자 새정치민주연합의 최고위원으로서 고민도 크실 듯합니다.


제 남은 인생이 20년 정도라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전혀 다른 분야에서 살고 싶었어요. 소설을 쓰고 싶었죠(웃음). 책에도 있지만 사이클 여행이나 수배 당시 경찰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던 일화를 쓴 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거든요. 하지만 그 길을 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 꿈은 3가지입니다. 하나는 범노동계 통합, 하나는 노조의 정치 세력화, 마지막으로 중앙노사의 시스템 구축이에요. 하지만 여러 가지 시도들이 많았음에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어요. 노동조합이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투쟁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예요. 노조가 힘이 없기 때문에 울타리 안에 머무는 투쟁밖에 못하는 겁니다. 한 마디로 내꺼 지키는 운동에 머물러 있는 셈이죠. 노동운동이 발전한 선진유럽처럼 노조가 힘이 있으면 사회적으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어요. 

 

대안으로 중앙노사관계 구축을 역순으로 이뤄내서 그를 통해 노조의 힘과 역량을 강화하는 방법을 제시하셨는데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통합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치세력화도 실패했습니다.(그는 한국노총 소속임에도 금노련이 민노당의 조직과 활동에 참여하도록 이끌었으면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노총이 창당을 주도한 녹색사민당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중앙노사관계 구축뿐인데, 우리나라는 중앙노사관계라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나 노총 등이 있는 것 같아도 각자 자기 대표성만 있지 실질적인 네트워크나 시스템이 없는 것이 사실이죠. 노조도 힘이 있고 경총도 힘이 있으면 중앙노사관계는 자생적으로 형성됩니다.

 

하지만 힘이 없는 상황이니 억지로라도 역순으로 합방을 시키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물론 학자들은 반대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자생적으로 가야지 역순으로 간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치권에서 노조법을 구실로 노조를 약화시켜 놓은 상태에서 역순이 아니면 힘들어요. 제가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라고 해도 정치를 하러간 건 아니에요. 바로 이 일을 정치권에서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가 있는 거죠. 하지만 정치인들이 내 말을 관심 있게 듣지 않아요. 그래서 책을 쓰게 된 겁니다. 말로 아무리 이야기를 하고 강의를 해도 안 되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역순으로 가려고 해도 정부의 의지, 정치권의 조력이 필요한 상황인데요.


제일 문제는 관료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돈이 걸린 문제거든요. 연간 7조원이나 되는 고용보험 재원이 있다는 것도 국민들이 잘 몰라요. 무관심합니다. 그리고 그 7조원이나 되는 돈을 고용노동부가 일방적으로 집행하고 있다는 것도 잘 모릅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 산업안전공단을 만들어 쓴다고 하는데, 그건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정부는 정부대로 하고 노사는 노사대로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봐요. 왜냐하면 일자리의 현황을 가장 생생하게 잘 알고 있는 것이 기업과 노조거든요. 고용보험의 재원 일부를 기업과 노조의 중앙노사관계 구축에 투자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전국의 업종을 나눠서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시작하면 일자리와 직업훈련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거죠. 기업과 노동자만큼 현장의 상황을 잘하는 이들이 없으니까요.

 

취업난을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씀이죠?


지난 이명박 정부 때 노사민정 협의를 통해 고용보험가지고 생색을 내기는 했지만 성과가 없었어요. 그런 방식으로는 일자리 창출 안 되거든요. 정부가 일자리 창출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공공부문이에요. 나머지는 민간차원에서 이뤄져야 되요. 그런 면에서는 현 정부도 달라진 게 없어요. 제가 박근혜 대통령을 7번이나 독대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제가 이야기를 할 때는 이해를 하세요. 그런데 저와 얘기가 끝나고 주변 사람들이 노조에 대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버리는 게 문제죠. 그래서 현실에 반영이 안 되고 있는 것이고요. 저와 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10명만 있어도 좋겠어요. 그런데 저 혼자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저 안타깝죠.
 

만나고-이용득

 

노조, 국민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가 이야기한 숙제를 한 단어로 말하자면 이른바 ‘사회개혁적 조합주의’로 정의할 수 있다. 노조가 단순히 개별 기업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닌 산업별로 묶이고, 하나의 중앙노조를 형성해 사용자측과 협상을 한다면 단순히 급여나 복지와 같은 문제 외에도 사회 전반적인 이슈나 문제를 풀어가는 창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국민들의 노조에 대한 인식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지난 선거에서 볼 수 있듯 노조의 정치세력화 시도 역시 지향점 없이 겉돌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현장에서 부딪히며 노조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신 입장에서 현장 노조운동의 문제라면?


저도 현장 노동자들이 왜 내 얘기에 대해 관심을 안 가질까 생각해 봤어요. 우선은 자기 사업장 업무에 너무 바빠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거죠. 또 3년마다 돌아오는 노조선거를 준비하려면 조직관리가 더 우선인거에요. 그러니 제 이야기에 무관심할 수밖에요.

 

최근 크고 작은 재난이 이어지며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관피아, 정피아라는 말도 유행이 됐고요. 노동계도 이익집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은데요.


그래서 중앙노사관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중안노사관계를 통해 상시적으로 사회적 대화가 이뤄진다면 일자리만이 아니라 이런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에서는 복지부분만 거론을 했는데, 지금 복지에 대해서도 여당과 야당이 다르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중앙노사관계는 그런 부분을 가지고 대화를 하는 기구에요. 일자리와 같은 상시적 업무가 아닌 사회적 이슈로 대화를 한다는 거죠. 거기에서 어떤 결론이 도출되면 정치권의 부담이 줄어듭니다. 노사가 합의한 대로만 가면 되니까요. 세월호 사태처럼 국민적 사안인 경우 노사협의에서 당연히 의제로 올라오게 되죠. 거기서 결론이 내려지면 정치권이 훨씬 방향잡기 좋고 부담이 줄어든다는 겁니다. 우리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사회적 대화로 풀어가는 해결방법이 바로 중앙노사관계 정립이라는 말이죠. 

 

노동계에서 이념적 노선을 고집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도 지적하셨습니다. 국민들 중에는 노동조합원인 분들도 있지만, 조합과 별계의 삶을 사시는 분들도 많잖아요.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 노조의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인데요. 노조가 힘을 강화하고 사회적 공헌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식이 바뀌겠죠. 그런데 노조가 방향성을 잃고 자기 울타리 안에서 집단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인식이 나빠지는 거예요. 유럽의 예를 들어보면 노조가 사회적 주체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노조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으로 이뤄지고 있고요. 우리나라의 상황은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봐요. 지금 노동운동을 사람들에게 ‘대동단결해서 인식의 전환을 하자’는 것은 어렵고요. 점진적인 교육으로 바꿔나가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운 상황이죠. 3년마다 노조 지도부의 80%가 바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실 저도 2008년에 은퇴를 했던 거예요. 평생을 헌신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으니까요.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의 동의를 얻어 겨우 만든 것이 노사발전재단이었지만, 결국은 관피아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죠. 통합도 실패했고 정치세력화도 실패했고, 그러면 중앙노사관계 구축만이라도 하자고 했던 것도 노사발전재단으로 한계를 경험했고요. 그래서 떠날 결심을 한 거죠. 그러나 다시 노조원들의 부름을 받고 돌아온 것은 우리한국 사회의 발전과 자라나는 세대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노조의 발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번 책을 통해 목소리를 내보는 건데, 언제까지 관심이 이어질지는 미지수에요.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노조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국민들이 노동운동을 제대로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제 바람이죠. 

 

책 서두에 미국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는 길’을 넣으셨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 온 위원님의 여정은 아직도 한참은 계속 돼야 할 텐데요.


제가 그 시를 택한 이유는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남이 하는 노동운동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것들을 계속 시도해 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뭘 할 때마다 “이용득이 이번에 이걸 했다, 저걸 했다”며 ‘노동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주장도 최초고요. 그 시를 삽입한 것은 그렇게 남이 만들어 놓은 길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오면서 이젠 그 길을 대로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어요. 또 하나는 저와 같은 의견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난다면 이제 다른 길을 가보고 싶다는 의미도 있죠. 60세부터 80세까지는 또 한 번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기간이라 생각했거든요. 가보지 않은 길을 갈 기회죠. 이제까지 해보지 않았던 음악, 미술 같은 분야에 투자한다면 20년 후에는 새로운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뜻에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는 바람 담은 셈이에요.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노동이라는 단어가 공기나 밥처럼 우리 생활에서 떼려야 땔 수 없는 건데,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잘 못해서 노동이 부정적으로 비춰진 부분이 있어요. 노동운동가를 대표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제대로 된 방향만 찾으면 본래의 의미대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사회를 발전시키는 노동운동이 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제 사과를 받아들이시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후배들이 생긴다면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 책에 대한 관심도 부탁드리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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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밥이다이용득 저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노동은 밥이다』는 노동이 개인과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동력이라는 소신으로 예순 살 넘어서까지 노동과 함께 하고 있는 평생 현장노동운동가인 이용득이 쓴 것으로, 30여 년의 세월을 노동 현장의 최중심에서 활동했던 운동가가 몸으로 체득한 것을 이론에 접목시켜 현실감 있게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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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정호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언제나 꿈꾸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노동은 밥이다

<이용득> 저12,600원(10% + 5%)

『노동은 밥이다』는 노동이 개인과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동력이라는 소신으로 예순 살 넘어서까지 노동과 함께 하고 있는 평생 현장노동운동가인 이용득이 쓴 것으로, 30여 년의 세월을 노동 현장의 최중심에서 활동했던 운동가가 몸으로 체득한 것을 이론에 접목시켜 현실감 있게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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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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