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사교육보다 책육아”
『닥치고 군대 육아』 저자 김선미 육아에 필요한 건 돈보다 책
하은맘이 돌아왔다. 『지랄발랄 하은맘의 불량 육아』로 많은 엄마로부터 공감을 얻어냈던 김선미가 이번에는 『닥치고 군대 육아』를 썼다. 책의 제목은 변했지만, 책육아를 향한 그녀의 열정은 여전하다.
예나 지금이나 육아가 쉬웠던 적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공동체가 느슨해지고 육아의 몫이 오롯이 부부, 특히 엄마에게 주어지면서 부담은 늘어났다. 그나마 국가 차원에서 보육 제도를 탄탄하게 구축해 놓은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사정이 낫지만, 한국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감동은 잠시, 만만치 않은 현실이 엄마를 기다린다. 아이는 보채고, 울고, 잘 자다가도 깨고, 수시로 대소변을 본다. 엄마는 이런 아이에 24시간 바짝 붙어 있어야 한다. 유지해왔던 대인관계는 끊기고, 수면 부족과 만성 피로, 근육통에 시달린다.
그런데 많은 육아책에는 이런 내용이 없거나, 무미건조하게 다뤄진다. 아이가 울 때는 이렇게 해 보세요, 하는 식이다. 마치 육아책에서 제시한 답안을 성실히 실천하면 아이가 무럭무럭 클 것 같다. 『닥치고 군대 육아』를 쓴 하은맘, 김선미 저자는 다르게 육아책을 만들었다. 특유의 거칠고도 해학적인 문장으로 육아의 고난을 설명하고 이에 대처하는 엄마의 자세를 풀었다.
제목에 ‘군대’가 들어갔지만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0세에서 3세까지인 영아기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영아기와 유아기를 넘어 길게는 초등까지 적용할 수 있는 육아 방법을 소개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육아 방법은 간단하다. 책육아, 배려육아, 놀기육아. 많은 엄마가 불안한 마음에 비싼 장난감과 교구를 사고 사교육에 아이를 맡기는 현실에 하은맘은 불만이 많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만나면 비교하고. 통화하면 확인하고. 모임 나가면 애 잡는 전자동 시스템이 항상 가동되기 때문이라는 거지. 그것 때문에 숱한 밤을 후회하고 미안해서 가슴 쥐어뜯어 봤잖니. 그만하자. 그냥 내 애만 바라보며 가자. 제발. 내 자식의 눈빛만, 몸짓만, 야물 거리는 사랑스런 입매만 바라보며 키우자. 양 눈가에 널빤지 대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잔다르크처럼 혼자서 가자. (107쪽)
사교육보다 책육아
기존 육아책을 많이 봐왔을 텐데, 기존에 나온 책을 보면서 마음에 안 들었던 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기존 육아책은 어려워요.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해 주면 와 닿을 텐데 상담 사례, 외국, 논문 사례를 이야기해주니 와 닿지도 않고요. 정답을 ‘가르치려’ 해요. 정답대로 해 보는데, 안 돼요. 계속 안 돼요. 그래서 저는 육아책에 실패담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어디서 들은 내용 말고 본인의 실패담을요.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나와야죠. 아주 쉽게, 얇게, 가볍게, 민간인의 언어로 이야기해야죠. 쉬운 말로 쓰여 있어야 엄마들이 아기 업고 밥하고 똥 기저귀 갈면서도 한 쪽이라도 볼 수 있잖아요. 잠깐 짬 내서 봐도 눈에 확 박히게, 마음을 후벼 파게. 너무 어렵고 두꺼우면, 읽다 말죠. 책이 어려우니 스마트폰 보잖아요.
책육아에 돈이 든다는 오해도 많이들 하는 것 같아요. 하은맘이 권장하는 책 권수가 많기도 하고, 책값도 만만치 않잖아요?
돈이 많이 드는 건 브랜드 전집을 세트로 한꺼번에, 몇 백만 원씩 사서예요. 하지만 새 책이든 중고 책이든 요즘은 저렴하게 살 수 있어요. 굳이 세트로 들이라고 하는 이유는, 아기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죠. 60권을 사도, 10권 정도만 아이가 봐요. 그리고 네 질을 사도 세 질은 아이가 잘 안 보려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절대 다 읽히려고 전집을 사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단행본으로 한 권씩 사려면, 엄마가 정말 많이 조사해야 해요. 그러면 책 찾는 과정부터 피곤해지죠. 그러니 전집 한 질을 사서 아이가 5~6권을 골라 반복해서 읽도록 하는 거예요. 그럼 한 달에 10~15만 원 정도인데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죠.
안 써야 하는데 써서 문제
한국의 사교육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엄마들이 너무 불안해해요. 예전에는 사교육을 모두 안 시켰는데, 지금은 모두 다 시키잖아요. 하지만 진짜 육아를 하려면 안 시키고 안 사야 해요. 아이를 놀게 해 줘야 하는 데 사회가 엄마를 흔들어요. 사교육 시장, 교구가 불안을 연료로 삼아 엄마들을 자꾸 자극하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이거 사 주면 괜찮다, 이렇게요. 그러면 엄마들이 울면서 지갑을 열어요. 돈 없어도 마이너스 통장 써 가면서요. 이렇게 썼는데도 효과가 안 나오면 더 크게 울면서 더 쓰게 되죠. 쓰는 엄마끼리 뭉치고 안 쓰는 엄마에게 공격해요. 그러면 안 쓰던 엄마도 흔들리고요. 안 시키는 게 정답이라는 걸 엄마들이 믿었으면 좋겠어요.
책에 쓴 문장이 격한데요. 실제 생활에서도 격한 표현을 자주 쓰나요?
전혀요. 모태 신앙 크리스천이고요. 도덕주의, 바른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눈치만 보는 소심한 사람이었어요. 심지어 ‘기집애’라는 말조차 안 했죠. 욕하는 사람을 교육 못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욕을 하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육아로 받는 분노를 풀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참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화내게 되더라고요. 아이가 울거나 넘어지면 아이에게 막 쏟아 부어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가 아닌 다른 데 풀었죠. 강의할 때 풀고, 블로그에 풀고. 욕을 해도 욕에 악의가 없고요.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하죠. 평소에 욕 거의 안 해요.
책육아는 아이가 싫어해도 밤을 새워서 책을 읽어주는 육아를 말하나요?
억지로 하면 안 되죠. 마음껏 놀리다, 자기 전이나, 밥 먹을 때라도 책을 근처에 두고 접하게 해 주면 말하지 않아도 아이가 책 읽어 달라고 가져와요. 아이에게는 책도 장난감인 것이죠. 단, 아이가 원할 때만 엄마가 읽어 주면 돼요. 나머지 시간은 놀게 놔두세요. 보통 6살이나 9살, 이렇게 다소 늦게 시작하는 엄마들이 안 재우고 책만 읽혀야 하느냐, 억지로라도 읽혀야 하느냐, 문의하는데요. 책육아는 2주, 3주만 해봐도 알아요. 억지로 할 수 없다는 걸.
불량육아, 군대육아에서 아빠의 역할은 잘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말하는 육아에서 남편은 아들이에요. 남편에게 동반자, 어른 역할을 기대하고 도움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꾸 실망해요. 남편 입장에서는 결혼했는데 아내가 자식에게만 관심을 두고 사랑을 쏟으니 자식에게 질투도 나고 시샘도 나죠. 남편은 어리디 어린 아이예요. 그러니 어른의 범주에 넣지 말고, 남편을 아이 범주에 넣으면 언젠가는 동반자 자리까지 오게 돼요. 군대육아로 가장 많이 성장하는 사람은 나, 그다음이 아이, 그리고 남편이죠. 이렇게 하다 보면 진짜 군대처럼 팀워크가 이루어져요.
육아, 특히 어떤 시기가 가장 힘들었나요?
0~3세를 영아라고, 3~6세를 유아라고 한다면 유아라고 하는 이 시기가 가장 힘들었죠. 육체적으로는 영아가 어렵죠. 하지만 아이가 말을 트고 생각하고 고집부리고, 하지 말라는 것을 위험한데도 하는 시기가 유아기거든요. 이때, 엄마가 욕심을 부려요. 뭔가를 더 해 줘야 한다는 중압감이 생기죠. 아웃풋이 나오기 시작하니까요. 엄마의 뻘짓이 꽃을 피워요. 이때 제일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요. 아이를 잡기 시작해요. 이 시기에 잘 따라오는 아이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요. “몰라, 안 해!” 하면 엄마가 포기할 텐데 잘 따라오면 계속 시키거든요. 아이를 영재로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아이에게 화를 많이 냈죠. 저도 이 시기에 영국 편지를 많이 썼어요. 이 시기에는 엄마가 아이를 놓아야 해요. 까꿍이(0~3세) 때는 아이 곁에 붙어서 눈 마주치고 씻어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피부접촉만 하면 돼요. 3세부터는 약간 손을 놓아야 하고 초등 이후부터는 그냥 아예 놔줘야죠. 그런데 엄마 대부분이 아이가 7~8세 때 그만두고 매니저 역할을 하려고 하는데요. 아이와 엄청 싸우죠. 그때는 차라리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해야 덜 싸워요.
평소에 책을 안 보다, 육아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들었습니다.
육아가 너무 힘든데, 물어볼 데는 없고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죠. 인터넷에는 의미 없는 정보가 너무 많잖아요? 이러다 죽겠다 싶어 책을 읽었어요. 화 안 내려고, 애 잡지 않으려고, 살고 싶어서 읽었죠. 육아책을 읽고 도리어 화가 날 때도 있었어요. 책에 나오는 부모는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못하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육아책을 멀리한 때도 있었지만, 결국 답은 책에 있었어요. 난독증까지 있었던 제가 책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노트에 메모하면서 읽다 보니 책 읽는 촉도 발달하고, 취하고 버릴 걸 알게 되더라고요. 독서가 편해지고 재밌어졌어요. 하은이도 덩달아 열심히 책을 보게 되고요. 책으로 인생이 바뀐 대표적인 인물이 저예요. 인간 극장에 나가도 될 거예요. (웃음) 성인에게도 책육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제가 책육아의 산 증인이니까요.
흔들리지 말자
전작을 본 독자도 있을 테고, 안 본 사람도 있는데요. 각자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이 세상에 모든 엄마들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하죠. 그런데 육아가 힘들어요. 힘든 육아 시기를 현명하게 견뎌내고 싶을 거예요.『불량육아』를 읽은 엄마는 제가 강조한 책육아와 배려육아를 시도해요. 시행착오도 겪고 실패도 하는데요. 이럴 때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 합니다. 이 책은 『불량육아』를 낸 뒤 받은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이에요. 좀 더 실용적이면서 구체적인 사례를 다뤘죠. 그래서 전작을 읽었던 독자라면 좀 흐트러진 결심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거예요. 전작을 안 읽은 엄마라면 이 책으로 육아책에 입문할 수도 있겠네요. 육아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많이 접하겠지만, 인터넷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있어요. 그렇다고 의사 선생님에게 매번 물어볼 수 없고, 시엄마에게 물어볼 수도 없잖아요. 이럴 때 간단하게 답을 주면서 또 다른 육아책으로 진입할 수 있을 거예요.
강의에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나요?
강의에 오는 엄마들은 제 책을 읽고 오는데요. 블로그나 메일, 쪽지로 받는 질문 중에서는 제 책을 정독하면 답이 있는 질문이 많죠. 지금 엄마들이 공교육과 함께 사교육으로 큰 세대잖아요. 시키는 일은 모범적으로 잘해요. 하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고 진행하는 건 육아가 처음이거든요. 그러니 불안하죠. 육아도 누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시키면 잘할 거예요. 하지만 지시해주는 사람도 없고, 있다고 해도 의미가 없어요. 아이마다 성격과 기질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 방법이 안 먹히거든요. 그래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거예요. “제가 잘하는 건가요? 맞는 건가요?” 저는 그때마다 잘한다, 맞다고 답하죠. 흔들리지 말라고요. 흔들려서 애 잡지 말라고요.
하은이는 책을 보고 어떤 반응이었나요.
재밌다고 해요. 네 이야기가 많아서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솔직하게 썼으니 괜찮다고 해요. 그리고 책 마지막 부분인 기자회견 하는 대목이 특히 웃겼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약간, 아주 약간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이번 책의 인세를 전액 기부한다고 들었습니다.
책을 내서 물질적으로 얻고자 하는 게 없어요. ‘희망 옹달샘’이라고, 불치병 앓는 사람들에게 인세를 기부할 예정이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돕는 데도 있어요. 책 나왔으니 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책으로 아픈 아이를 돕고 어려운 친구를 도울 수 있어서죠. 그래서 엄마들에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책을 사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부터는, 돈에 욕심이 없어졌어요. 이것도 독서로 깨달은 점이죠. 책을 읽다 보면 꽂히는 작가가 있거든요. 강신주, 박웅현 등. 그분들의 삶을 보면 모두 독서가 있고, 자연과 함께 가고, 그리고 기부도 다 하시더라고요. 기부할 때 느껴지는 행복은 돈을 썼을 때 생기는 행복과 차원이 달라요. 정말 행복해요. 기부나 나눔이 최고의 육아이기도 해요. 나누는 엄마 아래에서 아이가 삐뚤어질 수 없구나, 하고 느꼈죠.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 괜찮지?”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고 아이도 이걸 보고 자라니까요.
하은이가 초등학생인데 최종적으로는 어떤 어른으로 컸으면 하나요?
요즘 1등을 하는데도 불안해하는 아이가 많잖아요? 진짜 자신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걸 주도적으로 찾는 사람. 직업, 학력에 상관없이 진짜 행복한 게 뭔지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죠. 서른이 됐든 마흔이 됐든 아흔이 됐든 죽는 순간까지 오늘 행복하고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됐으면 해요. 넘치는 사랑을 남에게 베풀 줄도 알았으면 좋겠고 착하고 모범적인 것보다는 반대로 똘끼 충만하더라도, 심지어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하고 싶은 걸 뜨겁게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책 많이 읽다보면 동화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나요?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아니, 절대로요. 전 제대했어요(웃음). 강의 들어오면 강의하고 엄마들 열심히 상담하면서 이대로 계속 살 거예요. ‘스타 강사’는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작가’라는 타이틀은 어색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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