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의 일부 국사교과서도 사실을 왜곡하거나 엉터리로 서술됐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켜내지 못했다. 건강한 역사의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즈음, 청소년들에게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생각을 안겨줄 소설 『야만의 거리』 가 나왔다. 왕조 중심이 아닌 개인에게 초점을 둔, 그리하여 식민지로서의 열패감을 지닌 1920년대를 다르게 해석한 청소년 역사소설이다. 제11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창작 부문 대상작인 『명혜』 를 비롯해 『꽃신』『남사당 조막이』 등 역사 동화를 선보여 온 김소연 작가가 처음으로 쓴 청소년소설이다.
ⓒ 송곳
역사동화를 쓰다가 첫 청소년소설을 쓴 소감은 어떤가? 역시 역사를 소재로 했는데.
7년 만의 첫 청소년 소설이다. 뜻 깊고 감사드린다. 독자들과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설렌다. 청소년 소설에서도 역사를 다룬 것은 역사 동화를 쓰면서 목마름이 생겼다. 동화에서 한계가 있는 소재와 주제에 대한 욕심이 자연스레 생겼다. 첫 시도는 큰 욕심 없이 써 봤다.
역사소설, 독자에겐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고, 작가에게도 어렵지 않을까하는 선입견이 있다. 역사 이야기를 계속 쓰고 있는데, 역사에 대한 어떤 매력이 있어서 그렇게 하고 있나?
지나간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역사라고 거칠게 정의하면, 오늘날과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오늘이다. 쉬운 말로 오늘을 좀 더 이해하려면 어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성찰하면 된다.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나에겐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쉽게 말하면, 지금 일본 아베총리의 발언에 경악하는데, 아베의 언행은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서 놀랍지가 않다. 합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놀라움이나 분노보다 안타까움과 실망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다.
중고등학교 시절, 일제강점기에 대한 교육을 받았을 때의 기억을 돌이키면 국사를 배우면서 괴롭고 재미없고 화나고 열패감을 느꼈었다. 그렇게 안타까움으로 남았었는데, 동화작가 수업을 받으면서 역사동화를 쓰는 과제가 나왔다. 일제강점기를 다시 공부하는 계기로 삼자고 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역사서를 섭렵해보니 10여 년 동안 일제강점기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정된 사관 이외의 사관으로 그 시대를 다시 이해하고 해석하는 책들이 있더라. 새롭게 공부하면서 몰랐던 시대를 알게 되는 느낌이 들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열패감과 분노가 아닌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소재로 재밌게 이야기를 푼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일제강점기의 이야기에 빠진 거지. 왕조 중심의 역사를 탈피하니까 암울하고 엄혹한 시절에도 훌륭하게 살아낸 개개인이 많더라. 지금 우리가 그분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이야기를 함께하고 싶었다.
“일제 강점기는 동화와 소설을 쓰는 제게 커다란 화두입니다.… 아프고 슬픈 삼십육 년이지만 분명 그 안에는 설움과 가혹함만이 전부가 아닌, 또 다른 삶이 존재했습니다. 시대의 무게에 억눌리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 세상을 헤매던 생명들이 있었습니다.”(p.399~400)
일제강점기도 시기에 따라 다 다르고 가치관들이 지금까지도 연결돼 있음에 놀랐다. 매력있는 시대이고 급변했던 만큼 꼼꼼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시대라고 본다. 일제강점기의 사회학이나 풍속 등 자료를 굉장히 많이 섭렵했을 것 같다.
역사소설을 쓰면서 주의해야 할 것이 고증이다. 소설이 허구와 상상의 산물이긴 하지만, 연도나 어느 시대라고 밝혔을 때는 다른 지점이 있다고 본다.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이라면, 일종의 책임감인데, 고증은 철저하게 짚고 확인해서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작업이 사실 까다롭고 시간도 요하고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역사소설을 쓰고자 하는 작가라면 1차적인 의무라고 본다. 살지 못한 시대라서 그 시대를 독자들과 함께 빠진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연극무대를 연출하는 감독처럼 구축을 하는 거지. 그게 나한테는 재미였다. 집이 잘 지어지면 자랑스럽게 권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무너질 수 있으니 스릴을 즐긴다고나 할까. 뒤질 대로 뒤지고 알아볼 만큼 알아도 오류를 지적하는 독자들이 꼭 있다.
주인공인 동천이 다혈질인 것 같으면서도 생각이 깊고 입지전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동천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구상했나?
좋게 평가를 해주셨지만 사실 동천이는 평면적인 인물이다. 그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고, 좀 더 다면성을 지닌 인물로 그려봐도 괜찮을 거란 생각도 든다. 이름 자체는 단순하고 유치하다(웃음). 동쪽으로 떠난다는 뜻이다. 동천이가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일본에서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거기서 얻은 깨달음으로 만주로 떠난다. 동천은 주인공이자, 그 시대를 다이내믹하게 살았던, 동시대 인물을 섭렵하기 위한 나침반의 역할이라고 봐도 좋겠다.
박열 등 다른 인물에 대해서도 말해준다면.
박열은 무정부주의자, 아나키스트다. 암살을 기도했다는 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돼서 이십 수 년 감옥살이를 하다가 일본이 패망하면서 풀려났다. 나중에 월북해서 거기서 생을 마쳤다. 우리는 아나키스트라고 하면 테러리스트를 떠올리기도 하는데, 당시 아나키즘은 꼭 알아야 할 무엇이었다. 앞으로 쓸 소설에서는 그쪽에 대해 공부를 하고 해석을 해봤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음,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은 형제나 마찬가지. 같은 어머니를 둔 형제라도 장성해서는 각자 갈 길을 따로 걷게 되는 법이지만, 그렇다고 형제라는 사실까지 변하는 건 아니니까.”(p.285)
헌책방 주인 구마모토는 만들어낸 인물인데, 과거 어딘가에서 본 듯한 사람이다. 다케다 선생도 그냥 미워하기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다케다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렸나?
다케다는 가장 문제적인 인물이자, 당시 일본을 상징하는 인물로 만들었다. 사실 욕심이 있었다. 아베 총리도 나름 논리가 있을 텐데, 우리는 그가 왜 그런 발언을 하는지 보다는 발언에 대해서 즉흥적이고 1차적으로만 반응을 한다. 1차적인 반응을 한 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왜 저런 발언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다케다에 대해서도 동천이 안타깝고 배신감을 느끼는데, 그런 것을 작가가 잘 그려낸다면 우리 쪽에서만 바라보는 일제강점기를 다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충분히 못 그려낸 것 같다(웃음).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좋았던 적이 없는데, 일본 사람 중에도 한국 편을 드는 사람도 있고, 평화를 위해 두 나라는 공존해야 하는 관계다. 어떻게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까?
그렇게 거대한 담론을 정리한 것은 없지만, 자식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내 정체성과 아이를 생각했을 때, 일본은 우리가 의식하는 것만큼 일본이 한국을 의식할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 일본은 늘 서구 해바라기이고, 스스로를 동양 속의 유럽으로 생각한다. 아시아를 타자화해서 보는 일본의 시선은 이 시대를 전후해서 나왔다. 우리는 식민지 역사가 있으니 일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 존재가 크게 다가오는 거지.
2부에서, 스포일러 같은 의견인데, 거복이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넣어 달라(웃음).
거북이와 요시코가 연애를 하는 식으로(웃음)? 우리는 이념에 의해 갈려서 사회주의 독립운동 지사에 대해 이야기를 못했다. 앞으론 많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에 대한 목마름, 아쉬움이 있다. 그분들을 통해 가져야 할 자부심을 얻기 위해 동천이는 많이 뛰어다닐 것이다. 이야기가 잘 나와서 독자들이 이런 독립지사가 있었느냐며 검색한다면 작가로서 보람을 느낄 것 같다. 독립운동을 직접 앞에서도 하지만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한 분도 있다. 이분들도 행동대장 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거복이처럼 동천보다 더 주체적인 생각을 갖고, 동천이를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책을 보면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약간 긍정적으로 그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식민 지배를 통해 조선이 피상적으로나마 근대화를 이뤘다는 것은 즉물적인 사실이다. 철도, 전기, 근대 교육 등의 시스템이 수입되고 운영됐으니까. 그런데, 그런 1차적인 사실만 갖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칠 수 있을까. 일제강점기에 대해서 우리가 제대로 배웠고 배우고 있다면 식민지 근대화론은 겁낼 것이 없다. 식민 지배를 통해 근대화가 되었는데 그 근대화를 통해 조선이 겪어야 했던 피해를 함께 제대로 배웠다면, 그것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뉴라이트계열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철길을 통해 근대 문물과 사상이 들어온 만큼 수탈된 자원과 인력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면 다 알 수 있으니, 그런 걸 겁낼 필요가 없다.
동천이 대학에 입학해서 사회주의 토론 동아리에 들어가고, 식민 지배에 대한 토론을 하다가 동천은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미나에서 얘기됐던 것들에 대해서 좀 더 듣고 싶다.
동아리에서 토론이 벌어져서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주의를 갖고 토론하는데 그 사람들도 실은 까칠한 밥보다 쌀밥이 더 맛있을 거다. 이런 1차적인 욕구에서 그들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주의주장이 전부인양 떠드는 모임의 청년들이지만, 진보적으로 앞서가고 일본 사회를 변혁시키겠다는 의지가 충만하지만, 그들의 내면 깊숙이 깔린 것은 의식주의 편안함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썼다.
자료를 조사하고 고증하면서 시간이 얼마나 걸렸고, 2부에서는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이 어떻게 전개될 건가?
민족주의 계열은 내가 쓰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쓴 것들이 있다. 2부에서는 아나키스트 의열단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차원 정도로 이야기를 꾸며보면 어떨까 하는 계획은 있다. 그 시대를 열렬히 살아냈던 선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일제강점기를 계속 공부하는 중인이다. 다른 작품을 준비하려고 자료를 찾다가 일제강점기에 대한 새로운 소재가 발견되면서 이것도 이야기하면 재밌겠다 싶은 것들이 나온다. 그렇게 가지치기도 하면서 쓰기도 한다. 보통 최소 1년 정도는 한 작품을 위한 자료를 찾고 읽는다.
작가가 생각하는 일제강점기의 매력은 무엇인가?
거대사보다 미시사에 관심이 더 많다. 왕조 중심의 역사로 보면 열패감에 빠지게 된다. 그런 권력 중심의 역사관을 비켜나서 문헌에는 없지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매력이다. 내 스스로의 열패감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나는 사적인 이유로 글을 쓴다.
야만의 거리김소연 저 | 창비 우리 사회는 수년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골머리를 앓아 왔고, 최근에는 국사 교과서의 편향성 문제까지 불거져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러한 때 ‘청소년에게 추천할 만한, 건강한 역사의식이 담긴 읽을거리로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은 학교 현장과 학부모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품어 봄 직하다. 이 책 『야만의 거리』 는 그러한 질문에 답할 만한 수작으로, 소설로서의 재미와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독자 스스로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세울 수 있도록 안내한다.
역사와 전통문화를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최근 SF에까지 장르를 넓히고 있다. 겉보기에는 목소리 크고 쾌활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 동화 속 인물 승아 못지않은 소심쟁이이다. 2005년 월간 [어린이동산] 동화 공모에서 중편 「꽃신」으로 최우수상을 받았고, 2007년 『명혜』로 제11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 부문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역사동화 동화책..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