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 “사진을 오래 찍을 수 있는 비결? 사랑이죠”

네 번째 사진에세이 『조선희의 영감』 펴내 <건축학개론> 포스터가 가장 나다운 사진 사진작가의 실력, 순발력에서 판가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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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 지 23년. 한 순간도 사진을 떠난 삶을 생각해보지 않은 조선희 작가가 『조선희의 영감』을 펴냈다. 벌써 네 번째 책. 사진과 글의 콘트라스트가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스타사진작가 조선희.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조선희가 찍은 영화 포스터를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2013년에만 <변호인> <관상> <공범> <숨바꼭질> <감시자들> 등을 찍었고, <건축학개론> <7번방의 선물> <써니> <후궁>도 조선희의 작품이다. 패션 매거진 화보, 여러 브랜드의 광고 사진을 비롯해 대한민국 유수의 영화 포스터가 조선희 카메라로 담기고 있다. 대중들은 간혹 TV에 출연한 조선희의 모습을 보고 “무서울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털털한 성격에 거침 없는 발언은 신인 모델이라면 당연히 긴장할 만하다. 그러나 트위터(@zosun_hi) 세상 속 조선희는 옆집 언니 같다. 『네멋대로 찍어라』 『왜관촌년 조선희 카메라와 질기게 사랑하기』 『조선희의 힐링포토』에 이어 네 번째로 펴낸 책 『조선희의 영감』은 근 4년동안 조선희가 찍은 사진과 글을 모은 에세이다. 뻔한 내용이겠지 싶었는데, 읽고 나니 조선희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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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에 위치한 조아조아 스튜디오에서 조선희를 만났다. 그를 인터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사진작가의 얼굴을 카메라로 담아내야 하는 사진기자는 꽤나 긴장했을 것이다. 조선희는 사진기자의 특별한 주문 없이도 자유자재로 포즈를 취하며, 렌즈에 눈을 맞췄다. 조선희는 인터뷰를 하는 도중, ‘고작’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23년 사진인생에도 ‘고작’이라고 평했고, 마흔셋 나이 앞에도 ‘고작’을 붙였다. 사진을 오랫동안 찍을 수 있는 비결을 물으니, “사랑 밖에 없죠”라고 답했다. “사진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건 재밌기 때문이에요. 뭔가 제 생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좋아요. 사진작가로서 위기감? 그런 건 없어요. 저보다 잘 찍는 사람은 많지만, 그 사람들이 조선희처럼 생각하고 찍진 않잖아요. 난 그냥 내 것만 하면 되는 거예요.” 얼마 전부터 조선희는 스스로에게 “나 잘 살고 있나?”를 묻기 시작했단다. 스타 모델들의 후문, 촬영장 에피소드도 묻고자 했으나 ‘사람 조선희’가 더 흥미로웠다. 

 

내려놓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요즘


사진을 보려고 『조선희의 영감』을 폈는데, 글이 좋았어요. 글쓰기의 시작이 ‘책 읽기’라는 점도 인상 깊었고요. 사람이 글을 쓰고 싶을 때, 여러 이유가 있지만 좋은 글을 읽었을 때만큼 강한 욕구는 없는 것 같아요.


왜 이런 거 있잖아요. 어떤 책을 읽었는데, 작가가 나랑 너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도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내 식으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알랭 드 보통이 말했던가요? “글 쓰는 작가의 본능은 소통이다.” 저는 사진을 찍는 일이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모두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방법의 차이일 뿐이죠. 자기가 원하는 방법으로 소통을 하는 거죠. 제가 글을 세련되게 쓰는 능력은 없지만,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4권의 책을 내면서 글쓰기는 내게 일종의 ‘명상’인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내가 가진 생각들이 정리되니까요. 수많은 상념들을 흘려 보내지 않고, 어떻게 붙잡느냐, 남기느냐의 문제죠. 만약 글을 쓰지 않았으면 놓쳐버릴 것 같은 생각들은 남기는 거에요.


‘영감’에 대해 다양한 정의를 내렸는데, 가장 와 닿은 것이 ‘너무나 익숙한 명제를 다시 깨닫는 것’이었어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다른 시각에서 보려고 노력해요. 본다는 것 자체가 굳이 시각적인 것만이 아닐 거예요. 청각, 후각일 수도 있고 내 마음의 방향인 거죠. 사진 찍을 때도 마찬가지에요. 같은 피사체, 같은 콘셉트라고 해도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서서 찍는 것과 앉아서 찍는 건 완전히 다르거든요. 사진의 톤 앤 매너는 지켜야겠지만, 조금이라도 벗어나서 틀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다르게 생각하는 것들이 모여 내 자신이 된다고 생각해요. 출발은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요. 


글쓰기의 한 방법으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단어에 대해 생각해본다”고 했어요. 요즘 눈을 떴을 때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뭔가요?


나 잘살고 있나?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그런 생각 많이 해요. 『조선희의 영감』에도 썼지만, 최근 2,3년 동안 나이듦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주변 사람들을 보면, 참 괜찮은 얼굴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약간 못되게 보인다던가, 안 좋게 변한 모습을 종종 봐요. 안타까운 생각도 들고,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잘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만약 신경이 많이 쓰이는 촬영이 잡힌 날이면, ‘오늘은 화를 안 내야지’라고 다짐하고 나와요. 그렇다고 화를 안 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생각을 한 번 하고 나오는 거랑은 달라요. 좀 덜한 거죠.


잘사는 건 뭘까요? 베푸는 삶인가요?


나누는 일을 포함해서 작은 에티튜드를 지키는 것, 선배나 후배에 대한 배려 같은 거죠. 너무 나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닌, 내려놓기. 요즘 내려놓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오늘 아침에도 스님이 된 초등학교 친구와 문자를 했어요. 내려놓는다는 건, 그럼 내가 사진을 그만 찍어야 하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나의 욕심, 나를 위해서 사진을 찍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한다. 내가 더 떵떵거리기 위한 사진 작업은 안 한다. 누군가에게 위로, 기쁨을 주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사진 작업을 해야 한다”고. 어려운 문제에요. 알지만 잊을 때가 많고요. 어떻게 보면 책을 내는 것조차도 제 욕심일 수 있어요. 내려놓는다는 명제에 대해서, 3년동안 스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도 확신이 오지 않았어요. 욕심과 열정의 차이, 이런 걸 고민하고 있는 중이에요. 다 내려놓으면 열정이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아직 그 차이를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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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주는 사람들만 알면 되지 않을까요?


사진에서는 ‘눈빛’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이제 모델의 눈빛만 봐도 이 사람이 어떤 성격인지 대충 감이 오겠어요.


짐작은 조금 되겠죠. 그런데 첫인상으로 파악하지 않으려고 해요. 짐작은 되지만 평가는 안 하려고 해요. 눈빛만 보고 평가하면, 선입견인 거에요. 완전히 다른 사람일 수도 있거든요. 제가 ‘사랑한다’는 표현도 할만큼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후배가 있는데, 이 친구 눈빛은 참 마음에 안 들어요. ‘쟤 눈빛은 왜 그럴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해요. 


조선희는 세다, 강해 보인다는 선입견이 있어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카리스마가 없진 않죠(웃음). 그런데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니에요. 겉으로 보이는 남성성도 많지만, 오랫동안 저를 지켜본 사람들은 천상 여자 같은 면도 많다고 해요. TV에 보여지는 것들, 촬영하면서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평가할 순 없는 거잖아요.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에 출연한 모습을 몇 번 봤어요. 다른 작가와 비교해보면 직설적인 편이에요. 모델들에게 화도 많이 내고. 주로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나요?


흠. 잘 기억이 안 나요(웃음). 화를 내고 그냥 잊어버리거든요. 화라는 게, 자기 안에 나쁜 기운을 담아놓지 않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워낙 화를 잘 내는 편인 거고요. 그런데 화를 낸 순간에 끝나버려요. 오래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제가 염세적일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게, 다 까먹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이야기해도 기억이 잘 안 나요(웃음). ‘왜 그랬지? 내가?’ 이럴 때가 많아요. 화를 내고 나서 생긴 버릇이 바로 사과하는 거예요. “내가 화를 낸 건 그 일 때문이지, 너에게 감정은 없어. 오해는 하지마”라고 말해요. 제 뜻과는 다르게 상대는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까요.


‘조선희’ 라는 사진가에 대한 편견, 선입견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스트레스 받았었어요. 그런데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을 내가 전부 컨트롤 할 수는 없으니까요. 처음에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게, 10년 전쯤 친한 기자 언니가 인터뷰를 하던 도중에 “왜 조선희 라는 사람은 정말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밖에 없냐? 왜 중간이 없냐”고 하더라고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거야?’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세상 사람들은 모두 진심이 통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나 현실적으로 깨달았죠. 그래서 제가 <도수코> 같은 방송을 잘 안 봐요. 마음 아프니까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어떻게 편집됐구나’ 대충 짐작은 돼요.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만 알면 되지 않을까요? 전 모든 사람한테 사랑 받는 사람을 싫어해요.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진실을 많이 숨겨야 했겠어요.


모델들 많이 까다롭잖아요. 특히 톱스타의 경우에는 사진작가가 설득을 해서 촬영해야 신도 많고요. 


사진이라는 게 손가락으로 셔터를 누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찍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 번 저와 사진을 찍고 나서, 더 이상 안 찍는 사람도 있어요. 사진작가가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모델의 기분을 잘 맞춰야 하는 임무도 있지만, 설득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가끔 매니저나 기자들이 “‘그 사람이랑 뭐 문제 있었냐고”고 굳이 안 전해져도 되는 말을 전해줘요(웃음). 저도 알죠. 그런데 쉽게 갈 수 있는데 어렵게 가는 거 아니냐는 것도, 그 사람의 생각이니까요. 저는 늘 똑같은 걸 찍을 거면 찍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마음은 아파요(웃음). 


어떤 모델을 볼 때 잘 찍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포즈를 잘하고 안 하느냐, 열심히 하냐 안 하느냐’ 보다는 애정이에요. 비주얼을 떠나서, 상대가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질 때, 좋은 에티튜드를 보여줄 때 더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인성의 문제, 이런 게 다 사랑이죠.


인물은 좋은데 표정이 안 나오는 모델들도 있을 텐데요. 이럴 때는 어떤 말을 해주나요?


보통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진은 움직임을 정지되게 표현할 뿐이지 말해도 되고 움직여도 상관없어요. 몸과 바디라인이 같이 표현되는 게 좋은 사진이에요. 이런 말을 해주면 뭔가 깨달은 것처럼, 바로 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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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발력, 디테일 중요. 엔지니어가 되면 안돼요 


대학에서는 의생활학과를 전공, 사진은 대학 서클에서 배웠어요. 김중만 작가를 사사했고요. 사진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데뷔하기까지 어려움이 있었을 법도 한데, 1996년 매거진 <IMAZINE>을 통해 이정재 사진을 찍으면서 일찍 주목 받았어요. 당시 편집장에게 “내 시작이 되어 달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신이 있었던 건가요? ‘시작’이라는 표현도 인상적이에요. 


심사숙고 해서 어떤 말이 나올 때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묵혀있는 말이 때가 많아요. 편집장님에게 그 말은 처음 했지만, 이미 몇 년 동안 저한테 묵혀있던 말이었던 거죠. 연습한 말이 아니고 그냥 그 말이 나왔어요. 오랫동안 시작에 대해 생각했으니까요. KBS 서수민 PD가 친구인데, 당시 같이 술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아니, 경험이 없다고 일을 안 주면 도대체 언제 경험을 쌓냐. 누구한테나 시작이 있어야 두 번째, 세 번째가 있는 거 아니냐”고.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속에서 그냥 녹아 있는 거예요. 『조선희의 영감』 ‘내면의 얼룩’에 쓴 글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에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살아온 나의 시간들을 찍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시간들이 쌓여 내 속 깊숙이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만들고 그것들이 세상을 향해 소리치게 만든 것이다. 미친 듯이 세상을 향해 마구 셔터를 누르던 이십 대의 나의 시간들은, 내면의 얼룩을 쏟아 내고 싶은 욕구였다. 이십 대엔 아침이면 일어나 아무 이유 없이 소리 내 통곡하며 울던 때가 있었다. 세상을 사각 프레임으로 잘라 내는 것은 곧 나의 오랜 얼룩이며 울부짖음이다. (『조선희의 영감』 p.277)


이제는 거꾸로 누군가의 시작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었어요. 


되도록 많이 기회를 주려고 해요. 사실 저도 김중만 선생님께 감사한 것이, 선생님이 없었으면 지금의 제가 없을 거예요. 제자나 후배들에게 멘토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시작할 수 있는 용기, 도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매개체가 되어주고 싶어요. 5년 동안 대학에 나가고 있는 것도 제가 받은 것을 어떤 식으로든 되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예요. 일주일에 한 번 가지만, 학교가 대구라서 하루를 온전히 소비해야 하는데, 매년 그만둬야겠다고 마음을 먹다가도, 학교라는 곳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론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테크닉보다는 어떻게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낼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가르치려고 해요. 5년만에 처음으로 가르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이에요. 


학교 제자들을 스튜디오에서 연습생으로 받아주기도 하나요?


두세 번 받았고, 이번에도 한 명 받기는 했는데, 학교에서는 안 뽑으려고 해요. 아이들이 교수로서 저를 바라보는 것과 스튜디오에서 만나는 것의 갭이 커요. 제가 친절하고 좋은 교수는 아니지만, 어시스턴트를 대할 때보다는 아무래도 부드러우니까요. 아이들 참을성도 문제고, 3개월쯤 지나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다른 곳으로 가거나 그래요. 제 스튜디오에 있다가 다른 곳에 간 아이들은 “일 너무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대요. 


교육생, 후배들을 뽑는 기준은? 


인연이 닿는 사람을 뽑는 편이에요. 제가 필요로 할 때, 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크게 문제가 되는 게 없으면 받아줘요. 어차피 한 번 보고 그 사람을 다 알 순 없는 거니까요. 너무 안 맞으면 그만 두는 거고요. 그 사람이 저를 필요로 해서 왔는데, 저도 필요한 상황이면 그게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일할 때 빼고는 완벽주의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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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조선희로서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글쎄요. 조언을 많이 안 해봐서(웃음). 일단 사진가는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견된 상황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순발력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 디테일에 신경 쓰라고 말해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이 말이 정말 명언이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엔지니어가 되지 말라는 거예요. 엔지니어인 사진가는 몇 년 쓰다가 버려져요. 왜냐면 더 신선하고 잘 찍는 애들은 늘 나와요.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몰려가죠. 그러다 모든 걸 소모했다는 생각이 들면 하락세를 걷고 어느 날 사라져요.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해요. “톤 앤 매너를 유지해라”, “네 생각을 넣어서 너만이 찍을 수 있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요. 


일반인도 요즘은 사진 실력이 수준급이잖아요. 사진작가로서 위기감은 없나요?


전혀 없어요. 저보다 테크닉적으로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엄청 많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조선희처럼 생각하고 찍진 않잖아요. 저는 한 명이니까, 내 것만 하면 되는 거예요. 우리가 능력 콘테스트에 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테크닉 순위를 경쟁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진 찍는 거 자체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삶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는 거라서, 저는 전혀 상관 없어요. 


『조선희의 영감』에 나온 이야기에요. 히말라야 여행에서 만난 친구 크리스가 ‘영원히 걸을 수 있는 비결’로 “아주 천천히 계속 걷는 것, 물을 조금씩 자주 3리터 정도는 먹을 것, 가끔 단 것을 먹을 것”이라고 알려줬어요. 조선희 작가가 사진을 영원히 찍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런 거 없는데… 사랑밖에 없죠. 뭐, 사랑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 관계, 로맨틱하고 핫한 사랑을 표현한 소설, 영화에 열광하지만, 아무도 그 오래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잖아요. 사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스무 살 때 찍은 사진의 느낌과 서른 살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달라요. 5년, 10년이 지나면 더 달라지겠죠. 가끔 사진을 찍다가 ‘진짜 확 때려쳐’ 싶을 때가 있어요. 사진 때문이 아니라, 이 바닥 이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 때요. 그래도 견디는 거예요. 제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좋아하는 게, 어떤 고통도 지나가게 돼있으니까요. 견디는 싸움인 것 같아요. 제가 파리에 갔을 때, 헤물트 뉴턴 전시회가 열렸어요. 내가 그동안 본 그 사람의 사진이 30, 40대 때 찍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60% 이상이 50, 60대 때 찍은 사진이었어요. ‘나는 아직 그 나이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반성 많이 했어요.


사진작가로서의 바람은 보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평생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는데, 어떤 사진을 찍고 싶나요?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사진을 찍었든, 상대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말을 거는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고 노력하려고 해요. 제가 A라고 생각하고 찍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모두 A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A라고 찍었지만 Z로 느껴도 되고, 자유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뭐 저는 그냥 죽을 때까지 사진을 하고 싶은 게, 글쎄요. 그냥 재밌어요. 물론 스트레스 받고 짜증날 때도 있지만 이 일 자체가 에너제틱한 일이고 사람들 관계, 소통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어떤 면에서는 즐거운 워커홀릭이기도 한데, 재밌어요. 뭔가 내 이야기, 생각을 사람들에게 사진으로 보여주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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