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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대통령 됐어도 대한민국은 똑같다 - 정봉주 『대한민국 진화론』

대한민국 정치는 자살골 정치다 언중유골, 농담 속에 담긴 진심 정봉주, 보수와 공감하는 진보의 방향을 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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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도사가 돌아왔다. 넉살좋은 말투와 유머는 여전했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더니 몸도 한층 날렵해진 듯했다. 출소 이후 그는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1년의 수감생활 동안 정리한 생각들일 터였다. 자칭 ‘GPS(구라폭풍셔틀)’이라 붙인 화법 속에 간간히 그 생각들이 엿보인다. 그의 생각은 이미 5년 후를 염두하고 있다. ‘봉도사’는 괜한 별명이 아닌 듯싶다.


지난해 ‘나는 꼼수다’를 통해 기성 정치인의 전형과는 한참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며 공감을 이끌었던 정봉주 전 의원. 정권의 실정을 실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후련함을 선사했던 그지만 대선 4개월을 앞두고 ‘BBK 사건’관련 허위사실 유포란 죄목으로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대법원까지 간 끝에 나온 판결은 정권에 의해 괘씸죄가 더해진 듯한 인상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교도소에 들어가는 그의 표정은 기죽어있지 않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정치인 최초(?)로 만기 출소를 한 후 그의 행보는 여전히 남달랐다.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강정마을 등 지난 정권 내내 첨예한 갈등 상황을 연출했던 현장을 돌아다니며 한 서린 그들의 하소연을 듣고 손을 잡았다. 자신의 지지자들과는 토크 콘서트로 인사하며 유쾌함을 잃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비록 그가 원했던 정권교체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그런 그가 최근 감옥 생활 동안 이어온 고민과 사유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 놓았다. 이른바 『대한민국 진화론』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강연장에 모인 독자들의 눈빛은 기대감이 서려있었다. 한편으로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분위기…. 그러나 “진보의 가치를 갖고 있는 21세기 마지막 인간병기”라며 예의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그의 농담은 일시에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강연회는 그런 유쾌함 속에 시작됐다.




둘 다 잘못됐다는 것은 둘 다 옳은 것

지난 대선은 진보와 보수, 지역 간,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이 정점을 찍었던 순간이 아닐까. 결과는 박근혜 정부의 탄생이다. 보수는 환호했으며 진보는 좌절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각 진영이 추구하는 가치를 벗어던지고 나면 정권 창출을 위한 목적은 큰 차이가 없다. 바로 ‘대한민국의 발전과 그 안에 삶을 영위하는 국민들의 행복’이다. 이를 직시한 듯, 정봉주 전 의원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주변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와 이야기하면 싸우게 되죠? 그럼 둘 다 잘못 된 거예요. 여러분들도 잘못됐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도 잘못된 거죠. 그런데, ‘둘 다 잘못됐다’는 것은 ‘둘 다 옳다’는 말과 같아요. 100% 틀린 것과 100% 옳은 것은 사실 통하는 것이거든요. 견해가 다른 친구들과 싸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자꾸 싸우다보면 둘 중에 하나에서 길이 나와요. 두 번 다시 안본다고 하지만 싸우면서 친해지는 친구들이 있어요. 개중에 아주 얄밉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 말고 ‘진심으로 내 생각은 이런데 네 생각은 뭐냐’ 하며 터놓으면 적어도 감정적인 대립까지는 치닫지 않거든요.”

그는 감옥에 있는 1년 동안 근본에 집중했다고 털어놨다. 인의예지(仁義禮智), 맹자가 이야기한 사단(四端)이다. 활발하게 활동해 온 그에게 좁은 독방의 공간은 적지 않은 고통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외공(外功)과 내공(內功)을 단련하며 버텨냈다. 동양과 서양철학 서적을 파고들며, 수백회의 팔굽혀펴기와 맨손운동으로 보낸 시간 속에서 그는 자아성찰을 통한 스스로의 진화를 일궈냈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셔야 되요. 생각은 자기 성찰이거든요. 오늘 하루를 생각해보고 여러분들의 생활을 쭉 보세요. 밖으로만 이야기했지 안으로 나를 들여다보거나 이야기한 것은 몇 번일까요. 사람들은 힘들고 절실할 때가 닥쳐서야 자기를 들여다보죠. 성직자나 종교인들이 훌륭한 이유는 늘 자신을 들여다보기 때문이에요. 오늘 한 줄의 글을 읽고, 1년 내내 단 한권의 책만 보더라도 나는 이 책과 대비해서 어떤 삶을 살고 있지를 들여다본다면 여러분들은 진화하는 겁니다.”

명진 스님은 그런 그를 “살면서 오는 사건들을 깊은 성찰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돼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몇 년의 시간 동안 그가 살아온 삶은 치열했고, 크고 작은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 안에서 그는 과연 어떤 성찰을 했을까. 『대한민국 진화론』에 담은 생각들을 쏟아놓는 그의 말 속에 뼈가 들어있었다.




진보는 과연 준비가 되어있나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은 진보진영에서 소위 멘붕(멘탈 붕괴) 상황을 연출하게 했다. 자조와 패배감, 절망감이 뒤섞이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정봉주 의원은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책에 담은 목적은 그 깨달음과 맥이 닿아있다.

“보수는 논외로 하더라도 진보 진영만을 이야기하자면, 저를 포함해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에 대한 약간의 비판조차 참지 못하더라고요.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나 뛰어난 논리력을 구사하는데 나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는 너무나 인색한 거예요. 특히 우리 진영을 제대로 직시하자는 담론을 제시하면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리기까지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책의 출발은 ‘우리를 한 번 돌아보자’였어요. 그 다음에 정말 우리는 이길 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담론을 던지는 것이 목적이죠.”

정 의원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도 했다. 분명한 것은 보수가 승리했고 새로운 정권이 시작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 진영 측에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겨워하거나 부정하는 행동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책을 쓰게 된 두 번째 이유를 말하는 정 의원의 표정에는 어느새 웃음 대신 진지함이 채워지고 있다.

“유권자 51.6%의 지지를 받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아쉬울 것이 없어요. 그분들은 48%를 들여다봐도 되고 안 봐도 됩니다. 어찌됐든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에 5년 동안 이 나라를 끌고 갈수 있는 힘이 생긴 거죠. 지금 진보진영은 5년 후 정권을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 하는 절실함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해야 해요. 그러나 그들이 현재 열심히 하는 행동은 새누리당을 찍은 사람들을 한심하게 치부하는 정도죠. 이런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이길 방법은 도대체 뭔가라는 고민을 하게 된 거예요.”

정 의원이 내린 진단은 ‘현재 진보진영의 상태로는 어렵다’는 것. 철저하게 세상과 격리된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는 절박하게 스스로를 돌아봤다. ‘과연 5년 후에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의 승패는 어떻게 될까’와 같은 자문은 이어졌고 고민의 결론은 여러 가지 상황을 예측하게 하고 있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기는 힘들 겁니다. 이미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 김두관 전 후보가 야당이 다시 승리하기 쉽지 않은 경남도지사직을 던졌거든요. 게다가 안희정 충남도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최문순 강원도지사 모두 장담할 수 없죠. 박원순 시장 역시 불안하다고 봐요. 현재 민주당에서는 모바일 선거를 제외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당원 중심의 후보 선출 방식으로 회귀하게 되면 박원순 시장이 후보가 되기 어렵죠. 그런 상황에서 바랄 수 있는 것은 상대 진영의 실수거든요. 사실 대한민국 정치는 자살골 정치에요. 자살골을 덜 넣는 팀이 이깁니다. 반사이익을 취하는 거죠. 박근혜 정부가 실수를 얼마나 하는지 여부가 내년 지방선거를 보는 관전 포인트에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특징이 볼을 몰고 공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립지대에서 공을 돌리면서 대체로 자살골도 잘 안 먹다는 거예요. 이런 것만 짚어 봐도 내년 지방선거가 보이죠.”




근본적인 의식 개혁이 필요

통칭 여권이라 불리는 진보진영의 현주소는 사실 사분오열에 가깝다. 성찰은 고사하고 현실도피 수준이다. 정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다음에 이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번에 혹여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도 뭘 바꿀 수 있었을까요. 우리 사회는 사실 어느 것도 제대로 뜯어고치기가 대단히 어려운 구조로 돼 있어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40여년이 넘는 시간, 그 이전에 일제 36년과 소수 사대부들의 민중 수탈해 온 물적 토대가 여전하거든요.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대단히 보수적이고 소수권력지향적으로 세팅이 돼 있다는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진보가 권력을 잡는다고 해서 한순간에 바뀔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 변화의 첫 번째는 보수와 진보로 굳어진 프레임을 깨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프레임은 보수진영에 의해 만들어 졌고 고착화 돼 왔다. 영호남 대립 구도, 좌우이념구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프레임 속에서 보수진영과의 싸움은 진보진영의 백전백패일 뿐이다. 정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공감’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한다.

“진보는 진화해야합니다. 보수와 진보 프레임을 뛰어넘는 제 3의 길을 가야한다는 거죠. 공감의 마인드로 접근하다보면 보수 쪽에서도 생각보다 우리의 마인드와 일치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거든요. 1987년 6월 항쟁 때 대한민국의 혁명적 변화를 주도했던 분들이 50대가 돼 있잖아요. 그분들 역시 이 사회를 개혁적으로 끌고 가려 했던 주역이었음을 인정하고 다시 우리와 함께 가보자는 제안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보수가 한동안 주장했던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는 가치, 미국적 신자유주의 가치’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실패한 가치 전락하고 있습니다. 대신 떠오르는 것이 공동체적 가치, 수평적인 가치죠.”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은 정형화 된 보수와 진보가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든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대선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오랫동안 진보의 가치로 여겨져 왔던 것이기도 하다. 승패는 어느 쪽이 먼저 자신의 프레임에 안주하지 않고 정치를 향한 국민의 바람과 목소리가 반영된 가치를 선점하느냐에 결정됐다.

“21세기의 패러다임에서는 이미 보수와 진보가 합종연횡 되고 각각의 주제에 따라 가치관이 뒤섞여 버립니다. 이것에 맞춰 보수와 진보의 틀에 대입을 시키는 것이 아닌, 주제에 따라 진보적 가치에 동의할 수 있는 보수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거죠. 물론 반성을 위한 자기 부정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유의 가치철학을 부정하는 일이 발생해서도 안 되고요. 다른 친구를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이 변해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죠. 핵심은 나의 가치를 온전하고 강고하게 지켜가면서 공부하고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 의원이 이야기하는 고민은 사실 진보진영만이 아닌 보수진영 역시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정권재창출에 성공했지만,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가치는 아직도 보수진영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보수든 진보든 정치가 추구하는 목표는 한 가지임을 자각하는 태도가 절실한 때다. 국민의식 진화를 바탕으로 한 정치의 성숙, 굳이 봉도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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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진화론 정봉주,지승호 공저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물론 경제 민주화,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 남북 통일에 대한 비전, 한미 관계를 핵심으로 한 국제 질서 등…….『대한민국 진화론』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실로 방대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였으며, 국내 최고의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와의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더욱 큰 흥미를 유발한다. 날카로운 질문과 정봉주의 내공이 어우러져 정말 ‘대담(大膽)’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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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황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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