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이동진 “죽기 전에 영화를 딱 한 편 다시 본다면…” - 책이 숨쉬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북콘서트>

음악, 대화, 책이 함께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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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사람들은 자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가을은 천상에서는 별이 가장 빛나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가을은 지상에서는 글자들도 여무는 계절입니다. 우리는 글이라는 별들을 책들에 담아 축제를 엽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이동진의 빨간책방] 입니다.”

오프닝: 초추의 양광, 그리고 가을방학


햇볕이 따스한 초가을은 독서의 계절임과 동시에 놀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다른 유희를 마다하고 빨간책방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 홍대 야외공연장에 모여들었다. 이윽고, 서너평의 스튜디오를 나온 빨간 안경에 빨간 셔츠를 곱게 차려입은 이동진 디제이가 북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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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사람들은 자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가을은 천상에서는 별이 가장 빛나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가을은 지상에서는 글자들도 여무는 계절입니다. 우리는 글이라는 별들을 책들에 담아 축제를 엽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이동진의 빨간책방] 입니다.”


오프닝 멘트와 시그널이 끝나고, 가을방학의 ‘취미는 사랑’이라는 노래가 이어졌다. 보컬인 계피의 청아한 목소리가 청명한 가을 하늘을 수놓았다.

 

 


<1부> 책, 임자를 말하다.


빨간 책방에는 적임자인 이동진 디제이 외에 그와 막강 콤비를 자랑하는 게스트인 김중혁 작가가 있다. 빨간책방의 숨은 흑진주, 흑임자라는 소개 하에 선글라스를 낀 김중혁 작가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원래 김중혁 작가와 함께하는 [책, 임자를 말하다]라는 코너는 사전에 책을 정하여 공지 한 후 그 책에 대한 이야기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번 북콘서트에서는 특별히 특별한 책을 지정하지 않고 책에 대한 그들의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이하 이동진 디제이는 '이', 김중혁 작가는  '김'으로 표기)

 


이: 원래는 실내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녹음을 하는 기분이 어떠신가요?

김: 싫습니다.(웃음) 저는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셨다는 사실이 굉장히 반갑네요. 여기 계신 분들은 저의 잠재적 독자 분들이시잖아요? 그러니까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이 분들께 저를 에세이만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소설도 잘 쓰는 작가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웃음)


이: 제가 영화평론가다 보니 영화계의 감독들을 만나곤 하는데요. 영화계에서는 두부류의 감독님이 존재하시는데요. 영화를 훌륭하게 만들면서도 다른 영화를 전혀 보지 않는 홍상수 감독님 같은 분이 계시구요, 반면에 영화평론가보다 더 많은 영화를 보시는 박찬욱 감독님 같은 분도 있으세요. 김중혁 작가는 책에 대해서 어떤 타입이신가요?

김: 저는 박찬욱 감독님을 좋아합니다. 제가 박찬욱 감독님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마 제가 책을 많이 안 봐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웃음) 저는 대학 때 하루 한권씩 읽을 정도로 열심히 책을 봤는데요. 대학 내내 읽은 책으로 지금 마흔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대에 책을 많이 읽으시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 20대에 읽은 책 중 가장 영향 받은 책은 어떤 책이고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어떤 건가요?

김: 저는 고등학교 때 시를 썼는데요. 그때 황지우 시인과 이성복 시인의 시가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특히 이성복 선생님이 마음에 들어 계명대에 진학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갔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섬복 선생님은 불문과 교수이셔서 시를 안 가르치시더라고요. 그래서 낙담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다음 빨간책방에서 다룰 책이네요. (웃음)

(참고: 12회의 빨간책방이 지정한 책은 김학선의 [K-pop 세상을 홀리다] 와 차호진의 [청춘의 사운드]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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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김중혁 작가님의 책 읽는 스타일은 어떤가요?

김: 한권을 그대로 정독하진 않아요. 저는 책을 완독해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책을 읽다가 재미가 없으면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하는데요. 30페이지 정도 보면 그 책에 대한 판단이 서요. 그렇게 읽고도 마음에 안 들면 그 책을 버리고 새로운 책을 읽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 일반 독자보다는 책을 많이 읽으셨을 텐데요.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책은 고르는 법, 그 기준은 어떤 건가요?

김: 와인을 잘 고르는 방법은 아는데 책을 잘 고르는 기준은 모르겠네요. 책은 그저 읽어보고 자신의 호흡과 맞으면 좋은 책이 아닐까 싶어요.

이: 저의 경우에는, 책을 고를 때 세 가지 '서문, 목차, 책의 2/3지점의 왼쪽'을 보는데요. 특히 세 번째 부분이 중요한데요. 왜냐하면 저도 책을 쓸 때 처음이랑 끝부분은 힘주어 쓰는데 책의 2/3부분은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못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책의 그 부분이 훌륭하면 그 책이 훌륭할 확률이 90퍼센트더라고요.

김: 저도 생각해보니 음반의 경우 3-4번 트랙을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음반관계자분들이 야구선수를 배치하듯 하시나 봐요.(웃음) 책도 분명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 책자에 대한 리뷰 쓸 때 서문, 목차만 보고 쓰는데도 핵심을 찌른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이동진 기자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네요.

 

이: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단순히 독서만 좋아하시는 게 아닌 것 같거든요. 책이라는 측면을 디자인의 측면에서, 혹은 책 읽는 것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좋아하시나요?

김: 저는 책이라는 물질이 정말 좋고요. E-북도 편리해 즐겨보지만 물성이 없어서인지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책은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읽는다기보다 만지고, 줄긋고, 낙서하고 장식용으로 보관할 수 있는 물성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책을 깨끗이 모시는 분들이 안타까워요. 저는 책은 더럽게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도서관에서 빌려보지 못하고 사서 보거든요. 책을 더럽게 보되 잘 보관해두면 10년 후에 그 책을 보았을 때 과거에 이랬었구나하는 추억을 기록할 수 있는 장소이니까요. 그래서 물질로서의 책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이: 저도 책을 계속적으로 사서 2/3 도 못 읽는 사람 중에 하나인데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의 모든 것을 좋아하게 되어 있거든요. 제 경우에는 책의 물성을 매우 좋아해요. 책은 디자인적으로 완벽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원은 철학적인 존재인 직사각형은 미학의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은 가로세로 비율이 1:1.467로 거의 황금비에 가까운 등, 선, 비를 가지고 있거든요.

 

쉬어가는 코너: 소리나는 책, 그리고 두남자의 이야기

 

빨간책방에 책의 한 부분을 읽는 [소리나는 책]의 코너를 대신하여 김중혁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이성복 시인의 '편지'라는 시를 읽었다. 그는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그리움’으로 끝나는 시를 한 구절 한 구절 ‘감성 돋게’ 읽어나갔다. 이에 답하듯 이동진 디제이가 좋아하던 최승자 시인의 ‘일찍이 나는’이라는 시를 읽었다. 이렇게 주고받듯 시를 읽은 후 김중혁 시인은 자신에게 또 다른 영향을 미친 황지우 시인의 ‘심인’이라는 짧은 시를 연이어 읽었다. 김중혁 작가는 이성복 시인은 자신에게 서정을, 황지우 시인우 이야기와 모던함을 가지게 해주었다고 뒤이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동진 시인은 서정성이 가득 담은 장성남 시인의 ‘얼룩에 대하여’ 라는 시로 이 시간을 마무리 지었다.

 

 

얼룩에 대하여

장석남 

 

못 보던 얼룩이다.  


한 사람의 생은 이렇게 쏟아져 얼룩을 만드는 거다


빙판 언덕길을 연탄을 배달하는 노인

팽이를 치며 코를 훔쳐대는 아이의 소매에

거룩을 느낄 때


수줍고 수줍은 저녁 한 자락씩 끌고 집으로 갈 때

千手千眼의 노을 든 구름장들 장엄하다

 

내 생을 쏟아서

몇 푼의 돈을 모으고

몇 다발의 사랑을 하고

새끼와 사랑과 꿈과 죄를 두고

적막에 스밀 때


얼룩이 남지 않도록

맑게

울어 얼굴에 얼룩을 만드는 이 없도록

맑게

노래를 부르다가 가야 가야 하리

 


<2부> 책, 임자에게 묻다.


북 콘서트가 이루어지기 전에 참가자들에게 받았던 질문이 적힌 포스트잇이 빼곡히 들어찬 게시판이 두 남자에게 전달되었다. 이동진 디제이와 김중혁 작가는 그 포스트잇을 골라 상대방에게 무작위로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 이동진 디제이님은 여러 분야 아시는 것이 많은데 어떻게 그걸 다 외우시나요? 참고로 겸손하게 IQ를 공개하는 것이 어떠신가요?

이: 기억력이 사람마다 다른데 기억력의 총량은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대신 집중적으로 특정 부분에 기억력을 90% 쓰는 사람인거죠. 그래서 집안에서는 제가 놀부, 즉 놀림을 부리는 남자로 불리고 있죠.


이: 김중혁 작가님을 대학생활 시절에 설레게 했던 책은 무엇인가요?

김: 그때 서점에서 알바를 했었기 때문에 많은 책을 읽었어요. 그때 매일 한권그 중에서도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의 작품을 읽고 소설을 쓰고 싶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카버의 작품이 저를 가장 움직였던 작품이자 좋아하는 작품으로 남아있어요.


김: 이동진과 김중혁 막강콤비에서 3인이나 4인 체제로 간다면 평소 함께 방송해보고 싶은 혹은 영입해보고 싶은 인사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추신, 저의 절대 갈망 인물은  김혜리 기자나 진중권씨 입니다.

이: 저도 둘 중에 진중권씨는 생각했던 분이에요. 진중권씨를 좋아하기도 하고 실제로도 소년 같은 분이라 같이 방송하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김혜리 기자는 선후배사이로 친한 사이라 오히려 너무 잘 아는 사이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박경철 씨도 좋아합니다. 박경철 씨는 굉장히 균형 잡힌 분이고 사심 없는 분이시라 같이 방송하면 즐거울 것 같아요.

김: 저도 진중권씨 아주 좋아하고요, 개인 SNS를 하지 않는데 그 생각을 보고 싶어서 그분의 SNS를 링크해서 보고 있어요. 같은 잡지에서 칼럼도 연재하는데 저에 비해 멋진 글을 쓰셔서 제 글을 찢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요. 그렇게 찢어버리면 진중권씨 글도 찢어져 버리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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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동진 평론가님, 내 생애 마지막에 영화를 딱 한편 다시 보실 수 있다면 어떤 영화를 보실 건가요?

이: 진짜로 생애 마지막 최후의 2시간 동안이 남아있다면 영화를 보지 않은 거구요.  최후의 두 시간을 영화를 본다면 너무 아까울 것 같고요. 그래도 꼭 영화를 봐야 한다면 ‘원더풀 라이프’라는 작품을 선택할 겁니다. 그 영화가 완벽하다고 할 수 없지만 제가 그 영화를 만났던 시기가 있고 그 영화를 봤던 공기가 있어서요. 그 영화를 보았던 분위기와, 감독과 나누었던 이야기와 그때 느꼈던 감동이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고요. 이 영화 자체가 인생을 복기하게만드는 측면이 있어서 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를 다시 보게 될 것 같아요.


클로징: 만추, 그리고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따뜻한 가을햇살이 비칠 때 시작했던 북콘서트는 어느새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때까지 이어졌다. 두 번째 특별공연의 게스트인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몽환적인 노래와 함께 북콘서트도 그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빨간책방의 주인장인 이동진 디제이는 그를 만나러온 청취자들, 야외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북콘서트에 참여한 게스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영화 만추에서 했던 평인 “사랑이란 결국 시간을 선물하는 것”을 인용하며 북콘서트의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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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진의 빨간책방 북콘서트는 11회 빨간책방 방송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www.podbbang.com/ch/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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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나리

스스로를, 물음표와 느낌표의 이성과 감성을 두루 갖추었다 자칭하는 일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와 함께 생활한 탓에 책, 음악,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얇고 넓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항상 다양한 매체를 향해 귀와 눈, 그리고 마음을 열어두어 아날로그의 감성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채사모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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