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평론가가 특별한 책을 읽어드립니다 - <이동진의 빨간책방>
한 달에 두 번, 들러주세요 <빨간 책방>
합정역 녹음실에서 이동진 평론가와 김중혁 소설가를 만났다. 불혹(!)의 나이가 무색하게, 마음속에 여리고 명랑한 소년을 품고 있는 두 남자에게 <빨간책방>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팟캐스트 컨셉(!)에 맞추어, 그날 나누었던 깨알 같은 수다들, 크게 거르지 않고 깨알같이 옮겨본다.
한 달에 두 번, 들러주세요 <빨간 책방>
“이거 처음부터 읽어드리고 싶었거든요.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 입니다.”
“어제 저는 서른 두 살이 되었습니다. 효고 현에 있는 아마가사키에서 이곳 오코노토에 소소기라는 해변 마을로 시집온 지가 만 3년이 되었으니까, 당신과 사별한지도 그럭저럭 7년이 되었네요. 이렇게 이층 창가에 앉아서 따스한 봄볕을 쬐면서 잔잔한 바다와 일하러 나가는 그 사람 차가 꼬불꼬불 구부러진 해안도로를 콩알만하게 멀어져 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몸이 다시 꽃봉오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삐걱삐걱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환상의 빛』중 <서커스>) | ||
4회째 방송입니다. 어떤지요?
이동진: “저는 매우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할수록 부담이 되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은 분이 듣는 것 같고요.(웃음) 제가 원래 일희일비하는 사람은 아닌데도 마음이 그래요. 길게 봐야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님은 라디오방송 많이 하셔서 팟캐스트 방송도 익숙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가요?
이동진: “익숙한 면도 있고요. 라디오랑 달라야 한다는 강박도 있어요. 그래서 오버도 좀 하는 것 같고요.(웃음) 라디오를 할 때는 제품명이나 상품명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극도로 조심해요. ‘트위터’라는 말도 조심스럽게 쓰고요. 여기서는 그런 심리적인 배려가 없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라디오라는 게 TV보다는 자유로운 매체지만, 정해진 시간이 있잖아요. 오프닝, 몇 분, 클로징은 몇 분이고. 그런 규격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자유로워요.
라디오는 우연히 차 안에서도 들을 수 있지만, 팟캐스트는 성격상 사람들이 자기가 일부러 찾아서 다운로드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듣는 사람들의 태도는 밥 먹다가 텔레비전 보는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훨씬 더 친밀하게 느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고요.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친밀해 져버린 게 아닐까?’ 싶다가도, 한편 ‘내가 이걸 즐길 수 없다면 왜 하겠나?’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김중혁 작가님은 어떠세요?
이동진: “최근에 본 댓글 중에 가장 웃긴 댓글. ‘엇, 김중혁 작가님이 소설도 잘 쓰네?’(좌중 웃음)”
김중혁: “저는 평소에 그림 그릴 때 팟캐스트를 자주 들어요. <빨간책방>을 이렇게 많이 들을 줄은 몰랐어요. 제가 이걸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빨간책방>을 지지하는 이유는, 이게 팟캐스트와 라디오 형태의 중간지점이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최초인 것 같아요.
팟캐스트는 개인이 녹음하고, 개인이 발송하는 방식인데, 우리는 라디오의 형식에다 팟캐스트의 장점을 접목시킨 형태니까요. 그래서 초반에 약간 잡음도 있고, 좋다 싫다란 얘기도 있을 수 있는데, 길게 보고 이 방송을 정착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은 <책대책>에서 게스트로 활약중이신데요. 같은 작가 입장에서 다른 작가의 책을 논하는 데에 부담은 없으신가요?
김중혁: “내부 고발자가 된 것 같은?(웃음) 되도록이면 일반론적인 얘기를 많이 하고 싶어요. 저는 소설보다 인문학 책이 더 편해요. 어려운 책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형식이니까, 거기에도 청취자분들이 더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소년을 품은 두 남자
‘이제 두 분이 가까워지시는 것 같다’는 청취 후기를 봤는데요. 실제 사이는 어떤가요? 서로 얘기 좀 해주세요.
이동진: “저는 김중혁 작가님을 처음에 소설로 좋아했어요. 어떤 작가를 좋아하면 만나고 싶은 느낌이 있잖아요. 우연한 자리에서 잠깐 뵈었고, 신간이 나왔을 때 제 라디오 방송에 초청해서 인터뷰도 했었어요. 역시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구나 싶었고요. <책대책>을 처음 구상했을 때, 혼자 얘기하면 좀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랑 마음이 잘 맞고, 재미있고, 무엇보다 내가 즐겁게 말하고 싶은 사람이면 좋겠다 싶었는데, 제일 먼저 떠오른 분이고, 이 분 한 분밖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친한 사이가 아닌데도 전화로 부탁을 했죠. 제가 반강제로 빌다시피 해서 간신히. (김중혁: “빌지는 않았어요.”) 아, 안 보이셨겠지만, 이쪽에서 빌고 있었어요.(웃음) 대안이 없었는데 굉장히 감사하죠.”
잘 어울리세요. 점잖은 개그를 주고받으실 때 호흡이 일품입니다.(웃음)
이동진: “저랑 굉장히 다른 분이고, 훌륭한 분이지만, 저랑 비슷한 면도 약간 있어요.”
김중혁: “사실 저희가 팟캐스트 방송이라고 해서 욕을 할 사람도 아니고, 함부로 말할 사람도 아니고요. 그런 면에서 말하는 태도가 약간 비슷한 게 있어요. 전 40대 아저씨잖아요. 일상의 통념으로 40대 아저씨에게 소년이 비추기는 참 어려운 일인데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해야 하다니-저는 그런 얘기 듣거든요.(웃음) 이동진 기자님도 내면에 소년이 있어서.”
이동진: “징그럽죠. 제 이름에 ‘동’ 자가 들어가잖아요. 아이 ‘동’ 자.(웃음)”
김중혁: “네. 동안, 동심, 동진입니다.(좌중 웃음)”
김중혁 작가님 말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웃음)
이동진: “다 옳은 얘기라고 생각해요. 음하하. 농담이고요. 김중혁 씨 좋아하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소설은 다 좋은 거 알 거고요. 저도 40대인 건 괜찮은데, 아저씨인 건 싫거든요. 10대 시절에 사실 저는 문학 판타지가 있었던 사람이에요. 오히려 영화에 대한 판타지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무참히 여러 번 깨졌는데도 여전히 문인들에 관한 판타지가 남아 있어요.
글은 정말 소년인데, 실제로 만나보면, 아저씨인 사람 매우 많거든요. 김중혁 씨는 글하고 사람이 같다는 점에서 굉장히 믿을 만하고요. 김중혁 씨는 마흔이 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저씨스러움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소설가로서도 좋아하지만,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봤어’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 소년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뭔가요?(웃음) 아무래도 생활 방식이 달라서일까요?
김중혁: “프리랜서잖아요. 글을 쓰고, 늘 문화를 접하게 되니까, 그런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이동진 평론가도 좋아하는 것들이 많고, 영화는 전문가시고 책은 저보다 네 배 정도 읽으시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이동진 선배의 동심의 비결이 아닐까.(웃음)”
하는 사람, 듣는 사람 재미있지 않으면 계속할 이유가 없어요
처음에 이 팟캐스트 방송을 제안받으셨을 때 어떠셨어요? 라디오 방송도 하셨으니까, 팟캐스트를 통해서 뭔가 해봐야겠다는 어떤 도전, 욕심이 있으셨는지요?
이동진: “팟캐스트란 매체를 평소에 잘 듣진 않았는데도 관심이 있었어요. 제 주변에서 영화 팟캐스트를 해보자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저는 프리랜서로 일에 쫓기면서 사는 사람이라 그렇게까지 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때 MBC가 파업했어요. 일은 항상 이렇게 우연히 돌아가죠. 그때 제가 라디오에 대한 갈증이 있었거든요.
<꿈꾸는 다락방>을 쉬게 되고, 언제 파업이 해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팟캐스트 제안이 들어왔어요. 영화는 원래 내 본업이고, 17년 동안이나 말해온 것인데, 책은 좀 더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책이야 평생 읽어왔고, 너무 많이 사는데 보지는 못해서 죄책감도 있었고요. 재미있겠다! 그런 생각에서 시작했죠.”
책 선정은 어떻게 하시나요?
이동진: “‘위즈덤 하우스’에서 제작을 하잖아요. <빨간책방>에서 ‘위즈덤 하우스’가 직접 책을 선정하는 코너가 두 개 있어요. 거기에 저는 관여하지 안 하고요. 제가 하는 세 가지 코너 ‘책대책’ ‘소리나는 책’ ‘내가 산책’은 제가 100% 책을 결정합니다. 피디, 작가, 출판사 분이 관여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위즈덤 하우스’에서 신작이 나왔다고 다뤄달라고 하는 순간, 이 팟캐스트의 신뢰성은 완전히 무너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위즈덤 하우스’가 역차별을 당하는 셈이죠.”
어떤 것을 고려해서 책을 선정하세요?
이동진: “당연히 지루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제일 우선은, 제가 재미있어하는 책이에요. 책이 훌륭하지 않더라도 뭔가 건드려주는 게 있어서 흥미로운 책, 이런 책들 위주로 하고요. 많은 경우 책 팟캐스트가 대부분 문학을 다루더라고요.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문학만 읽거나, 정 반대로 40대 남자 독자들은 문학만 안 읽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문학에 관심이 많으니 문학을 자주 다루되, 최대한 다양한 분야를 얘기하려고 해요. 제가 굉장히 잡식성이거든요.”
글을 쓸 때와 말할 때, 아무래도 전달하는 포인트가 다를 것 같아요.
이동진: “다르죠. 예전에 라디오 방송 처음 나갔을 때, 긴장되니까 준비를 많이 해갔어요. 방송 끝나고 나면, 준비한 것의 30퍼센트도 다 못해요. 아, 역시 아마추어야, 이런 자책도 했는데, 이제까지 방송을 쭉 하면서 믿게 된 것이 있다면, 준비한 것의 3분의 1만 해도 된다는 거예요. 진도 나가려고 하는 얘기도 아니고요.
중요한 건 자기 얘기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무엇보다 지루하지 않게 하느냐가 핵심인 것 같거든요. 글은 그렇지 않죠. 고통스러운 글이지만, 자기 삶하고 바꿔 쓰는 사람도 있잖아요.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팟캐스트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가장 반응이 좋았던 책 『환상의 빛』
가장 좋아하는 코너? 혹은 반응이 좋았던 책은 무엇이 있었나요?
이동진: “2회 때 읽었던 『환상의 빛』이 절판됐어요. 출간된 지 2년이 안 됐는데요. 안타깝죠. 굉장히 좋은 단편이고, 낭독했을 때 가장 반응이 좋았어요. 가장 사랑받는 코너는 <책대책>이고요. 오늘은 <책대책>에서 『화차』를 얘기하고, 중국 작가 옌렌커의 수필집 『나와 아버지』를 낭송합니다.”
김중혁 작가님은 이제까지 <빨간책방>이 다뤘던 책 중에 어떤 책이 기억에 남으세요?
김중혁: “『환상의 빛』 읽을 때 좋았어요. 이동진 기자님이 특히 시를 잘 읽어요. 시는 목소리가 좋다는 것만으로 잘 읽을 수 없거든요. 호흡을 알아야 하는데 낭독을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들을 때마다 놀라고 있고요. 『피로사회』 같은 책은, 볼까 말까 하던 책이었는데, 여기서 다룬다고 해서 반 의무감으로 읽었어요. 그렇게 읽었는데도 재미있더라고요. 제가 읽지 못한 책을 골라서 읽게 해주니까 그런 면에서도 좋은 것 같아요.”
김중혁 작가님 단편집 『1F/B1 일층, 지하 일층』이 나왔는데요. 김중혁 작가님 특집은 혹시 안 하시나요?(웃음)
이동진: “저는 하고 싶어요. 밀어주는 개념이 아니에요. 그랬다면, 천명관 작가님을 다룰 때 『고래』가 아니라 위즈덤 하우스에서 나온 『나의 삼촌 브루스리』를 다뤘겠죠. 물론 그 책도 좋지만요.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항상 궁금하니까요. 저는 김중혁 작가님 신작 얘기도 굉장히 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안 하려고 하세요.”
김중혁: “저는 <빨간책방>에서 김중혁이라는 사람을 알리겠다, 이런 사심이 정말 하나도 없어서 (이동진: “그래서 더 좋아요”) 제 책을 최대한 안 다뤄줬으면 좋겠고… 제 책 얘기도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이동진: “제가 일부러 김중혁 작가님 소설을 얘기할 때도 있지만, 다음번에 다룰 책 『사라진 직업의 역사』를 보는데도 김중혁 작가님 소설이 또 생각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작가님 소설 자체가 뭔가를 촉발시켜요.”
앞으로 <빨간책방> 어떻게 꾸려갈 예정이신가요?
이동진: “특별한 계획은 없고요. 유연하게 운영하고 싶어요. 나 혼자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불특정 다수 관심 있는 사람에게 내보내는 거잖아요. 그분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할 이유가 없다고 봐요. 끊임없이 수정해 나갈 거에요. 코너 개편이 될 수도 있고, 하다못해 이동진 때문에 못 듣겠다고 하면 이동진이 바뀌면 되고요.
평생 책을 읽으며 살아왔는데 그 즐거움의 연장 선상에서 나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하고 있어요. 그 마음이 오염되거나 퇴색하는 지점이 오면, 제가 먼저 그만두겠죠. 지금은 즐겁습니다. 즐기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김중혁 작가님에게 <빨간책방>이란?
김중혁: “2주에 한번 이동진 선배를 만나서 수다 떠는 것?(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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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