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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만화 그리면서 이렇게 지친 적은 처음”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허영만 - “창작인으로서 ‘칭기스 칸’에 매력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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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몽골을 찾았을 때, 나는 완벽하게 압도당했다. 사진으로 보던, 말로 듣던 초원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 그저 멍하니 초원을 바라볼 뿐이었다. 끝 간 데 없는 초원은 먹먹했다.

5년 전 몽골을 찾았을 때, 나는 완벽하게 압도당했다. 사진으로 보던, 말로 듣던 초원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 그저 멍하니 초원을 바라볼 뿐이었다. 끝 간 데 없는 초원은 먹먹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초라한가. 진짜 초원을 온몸으로 맞닥뜨리면서 나는 한없이 작아져야 했다.

한편으로 그 초원에서 생을 유지하고 꾸려야 했던 몽골인들의 삶이 궁금했다. 경마장이 아닌 초원을 달리는 말의 모습도 달랐다. 말 근육은 터질 것 같았고, 초원의 근육도 덩달아 단련되고 있었다. 칭기즈 칸으로만 알려진 몽골의 진짜 모습은 초원에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초원을 아는 것은 평생을 살아도 부족하리라. 인간이 초원에 영향을 준다고? 그것은 거짓말이다. 인간은 초원에 영원히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느낌.

초원의 길은 끝이 없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걸을 때, 그 길을 달릴 때가 가장 좋았다. 길은, 명사가 아닌 동사임을 확인했던 시간. 초원은 그렇게 동사로서 존재했다.

“첫 번째 현지 취재 당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유적지도 사진도 서적도 아닌 초원 그 자체를 보고 듣고 느꼈다는 것이다. 몽골 초원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사진 속 초원과 현실의 초원은 하늘과 땅의 차이보다 더 크다는 것을…. 그 넓고 넓은 초원 위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2권, p.268)


그곳, 몽골이었다. 몽고라고 부르면 아니 될, 몽골(Mongolia).
“면적 156만4160㎢. 한반도의 7배로, 세계에서 17번째로 넓은 땅. 283만2224명의 인구. 대륙성 기후. 몽골어는 한국, 일본 등과 유사한 알타이 언어계통으로 한국말과 닮았다. 몽골이란 나라이름은 본래 ‘용감한’이란 뜻을 지닌 부족어였다. 칭기즈 칸에 의해 통솔된 몽골의 발전에 따라 민족과 나라의 이름이 됐다. 몽골인들은 체질인류학적으로 언어?민속학적으로 우리와 유사성이 많은 민족이며 역사적으로도 깊은 관련이 있다.” (‘몽골문화촌’의 설명)

물론 몽골은 초원이 전부가 아니었다. 수도 울란바토르는 초원과 딴판이었다. 개발에 여념이 없었고, 이방인이 보기에는 혼란 그 자체였다. 사회주의를 버린 국가의 개발이란, 사람들에게 좀 더 악독해지기 마련인 것일까. 자본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빌어 욕망을 표출하고 있었다.

체제 변화의 과정에서 완충장치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난 몽골인들의 가치는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흔들린다는 것보다, 돈독이 오를 대로 올라있었다. 모든 판단기준은 돈이었고, 곳곳에 파헤쳐진 개발의 흔적은 움푹 파인 그들의 마음 같았다.

허나, 앞선 것들로 몽골을 말하는 것은 형편없이 역부족이다. 이것을 빼놓았기 때문이다. 칭기스 칸. 몽골제국의 창건자이자, 몽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린 첫 번째 이름도 그것이었다. 공항 이름부터 칭기스 칸이었다.

그리고 어딜 가도 칭기스 칸은 존재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어딘가에 들어가도, 어떤 제품을 보거나 음식을 먹을 때도, 칭기스 칸이 있었다. 기념비와 동상은 말할 나위도 없다. 몽골의 모든 것은 칭기스 칸으로 통하고 있는 듯했다.

“몽골에서 칭기스 칸의 인기를 상상을 초월한다.… 울란바토르 시내 대형 광고판은 물론이고 제품명이나 호텔명, 심지어 음식점 이름 대부분이 칭기스 칸 또는 테무진과 연관되어 있다. 그의 인기가 현재 진행형으로 몽골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p.266)


칭기스 칸, 허영만 화백을 만나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이자 『식객』으로 국민만화가로 등극한 허영만 화백이 ‘칭기스 칸’과 만났다. 『식객』 이후 8년 만의 신작이자 『각시탈』(1974) 『쇠퉁소』(1982) 이후 30년 만에 내놓은 대하서사극,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현재 웹툰과 신문 연재를 병행하고 있는 이 작품의 단행본 1, 2권이 최근 출간됐다. 세계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지배한 몽골의 전설적인 인물 칭기스 칸이 한국 만화의 레전드 허영만 화백에 의해 되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독자들의 호응이 뜨거운 가운데, 지난 6일 경기도 남양주시 ‘몽골문화촌(www.mongoliatown.co.kr)’에서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출간기념 허영만 화백과의 만남이 열렸다.

몽골문화촌은 남양주시와 몽골 울란바토르의 협력관계를 통해 2000년 4월 남양주시 수동면에 개관한 몽골 관련 문화촌이다. 400석 규모의 상설공연장과 몽골의 대표 축제인 나담축제를 경험할 수 있는 몽골놀이마당, 몽골의 역사관, 생태관, 체험관 등이 조성돼 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는 한국의 거리가 조성돼 있는데, 지난 2001년 9월 남양주문화관이 개관해 운영되고 있다.


몽골문화촌의 체험관에는 몽골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몽골의 전통놀이의 샤가이를 경험할 수도 있다. 양의 복사뼈로 만든 말로 즐길 수 있는 놀이로 점을 치기도 한다.

또 몽골 전통악기와 몽골의 옷들이 전시돼 있다. 몽골의 초원을 옮겨 다니는 유목민에게 악기는 필수다. 유목민의 하루는 노래로 시작한다. 소나 양의 젖을 짤 대나 말을 타고 가축을 몰고 다니면서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삶의 애환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입에서 입으로, 어른에게서 아이에게 전통 민요와 음악이 전해졌다.

악기들의 소리는 서정적이고 호소력 짙은 음색을 갖고 있다. 그것은 몽골 유목민들을 닮았다. 초원 생활을 하면서 초원 저 너머에 두고 온 고향을 떠올리는 애절함이 악기를 통해 구현됐다.


생태관에는 몽골의 기후조건과 환경 등에 어우러진 다양한 동식물의 생태가 전시돼 있다. 몽골은 초원산림과 사막, 습지대로 나눠지는데, 여러 종류의 많은 동식물이 서식한다. 특히 고비사막에는 고대의 생태가 묻혀 있다. 많은 공룡화석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56종의 공룡화석이 발견됐다.

역사관에는 몽골의 역사가 전시돼 있다. 칭기스 칸의 몽골제국 시절부터 20세기 몽골의 독립과 몽골혁명,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한 연대가 나와 있다. 뭣보다 몽골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흐바타르’의 초상이 인상 깊다. 그는 가난한 유목민 집안에서 태어나 인쇄소의 식자공으로 일했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 자극받은 그는 1921년 7월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했고 몽골인민공화국을 세웠다.


울란바토르 중심부에 위치한 수흐바타르 광장이 떠올랐다. 몽골의 독립전사이자 혁명영웅인 그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했었다. 중앙청사가 있었고, 광장의 중심에는 수흐바타르 동상이 위치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그들은 콜라를 먹고 있었다. 수흐바타르는 그것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허영만 화백을 만나다

점심시간이 됐다. 몽골문화촌 내에 위치한 몽골음식점을 찾았다. 몽골식 요리와 퓨전 요리로 점심 식사를 마칠 무렵, 허영만 화백이 독자들과 만났다. 몽골에 3번 다녀왔다는 허영만 화백.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양고기만 먹는 몽골의 식생활에 질렸다고 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아, 여기는 내 살 데가 아니구나. 몽골음식이 그렇게 다양해 보이지도 않았다. 땅은 넓지만 야채를 키우기에 맞지 않는 기후와 풍토였다. 다만, 고기를 많이 먹어서 스태미나는 좋아보였다는 우스개로 독자들과 말문을 텄다.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그린 동기는 무엇이었나?

제목을 보고, 정말 안 내리냐고 묻는다. (말에서) 밥도 먹고, 빨래도 한다는 농담도 했는데, 칭기즈 칸 이야기가 아주 이야기를 잘 하는 이야기꾼의 것처럼 재밌다. 완벽할 정도의 기승전결이다. 알려진 대로만 그리면 재탕이니까 공부를 많이 했다. 몽골이나 중국, 유럽에서 쓴 칭기즈 칸이 다르다. 유럽은 그를 야만인처럼 묘사하고 중국은 오랫동안 칭기스 칸 공부를 못하게 했고, 공부하게 한 지 얼마 안 됐다더라.

여러 책들을 보니, 창작인으로서 끼어들 여지가 많았다. 테무진은 한 번 패하고 10년 동안 무진장 고생했다고 돼 있는데, 금나라에 노예로 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걸 꼬투리로 이야기도 만들었다. 악사들이 후손에게 노래로 역사를 전했으니 연대가 안 맞는 것도 많다. 그러니 이전의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벗어나 허영만식 칭기스 칸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칭기스 칸 탄생 연도는 확실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 1154년, 1155년, 1162년, 1167년 설이 있습니다. 이 중 1162년 설은 《원사》, 《성무친정록》, 《철경록》의 기록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다만 다만 몽골 정부에서는 1162년 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1권, p.252)

특이한 게 몽골에 전쟁이 많다보니 남자가 부족했다. 이른바 씨앗이 없어졌으니 성적으로는 개방적으로 살았다더라. 이뉴이트 족이 그랬단 얘기는 들었는데, 우리는 왜 안 그러지? (웃음) 취재할 때 게르에서 자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그냥 가더라. 초원에 게르가 2개 있었는데, 아직 주인에게 얘기도 안 해봤는데, 무조건 된대. 안에 들어가 좀 얘기하더니, 들어오라고 하더라. 그만큼 손님을 귀하게 여긴다.


역사만화인데, 글감이나 재료는 어떻게 구했나? 또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공을 들였는지?

제일 중요한 건 연도다. 사실 태어난 것도 정확하진 않은데, 큰 줄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심리(묘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의상이 제일 고민이었다. 몽골 가서 보니 없애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료가 없었다. 만들어낸다는 게 힘들지만, 누구도 본 적이 없으니 시비도 걸지 않겠더라. (웃음) 일부 추리를 했고, 몽골 관련해서 40여 권을 읽었다.

“그 당시 대표성을 지닌 군복이나 신호 체계 등이 모호한 상태였으며 의복 등은 소수 부족이 너무 많아 하나하나 그림으로 표현하기에 난감할 지경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찾은 곳이 중고서점이었다. 대형 텐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어렵사리 찾은 관련 서적들은 지금도 소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2권, pp.267~268)

그리면서 다행인 게 배경이 똑같다는 거다. 초원만 그리면 되니까. (웃음) 거기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사람, 방패, 창, 활, 말을 그릴 것은 많은데 배경은 그릴 게 없다. 화실에 3명이 이걸 그리는데, 초원을 그리는 2명은 거의 놀고, 인물과 디테일을 그리는 1명은 만날 야근이다.

요즘 소설가가 될 걸 잘못했다 생각하는 게, 2만 명이 초원에서 싸운다하면 최소 200명을 그려야한다. 소설가는 그냥 2만 명이 싸웠다고만 하면 되잖아. (웃음) 만화를 그리면서 1년 만에 이렇게 지친 적이 없다. 그래서 한 달반 회의 끝에 토요일을 뺐다. 만화가가 된 걸 후회한 적도 있다.



현지에서 고증을 받은 건 없나?

말이 뛸 때, 지그재그로 발을 놀리는 게 아니라 앞뒤 발이 같이 나가는 말이 있다더라. 병신 아냐? (웃음) 그런데 실제 그런 말을 탄 부족에게 칭기즈 칸이 당했다는 얘기도 있다. 목동에게 물어봤더니 그런 말이 있대. 훈련한 것인지 물었는데, 그냥 저기 있대. 내 생각엔 훈련을 통해서 그리 된 것 같은데, 그러니 그런 말이 사진집에도 있었겠지. 앞으로 그런 얘기도 그릴 거고, 칭기즈 칸이 만날 이기는 사람은 아니니까, 깨지는 얘기도 있을 거다.

또 다른 작품 준비하는 게 있나? 다음에 생각하는 소재가 있다면?

어머니들은 점심을 하면서 저녁을 준비해야 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다음날 아침을 생각해야 한다. 이 작품을 한다고 다음 것 걱정 안 할 수는 없다. 준비하는 것도 있고, 여차하면 쓸 화약도 있다. 기업비밀이니 구체적으로 얘기할 순 없고. (웃음)


몽골에서 칭기즈 칸을 그린다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눈높이를 결정하나?

반응은 모르겠다. 잔인하고 비열하게 그리면 입국 못하는 건 아닐까? (웃음) 칭기즈 칸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지만, 주인공이니 약간 미화를 시켜야겠더라고. 눈높이라는 게, (내 작품 중) 남녀노소 다 볼 수 있는 건 『식객』정도다. 작품을 실을 매체가 정해지면 눈높이가 정해진다. 아이들 잡지엔 아이들에 맞는 만화를 그린다. 아이들 만화, 가령 『날아라 슈퍼보드』를 그릴 때는 내 아이들이 클 때였다. 이젠 다 커서 그런 만화를 그릴 일은 없고, 손자가 크면 또 모를까 싶지만 떨어져서 사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것도 같다.

지금 만화계는 웹툰을 거스를 순 없는 것 같다. 만화방 활성화에 대한 바람이 있나?

세상 바뀐 것 중에 가장 실감이 나는 게 만화방이 없어지고, 대여방이 없어진 것이다. 만화방을 살리고 안 살리고의 문제보다 출판과 웹툰이 공존하는 시대니까,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어느 한 쪽을 택하는 게 아니고 같이 가야겠더라. 이젠 만화방을 살리는 건 불필요하겠고, 소장 의미로 출판만화를 내는 것에 만족해야지. 하루키가 e북을 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우리도 이런 형태로 바로 독자를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만지고 보는 건, 책이 더 좋지.


그동안 그린 캐릭터가 많은데,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처음 (캐릭터) 이름을 지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강토를 쓰다가 신석기(『벽』)로 변신한 이유가, 장동건이 만날 장동건으로만 나갈 순 없잖나. 한 이름만 하다간 장르를 바꿀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망치다.

아쉬운 작품이 있다면, 『짜장면』이다. 『비트』의 스토리 작가가 그 작품의 스토리를 맡았는데, 나와 잘 안 맞았다. 한 달에 두 번 그리는 데도, 그리기가 싫었다. 또 아쉬운 게 『오! 한강』이다. 그때는 조금만 잘못 그리면 잡혀가고 그래서 좀 더 깊이 있고 과감하게 파고들지 못했다. 『무당거미』는 끝을 보지 못했다. 여러 일을 벌리다보니 감당을 못해서 뒤의 2권을 다른 친구가 그렸는데, 중간에 다른 손이 그리다보니 계속 잇기가 싫더라.



몽골에 1년을 살았다. 작품이 몽골사람을 잘 아는 것 같더라. 어떻게 그리 잘 묘사했나?

사람 사는 게 똑같잖나. 『각시탈』 때는 태권도 고단자인줄 알고, 『오! 한강』때는 허영만이 운동권인줄 알았다더라. 내가 살았던 것이 아니라도, 이랬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그렸다. 칭기즈 칸이 참 머리가 나쁜 게 그 초원 땅을 차지하겠다고 그리 싸움만 할 게 아니고 압구정동의 땅을 사놨으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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