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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섬 발리, 가능했던 이유는…” - 『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금, 당신의 사랑에 미칠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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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김인숙 작가는 여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 소현 세자의 이야기 <소현>이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안녕 엘레나>로 41회 동인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

삶은 언제나 현재시제


2010년, 김인숙 작가는 여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 소현 세자의 이야기 『소현』이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안녕 엘레나』로 41회 동인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 인기와 인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가 그녀의 품 속으로 달려들었을 때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다음 소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2010년 8월 23일, 김인숙 작가는 YES24 블로그에 새 소설 연재를 시작했다.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는 평화로운 휴양지 섬에서 일어난 지진, 그 속에서 겪는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지진으로 땅이 뒤흔들리는 것처럼 인물들의 삶도 예상치 못한 일들로 휘몰아친다.

진의 연인 유진은 섬에 정착해 살던 중 하녀였던 현지 소녀와 사랑을 나눈다. 임신한 그 소녀가 살해되면서 유진은 살인사건에 연루된다. 그를 찾아 섬을 다시 찾은 진은 택시 드라이버 이야나를 만나고, 엉켜가는 상황 속에서 숨겨졌던 진실이, 사랑이 드러난다. 김인숙 작가는 스스로에게,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미칠 수 있겠니?”

그녀는 제목부터 지었다고 했다. 항상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소설을 시작한다고 밝힌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 “이미 미쳐야 한다는 대답을 갖고 있었다. 앞으로도 잘 미치고, 멋있게 미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crazy’라는 아이디로 소설을 올렸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삶과 사랑에 절박하게 매달린다. 그녀는 인생 절반 이상을 내어준 소설쓰기에 “잘, 멋지게” 미치고 싶다. 1983년, 스무 살의 나이로 문단에 등장한 까닭에, 벌써 등단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소설이라는 게 짐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삶처럼 받아들여요. 잘 하고 싶어요. 더 높이, 더 깊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배경이 되는 섬은 발리였다. “특정 지역으로 한정하고 싶지 않았다. 발리에서 구상하고 발리에서 썼지만, 발리는 대지진 지역은 아니다. 실제 쓰나미, 대지진 지역이었다면 쓰지 못했을 거다.” 발리에는 자국어가 있는데, 발리어는 현재 시제만 존재한다. 과거의 일도, 미래의 일도 현재 시제로만 말하는 것이다.

“삶은 늘 흔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설레고 마지막인 것처럼 절망하지만, 지나고 나면 옛 사랑이고, 옛 상처일 뿐이다. 언제나 과거의 겪은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이 앞으로 다가올 거라 믿고 산다.(웃음)” 과거를 연민하며 되돌아보지도 않고, 미래에 의지하지도 않는 그녀야말로 현재시?를 쓰는, 오롯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폐허의 섬에서 드러나는 매혹


소설 『미칠 수 있겠니』는 발리에서 구상했다고 들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문학행사 때문에 처음 발리를 찾았다. 신비하고 매력적인 인상을 받았다. 힌두 섬으로 그들의 문화 풍습을 잘 유지하고 있었는데, 동시에 세계적인 관광지이다 보니 동서양의 것들이 조화롭게 섞여 있었다. 작년 초에 『소현』이라는 역사 소설을 마무리 하러 다시 한번 찾아갔다. 그곳에서 한 달 가량 머물면서 그곳의 느낌이 좀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소설 속에서 발리는 지진이 나고, 폐허가 된다. 그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어떻게 폐허의 이미지를 연상했나?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이상의 표현이 불가능하다.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처럼’이라고 뭐라고도 덧붙일 필요도 없다. ‘아름답다. 사랑한다. 슬프다.’ 이런 표현들이 그렇지 않나. 하지만 소설은 그렇게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자체로 드러내고, 진정함을 진정함 자체로 드러내기 위해, 상황을 뒤집어보았다. 아름다움을 뒤집어 바닥부터 이야기해나가는 방식인 거다. 만약 할렘 가였다면 뒤집어 볼 생각도 못했겠지. 그만큼 발리라는 곳이 아름답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자들도 폐허의 섬에서 드러나는 매혹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현』을 통해서는 시간을, 이번 소설을 통해서는 공간을 횡단한 셈이다. 해보니 어땠는지?

“그렇게 시작해도 나는 결국 가장 현실과 가까이 있는 작가다. 여기에서 거리를 띄우는 것은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까워서 못 보던 것들을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한 것이다. 역사소설을 써서 현대 문제를 재조명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소현』을 통해 결국 현대인의 고독과 상처를 이야기한 것처럼, 『미칠 수 있겠니』를 통해서 지금 이 자리의 사랑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배신과 상처도 우리가 살아가는 하나의 길이다


말씀 그대로, 운명적인 사랑의 이야기다. 추리 기법을 차용해 이를 두드러지게 나타냈는데,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제목 자체가 강하기 때문에, 이야기도 강렬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려움을 건너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 자체가 구원이라든지 어마어마한 문제의 해답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떤 어려움에도 도달하고야 마는 것이 사랑이라는 기본 명제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연인으로 등장한다. 엄청난 운명인 것 같다. 그런데 그들도 이렇게 말하고야 만다. ‘사랑이 변하니’ 운명적인 그들의 사랑도 쉽지만은 않다.

“지난 주에 기자 간담회 하는데, 정말 흔치 않은 이름의 두 사람이 실제로 결혼한 사례도 있더라.(웃음) 작은 확률 속에서 만났기 때문에 운명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에 운명이 된다. 내가 너와 만난 다는 것, 65억 명 중에 한 명으로 만나는 거잖나. 그게 얼마나 빛나는 운명인가. 이런 최면을 갖게 된다. 하지만 사랑뿐만 아니라 살면서 겪는 배신이나 상처도 삶을 살아가는 길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이겨나가고 다시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만남을 이어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매혹의 시기에는 이 세상에 나와 너 밖에 없다.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면, 혹은 그 시기가 오기 전에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바라보? 시선이 존재한다. 사랑을 ‘요이땅!’ 시작해서 끝까지 가면 얼마나 좋겠나. 소설 속에서는 손이 굉장히 중요한 모티브로 나온다. 살면서 다른 곳을 바라볼 수 밖에 없고, 예상치 못한 많은 일을 겪기 마련이다. 그럴 때도 손을 놓고 있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진짜 ‘사랑’이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소설 속에는 충동적으로 하룻밤을 함께한 여자와 긴 시간 함께 있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연인이 등장한다.

“그걸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웃음) 사랑이라고 믿어야 살 수 있는 거다. 사랑한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삶을 지나가는 거다. 언제나 그가 내 곁에 있을 수 없겠지만, 항상 사랑한다고 믿는 것. 혹은 이별 후에도 사랑했다고 믿는 것. 그러면 삶을 깊게 건너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진의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 그래서 부족함 없는 사랑을 받은 사람. 운명 같은 연인을 만났음에도 자유로워지고자 떠나는 사람. 그럼에도 항상 결핍되어 있는 사람이다. 대체 그에게 진짜 결핍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유진이 사실 제일 힘들었다. 유진을 잘 묘사했어야 했는데, 아쉬운 부분이 많다. 가끔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감상적으로 이해할 순 있지만 정확하게 말할 순 없을 때가 있잖나.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고 해서 내가 만들었다고 해서 나도 그를 다 알 순 없다. 그런 인물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주위에 이해 할 수 없게 비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부유하는 사람들. 아무리 봐도 외로워 보이지 않는데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들, 느닷없이 자살해버리는 사람들. 그냥 그 사람들을 스케치하듯이 그린 거다.

그가 죽었을까, 환상일까 마지막 장면도 모호하게 처리했다. 유진이라는 인물을 두고 독자들이 상상하게 하고 싶었다. 이런 대사가 있다. “미쳐서 살면 안되니, 이 세상. 내가 선택한 적 없어. 이 세상.” 이 말만 있으면 유진에게 족한 것 같다. 가끔 그렇지 않은가, 우리도. 유진이 이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소설 속에서) 그런 고생을 한 셈이다.(웃음)”


“소설은 이제 내 삶이다”


YES24 블로그에 연재한 작품이다. 연재 경험은 어땠나? 책으로 출간되면서 소설이 몇 군데 바뀐 것 같다.

“연재 공간이 놀이마당이라고 생각하고, 신나게 놀 생각을 했다. 소설이 갖고 있는 무게가 있는데다가, 독자들의 진지한 반응이 이어져서, 그 마당에 이모티콘 찍어가며 놀 수가 없더라.(웃음) 처음에 살인 사건이 나오고, 범인이 한참 동안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걸 궁금해하시는 분이 많았다. 댓글을 볼 때마다 대답을 해주고 싶어서 혼났다. 결국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고 싶어서, 빨리 이야기를 마무리한 측면이 있었다. 이야기보따리를 확 풀어주듯 끝내고, 책으로 낼 때 부족한 점을 채워 넣었다.”

살아오면서 지진만큼 삶을 뒤흔든 경험이 있을까?

“삶은 늘 흔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언제나 그 순간에는 그게 최악의 흔들림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처음 같은 설렘도 지나가면 옛사랑이고, 마지막 같은 절망도 지나고 나면 옛 상처다. 행여 매혹 때문에 겪은 흔들림이라고 해도, 굳이 과거의 상처를 꺼내보고 싶지 않다. 항상 과거에 겪은 것보다 더 대단한 일들이 앞으로 올 거라고 믿고 산다. 소설 속에서 지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지만, 내가 전달하고자 한 지진은 이런 것이다. 자기 삶을 뒤흔드는 상처이기도 하지만, 극복해낸 사랑. 독자들도 그렇게 봐주면 좋겠다.”

등단한지 벌써 30년이다. 등단초기와 지금,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등단시기가 일렀다. 당시에는 소설이 뭔지도 몰랐고,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꿈 많은 소녀도 아니었다. 그래서 소설은 늘 짐이었다. 내가 잘 해내야 하는 어떤 짐. 지금은 그냥 삶처럼 받아들인다. 30년을 써왔으면,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해온 셈이다. 미성년을 벗어나자마자 소설가로 살아왔으니까. 이제는 잘 살고 싶다. 더 잘하고 싶다. 더 높이, 그리고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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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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