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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열심히 사는 당신, 나만을 위한 세 시간을 확보하라” -『심야치유식당』하지현

당신, 문제는 너무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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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하지현. 그의 서재 삼분의 일은 만화책으로 채워져 있다. 몇 해 전, 한겨레신문에서 ‘내 인생의 책’을 꼽는 시리즈의 시작에 만화『슬램덩크』를 소개했을 정도다.

정신과 의사 하지현. 그의 서재 삼분의 일은 만화책으로 채워져 있다. 몇 해 전, 한겨레신문에서 ‘내 인생의 책’을 꼽는 시리즈의 시작에 만화『슬램덩크』를 소개했을 정도다. 당시에는 센세이션이 됐다. 정신과 의사의 내 인생의 책이 『슬램덩크』라니. 만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최근의 저자는 이 책의 모티브가 되는 두 편의 만화를 만났다. 제목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 『심야식당』, 그리고 또 하나는 『바텐더』라는 만화이다. 두 만화는 주인공이 타인과 소통을 하면서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이 흥미로웠다. 고민 끝에 인문교양서를 쓰기로 했던 계획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심야 치유 식당』의 창업이 시작된 것이다.


저자는 십여 년 전, 의사들의 커뮤니티에서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을 만났다. 그들과 만나면,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나눠 마시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꿈꾸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일행 중 한 명으로부터 홍대에 권리금 없는 자리가 나왔다는 전화가 왔단다. 안타깝게도 곧 해외연수를 가게 되었던 지라 투자에 참여는 하지 못했다. 결국 한 이비인후과 의사가 강연회가 열린 <Strange Fruit>의 문을 열었다. 바로, 책에 나온 ‘노사이드’이다. 아홉시쯤 되어야 하나둘 자리를 차지한다는 곳. 저자가 강연회를 찾기도 힘들고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으로 정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전직 정신과 의사이자 노사이드의 주인 철주라는 인물을 통해서 저자는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그런데 왜 픽션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의사로서 의료의 영역이 갖는 한계를 극복해보고 싶다는 개인적 환상, 그리고 의료의 영역에서 만나고 싶지 않고 그냥 인간과 인간으로 만나고 싶다는 일반인의 환상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로서 글을 쓰게 되면 결국 현실의 내가 처한 정체성에서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죠. 현실 속의 내가 글 속의 나와 언행일치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지배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픽션적인 방법을 도입했어요. 그것도 병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한 자연인의 눈과 입을 빌려 삶의 고단함을 짚어내고,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또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라는 계약적 조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인연이라는 끈으로 이어져 꾸준히 그들의 삶과 함께하는 모습을 글이라는 환상의 공간에서나마 실현해보고 싶다는 개인적 희망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죠.”

심야 치유 식당에 오기 까지


지난 5월 19일, <Strange Fruit>은 잠시 ‘노사이드’가 되었고, ‘심야 치유 식당’이 되었다.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채운 손님들은 주먹밥과 빵 그리고 음료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저자에게 물었다.

정신과 의사분이 이러한 상상을 하면서 쓰셨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저자분의 칼럼을 보면, 대화나 사회현상에서 ‘결론짓는 것’을 반대하는 내용을 보아왔는데요. 선생님이 환자를 대할 때는 어떤 모습이신가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오늘도 50명 정도의 환자분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처음 만나면 진료를 하는 데 주어지는 시간은 20분 정도입니다. 18분이 지나도 ‘진도’가 나오지 않으면 제가 참견를 하게 됩니다. 단정적으로 말하는 분들과는 이야기를 끌고 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분이 대개의 경우는 보호자로 오시는 경우가 많죠. 내 자식, 내 아내, 내 남편이 ‘문제가 있다’ 그러니 ‘이런 그림으로 만들어 달라’ 라고 미리 생각하고 오는 경우도 많아요.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 그런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요즘은 수년째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분들의 케이스를 많이 접해요. 이 경우에는 나와의 관계를 이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가 게임 등으로 인해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부모들은 불안해하죠. 좋아하는 게임을 묻고, 생활에 대해 묻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말해야 할 상황이 오면 ‘너는 그러니’, ‘나는 그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식의 대화로 풀어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수 있는 문제야’라고 말하는 것이죠. 어떤 결론을 내기보다는 홀딩하고 끌고 가는 것도 능력이니까요.”


살아가면서 선생님 자신도 정신적으로 치유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시기가 있었나요?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면서, 짜증나던 게 영어로 내가 살아온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어요(웃음). 그 전까지는 저는 매우 평이하게 굴곡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상담가가 ‘너는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구나’라고 말하더군요. 놀랐습니다. 제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하던 곡절들이 있었던 것이죠.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좌절의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과거가 변경된다고 생각해요. 후회나 미련을 갖는 것에 대해서 아예 보지를 말자고 생각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하나라고 인정해야하죠. 중요한 건, 그다음 전략을 짜는 것입니다.”



저자만의 특별한 교육법이 있으신가요? 교육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딸과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있습니다. 교육 철학은(사이) 아내가 하라는 대로 두는 게 가장 편하죠(청중 웃음). 그렇지만 아내의 불안을 ‘내가 다 안아주자’라는 생각을 해요. 그 불안을 받아주고 그 분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죠. ‘지 팔자’라는 말을 자주 쓰기도 합니다. 부모인 제가 만들어 간다기 보다는 아이가 생긴 대로 가는 길, 그 옆으로 같이 가주는 정도이죠. 많은 엄마들이 자신이 감독이라고 생각하면서, 혹은 플레잉코치라고 생각하면서 같이 뛰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치어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관중은 욕을 하기도 하고 병을 던지기도 하지만 치어리더는 지고 있어도 끝까지 응원해주니까요. 항구와 같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요즘은 제 항구로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웃음).”

다른 의사들과는 다르게 경청하는 편인 거 같습니다. 인생의 철학이 어느 시점에 바뀌게 된 경우가 있었나요?

“점점 철학이 굳건해지는 것 같아요. 소방관, 경찰관이 되고 싶은 분들의 환상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 환상’으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능함을 현실화시키고 싶다는 것도 어떤 환상으로 작용하죠. 특히 외과의사분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예컨대 암을 잘라내기 위해 배를 갈랐는데 암세포가 전체 다 퍼져있는 경우, ‘밥은 먹게 해줘야지’하며, 결국 외과적 시술을 하게 될 때도 있죠.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불쾌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은 치료 선택들이 더 잘 적용되는 걸 보게 될 때 제 방식으로 굳어지는 것 같아요. 저와 궁합이 맞는 환자분들이 찾아오기도 하고요. 사실 드라마틱하게 좋아진 사람이 있긴 있어서 그런 경우를 기억하려고 합니다. 다른 분을 찾아가보시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좋아진 경우도 있죠. 자살시도를 했던 고3 학생이 찾아 온 적이 있습니다. 학생의 집에서는 아무도 몰랐죠. 어느 날은 학생이 좋아져서 왔죠. ‘내 치료가 빛을 발하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정은 달랐죠. 남자친구가 생긴 거였습니다(청중 웃음). 자신의 편이 생긴 것이죠. 저는 좀 넓게 보려고 합니다. 환경 속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심야 치유 식당』에는 저의 치유적 환상 같은 것이 함께 담겨져 있는 셈이죠. 상담집에서는 쉽사리 끌어낼 수 없는, 변화가 있는 모습들까지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그냥 좀 멍해지자



저자는 가끔, 그냥 “멍 때리라”고 말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기를 통해서 멍하니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말 좋다”는 것이다. “주말 단위로 펜션이나 리조트에 가서 쉬는 것”도 같은 맥락 아닌가.

일상 속에서 멍해지는 시간은 정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나만을 위한 세 시간을 확보하라”고 얘기한다. 누구를 만나는 게 아니라 혼자 카페, 극장, 도서관, 공원 등이 어디든 좋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절대 혼자여야 한다는 것. 공상하고 명상하고 멍청하고 바보 같은 생각까지 모조리 다하는 시간. 저자는 “더러운 생각이 역류할까봐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 데,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저 목적의식도 가지지 말고, 멍하니 그렇게. 당신은 지금 너무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지금 이대로도 잘하고 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뭔가 미진한 것이 있다면, 정체되어 있거나 무리를 하고 있다슴 숨이 턱까지 차올라오는 느낌이 든다면, 그때는 그대로 가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둘러보고 작은 변화를 줄 곳을 찾아보자. 증상이라는 괴물이 여러분의 삶에 똬리를 틀고 서식하기 시작하기 전에. 이 책이 앞으로 그럴 것이듯, 또한 여러분의 삶에도 변화가 함께하기를.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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