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지난 일요일은 ‘글루미 선데이’였다. 외부 기관에 제출할 서류를 만드느라 오전부터 사무실에 틀어박혀 엑셀 파일과 한글 문서, 그리고 복잡한 숫자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더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어버렸다. 갑자기 내 영혼의 일부가 훼손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아 있는 일거리를 던져 놓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좀비처럼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회사 근처의 카페에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보니 농도 짙은 우울감이 엄습해 온다. 혀가 녹아버릴 정도로 달콤한 것을 먹어야지. 메뉴를 보다가 ‘new’라는 꼬리표가 붙은 디저트를 주문했다. 아포가토(affogato). 바닐라 젤라또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주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디저트로, ‘빠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도대체 무엇에 빠졌다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낯선 번호. 내용은 딱 한 줄이었다. “오늘 저녁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잘못 온 문자였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오후 내내 훼손돼 있던 뇌의 일부가 다시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어떤 사람일까? 예의 바른 말투로 보아 아직 깊은 관계는 아니겠지? 저녁은 어떤 종류와 분위기로, 어떻게 준비하려는 걸까? 오늘이 특별한 날인가? 만나서 무슨 고백이라도 하려는 거 아냐?’ 등등. 급기야 문자를 보낸 사람은 젊고 잘생긴 남자고, 문자를 받는 쪽은 나처럼 휴일에도 회사에 나와 피로감과 스트레스에 휩싸인 연상의 애인일 거라는 추측까지 뇌세포가 빠르게 증식할 무렵, 슬그머니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소설 하나.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 본문 중에서
‘폴’은 서른아홉 살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한 차례 이혼 경력이 있는 그녀에겐 현재 ‘로제’라는 오래된 애인이 있다. 화물운송업체를 경영하는 로제는 그녀보다 몇 살이 더 많고, 과묵하며 풍채가 좋은 남자다. 둘 사이에 연애 초반의 열렬한 감정 대신 권태가 슬며시 자리 잡을 무렵, ‘시몽’이라는 청년이 나타난다. 시몽은 폴의 부유층 고객인 반 덴 베시 부인의 외아들로, 스물다섯 살의 견습 변호사다. 소설 속에서 그는 ‘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그는 부잣집 도련님답게 적당히 게으르고 약간 철부지 같은 면도 있는, 무엇보다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 매력적인 청년이다. 그는 인테리어 일로 자신의 집에 들른 폴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시몽은 기질적으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남자였지만, 젊은이의 특권인 열정과 순수함을 무기로 폴에게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친다. 밤새워 길게 쓴 편지 보내기, 집 앞이나 그녀의 가게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기, 마주치면 간절한 눈빛으로 데이트 신청하기 등. 요즘 기준에서 보자면 매우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지만, 그것이 또 상당히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폴은 시몽으로부터 콘서트에 함께 가자는 쪽지를 받는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 문장을 보고 미소 짓던 폴은, 문득 생각에 잠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 본문 중에서
브람스의 콘서트를 계기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때마침 로제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폴이 마음의 방황을 일으키면서, 그녀의 마음은 시몽에게 점점 더 기울게 되는데…….
영화 <Goodbye Again>의 한 장면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뭇 도발적이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통속적인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그러나 줄거리의 익숙함을 걷어내고 나면, 그 속에는 뛰어난 심리 묘사와 인생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1961년에는 잉그리드 버그만, 안소니 퍼킨스, 이브 몽땅 주연의 <이수(離愁)>(영어 제목: Goodbye Again)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실 이 작품과 관련해서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우마 서먼과 메릴 스트립, 브라이언 그린버그가 공연한 <프라임 러브>(2005)였다. 연상녀와 연하남의 러브 스토리라는 점, 남녀 간의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내고 있다는 점 등이 여러모로 사강의 소설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나보다 어린 건 알겠는데, 얼마나 어린가 몰라. 좋아요, 한번 찍어 보죠. 스물아홉 살!” “땡.” “그럼 더 먹었다고? 서른 같진 않은데.” “고맙네요……. 스물 셋이에요.” “설마……. 못 믿겠으니 신분증 줘 봐. (보고) 세상에나! 완전 애잖아. 내 티셔츠보다 젊네.”
37세의 멋쟁이 광고기획자 ‘라피’. 그녀는 불과 일주일 전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라피는 심리상담사를 찾아가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런 그녀의 앞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 풋풋하고 귀여운 청년의 이름은 ‘데이브’. 영화관에서의 운명적인 만남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렬한 끌림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첫 데이트에서 데이브의 나이를 알고 난 라피는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티셔츠보다 어린 이 남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전형적인 로맨틱 영화답게, 두 사람의 연애는 ‘알콩달콩’과 ‘좌충우돌’을 오가며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극중 심리상담사이자 데이브의 엄마로 등장하는 메릴 스트립의 코믹 연기 역시 재미를 더한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갈등은 엄격한 유대인 가족으로 설정된 데이브의 가정환경. 그러나 핵심적인 갈등은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한없이 달콤하고 행복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데이브가 라피의 집에서 동거하기로 결정하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단순히 나이 차이로만 설명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라피는 심리상담사인 ‘리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 모든 것을 다 걸기가 두렵다고. 리사는 아들 데이브에게 말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라고. 그리고 라피는 데이브를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넌 내가 원하는 걸 채워줄 수 없다고.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고.
나이트클럽 옆 테이블에서 그녀는 이따금 일 관계로 만나는, 몇 살 연상의 여자 둘을 만났다. 그들은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몽이 그녀에게 춤을 청하려고 일어섰을 때, “저 여자, 지금 나이가 몇이지?”라고 소곤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그녀는 시몽에게 몸을 기댔다. 모든 것이 망가지고 말았다. 드레스는 그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았고, 시몽의 외모는 너무 눈에 띄었으며, 그녀의 삶은 지나치게 비상식적이었다.
- 본문 중에서
떠나는 쪽은 언제나 나이가 많은 여자들이다.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기에 그녀들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결코 친절하지도 녹록하지도 않은 이 세상에 맞서는 대신, 그들은 익숙한 일상의 권태와 고독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당장 버려야 할 것들이 가슴 아프긴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소설의 마지막 장. 격렬한 슬픔 속에 뛰쳐나가는 시몽의 뒷모습을 보며 폴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프랑수아즈 사강이 이 작품을 썼을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24세였다. 19세에 이미 첫 장편소설 『슬픔이여, 안녕』으로 프랑스 문단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점을 상기하면,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녀의 데뷔작은 세계 22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500만 부 이상 팔렸고, 사강은 그해 프랑스 문학비평상을 수상한다. 프랑수아 모리악이 사강을 두고 “유럽 문단의 매혹적인 작은 악마”라고 불렀다는 것 또한 유명한 이야기. 이후에도 그녀는 발표하는 소설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다. 사강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어떤 이들은 처음부터 지나치게 많은 재능을 타고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만 해도 그렇다. 어떻게 24세의 나이에 중년 여성의 심리를 이렇게 리얼하게 묘파(描破)해낼 수 있는 걸까. 태어날 때부터 이미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사람처럼.
2004년 9월 프랑스 북부 옹플뢰르의 한 병원에서 사강이 죽었을 때, 《텔레그라프》는 다분히 중립적인 어조로, 《워싱턴포스트》는 다분히 비판적인 어조로, 그리고 영국의 언론은 사실에 입각해 그녀의 삶을 요약했다. 10대 후반부터 생미셸 대로의 카페와 클럽을 들락거렸고, 위스키 잔을 줄곧 손에서 놓지 않았고, 문턱이 닳도록 카지노를 드나들며 인세 전액을 간단히 탕진했고, 재규어와 애시튼 마틴, 페라리, 마세라티를 바꿔 가며 속력을 즐기다가 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3일간 의식불명 상태에 놓이기도 한, 낭비와 알코올과 연애와 섹스와 속도와 도박과 약물에 ‘중독’된 그녀의 삶이 그녀의 문학을 압도한 격이었다.
질병과 궁핍 속에 비참하게 숨을 거둘 때까지, 그녀의 삶은 스캔들 그 자체였다. 코카인 소지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유명한 일화. 프랑스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가인 장마리 르 펜은 그녀를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이처럼 결코 순탄치 않았던 그녀의 삶 때문이었을까. 사강의 소설 속에서는 짙은 허무의 냄새가 난다. 삶에 대해서도,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도.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1994)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 그러나 프랑수와즈 사강은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2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3년이라고 해 두죠.”
반드시 변하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라면, 그녀의 말처럼 세상에는 영원한 사랑도 없고 영원한 열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죽을 것 같은 불같은 사랑도 결국 시간이 흘러가면 잊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사랑의 유통기한이 인생의 어느 특정 기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위로가 된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사랑할 수 있고 비록 영원히 지속되지 못한다 해도 그 순간의 열정을 확신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폴은 시몽과의 사랑으로 인해 행복했으므로. 그리고 그녀의 선택이 무엇이었든, 사랑의 기억마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설득보다는 매혹을 원했던 프랑스 최고의 감성, 유럽 문단의 매혹적인 작은 악마로 불리우는 그녀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coise Quoirez)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인 사강을 필명으로 삼았다. 그녀는 1935년 프랑스 카자르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소르본 대학교를 중퇴하였다. 19세 때 발표한 장편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