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끔 본업 외의 일로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고 더 나아가 타인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소설 쓰는 것이 본업인 김형경 씨는 자기 자신을 위해 받았던 정신분석과 정신분석 공부를 토대로 『사람 풍경』과 『천 개의 공감』이라는 책을 써냈고, 정신분석을 공부해 정신과 전문의가 된 하지현 씨는 영화와 정신분석을 맛깔 나는 궁합으로 만나게 한 『관계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썼다. 두 사람이 낸 책의 공통분모는 정신 분석 혹은 심리 치유다.
정신분석을 받은 여자 김형경과 정신분석을 하는 남자 하지현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해가 짧은 겨울 오후, 삼청동에 있는 북카페에서 각자 기호에 맞는 차를 한 잔 시켜놓고 정신분석에 대해 일반인이 궁금해하는 것, 인간의 마음과 그 마음이 입는 상처, 그것의 극복에 대해 짧지만 깊이 있는, 그렇지만 조금은 어려운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자(이하 사) : 김형경 선생님은 정신분석을 받은 경험이 있고, 하지현 선생님은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업으로 하시는 분이시니 두 분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뭔가 재미있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번 대담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두 분의 책〔『사람 풍경』『천 개의 공감』(김형경), 『관계의 재구성』(하지현)〕이 비슷한 시기에 나오기도 했고요.
김형경(이하 김) : 하지현 선생님께서 재미있는 말씀 많이 해주세요.(웃음)
하지현(이하 하) : 저야 김형경 선생님의 베스트셀러에 묻어가자는 흡수전략인데요.
사 : 두 분 모두 상대방의 책을 읽으신 걸로 아는데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하 : 저는 이전부터 김형경 선생님의 책을 굉장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도 그렇고 1년 동안 유럽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쓰신 『사람 풍경』도 그렇고 김형경 선생님이 쓰신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서 용암이 퍽 하고 터지는 느낌이 들어요. 기분 좋게 젖어드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소설을 쓰시는 분이 사적인 경험을 노출하는 것이 두려울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을 감행하신 것도 대단해 보였고요. 작품 속에서 작가의 심리적 변화를 쫓아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 자신의 정신 분석 경험을 바탕으로 쓴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사람 풍경』, 『천 개의 공감』 등의 저서를 통해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작가 김형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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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저는 『사람 풍경』을 쓸 때 비전문가로 남의 전문 영역에 침범하는 자의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비전문가라는 걸 앞에 내세우고 내 마음대로 쓰자,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썼어요. 책을 낸 다음에 정신과 의사 분들을 만나면 죄송하다고 그래요. 그리고 제가 당신네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사적으로 물어봐요. 그분들은 정신분석을 대중화해주는 것에 대해 고맙다고 하세요. 그런데 한 가지 곤란한 점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같은 책을 가져와서 선생님 이렇게 해주세요, 라고 말하면 너무 괴롭대요. 왜냐하면 일선에 계시는 정신과 의사들이 하루에 보는 환자가 3,40명 된다는데, 한 사람 앞에 50분씩 할애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관계의 재구성』은 참 재밌게 봤습니다. 제가 본 영화가 반 정도였는데 <굿 윌 헌팅>에 대해 분석해 놓은 부분이 특별히 좋더군요. 숀 박사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몇 번씩 말해주면서 윌을 껴안아 주잖아요. 그 장면은 저도 참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하 : 선생님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정신과 의사에게 ‘선생님 저도 이렇게 해 주세요’라고 했던 것처럼 <굿 윌 헌팅>도 정신과를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영화입니다. 환자들이 이 영화를 보고 ‘선생님은 제가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는데 왜 절 안아주지 않나요?’라고 화를 내고 진료실을 나가거나, 자기애적인 환자들은 저에게 ‘당신은 좋은 치료사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해요. 어떤 환자는 <굿 윌 헌팅>에서는 환자를 안아줘서 좋아졌는데 당신이 안아주지 않아서 내가 낫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환자도 있었습니다.(웃음)
『관계의 재구성』은 정말 재미로 쓴 책이에요. 평소 쓰고 싶었던 내용을 편하고 즐겁게 썼습니다. 인간의 내면 성장에 기초가 되는 열두 가지 관계를 영화를 통해 풀어냈죠.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성장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김형경 선생님은 『천 개의 공감』을 어떻게 쓰시게 되셨나요?
김 : 『천 개의 공감』은 신문에 연재한 것을 다시 써서 책으로 낸 건데 처음엔 책을 낼 생각이 조금도 없었어요. 그런데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질문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팠어요. 조금만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면, 조금만 패러다임을 바꾸면 이렇게 고통받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런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내가 한 권 쓰자, 총체적으로 답이 되는 책을 쓰자, 그렇게 생각하고 책을 썼어요.
그런데 역시 이런 글쓰기는 어렵진 않지만 소설보다 쓰는 재미는 없네요. 쓰면서도 ‘시간이 아깝다. 이 시간에 소설을 열심히 써야 하는데. 소설이 100배 재밌다’라고 생각하면서 절망도 했습니다.(웃음) 역시 전 소설가라, 소설 쓰는 게 힘들어도 더 재밌고 성취감, 충만함도 있어요.
| 평소 사람 심사의 배배 꼬임과 세상사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갖고 다양한 글쓰기를 즐겨하는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 최근 『관계의 재구성』을 출간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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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 저는 그렇게 공식화해서 쓴다는 게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해결에 대한 대답이 너무 뻔할 수도 있고요. 또, 자기가 밝히는 요만큼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환자를 치료하면서 다른 반전이 있었던 경험도 꽤 많았거든요. 반전 드라마도 이런 반전 드라마가 없죠. 이만큼 이야기했는데 알고 보니까 별거 아니었던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쾌도난마로 한 큐에 이야기가 딱 끝나는 경우도 있어요. 정형화된 틀에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저는 참 어렵겠다고 생각해요.
김 : 전문가는 못 쓸 글이에요. 제가 『천 개의 공감』을 쓸 때 입문 수준에서 보편적으로 얕지만 넓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쓰면서 동시에 정신 적이지 않은 일상적인 실천법도 많이 제시했어요. 그중 몇 가지는 언니가 동생한테 하는 말 같은 거예요. 제가 또 한 번 비전문가라는 칼을 들고 제 마음대로 휘두른 거죠.(웃음) 내가 살면서 얻은 지혜, 내가 읽은 책, 내가 겪은 경험이 모두 다 들어있어요. 제 스스로 과대포장을 하면 멘토의 입장으로 쓴 책이기도 합니다.
하 : 저는 그런 부분이 좋았습니다.
사: 김형경 선생님은 정신분석에 대해 글을 쓰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김 : 전문가도 아닌 제가 정신분석에 대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전문가들은 그 전문분야 안에서 자기네들끼리 자기네들 지식을 나누어 가지면서 특화해서 특별한 상품으로 만들면서 대중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정식분석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영역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전 그게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공부를 하다 보니까 ‘왜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를 어렵게 해야 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지식은 누구나 다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게 개인의 삶에 유익한 방법으로 쓰인다면 그 전문 영역의 전문가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제가 이해한 대로 막 쓰기 시작한 거예요.
하 : 김형경 선생님의 지적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우리나라가 정신의학이 생물정신학 위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55세 이하의 젊은 정신과 의사 중에 정신분석에 대해 어느 수준 이상의 깊이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예요. 약 먹이면 되는데, 그렇게 길게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요. 미국 쪽도 비슷하고요.
김 : 약을 먹으면 바보가 되잖아요?
하 :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약은 효율적으로 잘 이용하면 아주 쉽게 갈 수 있는 도구인데 그것만 의존하고 아무것도 안 하면 문제가 되죠. 약 없이 가능한 환자도 있고, 약을 먹지 않으면 힘든 환자도 있습니다. 정신 치료에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약이 필요한 환자도 있고요. 그런데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어느 한쪽이 간과되는 부분이 있어요.
김 : 제가 책을 쓰고 나서 그런 게 걱정이 되더라고요. 지식도 문제지만, 상담 치료 작업을 하시는 분이 많지 않은데 책을 들고 가서 이렇게 그대로 해달라고 하면 그게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부분은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요?
하 : 그런 것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굳이 그런 방식으로 해달라고 오는 사람 중에서 그런 방식이 맞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드러나지 않게 그런 방식으로 치료하시는 분들도 요즘은 많아요. 하루에 일고여덟 분 정도 상담 치료를 개인적인 계약으로 하시는 분들이요. 그런데 그런 치료가 굉장히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요. 한국에서 전문 경력 7년차 이상의 분에게 상담을 한다면 한 회에 미화 백 불 정도는 생각하셔야 할 거예요. 미국에서는 200불에서 250불 정도예요.
김 : 저는 그것보다 쌌어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칠만 원인가 팔만 원. 시간은 50분.
하 : 실제 정신분석은 일주일에 4회이상을 권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에서는 일주일에 2회정도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라는 이름으로 하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에서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 : 자주 만나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요. 그럼 분석자와 굉장히 특별한 관계가 될 것 같은데요.
김 : 특별한 관계에서 치료 효과가 생겨요. 특별한 관계가 되어야 해요.
사 : 애착을 느끼지 않나요?
김 : 그건 하지현 선생님한테 물어보세요.(웃음)
하 :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되는데요. 일단은 자신이 했던 모든 경험을 다시 하는 거예요. 치료자와 분석자 사이에서 그 경험을 똑같이 구현하고 그 안에서 어긋남을 이해하면서 그동안 치료자가 의식하지 못하면서 반복해 왔던 것을 이해하게 되고 치료시간 밖에서 그것을 교정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런데, 상담을 4~5년, 10년, 12년이나 받은, 일종의 중독이라고 볼 수 있는 사례도 많아요.
김 : 저는 그걸 경계하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요. 분석이 삶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상황이 위급하기도 했고 제가 분석 받은 분이 프로이디안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처음엔 일주일에 6회씩 받았어요. 석 달쯤 지난 다음에 일주일에 3회로 줄였어요. 그런데 특별히 문제는 없지만 삶을 개선해보고 싶어 치료를 받는 후배들이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을 가요. 일주일에 한 번을 가는데도 서너 달쯤 지나고 보면 굉장히 좋아져 있어요. 그런 건 어떤 차이인가요?
하 : 횟수는 상당히 중요할 수 있는 게, 횟수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한계가 있거든요. 한 달 만에 만난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에게 한 달 동안 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다 가버린다는 거죠.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어요. 만나는 횟수가 늘면 일상에 대한 이야기에 집착하지 않게 되죠. 자주 하면 자주 할수록 일종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가 있어요. 이럴 때 안 좋은 것은 분석 받는 사람이 점점 더 자기 바닥 밑을 치워나가는데 그걸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자아의 힘이 약한 사람이죠.
김 : 그러니까 케이스 바이 케이스군요.
하 : 그렇죠. 그리고 ‘저 분석 받고 싶어요’라고 해도 바로 일주일에 네 번씩 바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 정도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면서 서로 관찰을 하고 테스트를 해야 합니다. 분석을 받는 사람이 이것이 뭔지 감을 잡고, 분석자와 함께 목표를 잡아야 하거든요. 분석을 받다 보면 머릿속에서 이야기할 레퍼토리가 바닥이 날 때가 와요. 그때부터 무서워지고 난감해지죠. 가장 힘든 시기에요. 그때를 벗어나면 편해지고 진짜 진행하죠. 많은 분이 상담을 두세 달 하다가 그만두죠.
김 : 분석가로서 어떤 사람을 분석하면서 새롭게 자신을 알게 되거나 그런 경우도 있나요?
하 : 이른바 역전이가 있어요. 옛날에는 그걸 없애야 할 대상을 봤는데…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나를 이해하고 환자를 이해하는 데 좋은 핵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새로운 환자를 만나서 내가 개인분석을 받을 때나, 다른 환자를 볼 때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기도 하죠. 또,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나이에 따라 독특한 뭔가가 있잖아요. 그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죠. 그런 것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해요. 그걸 알고 있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환자에게 잘못된 반응을 보일 수가 있으니까요.
김 : 정신분석은 의학적으로도 접근을 하지만 인문학적으로도 접근을 하잖아요. 프랑스 같은 경우는 어느 쪽으로 접근을 해도 분석가 자격을 주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죠? 그런데 정신분석은 굉장히 인문학적인 분야 아닌가요? 이공계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핵심에 닿기에는 먼 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문학적이고 감성적이고 종합학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 : 기본적으로 정신분석은 치료를 위한 도구로 개발된 것이거든요. 원칙적인 백그라운드는 최면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진 거예요. 인문학적 소양이 많으신 분들은 확실히 환자를 이해하는 폭이 넓을 거예요. 꿈이라든지 사변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의 경우는 죽음을 핸들링할 수 있어요. 가령 약을 처방한다든지 입원시킨다든지 하면서요.
정신분석을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 볼 수 있고 사람의 괴로움을 치료하는 도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석을 하는 사람에 대한 레귤레이션은 분명 필요하다고 봐요. 분석자는 일종의 사제적인 책임감을 요구받거든요. 환자의 아주 내밀한 부분까지 다 알게 되는 거니까 거기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하죠. 그래서 정신 분석가는 익명성을 가져야 해요. 은둔자처럼 살아야 한다고도 하죠. 진짜 대가인 정신분석가는 대중서를 쓰지 않아요. 쓸 시간도 없을뿐더러 쓰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사 : 심리 치료, 정신 분석이 우리 시대에 이슈 내지 화제가 된 것 같은데요.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요?
김 : 노마디즘이라는 용어처럼 현대인들은 일자리를 떠도는 유목민이 되었잖아요. 그러면서 근대사회가 제공해주던 집단 공동체의 가치, 보호기능을 다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현대인들은 불안해하며 길을 헤매고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이 발전을 했다, 라는 내용을 어느 심리학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식으로 보는 관점도 있어요. 남성들이 끊임없이 세상을 바꾸려고 하잖아요. 뭔가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하고. 그런데 이제 다했대요. 이제 지구도 미지의 땅이 없고, 물체도 나노 수준까지 발견했고 우주도 탐사했죠. 그래서 남성들이 비로소 자기 자신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 : 재미있는 의견이네요.
김 : 남성들은 본질적으로 본능과 시각이 외부로 향해 있잖아요. 본능적으로 자기 이외의 것을 탐구해 왔죠. 여자는 사회적으로 많이 억압받아요. 누구나 태어나면서 사랑과 공격성을 타고나는데 남성의 공격성은 사회적으로 발현할 수 있지만 여성의 공격성은 제도적으로 안으로만 응축되죠. 사회나 제도는 여성에게 인내와 헌신과 은장도를 요구했잖아요. 여성의 우울증은 분노가 응축되면서 생기는 거예요. 남성들은 밖에 나가서 풀거든요. 극단적으로, 밖에 나가서 누구를 폭행한다든지 하면서요. 선생님 환자들은 어떤가요? 여자가 많은가요? 남자가 많은가요?
하 : 반반 정도인데, 여자 쪽이 아무래도 더 많겠죠.
김 : 연령대는요?
하 : 다양한데, 아주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정신분석을 별로 권하지 않아요. 50세 이상도 물론 할 수는 있지만 어느 이상의 효과는 기대하지 않아요. 성격이 이미 굳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당장 화가 나고 억울하고 상처받은 그런 부분을 치유하는 거죠. 여기저기 흠집 난 부분을 매만져주고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김 : 투자 대비 생산성이 떨어진다 이거죠.(웃음)
하 : 이십대에서 삼십대 초반까지는 정신분석으로 삶을 바꿔줄 수 있으니까요.
사 : 젊은 사람들은 주로 어떤 문제로 찾아오나요?
하 : 참 재미있는 극단이에요. 일반적인 삶의 기조는 쿨함을 유지하려고 해요. 그것이 멋있을 거라는 합리화를 하는 거죠. 갈등이 생기기만 하면 끊어버려요. 내가 주지를 않았으니까 받지도 않을래, 하고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려고 해요. 그런데도 친밀한 관계에의 욕구는 굉장히 강해요. 욕구는 있는데 그걸 가질 수 없는 나는 비어 있는 쓸쓸함이 내면에 있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해요. 겉보기와 달리 허약하고 취약점이 많죠. 주변에서 봤을 때는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니?’라는 사소한 문제로 자아와 생활이 완전히 와장창 무너져버릴 수도 있어요. 사소한 일로 손목을 긋는 식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부모들은 절대로 이해를 못 해요.
김 : 기원전부터 윗세대들이 아랫세대를 볼 때 버릇이 없고 나약하다고 생각해 왔죠.(웃음)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그것과는 약간 다른 것은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을 못 겪고 사춘기를 보내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고 내가 뭔가 고민을 하고 반항도 하고 그렇게 보냈는데 요즘 애들은 부모가 다 만들어주잖아요.
요즘 아이들은 내가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스무 살이 되죠.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채로 어른이 되는 거예요. 정체성이 형성이 안 된 거죠. 요즘 아이들은 원하는 것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그저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눈치 봐서 대학에 가는 게 다죠. 요즘의 교육제도, 입시제도는 열여덟, 열아홉 살 아이에게 ‘세상이란 눈치를 봐서 줄 서서 잘 들어가는 곳이다’라는 걸 가르치는 것 같아요. 당당함이 없어요. 이상하게 비루한 느낌이 들고요. 정말 저게 옳은가 싶어요.
하 :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답을 모르면 가장 심플한 것을 답으로 삼아라.’ 사교육 열풍을 지적하면서 도리어 입시는 복잡해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부모는 파악이 안 되니까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옛날에 점수대로 줄을 서서 갔을 때는 공부할 것도 정해져 있었고 부모가 제도를 아니까 예측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었어요. 심플했죠. 그런데 매번 제도가 바뀌니까 이것만 죽어라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맡기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여성의 사회참여가 제한됐지만 학력은 신장되었던 7,80년대의 여성들이 가졌던 열망이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갔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아이에게 그대로 쏟아 부었어요. 아이가 내가 바라는 이상대로 살기를 바랐고, 아이는 그대로 움직였어요. 그런데 그런 것이 지금에 와서 묘한 모자 관계가 되어버렸어요. 2,30대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엄마를 무척 싫어하면서도 엄마와 떨어지질 못해요. 엄마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죠. 이혼을 할 때도 엄마가, 상담을 받으러 올 때도 엄마가 끌고 와요.
김 : 부모와 자식 간의 지나친 밀착이 선생님 말씀하신 그런 원인도 있고, 외국 사례에서 보면 이런 것도 있더라고요. 점점 더 부모가 자녀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교육방법이 50년대부터 등장했대요. 이전 세대는 부모가 권위적이고 거리를 두고 지시를 하고 아이를 훈육하는 입장이었잖아요. 그런데 5,6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부모와 자식이 더 친밀한 애착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 부작용이 이제 나타났다는 거예요. 부모와 자식이 너무 친밀해지니까 이혼도 엄마가, 결혼도 엄마가 하는 사태가 된 거죠.
나는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게, 왜 우리 사회는 원로들조차 부모에게 밀착해 있으라고 권하는지 모르겠어요. 인간 삶의 핵심이 부모의 삶으로부터 독립하는 거 아니에요? 연세 높으신 분들이 아직도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어야 한다는 둥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어야 한다는 둥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이상해요. 왜 그러는 걸까요?
하 : 그건 당연히 자신을 잡아 달라는 거죠.
김 : 왜 그런 것이 사회적으로 개선이 안 되는 거죠? 여전히 어머니 아버지의 그늘에 있으려고 할까요. 예순이 넘어도 성인이 안 된다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요? 우리 사회는 개인들이 너무 성인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그런 문화도 형성되지 않았고….
하 : 그런 것들에 대한 대안으로 ‘인문학의 부활’이나 ‘교양 교육의 강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저는 상당히 골 때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옛날에 전 『전쟁과 평화』를 몰래몰래 봤거든요. 정말 재밌게 봤고.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것들이 논술용 필독서가 돼버렸어요. 그렇게 교재가 되어 청소년들의 삶에 지식만 될 뿐 지혜나 삶의 자양분이 되지 못하죠.
또, 글로벌리즘을 이야기하면서 영어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강조하지만 일반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문화적인 소양, 동시대 문화에 대한 소양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에요. 저는 요즘 아이들이 나중에 30대가 되었을 때 번역본은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걱정이 돼요. 기본 소양이 너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사회가 얼마나 발달했는가는 다양성의 존중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개의 언어권에서 마이너들도 먹고 살 수 있으려면 최소한 인구가 1억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양성을 추구하기엔 우리 인구가 좀 적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김 : 우리도 통일해서 열심히 낳으면 다음 세대쯤에는.(웃음)
하 : 그렇죠. 열심히 낳으면.(웃음)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굉장히 힘든 일이잖아요. 하고 싶은 일보다 남들이 하라고 하는, 해야 한다고 하는 일을 할 경우가 더 많죠. 다치바나 다카시가 인터뷰한 『청춘표류』를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예를 들면, 새 사진을 찍으러 몇 년씩 다니면서 먹고살아요. 우리나라는 그렇게 살려고 하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잖아요. 그런 다양성의 길이 열릴 때, 서태지만의 성공 신화가 아니라, 그런 것이 대단한 관찰거리나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때, 그런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가 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 더 상처를 덜 받고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을 수 있는, 개성을 존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김: 구체적이고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문학은 많이 부활하면 할수록 좋지 않을까요? 하: 원래 인문학은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학문이니까요. 그 말씀에 공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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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선생님이 오늘 대담의 결론을 말씀해주셨네요. 선생님은 인문학의 부활을 꿈같은 이야기라고 하셨는데 저는 인문학을 선생님이 말씀하신 삶의 지혜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삶의 자양분이 되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시는 분 중에 노숙자를 위해 인문학 강의를 하시는 분이 계세요. 그분 말씀이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쳤더니 그분들이 비로소 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고 가정으로 돌아가시더래요. 다른 교육보다 인문학을 가르친 것이 근본적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을 미쳤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분이 또 싱글맘을 위한 치유 글쓰기와 독서 활동을 하시거든요. 거기를 가 봐도 그분들에게 일자리를 하나 찾아주는 것보다 자기 정체성을 알게 해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 측면에서 구체적이고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문학은 많이 부활하면 할수록 좋지 않을까요?
하 : 원래 인문학은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학문이니까요. 그 말씀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