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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이게 우리 인생인 것을 어쩌나!

글쓴이: 책읽는 사랑방 | 201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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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 이후 스페인어권 최고 작가로 평가 받는 대문호의 죽음. 지난 4월 17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87세로 타계했다. 콜롬비아 출신의 그의 유골이 같은 달 21일 수천 명의 애도 속에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예술궁전으로 옮겨졌다.

그가 남긴 큰 작품,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었다. 꿈결에서 누군가 내게 들려주는 긴 설화 같은 소설은 읽는 내내 야릇하면서 뭉클한 인생의 여운을 안겨 주었다.

작가는 5대에 걸쳐 거의 비슷비슷한 이름들이 이어지고, 만남과 헤어짐, 탄생과 죽음을 반복한다. 백년 동안, 즉 1세기에 걸쳐 압축된 농밀한 부엔디아 집안의 이야기. “가문의 영고성쇠를 다룬 일종의 계도(系圖) 소설”이다.

나는 여기서 남미의 강렬한 태양광 아래 원초적인 여자들이 풍기는 겨드랑이 냄새와 말라비틀어지고 쥐오줌 냄새가 밴 회반죽으로 알록달록 도배된 움막같은 삶의 공간을 떠올렸다. 털털거리며 이내 숨넘어갈 듯 고개를 오르거나, 모서리를 도는 수명이 다 된 노선 버스, 그리고 바람 빠진 타이어에 의지한 채 비뚤비뚤 달리는 자전거의 위태로움 한 줌도 느꼈다.


 



▲마르께스가 가는 길은 우르슬라가 그랬던 것처럼 축제 같았다.



이게 우리 인생인 것을 어쩌나!
온갖 호기심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그는 정말로 돈 키호테다. 아니 세르반테스가 하릴 없이 주절주절 읊어댄 것인양 너절어진 문체도 영판 없이 라 만차 노인네 같이 무기력하다.

부엔디아 가문의 시작과 끝은 필라르 테르네라와 거의 닿아 있다. 그녀는 “허벅지의 힘과 젖가슴의 단단함과 부드러운 손길을 잃기는 했어도, 미친 듯 불타는 욕정만은 온전히 지녀” 남자만 보면 사랑에 빠진다. 또한 카드로 점을 칠 줄 아는 그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지닌 주술을 상징한다.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이든 그녀와 부엔디아의 두 아들,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차례로 정사를 나눈다. 이는 마르께스에게 필라르는 아메리카의 혼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여신을 상징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호세 아르카디오와 필라르 사이에서 태어난 아르카디오 역시 그녀를 찾는다. 자신의 아들을 알아본 필라르는 자신이 모아둔 재산의 반을 들여 산타 소피아와 교접하게 한다.

나는 여기서 페루의 아마존 지대에서 활동하는 파블로 아마링고의 몽환적인 그림이 떠올랐다. 아마링고는 아야후아스카라는 환각제를 먹고 그림을 그린다. 작품의 주제는 보통 아마존 문화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몽사(夢蛇).

가령 호세 아르카디오는 부모의 말을 안 듣다가 뱀이 되어버린 가련한 남자를 구경하다가 집시 소녀를 만나 처녀성을 탐한다. 이틀 뒤 그는 머리에 붉은 헝겊을 뒤집어쓰고 집시들과 함께 길을 떠난다. 세월이 흐른 뒤 그는 니뇨센 크루스 부적(예부터 내려오는 악을 물리치는 호신용 부적)인 청동 팔찌를 차고 나타난다. 이때도 집에서 기거하던 레베카와 질풍노도 같은 힘으로 정사를 나눈다.

아마링고의 그림을 보면 마르께스가 묘사했던, 부엔디아가 탐닉했던 원류와 호세 아르카디오와 필라르의 주술적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부엔디아가 늘어놓는, 어떤 마술적인 액체만 땅에 뿌리면 식물이 아무 때나 원하는 때에 과일을 맺고, 고통을 잊게 해주는 온갖 기구들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는, 멋지고 신기한 세계에 대한 꿈같은 얘기들이나, 집시들이 마콘도 마을을 찾을 때 가져온 앵무새, 암탉, 원숭이, 그리고 기분 나쁜 추억을 깡그리 잊게 해주는 기계와 찜질약은 아마링고 그림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는 파블로 아마링고



▲주술적이요 몽환적인 아마링고의 작품
아마링고의 다른 작품 보기



사실 부엔디아의 아내 우르술라가 신을 숭배하며 주술과 영성을 심취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렇듯 부엔디아와 우르술라로 대표되는 1대는 아메리카와 콜롬비아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쓸쓸하고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끝내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고 홀로 죽음을 맞이한 부엔디아도, 집으로 찾아온 뒤 갑작스레 의문사를 당한 호세 아르카디오도 그랬다. 특히 미녀 레메디오스에게 사랑을 거절당하고 미쳐버린 한 젊은 장교의 죽음은 고독 그 자체다. 새해 첫 날, 장교의 시체는 그녀의 방 창문 아래에서 발견된다.

2대로 대표되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서른두 차례에 걸쳐서 무력 봉기를 일으켰고, 그 싸움에서 모두 졌다. 우르술라는 격동을 세월을 보내고 집에 돌아온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말한다. “온 세상을 다 뒤져봐도 우리 집보다 넓고, 탁 트이고, 시원하고, 훌륭한 집은 없을 거야.”

마르께스에게 조국과 고향은 우르술라가 아들을 맞이하듯, 이제 이념도 전쟁도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다. 아니 새로운 낙원을 건설해야 할 바탕일 것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왔고, 앞으로 후세들이 살아가야 할, 바로 그런 곳.

4대로 가면 할아버지대, 호세 아르카디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필라르를 두고 그랬던 것처럼, 아르카디오의 두 아들 세군도 형제 역시 페트라를 두고 그랬다. 이 때 우르술라는 이미 100살이 되었고, 백내장으로 눈이 멀어가고 있었어도 여전히 육체적으로 활동적이었고, 성격은 고결했으며 정신상태도 완전했다. 그녀는 부엔디아 집안의 몰락을 초래한 재앙과는 거리가 먼 덕망 있는 후손을 키워서 가문의 체통을 되찾고자 했다.

여기서 마르께스는 부엔디아 집안을 몰락시킨 네 재앙으로 전쟁, 싸움닭, 나쁜 여자들 그리고 황당무계한 모험을 든다. 그는 우르슬라에게서 조국을 지켜왔고, 또한 일으켜 세울 모범을 찾는다.
사실 작가는 모성적 원형에서 희망을 찾는다. 백년 동안의 고독을 묵묵히 인내하면서 지켜온 뿌리에 모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어린 시절, 멜키아데스의 방에 틀어박혀 머릿속에는 환상적인 생각만 가득 차 현실과 단절되어 있을 때 끌어낸 인물도 여성, 페트라였다. 하지만 세군도에게는 아름다운 아내 페르난다가 있었다. 어느 날 페르난다는 페트라의 존재를 확인하고 집을 나간다. 이에
세군도는 페트라를 찾아 나선다.

작가는 그런 그에게 "마콘도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산맥을 넘었던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결심과, 헛되이 끝나버리고 만 전쟁을 이끌어가던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맹목적인 긍지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우르슬라의 광적인 참을성을 물려받았다"고 묘사한다. 조상의 정신과 선대의 얼은 드넓은 강물처럼 유유히 전해지는 셈이다.

마르께스는 작품 속에서 고독의 특권을 이렇게 묘사한다. "오랜 세월을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왔고, 거짓된 자선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나이를 먹어도 굽힐 줄 모르는 비타협적인 자세."

'백년 동안의 고독'이란 바로 아메리카의 자존감, 콜롬비아의 역사를 상징한다. 그 혹독한 시련의 역사 속에서도 끊임없이 단련되고 벼려져 온 조상의 원형이다.


나는 내 고독은 무엇인지, 있다면 그 원형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아들에게 어떤 고독을 물려줄 것인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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