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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준우 “범죄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의 어려움”

『스릴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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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동 엽기토끼 살인사건’, ‘배산 대학생 피살사건’ 등의 미제 사건을 다루어 화제가 된 <그것이 알고 싶다>. 도준우 PD는 어떻게 문제를 묻고, 뚫고, 뒤집어 왔을까요? 방송국 PD의 일이 궁금한 지망생,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고 일하는 법을 고민하는 직장인 모두에게 전하는 이야기. (2024.09.13)


도준우 피디의 첫 책 『스릴 너머』의 부제는 ‘범죄 전문 피디의 묻기, 뚫기, 그리고 뒤집어엎기’다. 선택의 순간에 질문하고, 자신의 믿음대로 뚫고 나간 뒤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뒤집고 엎는 일은 도준우 피디가 사는 내내 해온 일이다. “매 순간 꽂히는 걸 따라”가며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해왔다는 그는 전공과 상관없이 힙합 동아리에 푹 빠져 대학시절을 보냈고, 주변에서 취업 준비를 할 때에도 격투기가 좋아 격투기 웹진에 통신원으로 일하기를 택했다. 그리고 2008년 SBS 예능국 피디로 입사한 후에도 묻고, 뚫고, 뒤집어엎기는 계속되었다. 화려한 예능국을 뒤로하고 사표를 냈던 그가 우여곡절 끝에 교양국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토록 피하고 싶던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 합류할 때도 묻고, 뚫고, 뒤집어엎기의 힘을 확인했던 것이다. ‘신정동 엽기토끼 살인사건’, ‘배산 대학생 피살사건’ 등의 미제 사건을 다루어 화제가 된 방송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와 유튜브 <그알>을 사랑하는 ‘그앓이’에게, 방송국 PD의 일이 궁금한 지망생에게,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고 일하는 법을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도준우 피디는 『스릴 너머』를 통해 ‘너머’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당신의 선택을 응원한다. 당신도 묻고, 뚫고, 뒤집어엎기를 바라면서. 

“범죄 콘텐츠를 좋아하는 분들이나 이 콘텐츠 업계에 계신 분들에게 닿는 내용도 있을 거고요. 피디를 준비하는 분들도 볼 것이 있을 거예요. 그것을 관통하는 것이 저라는 사람인데요. 살면서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뚫고 나왔는지, 때로는 뒤집기도 했는지 보실 수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어떤 분이 보시더라도 공감할 포인트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 피디로서 생각하는 제일 좋은 기획안이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책은 그게 안 되네요.(웃음)” 



아무리 생각해도 더 재미있는 게 안 떠올라요

기록의 시작을 묻고 싶어요. 원래 글을 써 왔나요? 

국문과 출신이기는 한데 글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전공 수업은 거의 안 듣고 동아리 활동을 주로 했거든요. 또 글을 많이 써보지도, 부끄럽지만 책을 즐겨 보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책 쓸 일이 있을 거란 생각도 안 해봤죠. 피디 선배들 중에 책을 내는 분들이 계신데요. 그저 신기했어요. 사실 출판사에서 몇 번 제안이 왔었거든요. 처음엔 거절했어요.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게 특별한 이야기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절을 하다가 세 번째 제안이 오니까 달리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제안하는 분들은 책의 전문가이잖아요. 그분들이 제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거니까, 제안을 받았을 때 무슨 할 얘기가 있을지 혼자 정리를 해봤어요.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제안이 왔을 때쯤은 어느 정도 마음이 열렸던 것 같아요. 제 얘기를 누군가 궁금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피디라는 직업이 워낙 바쁘니까 글을 쓸 짬을 내는 것도 힘든 일이었을 텐데요. 쓰는 과정은 어땠어요? 

평일에는 퇴근하면 피곤해서 못 썼고, 주말 이틀 동안 썼어요. 사실 제가 방송을 하고 있었다면 못 썼을 거예요. 방송은 주말에 이틀 쉰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그나마 지금 유튜브 팀에 있어서 주말이 보장 되니까 쓸 수 있었던 것 같은데요. 한 3-4개월 그렇게 쓰니까 몸이 되게 힘들어지더라고요. 일주일에 하루도 못 쉬는 거잖아요. 그래서 딱 한 번 편집자님과 약속한 마감을 미뤘어요. 그때 다시 회복을 한 뒤에는 일주일에 하루는 쉬겠다고 다짐했고요. 하루에 몰아서 열심히 쓰고 하루는 쉬는 식으로 겨우 썼어요. 

성장 과정부터 학창 시절, 그리고 피디가 된 순간과 실제로 방송을 만들며 겪은 일까지 폭 넓게 담았잖아요. 쓰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가요? 

처음에는 그런 것이 없었어요. 저는 방송을 만들 때도 소재나 주제를 잡을 때 결말을 생각하고 만든 적이 거의 없거든요. 항상 ‘궁금하네? 한번 시작해 볼까?’ 하면서 끝을 향해 달려갔어요.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출판사 쪽에서 제안을 주셨으니까 분명히 내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그냥 얘기를 시작해 보자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죠. 쓰다 보니까 나름대로 저의 일관된 캐릭터도 나오고, 아주 특별하진 않지만 그래도 제가 남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것도 보이더라고요. 결과적으로는 보람된 작업이었어요. 

확실히 쓰고 나서 발견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더라고요. 쓰기 전에는 피디로 생활한 이야기, 제가 겪은 여러 에피소드를 얘기하겠지 생각했는데요. 그것 또한 들어가지만, 그 길을 따라온 구간의 선택을 볼 수 있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걸 못 참는 성격인지 보이더라고요. 

‘언론고시’라고도 하죠. 언론사 입사를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피디님은 달랐어요. 기존의 것들을 따라가는 캐릭터라기보다 내가 믿는 것을 그냥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사람 같더라고요. 

굳이 돌아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요. 제가 자신을 엄청 믿고, 나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으로 했다기보다 그냥 그때 그때 판단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언론사의 테스트 기준을 봤을 때는 흔히 생각하는 고시처럼 공부할 시험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20년 이상 내가 살아오면서 생각한 것들이 더 중요하고, 짧게 1-2년 준비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순발력을 발휘해야 되는 시험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접근한 거죠. 사실 운이 좋게 된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원래 MBC 입사를 꿈꿨으니까요. 상대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해서 됐을 수도 있어요. 또 만약 SBS가 아니라 MBC를 향해 달렸다면 저도 일종의 언론고시 같은 준비를 했을 수도 있죠. 결과는 타이밍과 운이 따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원래 피디를 꿈꿨던 건 아니지만, 하면서 이 직업이 천직이라고 느꼈던 때는 없었나요? 

저는 없는데, 주변에서 천직이라고 많이들 얘기하더라고요.(웃음) 사실 천직이라고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지금 일이 재미있어요. 가끔 또 재밌는 일이 뭐 있을지 생각을 많이 해보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재미있는 게 잘 안 떠올라요. 제가 한 곳에 오래 있는 걸 되게 힘들어 하고, 새로운 걸 계속 하고 싶어 하는 성격인데요. 그런 면에서 피디가 맞는 것 같아요. 

피디는 피디라는 직책은 바뀌지 않지만 아주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기 때문에요. 그건 어떻게 보면 거의 다른 회사를 가는 것과 비슷하거든요. <그것이 알고 싶다>에 있다가 <TV 동물농장>이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간다고 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같은 층에 있는, 사무실만 다른 이웃팀이지만 하는 일이 완전 달라요. 가면 몇 개월 또 적응하고 배워야 되고요. 그 점을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즐기는 편이에요. 오히려 너무 적응이 되면 새로운 거 하고 싶어지고요. 새로운 팀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일을 배우는 게 재미있어요. 그런 면에서는 이 직업이 저와 맞는 것 같아요. 



나는 잘 모른다 

코미디, 힙합, 격투기처럼 키워드가 몇 개 있어요. 이것들이 도준우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선호를 가지고 있는지 엿보게 하는데요. “아마도 나는 내게 격정을 불러일으키는 무대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35쪽)고도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무대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피디가 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렇죠, 저는 어릴 때 단지 TV 관련된 뭔가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요. 눈에 보이는 건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이니까 당연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요. 그래도 욕심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힙합을 좋아했던 것도 당연히 무대 위에 섰을 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 같은 것들이 좋았거든요. 결과적으로는 피디가 되었지만 유튜브 팀에 와서 직접 출연하고 진행도 하잖아요. 결과적으로는 그런 저의 성격이 여기까지 닿아서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은 해요. 

<그것이 알고 싶다>에 절대 안 간다며 피하다가 마지못해 팀에 간 지 얼마 안 돼 ‘엽기토끼와 신발장-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퍼즐’ 편을 만들어 큰 화제가 됐죠. 당시 한 선배가 “원래 너 같은 애가 <그알> 잘해.”(232쪽)라고 했다고 하는데, 피디님은 이 말을 “TV를 보는 보통 시청자들의 시선을 갖고 있었”(235쪽)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어요. 

제가 예능 피디에서 교양으로 갔잖아요. 교양에서도 <그것이 알고 싶다>은 시사 교양의 끝단에 있는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다 보니까 제게는 많이 낯선 것이었어요. 어려워 보이기도 했고요. 그때는 제가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안 간다, 못 간다 계속 했었죠. 처음 갈 때도 딱 일 년만 하겠다고 했어요. 보통은 삼 년 정도는 하는데 말이에요. 

그랬는데 막상 해보니까 취재하고 방송을 만들어내는 데 대단한 사명감과 정의감이 필요한 건 아니더라고요. 그건 그냥 따라오는 거더라고요. 어느 사건의 피해자나 범인을 만나다 보면 당연히 분노나 공감, 슬픈 감정이 들고요. 그렇게 되면 자연히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건 당연한 감정이에요. 방송을 만들면서 따라오는 거지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실제로 부딪쳤을 때는 그런 것보다 어떤 사건이나 이슈를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게 장점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 문제를 얘기해야지’ 하고 시작하는 것보다 잘 모르는 채로 시작해서 어느 정도 눈높이까지 가는 방식이 시청자 분들도 같이 공감하면서 따라갈 수 있게 되고요. 제가 했던 방송을 기억하시거나 공감하는 분이 많았던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피디님이 기획한 다른 프로그램인 <방과 후 힙합>과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교해서 평가한 부분도 떠오르네요. <방과 후 힙합>의 경우 정확하게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잖아요. 

두 프로그램은 성격도 무척 다르지만 저한테도 정말 다른 의미가 있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는 못 하겠다고 하다가 어쩔 수 없이 했고, <방과 후 힙합>은 몇 년 동안 힙합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계속 기획안을 내서 겨우 따낸 프로그램이었거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는 보통 교양 피디보다 더 잘해냈고요. <방과 후 힙합>은 진짜 처참하게 실패했어요. 

실패한 원인이 책을 쓰면서 돌아보니까 보이더라고요. <방과 후 힙합>은 너무 하고 싶어 했고, 힙합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중보다 조금 더 높은 시선에서 만들었던 것 같거든요.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할 때보다 밤도 훨씬 많이 샜고요. 자막 하나 하나에도 의미를 잔뜩 넣었어요. 사실상 학생들이 랩하는 무대잖아요. 그냥 즐겁게 봐도 되는데 제가 거기다 의미를 지나치게 넣은 거죠. 지금 보면 못 볼 것 같아요.(웃음) 그러니까 시청자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을 거예요. <그것이 알고 싶다>와는 반대였죠. 

이런 경험들을 거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 때 지켜야겠다 할 것들이 생기기도 했나요? 

확실히 생겼어요. 솔직히 말하면 <방과 후 힙합>이 끝났을 때 이런 자기 성찰을 충분히 못 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책을 쓰면서 많이 깨달았거든요. 확실히 이번에야 정리를 한 거죠. 피디를 하면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아이템을 계속 하게 되잖아요. 그때마다 내가 잘 아는 것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것도 있을 텐데요.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무엇을 하든지 ‘나는 잘 모른다’는 걸 인정하고 시작해야 보는 사람들 눈에 맞춰 프로그램이 제작되니까요. 제가 <방과 후 힙합> 빼고는 다 잘했거든요. 그러니까 큰 문제가 없었는데요. 결국은 스스로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착오였던 거예요. 지금은 그 사실을 너무 깨달아서요. 앞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범죄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

범죄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의 윤리랄까요. 프로그램을 만들 때 경계하는 것을 말씀한 부분이 있어요. 중요하게 읽히더라고요. 

그 고민을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할 때는 많이 못 했어요. 방송 만드는 데 급급했던 것 같은데요. 유튜브 팀으로 와서 그런 고민을 해보게 됐어요. 확실히 유튜브가 피드백이 있으니까요. 저희 구독자를 ‘그앓이’라고 부르는데요. 그앓이 분들이 되게 훌륭하세요. 콘텐츠에 대한 피드백이 단순히 좋다, 재미있다를 넘어서는 다양한 의견이거든요. 그 의견만 잘 수렴해서 만들어도 범죄 콘텐츠를 만들면서 놓치는 부분은 사라질 거예요. 초반에는 정말 많았죠. 썸네일의 그림이나 제목, 자막에 이런 표현은 안 쓰면 좋겠다는 식의 피드백이 계속 있었고, 덕분에 자연스럽게 저도 고민을 하게 됐어요.  

지금 자신할 수 있는 건 <그알> 유튜브 팀에서 만든 콘텐츠는 흔히 생각하는 성인지 감수성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건데요. 범죄자나 가해자 또는 피해자의 성별을 특정하는 식으로 피해야 될 표현은 정말 잘 지키고 있어요. 그건 저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구독자분들이 중요한 피드백을 주셨기 때문이고요. 그걸 충분히 반영해 나가면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범죄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려를 갖기도 하는 거고요. 

맞아요, 확실히 저도 유튜브를 하면서 범죄 콘텐츠를 보는 눈이 까다로워졌어요. 제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할 때는 종편이 막 생겼을 때예요. 지상파와 종편 몇 채널이 취재하는 정도였는데요. 지금은 방송사도 워낙 많고요. 유튜브와 OTT까지 범죄 콘텐츠를 많이 다루잖아요. 사실 많아지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건을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해 주면 좋잖아요. 하지만 범죄 콘텐츠가 위험한 건 99가 좋아도 1을 실수하면 99가 다 사라진다는 거예요. 만약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엄청 의미 있는 주제로 방송을 만들었는데 1초라도 피해자 얼굴 모자이크가 빠지면 그 방송은 안 돼요. 그처럼 예민한 부분이 많은 장르인데 그걸 우리만큼 고민하면서 만드는지에 대한 의문이 사실은 있어요. 

제가 그 콘텐츠의 팀이 되지 않는 이상 그들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 다 알 수는 없겠죠. 하지만 콘텐츠에 드러나는 제목이나 진행자들이 쓰는 단어처럼 사소한 것에서도 고민이 드러난다고 보거든요. 피디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삭제하는지가 다 드러나는 거니까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범죄 콘텐츠가 많은 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분명히 피해자가 있으니까요. 사건의 자극적인 요소만을 방송에 이용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참 어려워요. 이런 사건을 다룰 때 사람들이 관심 둘 요소, 눈길 끄는 요소를 싹 빼고 담백하게 전달하는 것만이 또 답은 아니거든요. 어쨌든 세상에 알리려면 많은 분들이 봐야 되니까요. <그것이 알고 싶다>도 흥미를 유발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분명히 그렇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결국 콘텐츠의 흥미라는 부분은 사건을 알린다는 큰 목적을 위해서는 필요해요.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정말 피해자에 대한 기본 예의를 지키고 있느냐는 것이죠. 최소한 피해자한테 동의는 구했는지, 피해자를 한 번 더 상처 주는 요소가 있지는 않은지 등을 고민해야 하는 거예요. 물론 어려워요. 무 자르듯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다만 최소한 그 마인드는 필요하다는 생각인 거죠. 스스로 계속 체크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저도 모르겠어요. 저희가 만드는 것도 그렇게 많이 노력해서 만들지만 보는 분들은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겠거든요. 저희끼리는 자신이 있지만 말이에요. 정말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일 같아요. “교양 피디로 일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스스로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310쪽) 것이라고도 하셨죠. 

제가 교양(국)으로 와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예능에서 교양으로 온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말이었어요. 예능은 화려해 보이잖아요. 연예인들도 있고요. 그래선지 교양하다가 예능으로 간 케이스는 꽤 있거든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드물어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저도 낮은 연차 때는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교양에서의 시간을 쌓아갈수록 교양하기를 참 잘했다 싶어요. 월급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이전보다 괜찮은 사람,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걸 느끼니까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탐사 보도 프로그램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제가 ‘강남역 살인 사건’을 통해 여성 혐오 문제를 다룬 적이 있는데요. 방송을 만들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목소리를 들으면서 바뀐 것들이 많아요. 꼭 일로써 성장하는 것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예전보다 나아진 사람이 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래서 후배들이나 팀원들한테도 많이 얘기하죠. 좀 흔들리는 친구를 볼 때면 교양을 하면 네가 점점 나은 사람이 돼 가는 걸 느낄 거라고 말해줘요. 

그 외에 후배들한테 많이 하는 얘기가 있나요?

피디들이 제일 많이 하는 얘기가 아이템 없다는 말이에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그 얘기를 하는데요. 저는 그럴 때 아이템은 항상 있다는 말을 해요. 아이템이라는 건 원석처럼 내 주변에 있는 거거든요. 그냥 원석을 만지다 말 게 아니라 제대로 보고 깎아보기도 하다 보면 아이템이 나온다는 의미예요. 

시선에 대한 이야기네요. 

그렇죠, 사실 교양 피디들이 하는 얘기는 엄청난, 저 멀리 있는 뚱딴지 같은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우리 사회의 얘기고요. 결국 주변에 늘 존재하는 것들인데 엄청나게 새로운 게 떨어지기를 기다리면 안 된다는 거죠. 주변에 있는 것을 깊이 바라보고 다각도로 바라보다 보면 그게 아이템으로 다가온다는 얘기를 하곤 해요. 

언젠가 꼭 만들어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뭔가요? 

원래는 힙합 프로그램이었는데요. <방과 후 힙합> 이후로 힙합이라는 단어가 교양국 내에서 금기가 됐어요.(웃음) 왜냐하면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지상파에는 힙합 프로가 없었거든요. 지상파 예능국에서도 안 해주던 힙합 프로그램을 교양에서 했잖아요. 되게 새로운 시도였는데 어쨌든 결과가 안 좋게 나면서 그 뒤로는 힙합이라는 단어를 꺼내기가 힘들게 됐어요. 저는 예능에 가까운 힙합 프로가 아니라 힙합 다큐도 만들고 싶었거든요. 아이디어가 많아요. 하지만 <방과 후 힙합>을 실패하면서 그런 아이디어를 내기 힘든 상황이 돼서 그냥 언젠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품고 있어요.

* 도준우

SBS 교양국 피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이십 대 초반에 랩에 빠져 교내 힙합 동아리 ‘바운스 팩토리’를 창설했으며 직접 만든 〈훈민정음랩〉 〈용비어천가랩〉을 포털 사이트에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 2008년 예능국으로 입사했지만 얼마 안 가 사직서를 냈고, 동료들의 만류로 교양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SBS 스페셜> <짝> <궁금한 이야기 Y> 등 교양 프로그램을 거쳐 2015년 <그것이 알고싶다> 팀에 합류했다. 현재는 <그것이 알고싶다>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팀원들과 '그알저알' '스모킹권' '지선씨네마인드' 등 다양한 범죄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스릴 너머
스릴 너머
도준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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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스릴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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