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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불평등한 사회는 붕괴한다”

『최재천의 곤충사회』 출간기념 기자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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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역경을 이겨내는 능력과 정신이 있어요. 젊은 친구들이 기후 우울증을 앓을 정도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때라도 우리 인간은 또 그걸 벗어내는 방법을 찾아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2024.02.22)


2월 14일 오전, 서울에서 『최재천의 곤충사회』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책은 사회성 곤충과 동물을 거쳐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로서의 인간을 탐구하기에 이른 저자의 삶과, 기후위기 시대에 인간이 만들어야 할 ‘생태적 전환’을 이야기한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최재천 교수가 진행했던 강연과 2023년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최재천 교수는 “처음 우리말로 쓴 책이 ‘개미제국의 발견’이었고, 그 책이 1999년도에 나왔으니 이제 사반세기 동안 책 작업에 참여해”왔으나, 출간 기념 행사는 거의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본인의 책 소개보다는 질문을 받아 간담회를 진행하고 싶다며 행사의 서두를 열었다.



2013년부터 했던 강연을 모아 다시 살펴보셨을 텐데, 10여 년에 걸쳐 변화된 생각이나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질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귀국해서 지금까지 한 30년이 되었어요. 그 시간을 제법 논객으로 살면서 제 딴에는 사회가 변화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일들이 제법 있는데요. 당시에는 아무 효과가 없을 것 같은 절박한 느낌이 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생겨요. 저는 이게 대한민국 국민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를 지켜보면 다 동의하실 텐데, 이 사회는 정말 시끄러운 사회예요. 심지어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다’라는 표현도 쓰죠. 우리 국민은 그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괜찮은 판단을 내리고 있어요. 백신이 안 좋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대부분의 국민이 백신을 맞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다 팔뚝을 걷고 주사를 맞았잖아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노력하면 어느 순간 국민 대다수가 변화를 품는 걸 저는 여러 번 봤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바뀔 수 있고,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흔의 나이에 외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오는 결정을 하면서 고민이나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최근 제 유튜브 채널에서 정부가 R&D 예산 깎은 것에 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한마디 한 적이 있는데요. 1994년도에 미국에서 귀국할 때 한국도 이제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날이 오겠다고 생각했어요. 안 오더라고요. 제가 여러 번 그 주제에 관해 신문에 글을 썼습니다. 처음 쓴 글은 연구비의 100%를 기초과학에 투자하라는 내용이었어요. 그 후에 50%로 하자, 30%라도 달라, 다양하게 써왔는데 지금도 응용 연구 투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연구비를 투자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요. 국가는 빨리 결과를 내는, 결과가 빨리 나올 것처럼 보이는 연구에 자꾸 투자합니다. 정부는 국민 총생산 대비 연구비 투자 비율은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지금 쓰고 있는 국가 전체 R&D 예산이 30조였는데, 그걸 지금 다 깎았어요.

그때 그냥 미국에서 지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 솔직히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돌아와서 제자들을 참 많이 키웠습니다. 동물행동학이라는 분야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키려면 인력을 확보해야 되겠다, 그래서 개인적인 연구에 목메지 않고 제자들 뒷바라지에 제 삶을 투자했습니다. 저 혼자 연구했으면 그냥 괜찮은 연구자로 살았겠죠. 그렇지만 제 제자들이 다양한 동물에 대해 열심히 훌륭한 연구들을 해줬기 때문에 제가 어느덧 학계에서 인정을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후회는 있지만 나름대로 얻은 것도 있어요.



책에 의생학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어떤 개념인가요?

책방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일일이 책을 다 읽을 시간이 항상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책방에 가면 제목만 쭉 읽어봐요.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못 보던 제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그중 마음에 드는 제목이 있으면 꺼내서 잠시 읽어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못 보던 제목이 보이고, 시간이 흘러 비슷한 류의 제목이 여러 권 보이기 시작하면 학문의 흐름이 보여요.

어느 날 ‘biomimicry’라는 제목의 책이 보여서 읽어보는데, 자연계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우리가 가져다 썼고 어떻게 쓸 수 있느냐에 대한 책이었어요. 비슷한 내용의 책이 곧 계속 나오더라고요. 그 무렵 제가 한국에 와서 교수가 되었는데 연구비가 없더라고요. 연구비 없는 나라에서 자연에서 돈 버는 방법을 찾아내는 연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공대에서 심포지움이 열려서 의생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제안한다고 했죠. 영어로 학문 이름도 ‘evolutionary biomimetics’라고 지어놨어요. 학문 대접을 받는 용어는 아니지만, 어쩌면 앞으로 이런 연구가 굉장히 활성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이 지구상에서 6차 대멸종을 부를 정도로 파괴적으로 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에게 미덕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인 구달 박사님이 항상 희망을 이야기하시거든요.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감소 상황을 보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 같아요. 절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근거는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불굴의 정신 때문이죠. 인간에게는 역경을 이겨내는 능력과 정신이 있어요. 젊은 친구들이 기후 우울증을 앓을 정도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때라도 우리 인간은 또 그걸 벗어내는 방법을 찾아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곤충의 삶을 보면서 양심과 공정에 관해 사유했다고 책에 쓰여 있습니다. 

굳이 곤충만 이야기한 건 아니고요. 동물사회 연구 중에 ‘불평등 이론’이라는 게 있어요. 예를 들면 우두머리 수컷이 권자에 오르는 과정에서 혼자 오르는 것보다는 대개 동맹을 맺고 다른 수컷들을 진압하거든요. 그들 중에 누군가가 알파 메일이 되는 거죠. 으뜸 수컷이 되자마자 자기 것만 챙기면 금방 같이 도모했던 수컷들이 기회를 보고 으뜸 수컷을 처단합니다. 그래서 대개 경우 으뜸이 되면 다른 이들이 불평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서 나눠줘요.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그렇게 하지 않은 어떤 수컷은 금방 도태됐을 거예요. 웬만큼은 배분을 해줘야 자기 권력이 유지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서로 잘 나누는데, 그동안 제가 관찰한 인간 사회에서는 나누는 걸 조금 못 하는 것 같아요. 너무 많이 혼자 쥐려는 경향이 많아요.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나눌 줄 알아야 오랫동안 자기가 가질 수 있다는 걸 참 몰라요.

앞으로 어떤 영역에서 활동을 하게 되실지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조만간 나올 책이 한 권 더 있습니다. 재작년 낸 『최재천의 공부』가 거의 10만 부가 팔렸어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족한 것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마주 앉아서 이야기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전국민을 대상으로 토론 연습을 하라는 책을 써보려고 합니다. 토론이라는 단어를 보니 토 자가 ‘두들길 토(討)’더라고요. 토론하라고 하면 서로 두들겨 패고 말꼬투리 잡는 거라고 생각하나보다 해서 제가 ‘깊이 생각하면서 이야기하자’는 뜻으로 ‘숙론’이라는 단어를 제안했어요. 앞으로 무슨 의제가 나오면 싸움을 할 게 아니라 모여서 이야기하고 합의점을 찾아내는 성숙 단계를 거치면 대한민국 사회가 참 멋있는 사회가 될 것 같아요.



*최재천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 학위를,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생태학회장,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을 지냈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와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와 『과학자의 서재』를 비롯하여 수십여 권의 책을 쓰고 번역했다.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학자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번역하여 국내외 학계의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1995년 이래로 시민단체, 학교, 연구소 등에서 강연을 하거나 방송출연, 언론기고를 통해 일반인에게 과학을 알리는 작업을 해왔다.


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저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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