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가] 예소연,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계를 찾아서
장편 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너무나도 쉽게 사람을 배제하는 세계에서,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고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2023.08.02)
예소연의 SF는 취약한 존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세계다. 첫 장편 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을 쓰며 그는 아포칼립스 같은 세계에서 온전히 마음을 줄 수 있는 존재들을 만들고 싶었다. 긴 전쟁과 재난이 휩쓴 사막에서 생존하려는 세 할머니 용병, 세상의 끝에서 미래를 생각하는 고양이 로봇들. 취약한 존재들을 가차없이 배제하는 세계에서 이 인물들이 어떻게 생존하는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면서 존재들은 어떻게 만나는지 예소연은 집요하게, 아름답게 그려낸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계'라는 불가능한 질문을 놓지 않으면서.
세 할머니 용병이 주인공인 SF 소설이에요. 설정부터 새로운데요.
할머니 용병이 상황을 돌파하는 이야기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한 소설이에요. 원래 할머니 캐릭터를 좋아해서, 제 소설의 등장인물은 웬만하면 노인이에요. 노인이야말로 한 사람의 특색이 지워지는 집단이어서 개개인의 진짜 삶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양한 노인이 나오는 이야기를 쓰고 싶고요.
작가님의 할머니가 궁금해지네요.
할머니가 두 분 계신데 성격이 너무 달라요. 귀여울 때도 있고, 얄미울 때도 있고 굉장히 다양한 모습이 있거든요. 예전에 할머니와 그림으로 짝을 맞추는 민화투를 친 적이 있어요. 할머니가 처음에는 "절대 안 한다" 하시다가 "할머니, 이거 치매 예방에도 되게 좋아요" 하니까 못 이기는 척 치는데 그게 너무 귀여운 거예요. 같이 화투를 치면서 옛날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고요. 옛날엔 자기가 마라톤 선수였고, 할아버지를 어떻게 만났고, 딸은 어떻게 키웠고. 할머니가 아니라 한 사람을 본 것 같았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노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육체적으로 취약하지만,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을 통해서요.
저는 노년의 삶에 관심이 많고, 동시에 진짜 걱정이 돼요. 발목이 조금 안 좋은 편인데, 나이가 들면 얼마나 아플까 벌써부터 무섭더라고요. 혼자 남겨질 것에 대한 두려움도 크고요. 늘 의문이 들어요. '소중한 사람이 혼자 남겨지면 어쩌지?',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는 거 아닌가?', '왜 이렇게 홀로 남겨지는 사람들이 많은 거지?' 그래서 노년의 삶, 외로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이번 소설은 구상만 6년 걸렸다고요. 2017년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한 <가장 값싼 군인을 삽니다>를 보고 시작된 이야기인데요.
시에라리온에서 250달러에 수많은 아이가 용병으로 팔려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데요. 제3세계 어린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계약서 도장을 찍고 전쟁터로 가서 살육을 저지르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큰 충격을 받고 영화관을 나왔는데, 마침 공원에서는 페미니즘 집회가 한창이고 사람들이 투쟁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이런 아비규환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나도 쉽게 사람을 배제하는 세계에서,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고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을 때, 슬프고 괴롭기는 했지만 어린 용병들이 불쌍하다고 느껴지진 않았어요. 잘못된 선택을 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삶도 삶이잖아요. 나중에는 용병들이 사람을 죽이면서 농담을 하기도 하고 끔찍하게 변해가지만, 삶은 너무 다양하니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소설에서도 할머니 용병들의 삶을 충분히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장편의 형태가 되었어요.
처음부터 미래 사회가 배경인 SF의 형태는 아니었겠네요.
소설을 구상할 당시에 윤이형 작가님의 SF 소설로 석사 학위 논문을 썼어요. 소설의 비인간 존재들과 타자와의 관계성에 대해 분석했는데, 그런 문제의식이 자연스럽게 소설에 들어간 것 같아요. SF에 푹 빠진 것도 그 무렵이고요.
소설은 40년 동안의 긴 전쟁이 끝난 후 황폐해진 사막에서 시작해요. 각종 재난으로 고양이는 멸종하고 농사도 쉽게 지을 수 없는 아포칼립스 상황이죠.
소설의 세계관을 떠올릴 땐, 아빠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아빠가 농사를 지으셔서 작물 재배에 조예가 깊으시거든요. 환경에도 관심이 많아서 항상 다국적 기업이 종자권을 쥐고 있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늘 말씀하시죠. 어떤 기업은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 번 심으면 다시 나지 않는 종자를 개량했다고 하더라고요. 자본과 권력이 씨앗 단계부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죠. 미시적으로 뿌리깊게 내려앉은 권력과 자본.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구상했어요. 나중에 아빠가 소설을 읽고는 솔직히 자기 이야기로 쓴 거 아니냐 하시더라고요.(웃음)
소설에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흐리는 존재들도 많이 나와요.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인 농업용 고양이 AI가 그렇죠.
아무래도 아포칼립스 소설이라 배경이 암울하니까, 귀여운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제가 고양이를 키우기도 하고요. 오래 전부터 고양이가 등장한다면 치즈 고양이로 해야지 정해뒀는데, 고양이가 멸종한 세계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로봇 고양이가 됐어요.
세 명의 할머니 용병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 각자 다른 선택을 하면서 변화하는 인물들이에요. 창, 아샤, 말리 개성이 뚜렷한 세 인물을 어떻게 구상했나요?
성장 환경부터 다르게 하려고 했어요. '아샤'는 남자아이 대신 차출된 용병이고, '창'은 바닷가 부잣집에서 살다가 갑자기 재난이 일어나서 용병이 되고, '말리'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죠. 저는 말리의 삶이 가장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평생을 착취당했던 사람은 때로 자신이 남을 착취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스스로를 돌아봐도 제가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알고 보면 차별이었음을 누군가 지적해줘서 깨달을 때가 많아요. 최근 <긋닛 4호 : 지역 사라지는 [2023]>에 「팜」이라는 소설에도 썼지만, 제가 늘 '지방에 내려간다'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런데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을 읽고, 그게 지방과 중심의 차별임을 깨달았어요. 그렇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느끼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말리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했기 때문에 마음이 특히 아팠어요.
세 인물은 예전에 자신을 구해주었던 '정'이라는 인물에 희망을 걸어요. 그렇지만 그것이 환상이었음을 깨닫죠.
'정'은 원래 따뜻하고 정의감이 투철했지만,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타인을 쉽게 내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세 할머니 용병도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에 '정'을 수단으로서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지 실제적 애정은 깊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정' 역시도 세 사람의 개별성은 배제한 채 그저 자신이 구해줘야 할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고요. 저는 그것이 '정'의 기억에 있는 치명적인 오류라고 생각해요.
인물 모두 각자의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을 떠올린 거네요. 알고 보면 현실과 다른데도요.
우리는 기억을 온전히 안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불확실하잖아요. 같은 일을 도모했는데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기도 하고요. 저는 어떤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생각이 굉장히 달라진 것을 듣고 깜짝 놀랄 때도 많거든요. 각자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모습을 볼 때 참 슬퍼요.
그렇지만 소설에서는 기억이 서로 연결되는 일도 일어나죠. 고양이 로봇 치즈들은 모두의 기억을 데이터로 공유하는 것처럼요.
기억을 공유하는 설정을 쓴 건, 느슨한 관계성에 관심이 많아서예요. 우리가 연대하더라도 너무 끈끈하지만은 않은 관계가 가장 적합하다고 느끼거든요. 느슨한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기억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했어요.
이 소설이 그리는 '사랑'이 그래서 좋았던 것 같아요. 지나치게 밀착된 감정이 아니라, 묘한 거리감이 있지만 연결되어 있는 감각이요.
저는 사랑을 누구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랑의 범위가 연인뿐만 아니라 친구와 가족까지 넓어질 수 있는데, 그 모양이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거기서 파생되는 끔찍한 면모도 있으니 과연 사랑이란 뭘까 생각하게 되죠. 그런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가 연대하려면, 결국 적절한 공유 감각이 중요하더라고요. 느슨하지만 함께 갈 수 있는 관계요.
'우리'라는 인식이 너무 강해지면, 누군가를 배제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이 소설에 나오는 커뮤니티들처럼요.
우리는 항상 소속에 집착하잖아요. 그 동일성이 안식처가 되어주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그런 안락한 공간이 알고 보면 쉽게 타자를 배제할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하죠. 제 소설 속 커뮤니티들은 공동체에 도움을 주는 존재만 품어주고, 그렇지 못한 노인들은 쉽게 배제하잖아요. 그게 커뮤니티의 반복되는 속성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설의 후반부에 가면, 로봇들의 권리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들이 나와요. 인간에게는 풍요로운 세상이지만 로봇은 엄청난 착취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로봇 입장에서는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는 욕망도 굉장히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로봇의 권리를 둘러싼 과학 기술과 인문학 논의들을 읽으면서, 로봇이 모든 것을 배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상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태도의 문제 같아요. 저는 평소에 쌓아온 자신과 타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타자의 권리를 상상하고 존중하는 역량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랬을 때, 우리가 로봇이라는 존재에 대해 갖는 감정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환경, 기술 등 다양한 문제의식이 소설에 녹아 있는데요.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었나요?
소설에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그 소설들이 너무 대단해서 말을 못하겠어요.(웃음) 기후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은 조효제 교수님의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와 아미타브 고시의 『대혼란의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아, 전쟁 영화도 많이 봤죠.
작가님이 소설을 쓰는 방식도 궁금했어요.
인물을 움직이는 것에 재미를 느껴서, 이런 이야기를 써야지 딱 한 문장이 정해지면 거기서 출발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편이에요. 목표가 정해지면 대략적 인물만 정해두고 달려나가요. 초고를 쓸 때 많은 노력을 들이는 대신, 미리 플롯을 세세하게 짜지 않죠. 본격적으로 쓸 때는 인물들이 제가 생각한 방식이 아닌 의외의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해요. 전형적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해요. 물론 소설에서 전형성이 재미있는 부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이야기를 쓸 때는 인물들이 처음에 생각했던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가는 것을 선택해요. 만약 인물이 밥을 먹었으면 자연스럽게 카페에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카페를 절대 보내지 않고 동물원에 보내는 거죠. 그럼 이야기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도 방지할 수 있는 동시에, 인물들의 생동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도 몰랐던 인물들의 감정을 새롭게 묘사하게 되더라고요. 그제야 '아, 이 사람이 이런 인물이었네' 깨닫죠.
글쓰기에 지칠 땐 뭘 하나요?
게임을 좋아해요.(웃음) 주로 오버워치를 하는데, 거기 나오는 '아나'라는 캐릭터가 할머니 용병을 구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사막에서 살아남은 할머니인데, 수면총을 들고 다니면서 적을 재우고 아군을 치유하는 힐러 캐릭터예요. '아나'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소설을 읽으면서 '아, 그랬구나' 하고 알아차리실 것 같아요.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쓸 계획인가요?
공유 주택에 관한 이야기요. 저는 외로워서 1인 가구로는 못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에이징 솔로』를 읽고 비혼으로도 혼자가 되지 않을 수 있구나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싶어서, 공유 주택에 사는 사람들과 비혼 클럽의 이야기를 열심히 쓰고 있어요.
*예소연 소설가. 2021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소설 보다 : 봄 2023』(공저)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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