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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대 문학의 거장, 미즈무라 미나에 작가 인터뷰

『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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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사망한 날, 실버타운에서 얼마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 따져보는 자매의 통화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신문 연재 당시 모녀 관계와 나이듦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수많은 독자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냈다. (2023.07.03)

미즈무라 미나에 작가  (ⓒ Toyota Horiguchi)

현대 일본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미즈무라 미나에의 장편 소설 『어머니의 유산』이 출간되었다. 어머니가 사망한 날, 실버타운에서 얼마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 따져보는 자매의 통화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신문 연재 당시 모녀 관계와 나이듦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수많은 독자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냈다.



먼저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열두 살에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 후 이십 년 동안을 미국 동부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오래전 일이지요. 미국 서부 지역에는 동아시아계 이민자가 많이 살았지만, 당시 동부 지역에는 동아시아인이 거의 없었습니다. 일본인이라고는 주재원과 그 가족, 그 외에는 유학생이나 초밥집 직원 정도가 전부였어요. 중국인은 세탁소나 중국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들 정도였고, 심지어 한국인은 가끔 길을 걷다가 비즈니스맨으로 보이는 사람과 마주치는 게 다였습니다. 너무 소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에게는 제가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자라면서 제가 일본인이기 이전에 동아시아인이라는 의식을 더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는 그런 감각이 점점 사라졌지만, 이번에 제 소설이 한국어로 번역된다고 하니 새삼 제가 동아시아인임을 상기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영어로도 번역되어 영어권 독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는데, 문화적으로 훨씬 가까운 이웃나라이니만큼 한국의 독자들은 보다 세세한 부분까지 깊이 공감해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감상을 느낄지 기대가 됩니다.

한국에서도 최근에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여성 삼대 혹은 그 이상의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 서사가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어머니의 유산』은 여성 삼대 서사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간병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여성 삼대의 서사로 확장되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은 '어머니의 유산'이지만, 일본 원서의 제목은 '어머니의 유산 : 신문 소설'입니다. 예전에는 많은 일본인 — 딱히 외출할 일도 없거니와 자기가 읽을 책을 잘 구입하지도 않았던 대부분의 일본 여성들 — 에게 거의 유일하게 문학적 즐거움을 제공했던 것이 신문 소설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본 근대 문학사에 남을 수많은 명작이 신문 소설에서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형식적으로나 남아있을 뿐,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유산』에서는 모친의 임종을 지키는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신문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다뤄야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메타 신문 소설'인 셈입니다.

그래서 후반부에 근대 일본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신문 소설인 『금색야차』를 소환하고 이를 매일같이 열심히 읽었던 '할머니'라는 인물을 설정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나신 저의 할머니를 일부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할머니가 『금색야차』의 주인공과 닮았다고 생각한 남자에게 반하고, 그 결과 엄마가 태어나고... 이렇게 삼대에 걸친 여성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며 소설에 역사적인 깊이를 더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구상은 처음부터 기획했던 것입니다.

흔히 '어머니'라고 하면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자식이나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우선 떠올리는데요. 노리코의 모습은 그런 어머니상과 크게 달라 한편으로는 더 현실적이고 가깝게 느껴지지만, 반면 당혹스러운 면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미쓰키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은 더욱 인상 깊은데, 미즈무라 선생님은 모녀 관계, 나아가 부모-자식 관계에서 특별히 주목하시는 부분이 있는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동아시아에서는 아이나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어머니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동아시아에도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늘어났습니다. 이는 소설가를 직업으로 삼는 여성이 늘어났다는 얘기이기도 하지요. 남성 작가의 소설에서 여성은 연애 대상이나 성욕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 때로는 진절머리가 납니다. 하지만 여성 작가의 소설에서 여성은 우선 어머니이고, 자매이며, 딸입니다. 지금까지 소설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만큼 여성 작가는 더욱 다양한 형태로 어머니나 자매, 딸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그런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별로 그려지지 않았던 노리코와 같은 말도 안되는 어머니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고로 노리코는 제 친어머니가 모델이긴 하지만, 어머니는 훨씬 더 엄청난 사람이었기에 그보다는 조금 평범한 인물로 설정했습니다. 너무 유별난 인물이 등장하면 독자는 거부감을 느끼게 되니까요. 저는 아이가 없어서 부모가 되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식의 입장에서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 나아가 부모 — 자식 간의 관계에 있어서 애당초 부모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그들이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미쓰키와 나쓰키 자매 외에도 마사코를 비롯해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체로 쓸쓸한 인상을 주는 면이 있습니다. 충만하고 행복한 중년 여성은 아무래도 무리일까요?

『어머니의 유산』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불행한 인상을 준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두가지 이유 때문일 겁니다. 첫번째는 이것이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현실 세계에는 행복한 중년 여성도 많겠지요. 하지만 문학에서는 행복한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해봤자 그다지 재미있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예술 중에서도 문학은 음악이나 미술과 달리 이야기를 전개해나감으로써 성립되는 예술입니다. 한 사람이 인생에서 어려움에 직면한다.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혹은 극복하지 못한 채 파멸할 것인가?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이것이 바로 문학이 영원히 되풀이하는 스토리이자 기본 형식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미쓰키에게는 계속해서 어려움이 닥칩니다. 언니 나쓰키와 친구 마사코 중 한 명을 행복한 여성으로 설정할 수도 있었겠지만, 소설에서 미쓰키는 나쓰키와 어머니의 간병이라는 어려움을 공유하고 마사코와는 비정규직 강사로 일하는 것과 경제적 자립이라는 어려움을 공유합니다.

두번째는 겉으론 행복해 보여도, 그리고 설사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중년 여성은 왠지 모르게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녀 평등 사회가 완벽하게 실현된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젊음이란 여성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니까요. 젊은 여성은 사회에서 특별한 존재입니다. 여성은 중년이 되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상실감으로 이어지는가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고, 이 소설은 그 상실감을 깊이 의식하는 여성이 주인곳인 것입니다. 물론, 실제 인생에서는 '젊은 여성'이라는 프레임에서 해방되어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나이가 들어 행복하니까요. 하지만 사람이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나 행복하다, 중년이 되어서도, 늙어서도 행복하다, 하며 단순히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만 한다면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은 모르지 않을까요.

미쓰키에게도 노리코에게도 '파리'라는 도시가 갖는 특별함 혹은 상징성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많은 도시들 가운데 '파리'를 설정한 이유가 있는지요. 근현대 동아시아인에게 서양, 특히 유럽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소설에 '파리'라는 도시를 등장시킨 이유는 우선 단순히 제가 이십대 때 파리에서 유학(留學)이랄까, 유학(遊學)을 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당시 미국에 살았고, 미국 달러가 강세를 보이던 시대였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딱히 부자는 아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딸을 파리로 유학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소설에서 파리의 역할은 보다 근본적으로 예전부터 '파리'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조금은 남아있는 의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서양 문화의 중심은 유럽이었고, 그 중심은 프랑스, 프랑스의 중심은 파리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처음 서양 문물을 접한 동아시아 각국은 서양 문화를 규범으로 삼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러한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단지, 제가 생각할 때 동아시아는 유럽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유럽이나 프랑스, 파리에 너무 과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과잉 의미 부여는 일본 예술 분야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났습니다. 서양을 접한 일본은 다양한 서구 문화, 예컨대 의회 정치, 교육 제도, 근대법 등을 근대 국가가 되기 위한 규범으로 도입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일본 예술가들은 서양 예술에서 중심적인 '연애'라는 개념을 자신들의 예술 안에 받아들였습니다. 전통적인 일본 예술에는 계절의 변화나 무장들 간의 우정 등 다양한 주제가 있었고, 남녀 간의 사랑은 그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서양 예술이 규범이 되면서 연애가 중심 주제로 떠올랐던 것입니다. 서양 문화를 상징하는 파리는 문학이나 미술, 그리고 영화를 통해 일본인의 마음속에서 사랑을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머나먼 이국 땅의 도시에서는 현실 세계에 없을 것 같은 연애를 할 수 있다... 미쓰키도 '파리'라는 도시의 마법에 홀려서 데쓰오와 사랑에 빠졌을 것입니다.

미쓰키는『마담 보바리』『이방인』 같은 프랑스 소설을 인용하거나 읽습니다. 그런 한편 외할머니의 인생을 바꾼 일본의 유명한 대중 소설『금색야차』도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합니다. 이 소설들과 『어머니의 유산』은 어떻게 이어지는 걸까요?

저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 과거의 훌륭한 문학 작품을 다양한 형태로 이어받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씁니다. 문학은 문학으로부터 탄생한다, 즉 지금의 문학은 과거의 문학을 읽는 행위로부터 탄생한다는 인식을 제 작품 안에서 가능한 정면에 내세우자고 항상 생각합니다. 과거의 작품이란 물리적으로는 종이가 되었든 스크린이 되었든 단순히 기호가 나열된 것에 불과합니다. 그 무기질에 불과한 것이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 살아있는 언어로 매번 재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재탄생한 언어에는 독자가 자기 자신이나 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나아가 작가가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힘도 있고요. 작가에게 최고의 행복은 자신의 작품이 이러한 읽는다는 행위의 연속성 안에 조금이라도 오래 머무르는 것일테지요.

미쓰키는 자신의 선택을 끝없이 반추하며 다른 선택에 따른 결과를 상상하거나 후회하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을 발표한 후에, 이 인물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이 혹시 있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명을 바꾸면 결국 전체를 바꿔야만 합니다. 그건 너무 큰일이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에 대한 생각 자체를 스스로 금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는 미쓰키의 마음을 묘사한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나이든 부모를 긴 시간 부양하거나 돌보는 자식들의 마음속에 저마다 크고 작게 자리하는 공통된 심정일 것 같습니다. 엄마를 향한 미쓰키의 마음이나 생각들이 너무나 정확한 언어로 묘사되어 있어 뜨끔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작품을 발표할 당시에도 요즘처럼 부양과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있었는지요.

잘 아시다시피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선진국에서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놀랄 만큼 늘어났습니다. 이런 현상 앞에서 일본이나 한국처럼 유교 사상이 남아있는 나라뿐만이 아니라 서구 사람들도 당혹스러워하는 듯합니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해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게 애정, 고마움, 적어도 의무감을 갖습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부모를 긴 시간 부양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유산』은 신문 소설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사회 문제를 다루려고 했습니다. 또, 시기적으로도 제가 어머니를 부양한 직후였기 때문에 나이드신 부모의 부양을 주제로 고른 것은 저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다만, 연재중에 많은 독자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미쓰키는 어머니가 죽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편지를 보내준 분들 중에는 여전히 부모가 죽기를 바랐던 것에 대한 죄책감을 지우지 못해 "죄송하지만 저는 제 이름을 적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쓴 분도 있었습니다. 또, "이 책을 통해 구원받았습니다"라고 한 분도 몇 명 있었습니다. 남자분도 있었고요. 작가로서 이처럼 기쁜 일은 없었습니다. 미쓰키는 부모를 부양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복받은 거라고 쓴 독자도 있었습니다.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드신 부모를 어떻게 모실까에 대한 정답은 영원히 없는 걸까요? 이러한 시대에 자식은 부모가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아주길 바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미쓰키는 '나는 행복하다'고 되뇌이지만, 정말 행복할까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소설은 끝났지만 '그래서 미쓰키는 어땠을까?',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의 유산으로 미쓰키는 행복해졌을까요?

소설가란 제멋대로라서 소설이 끝난 시점에 주인공의 운명을 주인공의 손에 그냥 맡겨버립니다. 독자와 마찬가지로 저도 미쓰키의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지 저도 궁금합니다. 단지, 남편 데쓰오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성실하지 못하고, 게다가 미쓰키와는 가치관이 다릅니다. 그런 남편과 함께할때보다는 미쓰키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상상해봅니다. 게다가 미쓰키는 어머니의 유산을 받았습니다. 너무 낭만없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매우 중요합니다. 소설을 쓰면서도 저는 돈의 중요성을 항상 의식합니다.

『어머니의 유산』에서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의식했습니다. '어머니의 유산'은 이 소설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구체적으로는 미쓰키에게 사치만 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경제적인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노후를 보장해줍니다. 그런 노후는 누구나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만으로도 미쓰키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쓰키는 세상사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이성과 겸손함을 지닌 사람이라고 믿기에 이미 그녀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유산』은 신문 연재를 통해 독자와 처음 만났는데, 한국 독자들은 단행본과 전자책으로, 그리고 온오프라인 독서 모임을 통해 이 책을 함께 읽을 예정입니다. 새로운 독자들에게 소설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팁을 하나 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만약 독자가 재미있게 읽지 못한다면 작가로서는 슬픈 일이겠지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독자가 재밌게 읽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미즈무라 미나에

현대 일본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중 하나로 손꼽히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다. 대담한 실험 정신과 빼어난 스토리텔링으로 첨단의 글쓰기를 선보여왔다. 195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열두 살 되던 해 미국으로 가 예일대학 불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프린스턴대학에서 객원 조교수로 일본 근대문학을 강의했다. 1998년 스탠포드대학 객원 교수를 역임했다.




어머니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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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무라 미나에 저 | 송태욱 역
복복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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