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책읽아웃] 틀 안에 자기를 가둔 사람들이 밖으로 내딛을 용기를 주는 소설이었으면 (G. 백수린 소설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45회) 『눈부신 안부』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저는 어쩌면 지난 12년 동안 했던 이야기들에 마침표를 찍는 자리가 될 수도 있겠다,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는 마지막 챕터로 갈무리하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23.06.16)


착륙 준비를 위해 덧창을 열어달라고 승무원들이 이야기하며 복도를 지나다닌다. 비행기가 기울고, 타원용의 창 너머로 푸른 바다와 은빛 모래밭이 서서히 다가온다. 가까이 다가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독일 땅으로 착륙하는 비행기를 상상한다. 이모들을 태웠고, 나와 엄마, 아빠, 해나를 태웠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레나와 한수, 그 밖의 수많은 그리운 이들의 안부를 물으러 갈 나를 태울 그 비행기를. 창밖에는 어느새 눈송이가 흩날리고 있다. 민들레 꽃씨를 닮은 눈송이들은 춤을 추듯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가볍게 하강하는 중이다. 얼마 안 있어 내가 탄 이 비행기도 착륙할 것이다. 천천히 속도를 줄여서. 온통 흰빛으로 눈부실 활주로 위로. 나는 창밖을 바라보다 등을 바로 세우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비행기 바퀴가 곧 지면에 닿기를 기다리면서. 그러고 나면 우재에게 전화를 걸고 이렇게 말해야지. 

안녕, 그동안 잘 지냈지? 나는 지금 막 도착했어.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에서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백수린 소설가 편>

오늘은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거라고 속삭이는 소설가를 한 분 모셨습니다. 첫 장편 소설 『눈부신 안부』로 돌아온 백수린 작가님입니다.

황정은 : 등단하고서 12년 만에 쓴 첫 장편 소설인데요. '작가의 말'을 이렇게 시작을 하셨어요. "2020년 7월 25일. 이 소설의 씨앗이 내게 날아온 날짜를 기억한다." 그리고 "첫 장편 소설을 마침내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예감에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고 하셨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백수린 :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날 시 쓰는 친구랑 평론하는 친구랑 같이 밥을 먹고 있는 자리였는데, 그 즈음 제가 장편 소설을 쓰고 싶어서 계속 소재를 찾고 있다는 걸 친구들이 알고 있어서 이런 걸 써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줬어요. 그러다가 그때 한 친구가 파독 간호사 전시회를 다녀왔었다고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황정은 : 그렇군요.

백수린 : 예를 들어서 몇 년 전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파독 간호사 전시회를 봤는데, 그게 아주 좋았고 그걸 보고서 나오는 길에 '백수린이 쓴 파독 간호사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싶어'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을 했어요. 그리고 그 파독 간호사 전시가 어땠는지를 이야기를 해줬었거든요. 그런데 흔히 우리가 '파독 간호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어떤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잖아요. 저 역시도 그런 이미지밖에 갖고 있지 않았었는데, 그것이 아닌 되게 젊고 생동감 넘치는 20대 여자 아이들 같은 느낌이 좀 있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때 살았던 그 20대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약간 그런 생각이 들면서 '외국에 20대 때 나가서 뭔가 꿈을 갖고 펼치고 싶어 하는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내가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걸로 어떻게든 소설을 써보겠다고 말하고 헤어졌죠. 그러고서 이야기를 고민하기 시작했었어요.

황정은 : 백수린 작가님도 해외에 체류한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경험이 (함께) 만나서 '내가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백수린 : 네, 그런 것 같아요. 어리거나 젊은 나이에 외국에 나가서 이방인으로 사는 경험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이라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통해서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제가 조금 생생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눈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파독 간호사를 들여다본다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말씀하신 것처럼 그 전시가 세간이 (파독 간호사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게 여성 노동자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으려고 하는 20~30대 여성들, 그런 여성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에 많이 주목한 전시였고 대단히 인기도 많았잖아요. 저도 인상적으로 본 전시였거든요. 제가 전시 이후에 관련 서적들을 찾아봤는데, 관련한 연구자들이나 학자들은 이미 그런 시선으로 가지고 그 삶들을 해석하고 있었더라고요. 보통 한국 사회에서는 희생자라거나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존재들로 보는 경우가 대단히 많았잖아요. 불쌍하고 타국에 가서 고생하는 존재들로 보는 시선이 세간의 시선이었는데 '연구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삶을 새롭게 해석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계기가 된 전시이기도 했습니다.


황정은 :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제 소설은 대부분 장면에서 시작한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눈부신 안부』의 경우는 어떤 장면이었을까요? 어떤 장면을 쓰고 싶으셨어요? 

백수린 : 『눈부신 안부』를 쓸 때는 어떤 장면에서 출발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이 저의 첫 장편이어서 그런 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단편을 쓸 때는 거의 대부분 장면에서 출발을 했거든요. 어떤 구체적인 장면이 쓰고 싶어서, 아니면 그 장면을 해석하고 싶어서 썼는데, 이 소설에서는 어떤 고정된 장면은 없었고 '어떤 캐릭터를 쓰고 싶다', '그 인물의 삶을 쓰고 싶다' 약간 그런 마음으로 들어가게 됐어요. 이게 단편과 장편의 차이인가?  그런 생각을 좀 했고요. 제가 다음 장편을 쓸 때 어떨지 좀 궁금하더라고요.

황정은 : 어느 인물의 삶을 궁금하게 여기셨어요? 이모들인가요?

백수린 : 이 소설을 처음 기획할 당시에는 '오행자 이모'가 저의 주인공이었어요.

황정은 : 화자의 이모죠?

백수린 : 네, 그 이모에서 출발을 했었습니다. 

황정은 : 행자 이모의 경우는 실제 모델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제가 작가님의 에세이에서 'M이모'라는 인물을 읽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수린 : 꼭 M이모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조금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고, 저는 사실 이모들이랑 아주 가깝지는 않거든요. 엄마랑 이모들 나이 차이가 좀 있어서. 행자 이모는 제가 어릴 때부터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이모에 대한 판타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정은 : 네, 행자 이모라는 캐릭터에게 애정이 많이 가시겠어요. 은근하게 존재하면서 화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지표들을 제공하는 인물이잖아요. 저도 행자 이모를 대단히 좋아합니다. 소설가로서 12년 동안 살면서 '나의 첫 장편'을 생각한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상상을 한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나의 첫 장편은 이런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어떤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일 수도 있고요.

백수린 : 어떤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까지는 없었던 것 같고요. 첫 장편을 어떤 이야기를 쓰면 좋을까를 상상해 본 적은 많이 있었어요. '아마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이왕이면 그런 여성들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그 정도로 막연하게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늘 생각하던 요소들하고 만난 거네요. 이번 첫 장편이 이방인으로서 존재한 삶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니까. 

백수린 : 네.

황정은 : 첫 장편은 첫 단편집하고는 또 다른 것 같거든요. 저는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내가 오래 붙잡고 있을 질문을 이제 시작한다'라는 일종의 자기 선언적인 면도 분명히 있었거든요. 이후의 중요한 작업들이 결국은 첫 장편으로 어떻게든 되돌아가고 연결되는 면이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백수린 작가님에게는 어떨까요?

백수린 : 글쎄요. 저는 아직 미래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작품이 어떤 의미가 될지 예측하기는 좀 어려운 상태인 것 같아요. 오히려 저의 과거를 돌아봤을 때, 이번에 『눈부신 안부』를 출간하면서 코멘터리북을 같이 냈는데, 그 코멘터리북을 준비하면서 편집자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제 첫 단편과 첫 장편이 만나는 지점이 아주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황정은) 선배님 같은 경우는 첫 장편이 앞으로 있을 글들의 돌아오는 장소가 되어 주었다고 하셨는데, 저는 어쩌면 지난 12년 동안 했던 이야기들의 마침표를 찍는 자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이제 다음 작품을 쓸 때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는, 어떤 마지막 챕터로써 갈무리하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조금 했습니다.

황정은 :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된 소설입니다. 연재 당시에는 제목이 '이토록 아름다운'이었어요. 제목을 바꾼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백수린 : 약간 자의 반 타의 반 바꾸게 된 것인데요. 연재할 당시에는 사실 제가 마음에 쏙 드는 제목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가제로 붙여놓은 상태였어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제목을 붙였던 건데, 제가 쓰고 싶었던 것이 '각각의 사람들이 다 얼마나 아름답고 고유한가' 그런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런 느낌으로...

황정은 :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할 것이다.(웃음)

백수린 : (웃음) 네, 그렇게 붙여놨었는데. 그런데 쓰는 동안 정이 붙어서 '그냥 이 제목으로 가도 되겠다' 그렇게 저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모든 분들이 반대를 하셨어요. 너무 추상적이라고 느끼셨던 것 같아요. 뭔가 분명한 것이 너무 없고 막연한 느낌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제목을 얘기했을 때 너무 좋다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바꿔야 되지 않겠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럼 바꿀까?'라고 생각을 하고 여러 고민을 하다가, 또 편집자님과도 상의를 하고 그래서 지금의 제목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황정은 : 소설에 등장하는 모두가 조금씩은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저는 들었습니다. 다들 서로 조심스럽게 안부를 묻는 사이 같단 말이죠. 이 안부를 '눈부신 안부'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혹시 있을까요?

백수린 : 슬픔의 긴 터널이라고 책에도 표현이 되어 있지만, 거기를 지나서 마침내 만나게 되는 어떤 밝고 환한 같은 안부라는 의미로서도 '눈부신 안부'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고요. 어떻게 보면 안부라는 것이,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고 안녕을 물어주고 하는 그런 행위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의미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황정은 : 작가님은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시나요?

백수린 : 남들은 알지 못하지만 각자만의 이유로 어떤 상실이나 슬픔에 빠져 있고, 어떤 틀 안에서 자기를 가둔 채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밖으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소설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자기 자신을 돌아봐서 가능하거나 자신이 회피했던 것들을 직면해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도 있을 것 같고요. 동시에 자기를 초과한 힘들이 작용해서, 그리고 그것들이 타인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타인이 가지고 있는 다정함과 만나서 나를 바깥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것을 조금 알게 해주는 소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백수린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거짓말 연습」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제45회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책읽아웃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눈부신 안부
눈부신 안부
백수린 저
문학동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눈부신 안부

<백수린> 저14,400원(10% + 5%)

문장에 담길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 눈부시게 서툴렀던 시절에 바치는 백수린 첫 장편소설 발표하는 작품마다 흔들림 없는 기량을 보여주며 평단과 독자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소설가 백수린의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가 출간되었다. 2011년 데뷔한 이래 세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중편소설, 짧은 소설들..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우리 중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넬레 노이하우스 신작. 어느 날 한 소녀의 시신이 발견되고, 그녀의 엄마에게 사적 제재를 제공하는 한 단체가 접근한다. 강렬한 서사와 반전 속에 난민, 소셜미디어 등 현대 사회 문제를 녹아낸 노련미가 돋보인다. 그 끝에는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곱씹게 될 것이다.

시간을 사고파는 세상이 온다면?

시간 유전자를 이동하는 기술이 발견되어 돈만 있으면 누구나 시간을 살 수 있게 된 미래. 타임 스토어를 중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자들의 흉악한 음모와 그들의 비밀을 파헤치는 아이들의 아슬아슬한 추격, 그리고 삶의 빛나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열세 살의 걷기 클럽』 김혜정 작가의 신작.

경제의 중심에는 금리가 있다.

국제금융 최전선에서 활약한 조원경 저자의 신간. 금리가 경제와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자산 가치 증대와 리스크 관리에 필수적인 금리 이해를 돕기 위해 예금, 대출, 장단기 금리 등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여 금리와 경제의 상관관계를 설명해 주는 책.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안효림 작가 신작. 화려하고 영롱한 자개 문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모의 맞벌이로 홀로 많은 시간을 보내던 아이가 신비로운 자개장 할머니와 함께 자개 나라를 모험하며 희망과 용기를 되찾는 이야기를 담았다. 진정한 보물은 가족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그림책이다.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