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리듬이 담긴 아치울 이야기 - 호원숙 작가 인터뷰
『아치울의 리듬』 호원숙 작가 인터뷰
『아치울의 리듬』에서는 아치울에 사는 새와 나무와 구름이 펼쳐내는 리듬처럼 저자의 일상 다이어리가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풍경으로 펼쳐진다. (2023.05.19)
박완서의 노란집이 있던 아치울. 타계하기 직전까지 집필하던 이곳에서 모친 박완서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쓴 호원숙 작가가 박완서와는 사뭇 다른 문장을 만들어내며 아치울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틀이나 짜임새의 구성없이 쓴 글,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주제를 만들어내지 않는 문장, 이것이 호원숙 작가의 글쓰기다. 구태여 어떤 메시지를 던지거나 작위적으로 글을 꾸며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진솔하게 고백함으로써 그 안팎에 담긴 세계를 조명하게 만든다. 『아치울의 리듬』에서는 아치울에 사는 새와 나무와 구름이 펼쳐내는 리듬처럼 저자의 일상 다이어리가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풍경으로 펼쳐진다.
신간 『아치울의 리듬』를 통해 호원숙 작가님을 처음 접하실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호영진, 박완서의 맏딸로 1954년 서울 충신동의 조그만 한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후 보문동으로 이사 가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고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글을 쓰기 시작하고 생활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습니다.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편집 기자로 지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글 쓰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을 낳아 길렀고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박완서 작가님의 도서 『노란집』의 주인공인 아치울 마을의 노란집에서 거주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가님께 노란집은 어떤 공간인가요?
1998년 어머니께서 아치울에 집을 지으시고 살았던 집입니다. 외벽이 스패니시 옐로 색깔이라 어머니는 '노란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맏딸인 저에게 집을 물려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가꾸던 마당을 가꾸고 어머니에 관한 일을 하고 그 부엌에서 밥을 짓습니다. 그리고 글을 씁니다.
책 제목과 본문 내에서 '리듬'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리듬'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매일 쓰는 글에 '비아의 리듬'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자연과 계절의 리듬을 느끼고 따라가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리듬입니다. 세상, 사회, 가족, 주변 사람들에 따라 나의 리듬이 바뀌게 되지요. 갈등과 불화에 나의 리듬이 깨지기도 하지만 휘둘리지 않고 본연의 리듬을 찾아가자는 의미로 썼습니다. 늙어가는 몸의 리듬에 적응하면서 글을 씁니다, 문체도 리듬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듬'이라는 단어는 어떤 학문적인 의미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쓰이는 의미 그대로입니다. 리듬은 시간에 따라 변화와 결이 있으면서도 지속적인 흐름과 질서가 있지요. 자유롭고도 유연하면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는 것이 리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표지와 본문 곳곳에서 따뜻하고 자연 친화적인 그림을 엿볼 수 있었어요. 선생님께서 그리신 그림인지, 또 어떤 대상들을 주로 그림에 담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마당에 피어나는 꽃들을 색연필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이 어머니 책의 삽화로 들어가기도 했고 제 책의 표지로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전문적으로 단련한 것도, 늘 그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쑥스러웠지만 꿈꾸던 일이었습니다.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그리거나 작은 상 위에서 그립니다. 이웃에 제 그림을 봐주며 늘 칭찬만 해주는 미술 선생님이 계십니다.
나무나 꽃뿐만 아니라 아끼던 물건, 예를 들어 어머니가 신던 신발이라든가 멋진 사다리, 갈치 목에 걸린 낚시 바늘, 생선 뼈, 고장 나서 버리게 된 커피 그라인더 같은 것을 그리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우습지요. 요즘에는 파스텔로 콤포지션을 시도해 보았고 이번 책의 표지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흐름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작은 그림이라도 그리면서 위대한 화가의 그림이 왜 훌륭한 것인지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글을 쓴다'는 수식이 인상 깊었는데요. 글쓰기와 관련한 루틴이 있으신가요?
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글을 쓰게 됩니다. 그러나 몸의 리듬이 따라주지 않거나 새벽까지 영상이나 영화를 보고 늦잠을 자기도 합니다. 대신 시간이 나고 정신이 움직일 때마다 씁니다. 핸드폰으로도 간편히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실험하듯이 매일 떠오르는 것을 쓰려고 하고 글에 어울리는 사진을 찍어놓습니다. 쓰고 싶은 소재는 자꾸 떠오르지만 체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자제합니다.
도서 중 3장을 보면 작가님께서 접하시는 책, 음악, 영화, 전시 등 작품들은 세대와 매체, 장르를 가리지 않는 듯합니다. 요즘 눈여겨보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에게 추천 부탁드립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관심을 갖는 것은 예술은 서로 통하는 것이 있고 동시대 것에서 항상 배울 점이 있어서입니다. 현대문학, 문학동네, 문학과 지성사, 민음사 등 출판사의 책과 문예지를 통해 줄기차게 책의 정보를 접합니다. 다 볼 수는 없지만 관심 있고 좋아하는 작가의 글은 완독하고 리뷰도 써놓으려고 합니다. 요즘은 출간을 앞둔 책의 리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아 하는 일이 있습니다. 주어진 일이지만 재미도 있고 배울 점이 많습니다. 사전 정보나 선입관이 없이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최근에 문지혁과 김연경의 문학 강의 영상을 보았는데 영문학과 러시아 문학을 다시 공부하는 느낌이었고, 젊은 학자들에게 배우는 것이 신선합니다. 요즘 아껴서 보는 책은 김석희 번역의 『모비 딕』입니다. 하루에 한 챕터만 보아도 뿌듯하고 문학적인 영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댈 곳 없이 위로가 필요한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진정한 위로는 누군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찾아가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그것을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길이 되지 않을까요?
*호원숙 어머니 박완서와 아버지 호영진의 맏딸로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고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나왔다. 현재는 모교의 경운박물관 운영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월간 <샘터>의 에세이 필자 중 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마련해 준 세계 문학 전집을 보았을 때부터 꿈꾸고 그리워했던 문학에 한 발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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