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1미터는 없어』 양지예 소설가 인터뷰
『1미터는 없어』 양지예 작가 인터뷰
『1미터는 없어』는 생소하게 느껴질 법한 측량의 세계를 위트 있고 톡톡 튀는 서사와 거침없는 전개로 풀어낸 작품으로, '측량의 천재'라 불리었던 '그녀'의 실종에 얽힌 배후를 파헤치기 위해 그녀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측량하고 통제하여 획정할 수 있는 것 너머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2023.04.26)
문학동네소설상의 제28회 수상작 『1미터는 없어』가 출간됐다. 3년 만의 수상작인 만큼 심사 또한 신중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치열한 토론 끝에 수상작을 결정한 뒤 당선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그가 202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신예 작가 양지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1미터는 없어』는 생소하게 느껴질 법한 측량의 세계를 위트 있고 톡톡 튀는 서사와 거침없는 전개로 풀어낸 작품으로, '측량의 천재'라 불리었던 '그녀'의 실종에 얽힌 배후를 파헤치기 위해 그녀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측량하고 통제하여 획정할 수 있는 것 너머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등단 이후 2년 만에 첫 책 『1미터는 없어』를 출간하셨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첫 책을 출간한 마음은 어떤지 말씀 부탁드려요.
등단하고 나서는 이제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뿐이었어요. 길이 절로 열리지는 않을 거라는 각오는 하고 있었는데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건 몰랐어요. 고대했지만 막상 등단을 하고 나니 습작하던 시기에 가장 편한 마음으로 즐겁게 쓸 수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초조함을 감추기 위해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초조해서 써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됐어요. 다른 사람의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요. 긴 호흡을 갖고 써보자는 의미에서 장편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몇 년 사이 제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책이 나온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얼떨떨해요. 여전히 내가 책을 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생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미 제 소설을 선택해주신 독자분들도 계시잖아요. 당연하게도 좀더 많이 씹고 뜯고 즐기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제목이 무척 독특한데, 이런 제목을 짓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제목인지도 소개해주세요.
사실 제가 지은 제목이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떠올랐거든요. 기차 안이었습니다. 달리는 창밖을 바라보는데, '1미터는 없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자, 이런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전에도 도량형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한 적이 있어서 곧장 조사부터 시작했습니다. 인물이나 서사 같은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상태, 정말로 제목만 정한 채로요. 예전부터 저는 어떤 표준을 정할 때의 기준이 뭔지 궁금했거든요. 그 기준 언저리의 회색 지대에도요.
예를 들자면 어떤 행동이 범죄인지 아닌지를 규정하는 것은 형법인데, 실제 사례는 법이 정한 대로 딱 떨어지지 않아요. 나라마다 법이 다르기도 하고요. 법을 아무리 잘 만들어놓아도 이 회색이 검정인지 흰색인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측량은 어떨지 궁금했어요. 실제로 디지털 저울에 올라서보면 가만히 서 있어도 소수점 아래의 몸무게는 계속 변하기도 하잖아요? 결국 표준을 정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소설 제목은 저의 그런 궁금증과 더불어서 회색 지대를 제 나름대로 긍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책은 3년 만에 나온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으로 화제가 되었어요. 작년에 100쇄를 돌파한 『새의 선물』,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린 『고래』 등의 뒤를 잇게 된 셈인데요.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뻔한 말이지만 전혀 기대하지 못했거든요. 심사위원이 어떤 분들이라고요? 하면서 자꾸 여쭤봐서 담당자분을 귀찮게 해드렸죠. 왜 그런 대단하신 분들이 내 소설을 뽑았을까, 생각하면서요. 며칠 동안은 나 왜 뽑혔지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했어요.(웃음) 그만큼 실감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면서 비로소 벅차오르더라고요. 길을 걷다가 뜬금없이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고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나마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거라 믿어봅니다.
『1미터는 없어』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연구원, 과학자, 발명가이자 백만장자, 그리고 '측량의 천재'라 불렸던 '그녀'의 실종에 얽힌 배후를 파헤쳐나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듯해요.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직업, '측량가'가 나오는 작품을 구상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목에서 출발한 소설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제목에서 많은 것들이 파생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대로, 저는 회색 지대에 관심이 많거든요. 측량가는 그 회색 지대를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또 파훼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독특하게 들린다고는 하지만, 의외로 저는 실생활에서 그분들을 꽤 마주친 적이 있어요. 독자분들도 사실 그럴 거예요. 길을 걷다보면 삼각대 위에 측량 도구를 올려두고 측량 기준점을 맞추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잖아요. 방해될까봐 항상 조심조심, 가능한 한 멀리 피해서 지나가곤 했는데, 사실은 많이 궁금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여러 궁금증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화자 '나'는 과거 고산 등반가였지만 사고로 인해 다리를 절단한 뒤 등산을 저버리고 현재는 ‘그녀’의 박물관장을 맡고 있는데요. 책에 실린 '인터뷰'와 '작가의 말'을 통해 작가님께서 고소 공포증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나'가 다시금 등산을 꿈꾸게 되는 장면이 더 각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나'는 작가님을 어느 정도 반영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사실 모든 인물에게 어느 정도는 그런 부분이 있겠지만요. 한편으로 그 인물들이 저 자신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확답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해요. 그럼에도 화자에게는 제가 의도적으로 저를 반영시켜 넣은 부분이 있어요. 특히 첫 장면이 그런데요. '나'는 눈사태를 유발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합니다. 십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마지막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보여주지는 않죠.
저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그 넘쳐나는 정보를 피곤해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이건 소설가로서 말하기 어려운 점이기도 해요. 왠지 예술가란 사람과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여야 할 것 같잖아요? 저는 제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한편 그런 예술가를 향한 편견에 부합하는 소설가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감도 가지고 있거든요.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저의 자의식이기도 하고 스스로 만든 굴레이기도 한데, '나'라는 인물을 통해 제가 저에게 가지는 그런 냉소적인 시선을 솔직히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저 자신을 너무 부정하지도 않으려고 했어요.
또 한 명의 주요 인물, '금요숲'에 대해서도 얘기해봐야겠죠? 소설 속에서 '금요숲'은 '그녀'의 실종지인 미얀마 출신의 난민이자 '그녀'와 가장 긴밀했던 친구, 똑똑하고 활기차며 선량하지만 로힝야족 출신이라는 비밀을 숨기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로힝야족 출신의 인물을 소설에 등장시키게 된 이유도 들려주세요.
소설을 쓰는 동안 미얀마의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또 어디까지 넣을지가 가장 고민되었습니다. 여전히 미얀마를 둘러싼 상황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섣부른 가치 판단을 하기가 망설여졌어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된 상황에서 그릴 경우 소설 역시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질 위험도 있었고요. 판단은 시간에 맡기고 일단 유보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완벽한 외부인이니 외부인으로서의 시각을 지키는 게 옳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미얀마 상황을 굵직굵직하게 정리했을 때, 저에게는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태도가 가장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어요. 사실 그렇게 오랜 시간 쌓여온 갈등은 외부에서 개입하기 어려워요. 저는 옳고 그름에 관하여 말하고 싶지 않아요. 감정에 호소하거나 인권이라는 단어에 기대고 싶지도 않고요. 물론 모두 중요한 것들이죠. 단지 저에게는 맞지 않는 화법이었달까요. 금요숲은 순전히 제 시각에서 기울어진 저울의 수평을 맞추려는 추 같은 존재예요.
조사하면 할수록 로힝야족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소설 속의 유령처럼 느껴졌어요. 어쩌면 여기에도 속하고 저기에도 속하는 유령일지도 모르고요.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금요숲에게 로힝야와 버마족이라는 정체성을 둘 다 부여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더불어 『1미터는 없어』를 읽을 독자분들께 인사를 들려주세요.
저는 모르는 게 많아서 알고 싶은 것에 대하여 소설을 씁니다. 관심사는 한없이 쪼그라들어서 저 자신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 너머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변덕스러운 여정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켜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느릴지언정 가능하면 끝까지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또 쓰겠다고 마음먹고 있으니까요. 계속 자주 보면서 서로 달라진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가 되면 좋겠네요.
*양지예 202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나에게」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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