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두낫띵클럽 김규림, 이승희 "일이 재미있으면 왜 안 돼?"

<월간 채널예스>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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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재미가 인생의 가치가 되면 안 될까, 왜 우리 나이가 되면 장래 희망을 묻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니 일과 놀이와 관련된 25개의 단어가 뽑혔어요. (2023.01.03)


'문구인'으로서 좋아하는 물건을 만들고 소개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김규림(뀰)과 '마케터 숭'으로서 영감을 수집하는 기록자 이승희. 다른 개성의 둘을 묶어주는 건, 세상에서 재미가 제일 중요하다는 태도다. 퇴사 후 백수 듀오 '두낫띵클럽'을 결성하여 천 명의 회원을 불러 모으고 워라밸보다 '일하듯이 놀고 놀듯이 일하자(일놀놀일)'고 외치는 두 사람. 일하는 자아와 노는 자아의 경계를 허물 때 펼쳐지는 세계를 『일놀놀일』에 담았다.



우리가 재미있는 걸 하자

백수 듀오 '두낫띵클럽'의 활약은 눈부셨어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구호에 사람들이 공감했고,홍대 오브젝트에서 열린 노동절 잔치에 첫날만 1000여 명이 몰렸죠. 

이승희(이하 숭) : '두낫띵클럽'은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자'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뀰과 제가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했는데, 마침 코로나가 터지고 제가 많이 불안해했거든요. 그럼 우리가 스스로 소속을 만들자 해서 '두낫띵클럽'을 결성하게 됐어요. 그냥 놀듯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생각보다 이 메시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더라고요. 마침 모춘과 소호로 구성된 '모빌스 그룹'이 브랜드 모베러웍스를 전개해나갈 때, 협업을 제안했고 실체화된 프로젝트가 됐죠.

김규림(이하 뀰) : 지금은 둘 다 취직을 해서 '백수 듀오'로서 1집 활동을 마무리 지었어요. 직장인으로서 2집 활동을 준비하고 있죠.(웃음)

'우리가 정말 재미있는 걸 하자'는 메시지가 통한 것 같아요. 

뀰 : 둘이 모이면 늘 이야기하거든요. "왜 재미가 1순위면 안돼?" 사실 이번 책 『일놀놀일』도 평소처럼 대화하다 시작된 거예요. 백수여서 시간이 많으니까 이야기할 사람이 숭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가 함께 꽂힌 키워드에 대해 제가 그림을 그리고 숭은 글을 썼죠. 우스갯소리로 늘 숭이 무라카미 하루키면 난 안자이 미즈마루다 했거든요.(웃음) 그 꿈이 이루어진 거죠.

숭 : 둘 다 반골 기질이 있어요. 회사를 다닐 때는 사람들이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서른이 넘어 퇴사를 하니까 대기업을 가라, 스타트업을 가라 이런저런 간섭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는 남들 살라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았어요. 둘이 모이면 이야기했죠. '왜 재미가 인생의 가치가 되면 안 될까, 왜 우리 나이가 되면 장래 희망을 묻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니 일과 놀이와 관련된 25개의 단어가 뽑혔어요.

회사를 다니다 보면, 돈 받는 일인데 어떻게 재미까지 있겠어 체념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일하듯이 놀고 놀듯이 일한다(일놀놀일)'니 비결이 궁금했어요. 

숭 : 사실 저는 모든 걸 즐기지 않으면 추진이 안 되는 타입이에요. 하기 싫은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든요. 오히려 '놀면서 하자'는 마인드가 되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요. 비결은 '주도권'에 있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시킨 일이라도 일방적으로 끌려가기보다 조금이라도 자율성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을 찾아보는 거죠.

뀰 : 저는 이력서에 '재미있는 일을 좋아하고, 일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도 좋아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어요. 물론, 돈을 받는 일이 늘 재미있을 수는 없죠. 그래도 핵심은 최대한 내가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주어진 일을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여지를 찾아내고, 관심 있는 것을 토핑처럼 뿌려서 내 스타일대로 일을 해나가는 거죠. 관심 있는 분야의 일을 맡으면 적극적으로 찾아보면서 어떻게든 교집합을 만들고요. 일 자체가 재미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거죠.

그 생각들이 모여 『일놀놀일』에 담겼는데요. 표지는 모빌스 그룹의 모춘 디자이너가 맡았다고요.

뀰 : 모춘 님께 '일놀놀일'이라는 주제만 드리고 자유롭게 해석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여러 시안 중 지금의 표지가 가장 눈에 띄더라고요. 한편으로 도박 같은 사행성 표지가 아닐까 조금 걱정했지만 우리끼리 "이건 된다!"하면서 추진했죠.(웃음)

숭 : 일하면서도 느끼는데,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려 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둥글둥글한 결과물만 나오더라고요. 차라리 끝까지 밀어붙여서 센 걸 만들어야지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표지도 강렬한 빨강색에 유광까지 입혀서 눈에 띄게 만들고 싶었어요.

영등포CGV에서 북토크를 했을 때, 객석에서 일과 관련된 질문이 쏟아졌어요. 다들 일하는 자아와 노는 자아 사이에서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뀰 : 객석에서 나온 질문들이 너무 좋았어요. 다들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모니터 앞에서 혼자 고민하던 걸 털어놓으시는 거예요. 저희의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모여서 고민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숭 : 요즘 '회사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그런데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허탈한 말이죠. 오히려 "일하는 자아와 노는 자아가 반드시 분리될 필요는 없다"라는 조언이 "무조건 퇴사해서 나를 찾으라"는 말보다 현실적인 것 같아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볼 때 위안이 될 때가 있잖아요. 실제로 누군가는 이렇게 일을 해나가고 있다는 걸 들으면서 안심이 됐다는 후기가 많았어요.



무엇이든 나답게 일하는 법

'성장'에 대한 생각이 인상적이었어요. 성장의 진정한 의미는 외부가 아니라, 내적인 기준에 있다고요.

뀰 : 모두가 스스로 성장하고는 있는 건가 조바심을 느끼잖아요. 북토크에서도 "세상에 자기 계발을 하는 마케터들이 SNS 타임라인에 너무 많이 뜬다. 이 사람은 폭풍 성장을 하는 것 같은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다"라는 질문이 많았어요. 저 역시도 그런 외부 기준에 주눅 들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과거의 나와 비교해보면, 분명 성장한 부분이 보이거든요. 작년에는 이거 못했는데 지금은 하고 있네, 동료들과 이야기해보니 이런 걸 우리가 해냈었네. 필사적으로 외적인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는 성실하게 내 눈 앞에 있는 걸 하다가 뒤늦게 성장인 걸 알게 되는 순간이 더 좋아요.

숭 : 그래서 리뷰하는 시간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나이 들수록 세상은 당연하게 성장을 요구하는데 우리가 피카츄도 아니고 매순간 진화할 수는 없잖아요. 멈추어 서서 '성장'이 무엇일지 의미를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내가 받아들이는 성장의 의미는 뭘까? 거창한 성과가 아니라 내 안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걸 글을 쓰면서 느꼈어요. 

보통 회사에서는 진정한 친구를 만나기 어렵다고 하잖아요. 두 분은 배달의 민족 마케터로서 오래 일하셨고, 퇴사 후에도 함께하고 있어요. 어떻게 꾸준하고도 즐거운 협업이 가능했나요?

숭 : 잘하는 분야가 달라서 서로를 보완하는 것 같아요. 저는 기획의 후반 작업을 좋아해요. SNS에 홍보하고 콘텐츠를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매력적으로 전하는 일이 더 좋거든요. 이것저것 던져보고 반응이 돌아오면 희열을 느끼고요. 그런데 뀰은 기획의 전반부 일을 잘해요. 아이디어를 기획해서 업체를 만나 제품을 제작하고, 상세페이지를 공들여 만들고. 그러니까 협업이 잘 되는 거죠.

책을 읽다 보니 서로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 좋은 동료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뀰 : 좋은 동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성선설을 믿는 편인데, 사람을 싫어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좋은 의견을 줘도 미워 보이잖아요. 결국,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피드백을 주고받는 동료도 될 수 있는 거죠. 저는 동료와 함께하는 것도 일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요. 티타임도 갖고 좋아하는 것도 공유하면서 교집합을 만들어두면 일할 때도 즐겁거든요.

숭 : 뀰은 정말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본 뀰은 사람을 안 만나도 혼자 잘 사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엄청 노력해요. 예전에는 인터뷰 자리에서도 늘 "숭, 네가 말해"하면서 제 뒤에 숨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북토크 할 때 말을 너무 잘하더라고요. 친구들이 "오늘 뀰 독무대던데?" 할 정도로요. 그러면 뀰한테 이야기하죠. "너 진짜 많이 성장했다."(웃음)

숭과 뀰의 콘텐츠를 보면, 늘 인생에서 좋은 선배의 조언이 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도 '꼰대'와 '멘토'의 사이에서 헤맨다고 했지만, 일터에서 좋은 선배를 만나고 되어주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숭 : 맞아요. '배달의 민족'에서 일할 때 장인성 상무님이 늘 유연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셨어요. 김봉진 대표님은 하얀 바탕에 글자 하나만 쓰는 포스터 디자인 같은 파격적인 시도도 많이 하셨고요. 그런 선배와 조직 문화를 경험한 것이 저희에게 큰 자산이 되는 것 같아요. 마케팅을 할 때도 진짜 좋은 경험을 해봐야, 그런 경험을 기획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일할 때도 좋은 선배와 동료를 경험하고 나면 힘든 일이 생겨도 중심을 잡을 수 있어요. 물론, 저희도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늘 있죠. 그렇지만 이왕이면 소모적인 게 아니라 잘 하고 싶어서 받는 스트레스가 낫잖아요. 모든 환경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는 좋은 동료와 선배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두낫띵클럽’의 원칙 중 하나는 ‘나를 여러 개의 자아로 규정할 것’이에요. 뀰은 문구인, 숭은 기록자라는 정체성이 있어요.

숭 : 주변에서 "배달의 민족을 떼면 네가 뭐가 있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저는 '배민 이승희'라 불리는 것도 좋았거든요. 그런데 퇴사를 하고 나서도 누군가 저를 소개할 때 굳이 '전(前) 배민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거예요. 왜 회사를 떼고 나로서 일할 수 없지? 그런 의문이 생겼고, 타이틀 없이도 나로서 서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뀰 : 저도 비슷해요. 새로운 회사에 가면 '무슨 회사 출신 누구'라고 소개를 해야 하잖아요. 그게 너무 멋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든 소속이 어떻게 보면 일시적인 거죠. 학교도 언젠가는 졸업하는 곳이고, 회사도 퇴사하면 그만이고. 계급장을 떼면 나에게 남는 게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두렵더라고요. 그 고민을 계속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다 '문구인'이라는 정체성을 만났어요. 그 이후부터는 일부러 저를 다니고 있는 회사의 정보는 빼고 소개를 했던 것 같아요.

콘텐츠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잡기도 쉽지 않은데요. 집에 '노와이파이존'을 두거나, 스크린 타임을 줄이려는 노력을 한다고요. 트렌드에 민감한 두 분이기에 의외였는데요. 

뀰 : 최근 SNS에 낚시성 콘텐츠가 많잖아요. 어떤 내용으로 시작해도 마지막은 꼭 물건 광고로 이어지죠. 마침 한 친구가 자신은 본인의 생각에 집중하기 위해 트렌드에 좀 뒤쳐지더라도 일부러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래, 파도 속에 휩쓸리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스스로 노를 저어 가겠다는 마음이 좋지 않나. 최신 콘텐츠를 다 본다고 해서 트렌드를 아는 게 아닐 수 있겠다. 그런 깨달음이 있었어요.

숭 : 최신 콘텐츠를 다 보는 게 트렌드를 아는 게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트렌드를 선도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것과 다른 걸 보여주면서 새로운 전환을 만들어내는 것 같거든요. 아이돌 '뉴진스'나 카페 '런던 베이글 뮤지엄'처럼요. 그래서 중심을 잡기 위해서, 불안함을 내려놓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잘 안돼요. 팀원들과 회의할 때 다들 아는 콘텐츠를 나만 모르는 거 아니야 하는 불안감도 있죠. 그렇지만 혼자 생각할 시간이 확보되어야 트렌드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SNS 안 하는 친구들이 자기 속도로 잘 살아나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새해에도 '일놀놀일'은 순조롭게 이어질까요?

뀰 : 다양한 환경에서 '일놀놀일'의 태도를 지속할 수 있을까. 그게 평생 고민할 과제예요. 회사를 다니면서 여기보다 더 나은 환경을 만나는 건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퇴사를 잘했다고 느끼는 건, 계속 새로운 조직에서 배우는 게 있기 때문이에요. 이 조직에서 정답이었던 것이 다른 조직에서는 아닐 수 있죠. '일놀놀일'이 특정 환경이 갖추어져야 가능하다고 못 박지 말고 계속 탐색하고 싶어요.

숭 : 북토크 때, 어떤 독자분이 책에 대한 답장을 글로 써서 보여주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일놀놀일'이 저희만의 구호였는데, 새로운 독자를 만나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요즘 혼자 일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다면, 이 책을 마치 친한 동료와 대화하는 것처럼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김규림, 이승희

놀면서 일할 때 진짜 크리에이티브가 나온다고 믿는 마케터 듀오.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컨셉의 '두낫띵클럽'을 결성하여 즐거운 일을 모의하고 있다.




일놀놀일
일놀놀일
김규림,이승희 공저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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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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