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펴낸 고명재 시인 인터뷰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고명재 시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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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에서 시인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이야기가 남습니다. 몸이 사랑이 됩니다. 또한, 그 이야기와 사랑조차 시간에 녹아 다 사라진대도 우리가 함께했다는 것, 눈부신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라 말한 바 있다. (2022.12.09)

고명재 시인 

"우리 삶의 절망과 희망이 교직되는 순간순간을 절실하게 잘 드러내었다"는 평을 받으며(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데뷔한 고명재 시인의 첫 시집을 문학동네시인선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으로 펴낸다. 당선 소감에서 시인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이야기가 남습니다. 몸이 사랑이 됩니다. 또한, 그 이야기와 사랑조차 시간에 녹아 다 사라진대도 우리가 함께했다는 것, 눈부신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라 말한 바 있다. '사라짐/죽음'과 '몸/사람' 그리고 '이야기/시'에 대한 이 지극한 마음이 43편의 시편들에 켜켜이 배어 있다. 그리고 사랑, 사랑이 있다. '사랑은 육상처럼 앞지르는 운동이 아닌데', '귤을 밟고 사랑이 칸칸이 불 밝히도록', '자다가 일어나 우는 내 안의 송아지를 사랑해'로 부제목을 달아 시편을 나누어 엮은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 고명재 시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사랑'이다.



첫 시집이 나왔습니다. 출간 소회부터 여쭙고 싶어요.

너무 행복하고 신나요! 첫눈을 보는 것처럼 마음의 창이 활짝 열려서 기쁘고 기쁠 뿐이에요. 쌀알 한 톨만큼의 후회도 아쉬움도 없어요. 만들어주신 분들의 지극한 사랑 덕분이에요. 정말 많은 분들의 손길을 거쳐 시집이 태어났는데요. 그 많은 손과 애정 어린 정성이 너무 감사해서 '드디어 태어났구나! 아유 예뻐라' 이런 마음뿐이에요. 말랑말랑한 아기가 태어난 것처럼요. 저는 책을 만드는 일이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란 걸 처음 경험해봤어요. 책이야말로 공동체의 산물, 그 자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기뻐요. '나의 첫 시집'이라서가 아니라, '함께 만든 첫 시집'이라서. 시집이 정말 예뻐 보여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사랑이 와요. 귀기울이면 그게 모두 새소리예요.

시집 제목이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입니다. 우리는 왜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걸까요?

정말 이상하죠.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해도, 키스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되어요. 왜 그럴까요. 사랑의 얼굴이 너무 가깝기 때문에, 온전히 보려면 눈을 감아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사랑은 눈을 감고 자기 안의 어둠을 마주해야 볼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일까요. 그것도 아님, 눈을 감아야 입술의 감촉이 더 잘 느껴지기 때문에? 여기에는 온갖 해답이 있을 수 있고, 온갖 다른 태도들이 있을 거라 믿어요. 

저는 사실 육감적인 의미로 쓴 건 아니었어요. 그저 키스할 때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신체에서 가장 투명한 부위를 맞댄다는 사실이 아름답고도 신비하게 느껴졌어요. 또한, 키스할 땐 말을 물려두어야 해요. 침묵 속에서 서로의 있음만을 감각해야 해요. 종이로 치면 창호지나 미농지처럼, 가장 얇고 다치기 쉬운 곳을 맞대어 사랑을 표한다는 사실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눈은 왜 감는 걸까요. 내 앞에 지금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게 너무 빛나서가 아닐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빛나서, 그래서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상황요. 

이를테면 설맹(雪盲)도 참 비슷한 현상이에요. 너무 희고 맑은 눈(雪)을 오래 들여다보면 신체 기관(眼)에 큰 무리가 와요. 연인이란 존재도 그런 게 아닐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밝고 맑고 귀해서, 눈을 감고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태요. 그래서 우리는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아닐까요?

죽음과 사랑의 시가 많다고 느껴집니다. 어둡고 무겁기보다는 말갛고 깊은 느낌으로요. 상실과 부재 그다음에 가능한 어떤 초월적인 세계를 엿본 것도 같습니다. 아마도 시 속의 화자가 너무나 열심히, 온 마음으로 그 대상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불쑥 떠오르는 얼굴에 전부를 걸어요.'라는 시구가 작가님을 잘 드러내지 않을까 짐작도 해보고요. 작가님께서 보시기에 이 시집엔 무엇이 담겨 있나요?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기억하는 마음. 도시락에 밥을 꾹꾹 눌러 담는 마음.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는 손끝의 마음. 죽은 사람들의 아름답고 빛나던 마음. 그들의 품위. 부드러운 몸짓. 보고 싶은 마음. 볼 수 없지만 용감하게 살고 싶은 마음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용감하게 애도를 하고 싶었어요. 감히 밝게, 환하게, 사랑을 쥐고 빛으로 가득한 장례를 치르고 싶었어요. 그래서 쓰다보니 자꾸만 사랑시가 나왔고 말갛고 밝게 그린 죽음이 나왔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계속 보고 싶으니까요. 길 걷다가도 펑, 울며 환해졌어요. 내 안에 받은 사랑이 이렇게나 많아서 곡진하게 슬픈 거구나 싶었어요. 차곡차곡 제가 받은 그 사랑을 초를 켜듯 써보고 싶었어요. 죽어도 계속되는 게 있잖아요. 살아도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텅 빈 채로 향기롭고 가득한 것. 저를 키워준 사람들의 빛나는 사랑을 자꾸자꾸 말하고 싶었어요.

이 시집을 잘 표현하는 시구 하나만 고르라면 '우리는 함께 사랑으로 시간을 뚫었다'를 뽑을 것 같습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인 시간감각과는 다른 것이 시집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관련해 부연해주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옷에 구멍이 나는 순간, 바로 그때부터 옷은 내부와 외부가 뒤집히는 섬유의 사건이 되어요. 양말도 그렇고 셔츠도 그렇고 우산도 그래요. 무언가 뜨거운 것이 한 번, 물체를 꿰뚫고 나면, 그 물체는 기존의 가치로부터 이탈해버려요. 프루스트가 그린 세상도 그런 게 아닐까요. 어떤 순간, 너무나도 빛났던 시절이 코와 입을 뚫고 샘솟아 나오는 거죠. 그래 이런 맛이었어, 진실의 시간은! 사랑이라는 사건이 제게 그랬어요. 나라는 아주 작은 아이를 키워내고, 세상을 용감하게 떠난 사람들. 그 사람들을 곧장 힘차게 만나고 싶어서 솟거나 뚫는 시간을 자주 쓴 것 같아요. 

이를 테면 꽃을 사는 일도 그런 게 아닐까요. 퇴근하는 길, 꽃 한 다발을 사는 일은 선형적인 시간관 안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요. 이것은 무엇도 생산시키지 못하고 아무런 효용도 없어요. 그런데 꽃다발을 사서 가슴에 안는 그 순간, 우리의 존재 양태는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우선 향기가 강하게 우리를 덮치고. 그렇게 삶은 향기로, 채도로, 꽃잎의 물방울들로, 확연하게 어조(tone)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꽃 하나 샀을 뿐인데 걷는 길이 달라지죠. 아름다운 구멍이 이렇게 생긴 거예요. 선물을 살 때도, 헌화를 할 때도, 손잡을 때도, 강아지를 쓰다듬을 때도 그래요. 구멍을 뚫는 일상의 사건, 사랑의 현상들. 향을 피우거나 키스할 때도 고백할 때도, 첫눈을 볼 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요. 그렇게 과거-현재-미래라는 완강한 룰을 가벼이 넘는 사랑의 장대높이뛰기를 하고 싶어요.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에서 특별히 아끼는 시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 이유도요.

콩국수를 먹는 내용의 시,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를 좋아해요. 왜냐하면 저는 엄마를 많이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엄마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며, 가장 귀한 연인이며, 저의 세부, 그리고 삶의 궁극이에요. 엄마는 몸이 아프기도 했었고 매우 혹독한 시간을 지나 살아냈어요.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않기.' 저는 엄마에게 이 놀라운 태도를 배웠어요. 그런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삶으로 시로 얼굴로 손길로 물질로 마음으로, 해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요. 이 시는 순전히 엄마를 위한 시예요. 어느 여름날 엄마 가게에서 엄마를 데리고 나와 콩국수를 같이 먹으러 갔던 날의 기록이에요. 가게니, 매상이니, 다 치워버리고 둘이서 콩국수 가게로 도망치듯 달려갔는데 그때 얼마나 속이 시원하고 행복했는지. 뭔가 엄마와 함께 자유를 쟁취한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엄마랑 후루룩 면발을 먹고 있는데 나 지금, 눈부신 사랑을 지나고 있구나. 환한 음식을 먹으며 그렇게 생각했어요.

「시인의 말」 가운데 "있는 거란다"라는 말이 세 번 등장합니다. 누군가 작가님께 해준 이야기를 기억해두었다가 적으신 것 같아요. 작가님이 놓지 않으려는 것, 잊지 않으려는 것과도 연결돼 있겠지요? 

네. 시인의 말을 쓰면서 펑펑 울었어요. 제게는 놓을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분이 있어요. 그 '있음'이 제겐 너무나 눈부신 기억이에요. 저는 절에서 자란 적이 있는데요. 저를 키워준 비구니 스님이 계셨어요. 스님들은 대체로 고요하게 사랑을 해요.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진실로 눈앞의 존재를 사랑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죠. 「시인의 말」에 썼던 말은 바로 그분이 저에게 해주셨던 이야기예요. 아주 인자했고 고고했으며 물처럼 맑아서 한없이 낮은 마음으로 안아주셨죠. 

젊은 나이에 그분은 병이 있어서 몇 해 전 세상을 비우고 떠나셨어요. 아주 심한 육체적 고통을 마주한 채로도, 용감하게 사랑으로 저를 키워냈어요. 당당하게 살아가렴. 마음을 쥐고, 마음 하나 믿고 용감하게 살아가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사랑을 가지고 모든 길을 걸어가라 말해줬어요. 저의 새엄마였고 제게는 세상 전부였어요. 아주 고요하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줬어요. 그분 생각을 하면 저는 살고 싶어요. 더 용감하게, 정하게 살고 싶어요. 이 시집에 있는 많은 사랑의 양태가 그분에게서 이어진 남은 이야기예요. 비록 그분의 육체는 흩어졌지만, 제 안엔 그대로 아직 '있는 거'예요. 그렇게 "있는 거란다", "있는 거란다" 낮게 말하며 당신의 사랑을 저도 따라 펼칠 거예요.

이 시집으로 작가님을 처음 만나게 될 독자분들께 인사 한말씀 부탁드려요.

이렇게 첫 시집을 통해 인사를 드리게 되어서 무척 반가워요. 저는 늘 시집을 사는 입장이었는데 독자분들께 인사를 드린다는 게 얼떨떨하고 신기해요. 시집은 참 이상한 책인 것 같아요. 저는 시집 사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요. 가만히 시집을 보고 있으면 책의 최소 단위라든가 책의 최장거리 같은 엉뚱한 개념들이 떠오르고는 해요. 시집은 때로 가장 작은 책이기도 하고, 가장 길게 울리는 노래이기도 하고,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늪이기도 했어요. 그 모든 모험이 항상 '다르게 아름다워서' 자꾸만 손이 가나봐요. 이 책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 책이니까 독자분들이 읽으시고 마음 안쪽에 사랑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면 좋겠어요.



*고명재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고명재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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