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애도하는 마음으로 고른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07회) 『인생의 역사』, 『커다란 비밀 친구』, 『바닷바람을 맞으며』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2.11.10)
불현듯(오은) : 녹음하고 있는 지금 이 시기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예요. 쉽지 않은 마음으로 오늘 녹음실에 왔습니다.
캘리 : 늘 즐겁게 책을 읽곤 하는데, 이번 주는 너무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프랑소와 엄 : 그래서 오늘은 '애도하는 마음으로 고른 책'을 소개하려고 해요.
신형철 저 | 난다
'시화', 즉 시 이야기예요. 제목이 『인생의 역사』인데요. 이렇게 커다란 제목은 쉽게 정하기 어렵잖아요. 그럼에도 이 제목으로 결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시는 행과 연으로 구성되어 있죠. 행은 오른쪽으로 걸어가는 방향이고, 연은 아래로 내려가는 거잖아요.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 그러니까 행과 연이 만나는 게 어쩌면 인생이 아닐까, 제목은 이런 착상에서 만들었다고 해요. 시 한 편은 누군가의 인생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내 인생의 어떤 순간이 시와 딱 맞아 불꽃이 이는 순간도 있겠죠. 이 책은 그런 순간들로 가득한 책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시는 아무래도 소설보다는 함축적이고 덜 설명적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질감의 감정도 있구나, 누군가는 여기서 이런 감정을 느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는 데에도 시만한 장르가 없는 것 같아요. 따라서 이 책을 읽는 것이 다양한 시편들을 통해 내가 겪었을 법한 일, 지금 느끼고 있는 그런 감정들의 행과 열을 쌓아 나가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에는 시 한 편이 왼쪽에 실려 있고요. 오른쪽에는 그 시에 관련된 이야기가 펼쳐져요. 국내외 시인을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시들이 수록되어 있고요. 가령 「공무도하가」라는, 굉장히 오래된 시도 수록이 되어 있어요. 신형철 작가님은 이 4행짜리 시로 또 긴 글을 쓰십니다. 글을 한 꼭지 읽을 때마다 인생에서 내가 마주했던 아주 중요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게 느껴지실 거예요.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을 때 공감할 수 있잖아요. 그건 작품 속에 나오는 일과 똑같은 일은 아닐지 몰라도 그와 비슷한 순간에 내가 한 번이라도 발 들인 적이 있었기 때문일 거고요. 제가 좋아하는 책들 중 하나가 환기하는 책인데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의 지난 순간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다가올 순간을 두근거리면서 기다리게 만들어주는 책이었어요.
무엇보다 애도에는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이 있죠. 그 사람의 상태가 어떤지, 그 사람이 지금 어떤 감정을 품고, 어떤 순간을 지나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마음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요. 이 책을 읽으면서, 물론 시대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지만, 시의 화자가 느꼈을 법한 감정과 그때의 처지 같은 것들을 되새겨보고, 애도하는 마음의 중간에 어떤 것이 있을지 헤아려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경혜원 글·그림 | 창비
이 책을 사전 정보 없이 읽었는데요. 읽자마자 눈물이 확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아픈 지인이나 친구, 또는 쓸쓸하고 외로운 기분을 느끼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정말 큰 용기를 얻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저는 그림책 작가님들의 프로필 읽는 걸 좋아하는데요. 소설이나 에세이, 인문서와 다르게 약간 더 다정한 소개글이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는 약간은 평이한 프로필만 써 있었어요. 그래서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봤습니다. 놀랍게도 거기에 멋있는 한 줄 소개가 있었어요. '이야기 그림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소개였어요. 이 표현을 그림책 프로필에도 써주셨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은 한 소녀이고요. 소녀의 엄마는 병원에서 투병 중이에요. 그리고 아빠는 너무 바빠서 소녀와 같이 놀아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소녀는 주말마다 엄마를 만나러 병원에 가고요. 엄마에게 책을 읽어주곤 하는데 엄마는 대답이 없어요. 그때 누군가가 "그 다음은 뭐야?"라고 말을 걸어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공룡 '두리'였어요. 이제 주말에 병원에 가면 소녀는 두리를 만났어요. 상상의 동물 두리와 친구가 된 거죠. 소녀는 두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해요.
두리는 말해요.
"그럴 수 있어. 그래도 괜찮아."
저는 이 문장이 너무나 좋았어요. 아이들이 이 문장을 좌우명으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왜냐하면 그래도 괜찮은 일이 생각보다 많고, 그럴 수 있는 것도 너무 당연하니까요.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작가님께서 어떻게 이 그림책을 만들게 됐는지 찾아보니까요. 아픈 가족을 돌보았던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라고 설명이 되어 있더라고요. 이번에 일어난 참사를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고, 젊은 친구들과 남겨진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찾고 냉정하게 판단을 하는 게 맞는데요. 그래도 일단 피해를 당한 분들께는 먼저 위로를 전하고 싶고요. 그분들이 어떤 마음이 들고, 어떤 생각이 들더라도 그럴 수 있고 그래도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해드리고 싶어요. 그런 말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또 그분들이 들을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레이첼 카슨 저 / 김은령 역 | 에코리브르
레이첼 카슨의 시선은 정말 넓고 깊죠. 인간 사회 바깥을, 그러니까 지구적인 시선을 가지고 그 점을 끊임없이 탐구한 사람이잖아요. 아주 열성적인 환경주의자였고요. 지구 생태계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끊임없이 얘기했던 작가라서 이 시기에 펼쳤습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는 카슨의 첫 책이라고 해요. 1941년에 발표한 책인데요. 다른 저작보다 훨씬 더 서정적이고 문학적이거든요. 풍부한 과학 지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이 빛나는 그런 책이어서 참 좋았어요.
구성도 재미있습니다. 바다라는 곳을 둘러싼 생태계를 바다 근처에 살아가는 아주 다양한 생물들을 등장시켜 보여주거든요. 그중에서도 갈매기, 고등어, 뱀장어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마치 동화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가요. 심지어 이들에게 이름까지 붙여줍니다. 저는 특히 '스콤버'라는 이름의 고등어 이야기를 따라 읽는 게 아주 행복했어요. 혹시 고등어도 동면한다는 사실을 아셨어요? 겨울에는 상층수에서 겨울잠을 잔대요. 휴면 상태로 물에 떠 있는 거예요. 여름과 가을을 지나면서 지방을 많이 쌓아놓은 다음에 겨울에는 최대한 움직임을 적게 하면서 알을 키우고, 봄을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다가 점점 날이 따뜻해지겠죠. 그러면 바닷물의 조류가 바뀌고요. 휴면 상태에 있던 고등어들이 봄이 오나 보다, 나도 산란할 때가 됐나 보다, 느끼는 거예요.
책에는 정말 많은 생명들이 등장하거든요. 엄청나게 많은 생명들이 태어나고, 죽고, 또 먹고, 먹히는 장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요.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생명력이었어요. 작가도 말을 하죠.
"바다에서는 아무것도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가 산다. 생명의 중요한 요소가 계속해서 끝없는 순환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런 자연의 생명력을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겸허해지기도 했고요. 슬픔이 조금은 다독여지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이 책이 1941년에 출간됐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엄청난 전쟁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이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책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지금 내가 사는 이 세계, 너무 끔찍한 일도 많고, 앞이 없을 것 같고, 도저히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세계를 생각하면서 그래도 과거에 이런 책이 있었다는 게 약간 등대처럼, 등불처럼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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