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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 특집] 친애하는 나의 젊은 작가들에게 - 한소범 기자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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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젊은 작가는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됨으로써, 그 장르의 개척자가 된다. (2022.10.07)

언스플래쉬

파이오니어. 장르의 개척자들

김초엽이라는 작가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이 기념비 적인 SF 작가의 탄생과 그를 둘러싼 열광에 당황했다. 순문학이라는 기존 장르에 포섭하기 어려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따뜻한 시선과 문체로 풍성한 정서를 빚어내는 '김초엽식 SF'는 스스로 장르가 됐다. 이전까지는 한국 문학의 변방으로 취급받았던 SF는 김초엽의 등장 이후 오늘날 가장 현재적인 한국 문학으로 도약했다.

어떤 젊은 작가는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됨으로써, 그 장르의 개척자가 된다. '최초'라는 수식어는 늘 그들 뒤를 따라다닌다. 김초엽 작가는 SF 문학 최초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고 10만 부 이상 팔렸으며, 박상영 작가는 국내 최초 부커상 후보에 오른 퀴어 문학 작가가 됐다. 젊은 작가는 선배들이 닦아놓은 토양 위에서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펼치며 이전의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간다. 김초엽이 SF라는 장르의 문을 활짝 열어준 덕분에, 박상영이 퀴어 문학이라는 장르의 문을 열어준 덕분에 독자들은 비로소 한국 문학이 이토록 풍성한 결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됐다.


고발 형식으로서의 문학의 유용함

임솔아 작가의 단편 소설 「추앙」은 2011년 작가가 습작생이던 시절에 직접 경험한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작품이다. 소설에서 '말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한 정원에게 B 강사는 성폭력을 저지른다. 정원이 항의하자 B 강사는 "끊을 수 없는 불투명한 연정이 속을 복받치게 했던 것"이라고 변명한다. 정원은 자퇴원을 작성하며 이렇게 쓴다. 

'시적 자유와 낭만성으로 포장되는 모든 폭력이 싫습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소설보다는 르포르타주에 가깝다는 흔한 뒷말들은, 결국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정확히 지금 한국 여성의 현실이라는 것을 방증할 뿐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는지를 두고 그토록 집착적인 독서 검열이 뒤따랐던 것 역시 그 시절 가장 흔한 이름을 가진 '김지영'이라는 여성의 일생을 그린 이 소설이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눈 돌리지 않고 마주 보기. 있었던 일들을 있었다고 말하기. 문학적 수사에 현실을 모호하게 포장할 생각일랑 없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소설이 왜 고발과 증언의 한 형태로서 유효한지 보여준다. 그리고 나아가 진짜로 현실을 바꾼다. '시적 자유와 낭만성으로 포장되는 모든 폭력이 싫다'던 임 작가는 2017년 시집 출간 계약서에 출판계 최초로 성범죄 관련 조항을 명시했다.


정확한 위로에서 비롯하는 성장

위로의 핵심은 단순한 낙관이나 따끔한 조언이 아니라, 그저 내가 무엇을 위로받고 싶은지 정확히 알아주는 데 있다는 것을, 최은영 작가와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무감한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때로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던 나의 미숙함이 꽁꽁 감춰두어야만 하는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이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나와 꼭 닮은 모습의 인물들을 보고 인정할 수 있게 됐다. 나조차도 외면하고 돌보지 않았던 내 안의 상흔들을 대신 응시해 주고, 성실하고 사려 깊은 문장들로 상처받아 뾰족해진 마음의 모서리를 가만히 쓰다 듬어준다. 그렇게 소설로부터 위로받고 나면 그제야 여리고 민감했던 한 시절을 통과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용기가 생긴다. 꼭 필요했던 정확한 위로를 줌으로써, 젊은 작가들은 우리의 성장을 가능케 한다.


'정상인'이 비주류가 되는 세상에서

별안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계가 있다. 죽은 아빠의 유골을 화분에 옮겨 심었더니 나무로 되살아 나질 않나, 복싱 선수인 남자친구의 오른손이 어느 날 갑자기 브로콜리로 변한다. 정작 이 세계를 창조한 사람은 태연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기괴하지 않은 정신병은 사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지 않은가."  _이유리, 『브로콜리 펀치』

젊은 작가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꼭 '정상인'일 필요가 없다. 아니 애초에,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질문함으로써 인간의 조건을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연여름 작가의 소설 『리시안셔스』에서는 인공 신체로 교체할 수 있는 '인간'이 그렇지 못한 '미등록'을 '반려인'으로 삼는다. 건강한 신체와 그렇지 않은 신체로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설정은, 각종 '결함'을 이유 삼아 약자와 소수자를 구분하고 배제하는 현실의 지독한 은유다. 그러나 인간이 그토록 자부하는 '종으로서의 우월감'은 어쩌면 이 젊은 작가들이 꿈꾸는 미래에서는 한없이 사소하다. 천선란 작가의 장편 소설 『천개의 파랑』의 주인공은 안락사가 확정된 경주마와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다. 쓸모없다고 폐기 처분되지 않고, 느리게 달려도 충분히 괜찮은 미래에서 이들은 충분히 행복하다. '더 빠르고', '더 완벽한' 미래가 아니라, 부서지고 상처입고 약한 존재들을 품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독자는 이 젊은 작가들의 소설로 하여금 품어볼 수 있게 된다.


친애하는 젊은 작가에게

'젊은 작가'라는 호명은 무엇을 가리킬까? 단순히 '나이가 1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에 있다'는 젊음의 사전적 정의에만 국한되진 않을 것이다. 예스24 의 '한국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수상 작가들의 이름을 하나씩 짚어가며 짐작해 본 바에 따르면, 젊은 작가들은 거침없는 장르의 개척자들이며, 문학적 수사로 부끄러운 현실을 외면할 생각일랑 없으며, 정확한 위로를 줄 줄 알고, 인간 아닌 존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정의하는 이들이다.

한편으로는, 작가 한 명 한 명이 대체 불가능한 저마다의 세계일 텐데 이들을 어떠한 범박한 경 향성으로 묶으려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척 실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작가 개인으로서도 새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이전 작품을 쓸 때와는 다른 존재일 텐데 그를 '젊은' 작가로 분류하는 것이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호명하는 일의 의미는 작가와 독자인 우리가 같은 시대를 통과하고 있고, 공통의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정상 성의 규범에서 자유로워진 존재들이, 서로를 위무하면서, 낡은 세상에 대해 할 말을 다 하는 그런 미래를, 그런 세상을 함께 꿈꾸자고 말하는 데 있을 것이다. 젊은 독자와, 젊은 작가가 함께.



*한소범

〈한국일보〉 기자. 3년 반 동안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하며 〈한국일보〉 문학 뉴스레터 '무낙'을 연재했다. 지금은 〈한국일보〉의 유튜브 채널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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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소범(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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