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특집 인터뷰 - 김진영의 갭이어
책읽아웃 - 이혜민의 요즘산책 (276회)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번아웃이라는 일하는 마음, 일하는 자아의 병은 완치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잘 조율해야 되는 것 같아요. (2022.07.27)
이혜민 : 오늘은 <요즘산책> 여름 특집 인터뷰 마지막 시간인데요. 오늘도 손님이 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김진영 : 안녕하세요. 저는 12년 차 콘텐츠 기획자이자 다큐멘터리를 쓰고 찍는 다큐멘터리스트 김진영입니다. 지난 1월 갑자기 찾아온 번아웃과 갭이어를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저와 인터뷰이 일곱 명의 이야기를 실은 다큐 에세이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를 썼습니다.
이혜민 : 지난 방송에서 소개를 드린 적 있는데 그때 듣고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김진영 : 우선 소개된 것 자체가 되게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고요. 내가 쓴 문장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감정 이입이 되더라고요. 제가 책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훨씬 더 잘 표현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도리어 위로받아서 엉엉 울면서 들었던 기억이 나요. 분명히 내 책을 소개했는데 남의 책 얘기를 듣듯이 울었어요. 그래서 혜민 님에게 엄청 고마운 마음이 있어요.
이혜민 : 오늘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진영 님이야말로 상반기를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오셨잖아요. 이 책이 나온 게 올해 1월인데 최근까지도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혹시나 다시 번아웃이 되는 건 아닌가 내심 걱정스러웠어요. 괜찮으신가요?
김진영 : '번아웃'이라는 일하는 마음, 일하는 자아의 병은 완치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잘 조율해야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트랙에서 내려왔다는 표현을 우아하게 썼지만, 저와 인터뷰이들이 선택해서 갭이어를 가진 게 아니었어요. 번아웃이 심하고 몸과 마음 건강에 문제가 너무 커져서 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의 사람들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 혹은 앞으로 이 얘기를 알게 되는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 홍보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요.
그런데 '번아웃'은 끓는점을 알지 못하는 연소인 것 같아요. 내가 어디까지 하면 번아웃이 될 거야, 연소될 거야, 라는 걸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까 늘 불안해요. 저는 다시는 번아웃을 겪고 싶지 않거든요. 일을 잘 못한다는 얘기를 듣거나 일에서 실패를 겪는 것보다 일을 아예 못하게 되는 번아웃의 상황에 들어가는 게 저는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저의 하반기 목표는 나의 끓는점, 연소되는 지점을 좀 명확하게 알고, 그래서 딱 그 바로 직전의 지점에서 멈출 수 있는 프로페셔널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이혜민 : 한편으로는 책이 나오고 나서 많은 독자를 직접 만날 자리가 있었잖아요. 거기서 얻는 에너지도 있었을 것 같고요. 인상 깊었던 독자나 피드백이 혹시 있었나요? 독자들을 만나면서 진영 님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도 궁금하고요.
김진영 : 독자분들 중에 이메일이나 인스타그램 DM으로 "내가 이 책을 이렇게 읽었고, 이 문장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고, 나는 이러한 상태의 사람인데 이런 도움이 되었어요."라고 간증 같은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자신의 번아웃 경험을 나눠 주시고 ‘우아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려주실 때, 이게 누군가를 살리는 힘이 있다는 걸 느낄 때 저도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요. 그런 에너지와 피드백이 저는 제일 소중하고 귀한 것 같아요.
이혜민 : <요즘 것들의 사생활> 채널 영상에도 댓글이 진짜 많이 달렸잖아요. 그렇게까지 진심을 담은 댓글이 많이 달린 거는 저희도 처음이었어요. 그만큼 그런 상황에 대해서 또렷하게 얘기해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많이들 위로를 받았구나 싶었어요.
김진영 : 그리고 동시에 '안타깝다, 참 슬픈 현실이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렇게 절절하게 공감해 주시다니 너무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슬픈 현실이고, 사실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인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예를 들면 직장인도 멘탈 케어가 반드시 존재하게 한다거나 안식 휴가 같은 게 법적으로 제도화 된다든가. 이런 게 직장인들에 대한 복지로 반드시 필요하지 않나 싶고요. 다들 일을 할 때 사람을 기능적으로만 대하잖아요.
이혜민 : 저는 회사 다닐 때 개인적으로 힘들거나 컨디션이 안 좋아서 표정이 안 좋으면 그거에 대해서 항상 혼났어요. 왜 너의 기분이나 상태가 드러나게 하냐, 개인의 상태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면서요. 그런 얘기 들으면서 감정이나 상태를 드러내는 게 안 좋은 거구나 학습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더 감추게 되고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파악하기 어렵게 되는 거 아닐까요?
김진영 : 그러니까 겉으로 감추기 위해서 자꾸 자신의 상태를 무시하고 소외시키다 보니까 스스로도 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거죠. 제가 만난 인터뷰이들도 그랬고 여전히 많은 독자들도 갭이어를 선택하고 가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저나 일곱 명의 인터뷰이는 어쩔 수 없이 쉬게 되었는데, 그 '쉼'이 우리를 살린 케이스인 건데, 나 지금 좀 쉬어야 될 것 같다고 자각한다고 해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혜민 : 생계가 달려서 어려울 수도 있고요.
김진영 : 맞아요. 생계가 달렸을 수도 있고 커리어가 달렸을 수도 있고 그래서 선택하는 것에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데, 그나마 '갭이어'라는 이름으로 그 시간을 조금 자유롭게 보낼 수 있게 만드는 데 저와 인터뷰이들이 도움을 줬다면 다행인 것 같아요.
이혜민 : 우리끼리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걸 뒷받침할 어떤 구조적인 변화도 분명히 있어야 된다는 말씀이시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갭이어’라고 누군가 명명했다는 것 자체도 저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지금 힘들어서 쉬고 있는데 이 시간이 뭔지 모를 때, 누군가에게 내 상태에 대해서 말하기도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데, 그때 “나 지금 갭이어 중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엄청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자체만으로도 이 책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김진영 : 그래서 저도 너무 감사한데, 인터뷰이들과 출판사 편집자들의 도움으로 저 스스로도 제 시간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 거거든요. 저도 그 시간이 뭔가 싶었고, 솔직히 백수처럼 보이지만 또 진짜 백수 시절과 지금의 나는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더 작아지고 생각할 수 있는 범위도 좁아지는 와중에 인터뷰이들과 편집자들의 도움으로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저도 그 시간에서 나올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김진영 이야기를 듣고, 쓰고, 찍는 다큐멘터리스트. 좋은 질문을 던져, 세상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를 엮어내고 전달하는 일이 좋아 다큐멘터리 PD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콘텐츠 기획자로, 때로는 브랜드 콘텐츠 전략가로 하는 일이 확장됐다. 일의 언어는 달라도, 결국 평생을 이어갈 내 일의 이야기는 하나라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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