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에게 신화 인문학 교육이 필요한 이유
『신통한 책방 필로뮈토 1』 김헌 기획자 인터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도 이 속에 완벽한 인물들이 하나도 없거든요. 다들 각자의 부족함, 좌절 등을 겪고 있다가 극복하고, 도전하고 나아가는 이야기들이지요. (2022.03.14)
〈벌거벗은 세계사〉, 〈차이나는 클라스〉 등 여러 방송과 강연을 통해 서양 고전과 신화의 매력을 널리 알리는 서양 고전 전문가, 김헌 교수가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신통한 책방 필로뮈토』는 멀게 느껴지는 신화를 가까운 생활 속 고민과 연결, 어린이들이 신화를 자신의 삶 속에서 느끼도록 만들었다. 가장 개인적인 문제에서 출발해 아이를 둘러싼 관계적인 문제로 관점을 확장하며 어떤 문제든 신화와 연결해 생각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구성했다.
“아이들이 인문학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어야 합니다. 보편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높은 수준의 인문학에 도달하기 위한 시작점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읽고, 경험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통한 책방 필로뮈토 1』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책방 이름이 특이한데 ‘필로뮈토’는 어떤 뜻인가요?
‘필로뮈토스’라는 말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말인데요, 그리스어로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리스어 ‘필로’는 ‘좋아한다, 사랑한다’, ‘뮈토’는 ‘이야기’란 뜻이 있어요. 그래서 재미있는 신화나 소설을 좋아하고, 그것에 심취해 찾아다니는 사람을 ‘필로뮈토스’라고 표현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필로뮈토스를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필로소포스)’라고 여겼어요. 왜냐하면 신화라는 놀라운 세계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야기를 좋아하는 주인공들이 필로뮈토 책방에 들어와서 자신의 고민을 풀어놓고, 그 고민에 가장 적절한 신화 이야기를 소개하고, 그 신화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객관화시켜 보고, 가능하면 답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이 책에 담고 싶어서 책방 이름을 ‘필로뮈토’라고 짓게 되었습니다.
고민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필로뮈토 책방’에서 해답을 찾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군요. 그렇다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친구 관계나 미래에 대해 고민인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우선 아이들이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그리고 이때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그저 고민을 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민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고민 자체에 대해 공감해 주고, 그러한 고민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정말 위대해 보이는 신들, 영웅들도 다들 각자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구나, 이런 과정을 거쳐갔구나 하는 다양한 경험과 이야기를 접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지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도 이 속에 완벽한 인물들이 하나도 없거든요. 다들 각자의 부족함, 좌절 등을 겪고 있다가 극복하고, 도전하고 나아가는 이야기들이지요. 이러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접하는 게 큰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신통한 책방 필로뮈토 1』은 인문학으로 아이들의 고민을 해결해준다고 하는데요, 인문학을 그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문학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서 인간이 무엇인가 질문하고, 그 해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문학은 직접적인 답을 준다기보다는, 인간의 다양한 현상들을 보며 인간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통로가 될 수 있죠. 누구나 자신의 삶을 한 번밖에 살 수 없잖아요? 그러니 나의 삶의 반경도, 경험도, 정보도 굉장히 제한되어 있다는 말이죠. 인문학을 통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주의를 기울여보면 내 시각이나 지평이 넓어지는 거죠.
그래서 책에서도 아이들이 필로뮈토 책방에 들어와서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고, 신화 속 신과 영웅 들이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했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신화 속 인물은 문제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들여다보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들도 등장 인물들의 고민에 자신의 고민을 대입해 보고, 해결 과정을 알아가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수 있죠. 그런 점에서 인문학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객관화시켜 주고, 그 길을 찾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인문학은 어려운 학문 분야로 생각되어 진입 장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렇다면 아이들이 인문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인문학은 보통 역사, 문학, 철학 이렇게 세 분야로 나뉩니다. 역사는 실제 있었던 일을 실증적으로 고찰하는 것, 문학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어떤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 철학은 그것들을 개념화하면서 삶의 어떤 보편적인 원리를 찾아가는 거죠.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제일 어려울까요? 철학이 가장 어렵죠. 이에 반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학문은 역사나 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을 가장 쉽게 접하는 방법은 문학작품이나 역사를 통해 구체적인 주인공의 행동과 삶의 방식을 알아보고, 공감하고, 자신의 삶과 견주어 보는 것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인문학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어야 합니다. 보편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높은 수준의 인문학에 도달하기 위한 시작점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읽고, 경험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고민을 비춰볼 수 있는 구체적인 신화를 하나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신화 전체가 한 주인공이 부딪치는 삶의 조건 속에서 고민하고, 그 고민을 이겨내려는 과정과 관련이 있죠. 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최고의 신 제우스가 신들의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제우스는 태어나서 몰래 감춰지고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라다가 어떠한 계기를 통해 세상을 폭력적으로 다스리고 있는 신 크로노스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문제에 부딪치게 되죠. 그리고 폭력적인 세상을 좀 더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아버지에게 도전하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도전의 연속이라고 하잖아요. 제우스처럼 대단한 도전이 아니더라도 ‘내가 이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또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내가 너무 힘들어지진 않을까’, ‘나에게 손해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죠. 저도 신화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등 다양한 일을 하지만 실제로 제 삶을 돌아봤을 때 아주 중요한 결단을 할 때 제우스의 삶 속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삶의 힘든 순간에 지침이 될 수 있는 건 ‘개념’보다는 이야기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신화를 꼼꼼히 잘 읽어 놓는 것이 나중에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신통한 책방 필로뮈토 1』 속 책방 주인 ‘허니 쌤’으로 등장하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도서 기획을 넘어서 책 속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교수님이 이 책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허니 쌤과 김헌 교수님 스스로 생각하는 싱크로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제 이름이 ‘헌’이어서 어려서부터 ‘허니, 허니’ 이렇게 불리다 보니 책방 주인 캐릭터의 이름이 허니 쌤이 되었는데요, 저도 나쁘지 않습니다. 달달한 느낌도 주는 것 같고요. (하하) 책방을 방문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심각하지 않게 들어주면서 “네가 하는 고민이 자연스러운거야.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어” 안심시켜 주고, 그에 맞는 좋은 신화 이야기를 소개해주는 게 제가 살아가는 방식과도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이 되고요. 저는 아이들의 교육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 저렇게 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냥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모습이 좋은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책 속 허니 쌤이 그런 모습을 담고 있어서 저도 앞으로 그걸 더 염두에 두게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게 될 어린이 독자와 양육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
정말 좋은 책은 답을 주는 게 아니라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시대가 지나도 사람들이 계속 찾고 읽는 책의 공통점은 그 책이 교과서처럼 답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답을 찾는 사람에게 ‘너의 문제가 사실은 이런 것이지? 그 문제의 궁극적인 의미는 이런 거야’ 하면서 이야기를 건넨다는 점이거든요.
자기가 갖고 온 고민과 질문의 깊이와 의미를 잘 보여주고 다독이면서 자기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책이 저는 좋은 책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이 갖고 있던 답답한 고민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신화 속 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통해 조금씩 해결되는 데 『신통한 책방 필로뮈토』가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김헌 서울대학교 불어교육학(학사), 철학(석사), 서양고전학(석사, 박사과정 수료)을 공부한 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서양고전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 HK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쓴 책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의 저서가 있고, 역서로는 『두 정치연설가의 생애』, 『그리스 지도자들에게 고함』, 『’어떤 철학’의 변명』 등이 있다. <차이나는 클라스>,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 <지식의 기쁨>, <최강 1교시> 등에 출연하며 대중에 서양 고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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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 기획/<서지원> 글/<최우빈> 그림11,7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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