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특집] 한국인들의 네 가지 얼굴
<월간 채널예스> 2022년 2월호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닮은꼴 한국인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대표적인 성격에는 무엇이 있을까?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에게 물었다. (2022.02.14)
한국 사회는 돈을 중심으로 보는 생각이 만연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사회적 성격이 되었나요?
심리에서 중요한 핵심은 욕망입니다. 욕망이 사고를 끌고 가는데 배가 고픈 상태에서 길을 걷는 사람 은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오고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을 주로 할 것입니다. 욕망이 강하면 그것에 따라 심리가 구조화됩니다. 돈에 대한 욕망이 강렬하다면 돈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돈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에 대한 욕망을 충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에 긍정적인 감정 반응을 하게 되며 반대라면 부정적 감정 반응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욕망이 장기적으로 어떤 사람을 지배한다면 어떨까요? 그 욕망이 구조화한 심리가 굳어집니다. 돈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 돈 중심의 사고가 성격적 특성이 돼버립니다.
돈 중심형 성격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이른바 ‘자본의 세계화’ 흐름이었던 신자유주의 체제로 진입하면서 돈 중심의 성격이 강세를 띠고 굳어져갔습니다. 맹목적으로 돈을 좇고 돈에 관한 감정 반응을 보입니다.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그렇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대부분 돈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잘 버는 직업은 좋은 직업이고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에겐 우호적입니다. 반면 돈 못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능력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며 비하의 마음을 품고 대합니다. 돈의 유무가 가치의 유무를 결정해버립니 다. 한국인들의 타고난 기질은 서로 다르지만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돈을 향한 욕망의 강도 나아가 돈 중심의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들 비슷합니다.
권위주의형 성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어떤 힘에 의해 학대를 당하는데 저항하지 못하면 무력감이 생깁니다. 자연히 무력감에 시달리는 사람은 무력감을 상쇄하기 위한 행동을 할 것입니다. 먼저 힘을 욕망하고 찬양하겠지요. 그리고 동시에 약자를 짓밟으면서 해소하려고 하겠지요. 이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면 바로 권위주의적 성격의 특징을 만들어 냅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일상적으로 체계적인 학대를 당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갑질이지요. 요즘은 갑질, 을질, 병질, 정질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는데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학대하고 있는 구조 속에 놓여 있습니다.
권위주의형 성격이 사회 전반에 나타나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저는 『풍요중독사회』라는 책에서 지금의 한국 사회가 다층적 위계 사회라는 진단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분 질서가 뚜렷했던 과거 사회가 단순한 위계 사회였다면 지금의 우리 사회는 갑을병정의 위계가 끝없이 생성된 다층적 위계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 서 사람들은 다수의 사람들과 위계 경쟁을 하면서 불 화하게 됩니다. 나보다 힘 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 을 구분하는 일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그 에 따른 학대들을 교환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학대란 무엇일까요? 심리학적인 관점에서는 인간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모두 학대입니다. 사람을 인간 자체로 존중해주는 것이 아니라 욕망 실현의 도구나 수단으로 보는 것 역시 학대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존재만으로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의 도구로 여기는 것이 아동 학대인 이유입니다.
권위주의형 성격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강자에게 빌붙어서 약자를 짓밟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사람은 애초에 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단독으로 힘을 행사하지 않고 강자의 힘을 등에 업은 채 약자를 누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 역시 힘의 유무라서 강자냐 약자냐, 덩치가 크냐 작냐가 기준이지 이념이나 도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감정 반응 역시 힘이 센 대상은 좋아하지만 약한 대상은 깔보고 무시해버립니다. 이렇듯 힘에 의한 억압과 무력감에 익숙해진 다층적 위계 사회, 즉 한국 사회는 다소 비극적으로 말하면 만인이 만인을 학대하는 사회, 학대의 도미노가 벌어지고 있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무수한 권위주의적 성격들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쾌감 추구형 성격은 왜 만들어지나요?
즐거움, 유희를 좇는 쾌감 추구형 성격은 권태감이 만들어냅니다. 이 권태감은 언제 생길까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을 하지 못할 때입니다.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한다든가 스스로 사회를 위해 좋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권태 대신 보람을 느끼겠지요. 반대로 지금 하는 일이,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같고 그다지 창조적이지도 않다고 느낀다면, 그런 일상 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매일 반복된다면 권태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권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나요?
사실 에리히 프롬은 권태의 문제를 꽤 심각하게 여겼는데 지옥이 있다면 분명히 권태로운 곳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위험한 감정으로 여긴 것이죠. 지금의 한국 사람들은 권태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가장 큰 이유가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다들 불안해서 쫓기듯 돈을 버는 데 집착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만족이나 보람을 느끼기는 힘듭니다. 열심히 일하는데 돈을 제대로 벌지 못 하면 허무함을 느낄 것이고 사회적 분위기상 직업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돈’이기 때문에 일을 해도 권태감만 쌓이게 됩니다. 의사의 경우라도 직업 만족도가 20%도 되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쾌감 추구형 성격은 어떻게 드러나나요?
권태감을 덮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쾌감을 좇는 것 입니다. 권태가 심해지는 사회일수록 이를 극복하기 위해 ‘먹방’ 같은 것이 인기를 끌고 각종 쾌감을 부추기는 자극적 영화나 드라마가 대세가 됩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문화가 유행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떤 쾌감에 익숙해지면 그조차 만족이 안 되는 상황이 생깁니다. 더 큰 쾌감, 또 다른 쾌감을 찾게 됩니다. 쾌감 추구형 성격은 이렇듯 계속 쾌감을 느끼는 자극을 찾고 쾌감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살아 갑니다. 여기서 쾌감은 마약 중독이나 도박이나 알코올 중독처럼 극단적으로 흐르는 것들도 있겠지만 그저 소비하고 즐기는 것으로 인생을 영위하려는 것 역시 쾌감 추구에 속합니다.
요즘엔 작은 쾌감,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소위 ‘소확행’ 역시 이 성격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이 없진 않은데, 삶이 힘들 때 자기 위로도 필요하니까요. 힘든 하루 끝에 맛집을 찾아 맛있는 것을 먹고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한다면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고 정신 건강에도 도움을 줍니다. 다만 ‘즐기는 것’만이 인생의 중심이자 목 적이 되고 그것만을 좇는 것이 문제겠지요. 제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분위기가 없는 탓에 권태가 쌓이고 잔뜩 쌓인 권태가 자연스레 쾌감 추구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시장 지향형 성격이란 무엇인가요?
이 성격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성격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은 한마디로 만물의 상품화인데 그 과정에서 인간마저 상품화의 대상이 됩니다. 인간이라는 상품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고 스펙을 쌓고 투자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고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욕망이 엄청납니다. 시장 지향적 성격의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를 갱신하고 더 좋은 상품이 되었다면 다음 여정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이 반짝반짝한 신상품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시장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간의 노력은 무 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니까요.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을 노출하고 광고하려고 합니다.
개인 간 경쟁이 이 성격을 부추기는 걸까요?
전 세계적인 열풍이 불었던 〈오징어 게임〉에 비유해볼까요? 드라마 속에서 사람들은 줄다리기 게임을 할 때만 해도 서로 격려하고 위해주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팀원들과 협력해서 잘 지내는 것,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려는 욕망이 좀 더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욕망은 구슬치기 게임에서 무너집니다. 일대일 경쟁에서 중심이 되는 욕망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상대를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 돼버리고 맙니다. 한국 사회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줄다리기와 같은 집단 간 경쟁 사회에서 ‘구슬치기’라는 개인 간 경쟁사회로 들어가면서 이 성격이 더욱 강화됐습니다.
시장 지향형 성격의 다른 특징은 뭘까요?
시장 지향적 성격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욕망을 가졌으니 상대방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너도 나와 같은 상품’이라는 견지에서 사람을 대합니다. 때문에 이들의 인간관계는 변질되고 맙니다. 가치가 동등하지 않은 상품과는 관계 맺는 것조차 원하지 않 고 등가 교환이 이뤄졌을 때라야 공정한 거래라고 생 각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관계는 공정한 교환 원리만 있지 ‘사랑’이라는 가치는 쏙 빠져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손익을 따져 주고받는 계산적인 사회에서 삶은 삭막해지고 개인은 점점 더 외로워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태형 심리학자. 심리연구소 ‘함께’의 소장. 한국 사회가 어떻게 개인의 심리를 파고 드는지 비평적 관점으로 분석해왔다. 그의 연구는 날카롭고도 뼈아프게 우리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이를 한국인의 심리와 연결하는 것이 특징. 개인의 마음에만 집중하는 주류 심리학의 풍토에 자극이 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풍요중독사회』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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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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