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한 사람의 정체성으로 바라본다면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백순심 저자 인터뷰
안경 쓰는 사람, 머리가 곱슬머리인 사람, 키가 크거나 작은 것은 그 사람의 특징입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이유로 의기소침해하지 않습니다. 장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특징에 불과하지요. 장애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면 용기가 생길 겁니다. (2021.12.08)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체성일 뿐이다.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는 18년간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두 아이 엄마의 작은 소망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차별과 억압을 겪었다. 두 아이의 장애인 엄마로서 좌충우돌하며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사랑으로 키워주는 과정은 특히 이 책의 중요한 축을 구성한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조금씩 보태려 한다. 장애인 사회복지사로서 현장에서 느낀 단상들과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과 생활하며 공감했던 감정들, 또 지원하는 서비스들이 제도적으로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들을 이 책에 담았다.
안녕하세요. 백순심 작가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신간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를 쓰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진로를 정할 당시 나의 북극성은 ‘사회복지 현장에서 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18년 동안 그것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회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냉담함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싸늘한 반응을 줄이고자 일했던 시간이 영향력을 미치기에는 미비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애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이 비장애인 대상이 아니었으며, 우물 안 개구리같이 일을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로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에 대해 알리는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문해력’ 즉, 문해(文解) 또는 문자 해독(文字解讀)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일 또는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장애 문해력’이라고 제 나름대로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그것만이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에 대해 알려야 그들이 알게 되고 장애인식이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장애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싶어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 같은 사람들에게 ‘몸이 불편해 평범할 수는 없지만, 나의 삶을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에 대해 한마디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경 쓰는 사람, 머리가 곱슬머리인 사람, 키가 크거나 작은 것은 그 사람의 특징입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이유로 의기소침해하지 않습니다. 장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특징에 불과하지요. 장애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면 용기가 생길 겁니다.
18년 동안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근무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보람이 있었던 일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보람된 순간은 내가 쓴 기획서가 기업재단에 선정되어 입소된 장애인들에게 서비스를 지원할 때입니다. 그 시간만큼은 장애인들에게 나도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가장 보람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로 인해 상처받을 때였습니다. 장애 때문에 할 수 없음을 사람들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판도 못 들어?”, “누구는 칠판에 글씨는 다 쓰는데 넌 왜 못 써?”라든지, “장애인 주제에”, “장애를 팔아서 일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언론이나 대중문화에서 표방하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과거 10여 년 전보다 어떤 면에서 변화가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고, 좀 더 긍정적으로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변화된 부분은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부드러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장애인이 지나가면 힐끔힐끔 쳐다보거나 “재수 없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조우했을 때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지?' 망설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개인과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몇 가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긍정적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의 삶이 많이 노출되어야 합니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움츠러들거나, 숨어 버리는 행동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주어져야만 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생깁니다.
사회에서 구조적인 측면이 변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어야 합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으로 겪는 불편함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장애인이 스스로 개선되어야 하는 여건에 대해 요구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장애인이 직접 정책을 만드는 기관이나 언론 등에 건의하고 현장에서 일한다면 변화는 더 빠르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작가님 삶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된 터닝 포인트 같은 사건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터닝 포인트는 아이를 낳은 후 육아가 힘들어서 가입한 ‘엄마의 꿈방’ 카페를 만나고 나서였습니다. 그곳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독서는 저의 편협한 시각을 넓혀 주었습니다. 글을 쓰면 온통 상처투성이였던 제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졌습니다. 다양한 글쓰기 활동들을 펼치면서 제 자존감은 높아졌습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저는 타인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바람과 계획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바람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이 좀 더 편한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제 계획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장애인 소통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장애를 주제로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을 함으로써 이해의 폭을 좁혀 나가는 것이 저의 계획입니다.
*백순심 뇌병변 장애인으로 태어나 늘 깍두기 같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위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고, 쌍둥이를 키우며 워킹맘으로 살고 있다. 한림대학원에서 가족 치료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회복지사로 18년간 장애인복지현장에 몸담고 있으며 장애인 거주 시설 이용자 참여 매뉴얼 개발 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용자 참여 매뉴얼 개발 연구집(공저)』, 『시설별 우수 시범 사례집(공저)』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장애인의 사회 복귀를 위한 프로그램이 삼성복지재단 및 전국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사례집에 실렸다. 현재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이에서 소통가로 살고자 ‘장애’와 관련된 주제와 시선으로 다양한 형태로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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