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한자(황정은), 그냥, 단호박이 선택한 '삼자대책'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07회) 『인생의 맛 모모푸쿠』, 『나의 복숭아』, 『조선과 일본에 살다』
제주 4.3의 이야기에 김시종 선생의 이야기도 꼭 필요하다고 느껴요. 이 분은 4.3의 복판에서 이 일을 겪은 당사자란 말이죠. 4.3에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알고 싶다면 이분의 글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1.10.07)
한자(황정은) : 안녕하세요. <삼자대책>으로 처음 인사드립니다. 한자입니다.
그냥, 단호박 : 만나서 반갑습니다!
단호박 : 청취자 여러분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새 코너의 첫 번째 시간입니다. 이름 이야기로 시작을 해볼까요? ‘한자’ 님이 오셨어요.
한자(황정은) : ‘한자(漢字)’ 아니고 ‘한 자’예요. 한 자, 두 자, 세 자 할 때... <삼자대책>이라고 해서, 저는 이걸 ‘삼자 대 책’으로 봤거든요. 그래서 ‘삼 자’의 일부인 ‘한 자’. 사실은 ‘일 자’, ‘이 자’, ‘삼 자’도 있었는데, 그거는 중간에 ‘이 자’가 약간 불길하다...(웃음)
그냥 : 이자는 너무 무섭죠. (웃음)
한자(황정은) : 그래서 한 자, 두 자, 세 자 할 때 ‘한 자’를 선택했고요. (웃음)
단호박 : 이번에 코너 이름도 새로 바뀌었죠. <삼자 대책>은 어떤 뜻일까요, 그냥 님?
그냥 : 그것은 오은 시인님 마음속에 있습니다. (웃음) 오은 시인님이 직접 지어주셨죠.
한자(황정은) : 네, 두 분은 처음에 <삼자대책>이라는 이름 듣고 어떠셨어요?
단호박 : 아, 불현듯 님 답다. 약간 말놀이를 하시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냥 : 그걸 너무 잘하시고.
한자(황정은) : <삼천포책방>이랑도 뭔가 연결된 것 아닌가요? ‘삼’으로 시작되는...
단호박 : 그런 느낌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매우 찰떡 같고 매우 좋았습니다.
데이비드 장 저 / 이용재 역 | 푸른숲
데이비드 장은 미국에서 자란 한인 교포예요. 넷플릭스에 <어글리 딜리셔스>라는 음식 다큐멘터리가 있거든요. 거기 나오는 분이 데이비드 장입니다.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상을 네 번 받았다고 하고, 미쉐린 가이드의 별 두 개짜리 레스토랑을 갖고 있다고 해요. 굉장히 유명한 셰프라고 하고, 이 책은 그 분의 에세이입니다.
1장의 제목은 ‘어린 시절의 찻잎점’이에요. 서양에서는 차를 마시고 난 후에 잎의 모양을 보고 점을 본대요. 저는 이 말이 저자의 상태를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했는데요. 데이비드 장은 할아버지 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한인 3세예요. 미국 내에서는 항상 주류가 아니라는 생각에 시달리고 동양인한테 가지는 편견들이 있었는데, 유명한 셰프가 된 거예요. 동양계에서는 거의 유일한 롤모델이 된 거죠. 모두가 이 사람한테 어떤 계기로 셰프가 됐는지 물어보는데, 생각해 보면 그런 계기는 전혀 없는 거예요. 애써서 생각을 해봤을 때 ‘이런 점들이 내가 이렇게 된 원인이 되었겠구나’라고 생각하는데, 모두 사후의 의미 부여인 거죠. 당시에는 자기가 뭐가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내 인생은 (찻잎점처럼) 차를 마신 후의 아주 불확실한 어떤 것이지만 거기서 의미를 뽑아내는 작업인 거예요.
데이비드 장은 계속 미국에서 살아남으면서 ‘나는 언더 같아, 나는 항상 인정을 받지 못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약간 미식업계랑 조인이 된 거예요. 일본이나 베트남 음식처럼 장인들이 열심히 만들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음식을 (미국에서) 미식의 영역으로 할 수는 없는 걸까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모모푸쿠’라는 데서 그런 시도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망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잘 돼요. 그 계기가 뭐였냐면, 데이비드 장이 ‘기왕 망하는 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 해서 당시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온갖 퓨전을 다 시작한 거예요. 그게 당시 미식업계의 니즈랑 맞아떨어졌던 거죠.
그런데 뜨면 뜰수록 데이비드 장은 계속 불행해졌어요. 자신은 우울한데 그 우울을 일중독으로 풀고 있었던 거고, 알코올 중독도 있었고 약 중독도 있었고,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를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문체가 아주 신랄하다고 해야 되나요. 이 에세이에서 말하는 바에 의하면 나중에 본인을 돌아보는 시기가 생기는데, 자신이 그때 잘못했었다는 걸 인정한다고 말해요. 이 솔직함이 데이비드 장의 매력이 되더라고요.
김신회, 남궁인, 임진아, 이두루, 최지은, 서한나, 이소영, 김사월, 금정연 저 | 글항아리
이 책은 ‘멋있는 사람들은 모두 운전을 잘 할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대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겉으로 볼 때 멋있고 다 잘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못하는 것 하나쯤은 있을 텐데, 그 얘기를 한번 들어보면 어떨까’라고 발상이 확장된 거예요. 그래서 9명의 저자들에게 당신의 아킬레스건, 못하는 것, 단점.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써 달라고 요청을 하게 됩니다. 제목이 ‘복숭아’인 이유는, 복숭아가 겉으로 볼 때는 너무 탐스럽고 예쁜데 사실은 쉽게 무르잖아요. 그 양면적인 성격 때문에 이 이야기에 ‘복숭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저자 라인업이 너무 빵빵합니다. 김신회, 남궁인, 임진아, 최지은, 서한나 작가, 『김지은입니다』를 출간했던 출판사 봄알람의 이두루 대표,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김사월 싱어송라이터, 금정연 서평가까지. 이 조합으로 재미없기도 힘들죠. (웃음)
첫 번째 글은 김신회 작가님의 글인데, 진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강렬하게 느낀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요. 보고 싶다는 건 사랑의 시작 같은 거잖아요. ‘나는 누군가를 굉장히 보고 싶어 한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나는 사랑을 잘 모르나?’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사랑의 역사를 되짚어요. 그러다가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그래서 사랑을 잘 모르고 시작을 잘 하지 않았던 것이, 어쩌면 내가 사랑에서 감당해야 하는 무엇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그랬던 걸까’라는 걸 깨닫게 돼요. 그리고 ‘사랑이 없어도 나 혼자 잘 지내는 사람으로 살면 되지’라고 마음을 먹는데요. 마음을 비우면 꼭 뭔가 채워지고 찾아오잖아요. 김신회 작가님은 유기되었던 강아지 풋콩이를 만나서 같이 살게 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너무너무 보고 싶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금정연 작가님은 자신을 쥐락펴락하는 것들, 한 없이 높은 데도 올렸다가 한없이 밑으로도 가라앉게 하는 대상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끝을 맺어요. “그것은 내가 가진 얼마 안 되는 빛나는 것이지만 그 때문에 나는 종종 공을 놓치기도 한다고.” 우리 안에 갖고 있는 비밀이나 단점 같은 것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내가 걸려 넘어지기도 하는데 나의 고유성을 이루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한 거죠. 그래서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 그 점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김시종 저 | 돌베개
오늘 첫 시간에 제가 소개할 책은 재인 시인 김시종 선생이 쓰시고 윤여일 선생이 옮기시고 출판사 돌베개에서 출간한 『조선과 일본에 살다』라는 책입니다. 표지에 ‘재일 신인 김시종 자전’ 이라고 쓰여 있고요.
김시종 선생은 1929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일본어로 쓰고 말하면서 자랐어요. 조선어로 말을 할 수는 있는데 쓸 줄은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본인이 조선어로 쓰는 걸 되게 하찮게 생각하고 무시를 했어요. 나는 빨리 이 거대한 제국의 구성원이 되어야겠어, 하고 꿈꾸는 황국 소년이었던 거예요. 본인 스스로 그렇게 말씀하세요. 이렇게 살다가 1945년 열일곱 나이에 해방을 맞습니다. 8월 15일에 거리에 나갔더니 사람들이 무슨 국기 같은 걸 흔들면서 조선 노래를 부르는데, 자기는 그게 조선 국기라는 것도 모르고 노래도 못 따라 부른 거예요. 그 무지에 충격과 부채감을 느끼고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남로당의 말단 당원으로 입당을 합니다. 활동을 하다가 1948년 제주 4.3 와중에 우체국 테러 사건에 연루되어서 1949년에 일본으로 도망을 가요. 부모님이 전 재산을 다 팔아서 아들을 살리려고 밀항선에 태워 보낸 거죠. 그 뒤로 49년 동안 한국에 돌아오지 못 합니다.
다시 제주도로 돌아온 게 이제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임시 여권을 발급받아서 부모의 묘를 방문하러 제주도에 방문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분이 일본에서 60여 년 동안 살면서 자신이 제주 4.3에 연루되었다는 걸 아내한테도 말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 이유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본인이 남로당 당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어서 민중항쟁인 4.3의 정신이 희석될까 봐. 가뜩이나 4.3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빨갱이 사건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그 4.3이 훼손될까 봐 걱정이 있었고. 두 번째 이유는 불법 체류자 신분이라서. 휴전 이후에 한국에서 이어진 독재 정권에서 자기가 송환이 된다면 겪게 될 고초들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이런 두 가지 이유를 본인이 말씀을 하셨어요.
『조선과 일본에 살다』를 소개하려면 필히 제주 4.3을 소개할 수밖에 없어요. 그 내용이 곧 책의 내용이라서. 저는 4.3에 관련된 자료를 전부터 읽고 있었는데 주로 당사자들의 구술집 위주로 읽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궁금한 거예요. 당시 토벌대가 이 정도로 민간인을 학살할 수 있었던 명령 체계와 그 실행이 가능했던 정치적 이념적 대립 상황을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김시종 선생님은 4.3의 시작점인 ‘삼일절 28주년 기념 도민대회’ 자리에 계셨거든요. 최초 발포를 목격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민중 집회를 관리하는 남로당 당원 입장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이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어요.
저는 4.3의 이야기에 김시종 선생의 이야기도 꼭 필요하다고 느낀 게, 이분도 당사자란 말이죠. 그것도 4.3의 복판에서 이 일을 겪은 당사자라서 4.3에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알고 싶다면 이분의 글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이 시간에 이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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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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