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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주 “죽을 만큼 심심해도 괜찮아. 책이 있으니까”

부모교육전문가 임영주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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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책이 귀했던 시절, 읽었던 책을 또 읽었어요. 지금처럼 읽을 책이 많아서 ‘언제 저 책을 읽지?’ 하는 독서 부채감이 들 때면 책이 귀했던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2021.06.10)


임영주는 대한민국 최고 부모교육전문가이자 소통 강사로, 학부모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멘토,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한 부모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부모교육전문가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모토 아래 부모가 정서적으로 아이들한테서 독립하여 건강한 미래를 설계하도록 돕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 아이를 위한 자존감 수업』, 『책 읽어주기의 기적』『큰소리 내지 않고 우아하게 아들 키우기』, 『하루 5분 엄마의 말습관』, 『엄마가 알려주는 아이의 말공부』 등이 있으며, 최근 감정을 어쩌지 못해 힘들어하는 부모들을 위한 카운슬링 책 『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를 출간했다.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참 심심하고 외로운 유년이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맞아줄 엄마를 기대했지만 엄마는 들판에 계셨고, 고요하고 텅 빈 집이 맞이했습니다. 언니와 동생들은 마을 어딘가에서 땅따먹기, 딱지치기,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고 혼자 있던 저는 늘 심심했어요. 그때 친구가 되어준 것이 읽을거리, 바로 책이었지요. 집안에 책이 귀했던 시절, 읽었던 책을 또 읽었어요. 지금처럼 읽을 책이 많아서 ‘언제 저 책을 다 읽지?’ 하는 독서 부채감이 들 때면 책이 귀했던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책은 다시 읽을수록 재미가 있다는 것도 느끼던 시절이었어요. 그렇게 시나브로 책은 평생 친구가 되었습니다.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지금도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죽을 만큼 심심해도 괜찮아. 책이 있으니까’. 책은 간절히 만나고 싶은 누군가를 시공간을 초월해 만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날이 갈수록 와 닿아요. 이만한 만남이 있을까요. 내성적인 사람이든 외향적인 사람이든 우린 진정한 만남을 갈구해요. 사람을 만나면 기 뺏긴다는 사람조차도 그렇지요. 책이라면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절대 실망하지 않는 만남을 가질 거예요. 저자와 만나고 수많은 인물들과 만나며 내밀한 지적 욕구도 얼마든지 채울 수 있고요. 책에 대한 이런 절대적 신뢰가 있어서인지 부모들께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자산이 책을 읽어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 원의 행복’이라는 말도 자주 하는데요, 만 원대면 책 한 권을 구입할 수 있는데 이만한 돈이 창출하는 가치는 상상을 뛰어넘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다면 전공(부모교육, 육아서 등)책을 읽느라 시집 읽는 것이 두세 번째로 밀리는 거예요. 체질적으로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또한 전공책 읽기에 밀리는 현실이라 서가 위쪽에 놓인 시집과 소설책들을 눈높이에 닿도록 놓는 것이 목표입니다. 목적이나 이유 없이 아무 사심 없는 호사스런 책읽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이지요. 책 읽는 시간은 그냥, 마냥 좋은 시간이거든요.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말’과 ‘관계’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말 때문에 상처받는다는 상담도 많이 받는데요, 그러면서 관계를 맺어 나가니 저마다 힘들다고 하는 것 같아요. 말과 관계는 그야말로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쌍이잖아요. 요즘 ‘말’에 대한 글을 한창 쓰고 있는데 내년에 발간될 『남자의 말공부』 원고예요. 그러다보니 요즘 두 가지(책)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어요.

첫번째 『국어대사전』이에요. 악보를 놓는 보면대에 사전을 놓아 두고 매일매일 한 페이지씩 봤었는데 그럼에도 사전보다 인터넷 검색을 하는 습관에 놀랐어요. 거실의 보면대에 놓여있는 『국어대사전』과 앞으로 좀 더 친할 예정입니다. 두번째는 그림책이에요. 『임영주 박사의 그림책 육아』 원고를 집필할 때 사 놓은 수백권의 그림책이 있어요. 이 그림책들을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읽을 예정입니다. 이 2가지는 제게 말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넓혀줍니다. 『국어대사전』과 세상의 모든 그림책은 평생 벗삼기 좋은 책이지요.

최근작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에 『열세 살의 말공부』와 『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를 출간했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말’ 책을 꼭 쓰고 싶었던 소원을 풀었고 『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는 부모로서의 저를 돌아보게도 하는 아주 귀한 책이기도 한데요, ‘아이 잘 키우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부모 자신’에 대한 심리에 관심을 두었어요.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자체가 욕심 아닐까 싶어요. 아이를 보살피기 전에 부모인 나를 살피고, 나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상대를 (내 맘대로) 변화시키려는 에너지가 부질없음을 알게 될 것 같아요. 이런 알아차림을 한 부모라면 성숙한 어른으로서 부모 노릇도 더 잘 할 수 있어요. 어른다운 부모가 많으면 아이들도 그들답게 잘 성장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지』

펄벅 저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요즘 말로 심쿵, 했어요. 왕룽과 오란의 일대기가 내 부모님과 많이 닮아 있었거든요. 제가 자란 곳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인데요, 새벽에 일어나 일하러 가시는 부모님. 그분들이 새벽에 방문을 열고 나가실 때의 그 공기와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들판에서 돌아오시는 부모님에게서는 먼지 내음 비슷한 흙 냄새가 났어요. 땅과 흙냄새는 부모님이고 고향입니다. 펄벅의 『대지』라는 작품이 제겐 그러하지요.



『토지』

박경리 저



공교롭게 『대지』와 『토지』라니, 꽤나 땅이야기를 즐기는 것 같은데요. 『토지』는 박경리 선생을 사모하게 만든 작품이며 하동이라는 지명까지 좋아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1권을 읽기 시작하면서 1질을 더 구입해 소중한 이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납니다. 서희와 봉순, 길상. 그들의 사랑과 끝없이 펼쳐지는 토지, 그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과 절박함에 먹먹한 느낌이었어요. ‘토하젓에 흰 쌀밥 한 그릇 먹고 싶은 사람들’. 토지가 목숨이었던 수많은 농꾼들에 감정이입 되는 작품입니다. 대학원 시절엔 『토지』의 배경을 찾아 홀로 문학 답사를 떠났었는데요. 그때 바라본 섬진강의 노을을 어찌 잊을까요. 이 땅을 절절하게 사랑하도록 만든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저



관심, 관점, 집중, 혼돈, FOMO, 문학, 예술, 역사, 인내… 유발 하라리는 사람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다가 결국은 ‘나’로 돌아오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진 작가입니다. 책으로 그를 만났지만 책으로 만난 이후에는 유발 하라리 그 자체가 나의 관심사였어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지금도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세상으로 만들어질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요. 미묘하고 설명할 수 없는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체는 ‘지금’을 사는 ‘우리’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일깨우죠. 거창하고 복잡한 세상도 결국 이 시점을 살아가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아는 순간 내 삶의 통제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는 자각도 얻게 됩니다.



『부모와 아이 사이』

하임 기너트 저



육아서의 고전이라고 불릴 만한 책이에요. 부모와 아이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대화 등에 대한 예시가 자세히 나와 있어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이라면 많은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이는 아이의 세계에 살지만 우리 어른이 느끼는 감정과 욕구를 모두 가진 인격체라는 것을 알기만 해도 육아가 수월해져요. 부모는 아이를 키우지만 아이는 분명히 스스로 크고 있는 귀한 존재거든요. 부모의 최선과 아이에 대한 신뢰의 조합이 육아전쟁을 상생의 시너지로 이끌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께 그런 힘을 줄 책이지요.



『창가의 토토』

구로야나기 테츠코 저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경청과 공감이라는 말이 너무나 자주 회자되는 세상에서 진정 내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주는 단 한 사람 가졌는가, 라는 화두도 던져주는 작품이에요. 어른도 그러할 진대 아이는 어떨까요. 자신에게 공감하며 귀 기울여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아이는 잘 자랍니다. 

『창가의 토토』는 자신에게 몸을 기울여 듣는 어른(교장선생님) 덕분에 아이가 변하고, 다시 태어나는 작품이에요. 특히 나의 여행길에 자주 동행하는 책이기도 한데요. 재작년 공항 대합실에서 단숨에 읽었을 땐 더욱 별미였어요.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봅니다. 나는 온 몸을 기울여 듣고 있는가. 그러려고 노력하는가. 이 물음만으로도 겸손해지고 따뜻해져요. 이 책이 준 선물이기도 합니다.



『엄마 마중』

이태준 저



몇 장의 그림책으로 많은 것을 선사하는 그림책이에요. 개인적으로 이 그림책을 보며 눈물콧물 다 흘렸어요. 책표지를 덮기 전 본 장면에서는 엉엉 울었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손잡고 골목길을 걸어가는 그림을 발견하고서였는데요, 이 장면은 몇 글자로는 형언할 수 없어요. 엄마,라는 끝없는 울림을 주는 존재에 대한 감동이랄까요. 육아에 지칠 때,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떠나보내기 어려운 분이라면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모든 그림책이야말로 어른을 위한 책이라고 자주 말해요. 인생이 힘들다고 느낄 때, 외롭고 쓸쓸할 때, 감정조절이 안 될 때, ‘나, 뭐하는 거지?’라는 회의감과 자책감에 빠질 때. 어떤 때라도 좋을 거예요. 그림책은 위로와 격려, 다시 나아갈 용기를 줍니다. 게다가 재밌고 읽기 쉬운 미덕도 갖췄으니 바쁜 현대인에게 이보다 읽기 좋은 책이 있을까 싶어요. 세상의 모든 그림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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