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나 시인 “벌레 먹고 짓무른 복숭아 같은 시”
두 번째 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아픈 진실을 외면하면 기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지켜보고 옆에 있는 거죠. 그래서 벌레도 먹고 짓무른 복숭아 같은 시집이 된 것 같아요. (2021.06.01)
일상의 어떤 순간은 시가 된다. 비가 많이 오던 지난여름, 신미나 시인은 불어난 홍제천을 보며 복숭아를 먹었다. 우연히 벌레가 잘 익은 과육을 파먹다 알을 낳고 죽은 걸 발견했다. 벌레에게 ‘높이’는 복숭아라고 생각하며 쓴 문장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시인은 벌레의 일생을 떠올리며 짓무르고 아픈 삶을 응시한다. 모두가 긴 불안을 통과하는 지금, 신미나 시인과 묵묵히 삶을 견디는 일에 대해 말했다.
신미나 시인은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첫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로 전통적 서정과 현대적 감성이 어우러진 시세계를 선보였다. 그는 ‘싱고’라는 이름으로 시와 웹툰을 결합한 ‘시툰’을 그려 독자들에게 시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번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는 시인이 7년 만에 내놓은 시집으로, 사라진 존재들을 조용히 복기하며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담겼다.
첫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이후 7년 만에 시집을 내셨습니다. 두 번째 시집인 만큼 또 다른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나’라는 테두리를 많이 깨고 싶었어요. 자의식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첫 번째 시집의 마지막 시가 「무르다는 말」인데요. 홀로 서서 꺾은 꽃이 미지근해져서 무를 때까지 쥐고 있는 구절이 나와요. 그게 첫 시집의 인상이었어요. 내 감정을 정확히 들여다보기 위한 작업. 그런데 두 번째 시집은 ‘나’를 깨고 나와 타인에게 열려 있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대상을 너무 꽉 껴안지도 않고, 느슨하게 포옹하는 느낌이 된 것 같아요.
첫 시집에 비해, 언어가 단순해지고 가라앉은 느낌도 들어요.
제 시는 더하기보다 ‘빼기’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30편 정도 덜어내면서 너무 욕심내지 말고 알맞게만 담아내자 했어요. 어릴 적에 아버지가 한쪽에 납을 끼우는 구식 저울로 콩 무게를 달았거든요. 저도 그렇게 시를 쓸 때 감당할 수 있는 언어인가를 재보는 것 같아요. 풍부하게 쓰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소화할 수 있는 것만 가져오자 하면서요.
시집 전반에 상실과 죽음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산다는 게 산낙지 한 마리를 받은 것 같을 때가 있잖아요. 삶이 주는 당혹감, 낯섦, 기이함. 산낙지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종도 기이하죠. 결국 우리는 죽은 것을 먹으며 살려고 애쓰니까요. 죽음을 밟고 살아가는 생을 떠올렸어요. 이 시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지만, 저는 그런 걸 느끼면서 사는 것도 좋더라고요.
“노래를 쓰고 싶었는데, 쓰고 나니 기도가 됐다.”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열린 낭독회에서 하신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삶과 함께 가는 시를 쓰겠다고 들여다보니, 인간종의 삶이 너무 아름답고 잔인한 거예요.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고, 겨우 버티기도 하고, 어떤 삶은 죽음 앞에 서 있기도 하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진심은 자기가 믿고자 하는 심정에 가까운데, 진실은 사실에 가깝다. 저는 진심을 노래하고 싶었던 건데, 제가 본 건 사실에 가까워서 기도가 된 게 아닐까요. 아픈 진실을 외면하면 기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지켜보고 옆에 있는 거죠. 그래서 벌레도 먹고 짓무른 복숭아 같은 시집이 된 것 같아요. 마냥 예쁘지 않지만, 애벌레에게 높이가 되어 주는 복숭아.
제목의 ‘높이’라는 단어가 시집을 덮을 때까지 긴 인상을 주더라고요. ‘시인의 말’에서 쓰셨죠. “맨바닥에서/제 무게를 이고 있는 그릇의 굽//그 높이를/당신이라 불러도 좋겠습니까.”
시집을 묶으면서 계속 ‘높이’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침상에 누워 생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셨거든요. 그때 어머니의 눈높이가 달라지더라고요. 일어서서 걸을 때와 다른 시야를 갖게 된 거죠. 할 수 있다면, 어머니의 높이를 넓혀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높이’가 다시 보였어요. 그릇에도 아주 작지만 요 만큼 굽이 있잖아요. 다들 각자의 높이를 갖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는 「복숭아가 있는 정물」의 한 구절이기도 해요.
작년에 비가 많이 왔잖아요. 집 앞 홍제천에 물이 불어난 걸 보면서 복숭아를 먹었는데, 그 안에벌레가 복숭아를 파먹다 죽어 있는 거예요. 애벌레에게 복숭아는 높이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다가 그 구절이 나온 거예요. 결국, 벌레는 죽었지만 알을 남기고 생명으로 이어지잖아요. 예전에는 삶과 죽음이 멀리 있는 것 같았어요. 요즘엔 결국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할머니와 어머니의 존재가 자주 등장해요. 할머니는 탱화의 천수관음이기도 하고 설화 속 마고할미로 나타나기도 하죠.
사실 할머니는 어머니이기도 해요. 돌아가신 할머니를 잘 보내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를 이상화된 신화적 존재로 그리고 싶진 않았어요. 제가 상상한 할머니라는 상징은 오롯이 개인으로서의 삶이에요. 제가 할머니에게 “잘 살다 가세요”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할머니도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숨 붙은 한, 어찌 됐건 이 삶을 잘 이고 갑시다’하며 힘이 되는 거고요. 주변에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지인이 있었는데요. ‘살아 있는 동안 잘 살아 보자. 이대로도 괜찮으니 같이 잘 살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히로시마 단풍 만주」, 「거인」 같은 3부의 시를 읽을 때, 현실의 사건이 연상되기도 했어요.
세상의 폭력을 안 볼 수는 없었어요. 삶을 충만한 자리로 끌어올려 주는 시도 있겠지만, 다른 면은 덮어버리고 한순간의 충만만을 이야기하는 건 같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세월호 같은 사건들 앞에서 다들 이렇게나 아픈데요. 물론 직접적인 사건을 끌어와서 윤리적인 해답을 제시하려 했던 건 아니에요. 그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최소한의 언어로 쓰고 싶었어요. 알레고리를 이용해서 고통을 보여주는 쪽으로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존재들,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자연히 7년 간 일어난 일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고통스러워서 똑바로 직시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있죠.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참으로 막막해지기도 하고요. 참 우리에게 잔인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앞에서 시가 무슨 힘이 있나 싶고요. 그렇지만 누군가는 바라보고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집을 끝까지 읽으면 ‘눈물 없이 우는’(「사랑의 순서」) 담담한 표정이 떠오릅니다. 시에서 담고자 하는 태도가 있나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묵묵히 견디는 삶이 눈에 들어와요. 해설에서 양경언 평론가가 ‘세상의 시작이 아니라 세상의 지속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고 써 주기도 했는데요. 비가 많이 왔을 때, 홍제천에서 물풀이 물살에 휩쓸려서 한쪽으로 휘는 걸 봤어요. 물풀이 센 물살을 거스를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버티는 거죠. 주변을 보면, 대개의 삶이 그런 것 같아요. 수동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 사람이 선택한 삶의 자세일 수도 있죠. 하루하루 견디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첫 시집과 마찬가지로, 설화나 고유명사의 질감이 옛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현대적인 것과 옛스러운 정서’를 조합한다는 말도 많이 들으셨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옛스러운 것과 가까웠어요. 마을에서 굿을 보면서 자라기도 했고요. 체득된 것이니 자연스럽게 시로 나오는 것 같아요. 근데 농촌이나 변두리의 소재가 정말 옛날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엄연히 같이 사는 삶인데 뒤처지고 과거의 것으로 보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시골 가서 그렇게 잘 놀면서 왜 이 소재는 낡은 것이라 보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오히려 저는 다시 보고 싶어요. 옛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현재에 섞여서 같이 살고 있는 모습이요.
시 쓰는 마음을 어떻게 예열하시나요?
오히려 저는 예열보다 가열된 마음을 식히는 편이에요. 어떤 일은 잔상이 오래 남아서 복기할 때마다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래서 열을 좀 뺀 뒤에 쓰려고 하죠. 시 쓰는 동안에는 음악은 잘 안 들어요. 음악은 너무 감정에 빨리 끌어올려서 반칙 같은 기분이 들어요.(웃음) 대신 그림을 보죠.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 화가 ‘케테 콜비츠’의 그림을 자주 떠올리셨다고요.
예전에 인사동에서 전시를 보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전쟁으로 아이를 잃고 그린 자전적인 작품이 있는데요. 단색으로 된 투박한 판화인데, 정말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예요. 묵묵히 삶을 이끌어가는 존재들을 영웅처럼 그리지 않고 최소한의 재료로 표현했어요. 그 화가는 삶의 내용이 그림이 된 거죠. 저도 욕심이지만 ‘내 삶의 내용이 시와 함께 갔으면 좋겠다, 시를 너무 높은 곳에 두지 말고, 주변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삶과 함께 가는 시,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굉장히 무서운 일이기도 하죠. 삶을 시로 쓴다는 건 때로는 잔인한 일이잖아요. 어차피 다 실패해요.(웃음) 그렇지만 해보고 싶어요.
독자들이 시집을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나요?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나 과거와 함께하죠. 길을 가다가도 모래에 박힌 사금파리처럼 옛날 기억들이 떠올라 같이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이 시집에도 예전의 기억들이 현재에 드문드문 섞여 있어요. 혹시라도 상실을 경험해야 했던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떠올리면서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신미나(싱고) 1978년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났다.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를 쓸 때는 ‘신미나’ 그림 그릴 때는 ‘싱고’이다.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시툰 『詩누이』 『안녕, 해태』(전3권)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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