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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아주 미약한 여진 같은 이야기 (G. 편혜영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180회) 『어쩌면 스무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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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옆에 “불완전하고, 비도덕적이고, 속물적인 화자에 끌린다”고 말하는, 근면한 소설가, 최근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을 출간한 편혜영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1.03.25)


내가 아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다. 아이 때부터 줄곧 대고 누운 무릎과 내 머리를 자르던 다정하고 서툰 가위질. 매번 조미료에 의지해 간을 맞추던 요리 솜씨. 미용실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히 웃던 모습 같은 것들. 어두워진 저녁, 천천히 허리를 구부려 바닥에 쌓인 머리카락을 쓸어 모을 때면 한없이 어두워지고 딱딱해지던 얼굴을 기억했다. 나는 늘 이 정도의 어머니에 만족해왔다.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편혜영 작가님의 신작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에 수록된 「좋은 날이 되었네」의 한 부분을 읽어드렸습니다. 편혜영 작가님의 소설에는 “정확히는 모르는 채로”, “막연히” 서로를 오해하고, 그로 인해 위기의 순간을 맞고야 마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유지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 지금의 삶이 힘들어서 다른 삶으로 건너가려는 사람들”에 끌린다는 편혜영 작가님인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편혜영 작가님을 모십니다. 출연을 많이 고민하셨던 작가님이라 더욱 오늘 방송이 기대가 돼요. 부디 청취자 여러분도 오늘 대화에 기꺼이 참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 편혜영 편>

오은: “불완전하고, 비도덕적이고, 속물적인 화자에 끌린다”고 하는데 약간 편혜영의 반대편에 있는 인물 같아요. 그래서 이런 인물들이 끌리는 건가요?

편혜영: 저랑 닮은 인물이고요.(웃음) 그래서 비슷한 인물들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은: 실은 저희가 출연 요청을 드린 적이 있어요. 그때는 거절하셨는데 이번에 흔쾌히 출연을 결심하셨습니다.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편혜영: 딱히 소신이 있어서 출연을 안 했던 건 아니고요. 제 음성이 약간 불만이 있었는데요. 지금도 그 생각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작년에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너무 동네 생활자로만 생활했거든요. 올해는 사회 생활을 좀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오은: 편혜영 작가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여전히 하루 종일 앉아서 소설 쓸 때가 가장 좋다고 말하는 소설가.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릴 때 꿈은 동방생명 아줌마가 되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긴장 상태를 싫어했던, 그래서 뭔가를 열심히 나서서 하는 학생은 아니었던 편혜영. 맞벌이하던 부모님 덕에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들을 보냈고, 동화의 세계를 훌쩍 건너뛰어 언니, 오빠들이 보는 성인의 세계부터 책으로 섭렵했다. 

소설은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만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늘 소설을 써왔다. 백일장에서도 소설을 썼고, 라디오에 사연을 보낼 때도 소설을 썼다. 편혜영은 그 시절, 신해철의 <밤의 디스크쇼>에 사연을 보내 ‘이 주의 엽서’에 선정되어 태광 에로이카를 경품으로 받은 적도 있다. 부모님의 성실하고 묵묵한 노동의 방식과 습성을 물려 받았다. 20대 태반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냈고, 2000년, 「이슬털기」라는 작품으로 등단한 후에도 소설집 두 권을 낼 때까지 8년간 꾸준히 회사 생활을 하며 소설을 썼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셜리 잭슨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한, 그러나 여전히 두려움을 가지고 쓴다는 소설가 편혜영. 집순이이고, 공원과 회전목마를 좋아한다. 따뜻한 물과 커피, 간이 세지 않은 담백한 음식, 예쁜 그릇을 좋아하고, 옥수수를 아주 좋아해서 여름은 거의 옥수수로 난다. 요즘 꽂힌 것은 당근마켓이다. 물건을 볼 때 노동의 경로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이고, 잔혹한 이미지를 많이 쓰는 소설가지만 의외로 잔혹한 영화는 잘 못 본다. 노래는 못한다. 편혜영의 노래를 들은 김애란은 그의 노래에 대해 '아, 언니는 노래도 참 단아하게 못하는구나.'라고 쓴 적이 있다. 

어떻게하면 잘 나이 들어갈지 궁리하다가 인생에 능숙해지지 않을 바에야 야박하게 매사 나를 탓하느니 나와 적당히 사이 좋게 지내면서 유머를 잃지 않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이 생겼다. 올해 꼭 해내고 싶은 일은 휴대폰 사용 시간 줄이기, 에코백 사지 않기,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다.” 혹시 잘못된 정보가 있어서 수정해야 될 부분이 있나요? 

편혜영: 잊고 있었던 저에 대해 상기한 것 같아서 너무 재미있게 잘 들었고요.(웃음) 하루 종일 앉아서 소설 쓰는 게 제일 좋다고 소개해 주셨는데요. 하루 종일 노는 게 제일 좋아요.(웃음) 이 표현은 과장된 표현인 것 같아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오은: 하지만 다른 일을 할 때보다는 소설을 쓰는 게 일의 차원에서는 좀 더 좋다고 말씀하실 수 있겠죠.(웃음) 작가님은 등단한 이후에도 8년 동안 회사 생활하면서 소설을 쓰셨다고 해요. 그것이 지금의 글쓰기에도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시간이 나면 어떻게든 몇 자라도 적으려는 루틴이 생겼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편혜영: 맞아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은 규칙적인 시간에 글을 쓸 수가 없죠. 그런다면 그 외의 시간에는 못 쓰게 되는데 그렇게 시간을 통으로 비울 수가 없잖아요. 가급적 써야 하는 상태를 만들어야 해서 저도 틈나는 대로 썼고요. 직장을 그만둔 후에는 글쓰기 루틴이 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하던 버릇이 있어서인지 잘 안 되더라고요. 저는 시간 구애도 안 받고요. 아침에도 마감이 급하면 쓰고, 밤에도 쓰고, 낮에도 쓰거든요. 해 있을 때 못 쓴다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는 안 그래요. 공간도 별로 안 가려서요. 그런 점은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은: 이제 본격적으로 『어쩌면 스무 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작가님께서 직접 이 책을 소개해 주는 시간이에요. 이 책은 어떤 책인가요?

편혜영: 단편소설을 모은 책으로 여섯 번째 책이고요. 지난 5년간 발표한 단편들 중 낯선 곳에 도착한 사람들 이야기, 그런 느낌이 나는 작품을 모았습니다. 

오은: 이전까지 편혜영 소설하면 섬뜩한 이미지였거든요. 갑자기 무섭고 끔찍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어쩌면 스무 번』의 작품들은 ‘선득하다’는 느낌이었어요. ‘갑자기 서늘한 느낌이 있다’라는 뜻의 단어잖아요. 작품이 전보다 덜 섬뜩해진 이유도 있을까요? 섬뜩한 소설들을 쓰면 작가도 힘들고, 진이 빠질 것도 같거든요. 그런 것이 영향을 줬는지도 궁금해요. 

편혜영: 『어쩌면 스무 번』도 대부분의 상황은 무섭죠. 그런데 쓰다가 소설 속의 인물을 보면서 이 사람도 되게 애를 써서 살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 소설들은 인물들에게 무섭고 공포스러운 상황을 주기보다 그들의 사연을 많이 들으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소설을 묶으면서 보니까 실패했지만 그래도 애를 써서 살아보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 사람들 이야기여서 더 무섭게만 쓰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오은: 이번 소설집의 기본 키워드 중 하나가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떠나는 것, ‘이동’ 같더라고요. 여행 수준이 아니고요. 잠시 거처를 마련해서 옮기는 것에 가까운데요. 독특한 것은 『어쩌면 스무 번』의 인물들은 과거 내가 저질렀던 일들을 들고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동하면 떠오르는 상쾌함 혹은 거기가 아니기 때문에 갖게 되는 가능성이 차단되고,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것 같더라고요. 더 폐쇄적인 느낌도 들고요. 

편혜영: 처음엔 농촌 스릴러 개념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웃음)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쓰면서는 내가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이라는 이미지가 계속 남아있었나 봐요. 그래서 인물들이 소도시로 간다거나, 살던 곳이지만 사실은 오래 떠나서 오히려 더 낯설어진 곳으로 간다거나 하는 작품들이 좀 묶인 것 같아요. 

오은: 보통 단편집의 제목을 정할 때 수록된 단편 중 하나를 표제작으로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여기에서는 『어쩌면 스무 번』이 됐어요. 어떻게 결정한 것인가요? 

편혜영: ‘어쩌면’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이 소설집에 좀 어울리겠다라고 생각했는데요. 뭔가 불확실하거나 짐작하고 추측할 때 쓰는 부사잖아요.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겪는 상황이 대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알아가야 하는 어떤 과정이고요. 그런 점이 ‘어쩌면’이라는 부사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은: 소설 전반에는 아주 작은 균열이 결국 파국이 되어버리는 순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 사건들을 대하는 인물들의 심리적인 변화, 태도에서 작가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좀 드러나는 것도 같은데요. 편혜영이 놓지 못하는 주제랄까, 끝까지 관심을 기울일 이야기에 대한 단서가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편혜영: 저는 소설을 쓸 때, 지진에 비유하자면 강진처럼 아주 크나큰 지진이 일어나 모두가 다 노골적인 파국을 맞는 이야기보다는 아주 미약한 여진 같은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흔들렸는지 의심도 하게 되고, 나는 안 흔들렸다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방금 되게 흔들렸다고 말하면 ‘흔들렸나보다’ 하고 마음이 약해지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에요.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미세하게 계속 흔들림을 주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것 같아요.

오은: 그런데요, 소설 속 인물들은 왜 이렇게 투자를 하는 걸까요?(웃음) 

편혜영: 제가 아마 주식을 안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소설 속의 인물들이 다 주식으로 ‘폭망’한 사람들이잖아요.(웃음) 주식 필망의 생각이 너무 강해서 그렇게 쓰게 된 것 같아요. 실제로 투자를 해봤으면 인물들한테 잘하게 만들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잘 안 됐고요. 하지만 그 인물들도 뭔가를 하려고 했던, 최소한의 시도로서 주식이나 투자를 했던 거고요. 그게 실패하고 만 거라고 생각해요.

오은: 작가님 소설을 읽고 나면 약간 개운하지 않은 느낌도 있어요. 완벽하게 이 국면이 해결된 건지, 저 사건이 해소된 건지, 감정이 다 끝난 건지 생각하게 되고요. 어쩐지 나머지가 있어서 나를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사건의 전말이 다 드러나지 않게 하는 이유도 있을까요?

편혜영: 의도라기보다는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명확하게 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이라든가 인물의 마음이 작용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인과가 작용하잖아요. 그런데 작가로서도 그 여러 인과 중 일부만 알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인과가 선명한 소설은 잘 안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오은: 사실 사건의 인과보다는 그 사건 현장의 생생함 그리고 거기에 발 담그고 있는 인물들의 감정선 같은 것들이 뾰족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개운하진 않지만 다음 사건이 있을 것이기에 이 생은 조금 더 유예되겠구나 라는 안심도 하게 되는 것 같고요.

편혜영: 제가 노골적으로 인물들의 대사로 전달하거나 상황을 보여주는 것보다 독자분들이 훨씬 더 많이 상상력을 발휘해 봐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인물의 내면에 더 독자분들이 좀 다가가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오은: 소설가로서 내가 지향하고 있는 바를 담고 있다거나 나를 글 쓰는 상태로 만들어주는 그런 문장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편혜영: 책상 앞에 유일하게 붙여 놓은 문장인데요. 카프카의 『소송』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모든 걸 진실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고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면 돼’라는 문장이거든요. ‘K’라는 인물이 말한 문장인데요. 그 문장을 볼 때마다 소설은 모두 각자의 진실을 담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요. 그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적어뒀습니다.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편혜영: 오래 전 출간되었다가 다시 번역이 되어서 나온 책이에요. 팀 오브라이언의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이라는 소설입니다. ‘섬과달’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나와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연작 형태로 된 소설인데 거의 모든 소설이 감탄을 일으킬 정도로 좋아요. 삶의 진실이라는 게 뭔지, 소설의 진실이라는 게 뭔지,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해서 여러 번 읽은 책입니다. 독자 분들도 꼭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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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스무 번
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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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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