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헌 “느린 독서가 필요한 이유가 있어요”
『마음챙김의 인문학』
길이 안 보일 때, 오히려 길은 과거에 있을 수 있거든요. 미래지향적으로 가고 싶다면 과거의 지혜를 현대식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21.03.09)
“<논어>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예요. 옛것을 익혀서 그것을 현대적으로 잘 해석할 수 있으면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공자가 이야기하죠.” 임자헌 저자는 말했다. 『마음챙김의 인문학』이 전하는 의미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에 담긴 옛 선현들의 문장은 지나간 시간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통찰과 삶의 지혜를 전한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주위에 휩쓸리지 않으며, 진정 중요한 가치들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40편의 명문을 통해 일깨워준다.
임자헌 저자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고, 잠시 미술 잡지 기자로 일하던 중 한학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일성록> 번역을 시작으로 전문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현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위원으로 활동하며 <조선왕조실록> 현대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시민을 위한 조선사』, 『銘, 사물에 새긴 선비의 마음』 등이 있다.
목차를 보면 계절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렇게 구성하신 이유가 있나요?
시간에 쫓기지 말라고요. 우리는 생각보다 계절에 맞춰서 생각을 많이 해요. 계절마다 풍경이 바뀌고 달마다 일이 바뀌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생각을 하게 되죠. 옛 선현들이 그 계절을 어떻게 살았고 어떤 지혜를 가지고 있었는지, 거기에 기대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도움을 받으면 좋잖아요.
첫 꼭지에서 정도전의 시(題樵?圖, 나무꾼이 나무하는 그림을 보고 짓다)를 소개하셨어요. 덧붙여 말씀하시길, 우리는 항상 ‘급한 일’을 처리하는 데 급급해서 ‘중요한 일’은 뒤로 미뤄둔다고 하셨죠.
제가 그렇게 느껴서 그런 말을 했을 거예요. 만약 제가 급하게 공부를 했다면, 빨리 논문을 써야 되는 상황이었다든지, 그랬다면 한문이 이렇게 맛있고 옛글들이 이렇게 예쁘다는 생각을 잘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뒤늦게 한문을 공부하면서 내놓을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는 시간들을 오래 지나다 보니까 한문을 볼 수 있는 실력이 쌓였고 ‘사람들이 말하는 시간대로 살지 않아도 꼭 틀린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20대 후반에 한문 공부를 시작하셨죠. 그 시기에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고전의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우리가 굉장히 케케묵은 이야기를 말할 때 ‘공자 왈, 맹자 왈’이라고 하잖아요(웃음). 그런데 <논어>, <맹자>를 배워보니까 그렇지 않은 거예요. 하나도 케케묵지 않은 거죠. <논어>를 읽으면서 공자가 굉장히 합리적이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인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저는 공부를 늦게 시작했잖아요. 그때 공자와 맹자가 좋았던 게, 목표를 위해서 달려가지 않아요. ‘네가 할 일을 다 해, 이루는 건 하늘에 달려있는 거야’라고 말하죠. 그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늦게 공부를 시작할 때 ‘지금 이걸 시작해서 뭘 할 건지’, 그런 생각 없었거든요(웃음). 그냥 내용이 좋으니까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한문에서 만난 세계는 ‘네가 지금 충실하게 하고 있으면, 그리고 계속 충실하게 하면, 어디론가 갈 것이고 그 결과는 하늘이 만들어주는 것이지 네가 만드는 게 아니다’라는 거였어요.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죠.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셨고, 졸업 후에는 미술 잡지 기자로 일하셨어요. 지금은 고전 번역을 하고 계시고요. 진로를 변경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시나 봐요.
책에도 썼지만 제가 요즘 사람들한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성실(誠實)’이거든요. 우리는 외부의 평가로 성실함을 이야기하는데 ‘성(誠)’이라는 개념은 나에게서 먼저 시작되는 거예요. 나에게 진실한 것, 나에게 충실한 것. 나에게 진정성을 갖고 산다는 것은 순간순간 나에게 필요한 걸 선택하게 되는 거죠. 외부에서 평가하는 ‘성(誠)’에 맞추려면 나를 점점 마모시켜가야 하는 거예요. 유학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誠)’을 이야기해요. ‘어떻게 인생을 볼 것인가’에 대한 방향의 전환이 되게 중요한 거죠. 외부에 성실에 나를 맞추면 ‘doing(실행)’이 중심이 되는 삶이잖아요. 그러나 나에게 성실한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being(존재)’이 중심이 되는 거죠. 한문을 공부하면서 ‘관점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면 어떤 일을 해도 의미 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군자를 버린 논어』를 출간하셨을 때, 한 기사에서 “논어에서 엄숙주의를 벗겨낸 발칙한 번역가”라고 표현했더라고요. 이번 책에서도 엄숙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신 것 같아요.
그렇죠. 저는 대학에서 한문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가학(家學)을 받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저한테 엄숙주의가 없어요.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재밌다, 되게 현대적인 분들이구나’라고 느끼면서 한문에 흥미를 느꼈어요. 처음부터 수업에 너무 열정적으로 덤비지도 않았고, 들을 만큼 듣고 졸만큼 졸고 쉴 만큼 쉬면서 했어요. 그러면서 스스로 ‘이 점은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선생님이 되게 괜찮은 해석을 말씀해주시면 적어놓고 ‘아, 이렇게 볼 수 있구나’ 생각했고, 그런 게 재밌었어요. 닫힌 사고로 생각할 필요가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그 분들에게 직접 다가가서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고, 혼자 이야기도 만들어 보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훨씬 재밌었어요.
『마음챙김의 인문학』을 읽다 보면, 고전이 쓰인 과거와 우리의 현재가 맞닿는 지점들을 많이 발견하게 돼요.
제가 논어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이거든요. 옛것을 익혀서 그것을 현대적으로 잘 해석할 수 있으면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공자가 이야기하죠. 공자가 살던 때나 그 이전이나, 우리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지금이나, 인간의 기본 조건은 바뀐 게 없어요. 밥 안 먹으면 배고프고, 잠 안 자면 죽을 것 같고, 곁에 사람이 없으면 외롭고, 많이 있으면 짜증나고... 똑같아요. 그래서 과거의 지혜는 지금도 유효할 수밖에 없죠. 그때의 표현이나 도구들로 인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만 현대적으로 윤색해주면 지금하고 바로 연결될 수 있는 거예요. 길이 안 보일 때, 오히려 길은 과거에 있을 수 있거든요. 미래지향적으로 가고 싶다면 과거의 지혜를 현대식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에 실린 선현들의 문장 중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나무 심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54세의 나이에 해송(海松)을 심었던 황린(黃璘)의 일화예요. 그 이야기도 좋고요. 젊은 세대들이 공부하기 전에 반드시 읽었으면 하는 글은 율곡 이이의 ‘뜻 세우기(立志, 입지)’예요. 공부를 왜 하는가,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뜻을 세웠으면 자신의 나쁜 습관을 주체적으로 바로잡아야 세운 뜻을 밀고 나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고요. 그런 사람이라면 김득신의 ‘읽은 책의 횟수를 기록해봄(讀數記, 독수기)’가 크게 도움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 글을 읽으면서 지금도 많이 부끄럽거든요. 너무 쉽게 ‘나는 못하겠어’라고 이야기하는데 만 번은 시도해보고 하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기 원한다면 그런 집요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공부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셨을 텐데, 답을 찾으셨나요?
답을 찾아가기 위해서 이 많은 공부를 하는 거죠(웃음). 사실 책을 쓸 때마다 저를 제일 많이 돌아봐요. 나는 써도 되는 사람인가, 헛소리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타인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나는 그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제가 쓰는 글이 어떤 사람이 되자거나 어떤 세상을 만들자고 설득하는 글이다 보니 ‘그렇다면 내가 그런 인생을 살지 못하면 안 되지 않나’ 하는 고민을 되게 많이 해요. 그리고 ‘너의 시간의 소중함을 봐, 너의 존재를 주체적으로 보고 네 존재에 알차게 살아’라고 말했는데 저는 세상을 쫓아가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저도 순간순간 그러거든요(웃음). 그래서 공부를 계속 해나가는 게 ‘다른 세상을 살아야지’ 하고 나 자신을 설득하는 시간이에요.
허초희의 작품도 실려 있는데요. 고전을 공부하면서 여성 작가의 작품을 보시는 경우가 거의 없잖아요. 거기에서 느끼는 답답함이나 갈증이 있으실 것 같아요.
‘그런 시대였으니까, 그래서 아팠겠구나’ 싶죠. 저는 여성 작가나 유학자들뿐만 아니라 서얼, 천민들을 다 같이 봐요. 여성 운동이 나아가야 하는 바 또한 여자의 위치 상승이 아니고 약자의 위치 상승이겠죠. 허초희의 시를 푸는 것도, 여자로 보는 것보다는, 그가 시대의 약자였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약자를 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허초희의 시를 골랐어요.
조선 유학자들의 독서에 대해 쓰신 부분이 있습니다. ‘정말 느린 독서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하기도 하셨는데요.
공자의 제자 중에 ‘자로’가 있는데, 제가 되게 좋아하는 제자예요. 자로는 하나를 듣고 그걸 실행하지 못했으면 다음번 가르침을 듣는 걸 두려워했다고 해요. 저는 그렇게 엄격한 학생은 본 적이 없어요. 지식을 쌓는 독서는 굉장히 빠르겠죠. 하지만 나를 돌아보고, 삶을 돌아보고, 타인을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면서 그 작가에게 질문을 건네고, 답을 듣고, 나의 답을 생각해본다면 그건 당연히 느린 독서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게 느린 독서를 하고 나면 정말로 그 책을 ‘읽은’ 게 되겠죠. 살아있는 독서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읽고 나면 그 책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있겠죠.
책에 실린 마지막 글에서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해 쓰셨는데 “안정된 상태에서는 판을 흔들 수 없지만 이미 흔들리는 판에서는 새 질서를 기획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언제나 판이 흔들리면 변화가 오죠. 대신에 각오가 단단히 돼있어야죠.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이고 지구는 늘 변해요. 확정적인 건 아무것도 없죠. 그런데 기묘하게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해요. 그래서 언제나 변화가 멈추기만을 바라죠. 변화에 뛰어들 생각은 잘 안 하거든요. 그런데 변화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조금 적극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사회도 지금 이대로가 가장 아름다운 사회가 아니잖아요. 어디론가 가야 되는데,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갈까를 생각해 봐야죠. 지금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변화가 시작됐다면 빨리 그 흐름을 보고 앞에 지도를 그려보는 게 훨씬 효율적인 일이잖아요. 인문학의 힘은 ‘꿈꾸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임자헌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잠시 미술 잡지 기자로 일하던 중, 우연히 접한 한학의 매력에 빠져 진로를 바꾸었다.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상임연구부를 거쳐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성록》 번역을 시작으로 전문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조선왕조실록》 현대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옛 문헌 속에서 지내면서 자연스레 과거와 현재의 공통점과 간극을 읽게 되었고, 옛글들이 그 외투가 낡았을 뿐 내용은 얼마든지 오늘과 소통할 수 있는 생기발랄한 것들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때문에 ‘지금-여기’의 문제에 대해 과거가 줄 수 있는 지혜의 가능성을 열심히 모색해가고 있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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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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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연하지 말아라.’ 삶이란 잠시 깃들어 살다 가는 것이고 그사이 겪는 모든 것도 잠시 깃들다 떠나갈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 생 자체는 하늘이 내린 것, 한결같은 하늘이 우리에게 한결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했다. 그러니 우리 삶은 이 땅에 잠시 기숙해 살다 가는 것 일지라도 하늘이 내린 우리 마음, 우리 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