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이번 소설은 독자에게 쓰는 손편지”
신작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출간
30년 동안 써왔던 글에 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혼자 있었지만 문학 속에서 가장 깊이 있었던 시간이기도 하다. (2021.03.05)
2015년 표절 사건 이후 칩거에 들어갔던 신경숙이 장편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펴냈다. 지난 3월 3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복귀를 공식 선언한 신경숙은 “젊은 날, 나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발등에 찍힌 쇠스랑을 내려다보는 심정으로 지냈다. 내 작품을 따라 읽은 독자들을 생각하면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듯 가슴이 미어졌다”며, “다시 한 번 나의 부주의함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신경숙은 단편소설 「전설」에서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일부 대목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활동을 중단한 바 있다.
신작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신경숙의 여덟 번째 장편으로 단행본으로는 8년 만이다. 2020년 6월부터 6개월간 <매거진 창비>에서 연재한 작품을 수정, 보완한 작품으로 여성 작가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자리’를 그린 소설이다. 신경숙은 “오래된 집에 혼자 남게 된 아버지를 돌보러 간 딸의 시선으로 쓰인 작품이다. 아무런 이름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버지에 관해 썼다. 아버지들을 향한 서사시로 읽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창비 출판사의 주관으로 진행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신경숙 작가는 독자들에게 두 차례 사과의 뜻을 전하며, “작가이기 때문에 작품을 쓰는 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작품 활동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표명했다.
8년 만에 신작이다. 출판사에서 사전서평단을 모집했는데 1시간만에 마감이 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독자 한 분 한 분께 드리는 편지라는 심정을 갖고 쓴 작품이다. 내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매일 생각했다. 심중의 말을 정확히 다 표현할 수 없기에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이기 때문에 작품을 계속 쓰면서 독자분들께 드린 실망을 갚아나가고 싶다.
활동을 중단한 6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했다. 우선 일상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30여년간 써온 내 글에 관한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해봤다. 혼자 있었지만 문학 속에서 가장 깊이 있었던 시간이었고 쓰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작가의 작품들을 부지런히 찾아 읽었다. 이런 시간들이 내게는 다시 새롭게 나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문학은 내 인생을 살아가는 알리바이 같은 것이다.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마음이다.
이번 소설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국내 여성 작가가 ‘아버지’에 관해 쓴 소설은 많지 않았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부모님이 시골에 계셔서 형제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부모님을 뵈러 간다. 가족끼리 메신저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쓰곤 하는데, 이상하게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쓰는데 아빠에 관한 이야기는 서툴다는 걸 느꼈다. 이름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사신 분들, 더구나 대한민국의 어려운 현대사를 통과한 아버지들은 “내가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들의 심중에 들어 있는 말이 있을 텐데, 그 말들을 찾아내고 싶은 작가적 욕망이 생겼다.
또한 오래 전 베를린에 머물 때, 동행인의 안내로 유대 박물관을 갔었다. 「낙엽」이라는 작품을 보았는데, 쇠로 된 얼굴을 2만 개쯤 바닥에 깔아놓고 그 길을 걸어가는 체험을 했다. 처음에는 큰 생각 없이 발을 디뎠는데 찌그덕 거리는 소리가 비명소리처럼 들렸고, 집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격변의 시대를 겪은 아버지의 고통을 듣는 느낌이었다. 그때 아버지의 이야기를 언젠가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독자들이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어떻게 읽어주면 좋을까? 아버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아마도 기존의 작품들에서 봤던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아닐 거다. 다정하고 외로운, 자기 원칙이 있는, 평생 걸고 빚을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소설 속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아버지의 내밀한 부분들에 집중한 소설이다. 아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처 듣지 못하고 놓쳤던 내면들을 깊게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썼다. 하나의 아버지로 묶을 수 없는, 하나하나 개별자인 존재론적인 시각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싶었다.
소설 속 화자가 딸을 잃은 것과 2015년 (표절) 사건이 연관이 있나?
작품에 나오는 딸의 죽음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대비할 수 없는 상실을 의미한다. 어떤 기습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예기치 않게 불행이 닥칠 수 있는데, 이 불행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의 문제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나로서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대비할 수 없는 깊은 상실을 상징하는 것이 딸의 죽음이었다.
작가의 말에 ‘이제는 다른 이야기로 건너가고 싶다’고 썼다. 앞으로의 계획은?
그동안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못 보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쓸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는데, 이번 소설을 쓰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노동자의 하루와 죽음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작품에 대해 여러 생각이 있지만 아직 작품을 쓰지 않아서 말을 아껴두고 싶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안타깝고 그리운 마음을 전한다. 독자들은 나에게 대자연 같은 의미다. 어느 시점, 또 다른 곳에서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만나면, 오랫동안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던 말이라고 여겨주시면 좋겠다. 이 어려운 시간을 잘 극복해서 새로운 어떤 시절에 가닿는 시간으로 만드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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