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칭찬은 진짜 좋은 것 같아요 (G. 요조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174회)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지금 제 옆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참 좋아하는, 최근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과 싱글 <모과나무>를 동시에 발표하신 요조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1.02.10)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눈빛으로, 손짓으로, 온몸을 동원해 더듬거리며 ‘좋아한다’, ‘날씨가 좋다’, ‘맛있다’, ‘기쁘다’ 같은 정말 필요한 말만을 주고받고 있으면 내 언어의 방바닥을 먼지 없이 물걸레질한 듯한 기분이 든다. 뿐만 아니라 그런 대화를 나눌 때의 얼굴도 좋아한다. 경청의 한계를 알면서도 넘어서려 하는 얼굴. 이해를 다 하지 못한 게 분명한데도 절대 이 대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결연함으로 반짝거리는 눈빛은 아마도 인간이 지닌 최고의 아름다움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요조 작가님의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서 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집중하는 사람, 곰곰 생각하는 사람. 요조 작가님을 생각하면 어딘가를 응시하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 시선에 ‘경청의 한계를 알면서도 넘어서려 하는 얼굴’ 같은 것이 포착되곤 하는 것이겠지요. 작가님의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는 요조라는 필터를 거친 매력적인 세계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정갈해지는 기분을 주는 책이에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요조 작가님을 모십니다.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고, 또 달리기를 하는 이 멋있는 창작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세요.
오은: 1월 25일에 싱글 <모과나무>와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 동시에 나왔어요. 곡을 쓰는 것과 책을 쓰는 것에는 다른 몸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요조: 말씀처럼 진짜 다른 몸이 요구되는 것 같아요.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모드를 전환하면서는 덜컥 덜컥, 하기는 했던 것 같고요. 지금도 걱정이 태산입니다.(웃음)
오은: 저는 요조 작가님의 글과 음악을 따라 읽고, 들었던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저의 베스트는 『아무튼, 떡볶이』였는데요. 이번에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으로 바뀌었어요. 『아무튼, 떡볶이』를 보면서 문장에 담긴 감칠맛, 문장에 스며든 요조만의 색깔이 질투가 날 정도로 좋았는데요. 이번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요조의 개성과 세계를 엿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어요.
요조: 업데이트 됐나요? 와.(웃음)
오은: 요조를 작가이자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을 텐데요. 작가님은 사실 뮤지션 정체성이 가장 강하다고 말씀하시곤 해요. 음악을 할 때 정말 나답다고 느끼시는 건가요?
요조: 그런 것 같아요. 아무리 서울에서 일하고, 서울에서 생활해도 부산이 고향이 사람은 부산에 가는 순간 원래 내가 있었던 곳에 왔다는 기분을 느끼잖아요. 저도 매일 음악하고, 매일 노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곡이라는 것을 쓰고, 노래라는 것을 할 때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구나’ 하는, 고향에 온 사람이 느낄 법한 기분을 느끼고요. 이번에 작업할 때도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오은: 이제 작가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뮤지션, 작가, ‘책방 무사’의 대표. 본명 신수진. 음악을 사랑하는 부모님과 살았다. 기타가 악기보다는 가구처럼 느껴지는 집에서 산울림, 유재하, 김정호, 장사익 등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어릴 적 꿈은 뽑기장수였고, 학창시절 별명은 ‘신드렁이’였다. 매사 심드렁했다. 살면서 그 태도가 멋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때는 체력장에서 오래 매달리기 만점 받는 애들을 비웃는 사람이었다. 스무 살 무렵 읽은 『인간실격』의 주인공 ‘오바 요조’에게서 자신이 갖고 있던 부끄러운 어떤 면을 발견한 신수진. 그때부터 요조라는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했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 음반의 가이드 보컬을 했다. 요조는 자신이 부른 ‘허밍어반스테레오’의 <바나나 쉐이크>, <샐러드 기념일> 등을 도넛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들었고, 손님들의 “노래 좋다”는 이야기에 뮤지션이 돼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007년 ‘요조’라는 예명으로 정식 데뷔했다. 글에 대한 사랑은 ‘싸이월드’ 시절부터이고, 대학 다닐 때 친구가 별로 없어서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간 덕분에 ‘독서인간’이 됐다. 단어 욕심이 있다. 힘들거나 우울할 때는 소설가의 작법서를 읽으며 위안을 얻곤 한다. 완독한 책을 기록해두는데 그 목록에 시집은 없다. 책 앞에서는 늘 안달이 나서 한숨을 쉰다. 요즘은 김정선식 독서법을 하는데 책을 다 읽으면 첫 문장을 읽으며 마무리 하는 방식이다.
싫어하는 건 비, 고수, 공포영화, 시간낭비. 좋아하는 건 주성치, 떡볶이, 맥주, 아름다운 문장, 공항, 햇빛, 후줄근한 색들, 울다가 웃어버리는 순간들. 장조림은,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는데 엄마는 장조림을 그의 최애 반찬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를 은근히 좋아하는 변태적 기질의 소유자. 아무리 신나도 겉으로 티가 나는 법이 없는 쑥스럼쟁이. 죄책감 없이 동물을 좋아하고 싶어 채식을 하는 사람. 종로 일대를 아주 아주 좋아하는 종로적 인간. 노래방 애창곡은 아유미의 <큐티 허니>다. 아주 또박또박 잠꼬대를 하는 특이한 잠버릇이 있다. 따뜻한 사람이 아니지만 따뜻한 사람이기 위해서 엄청 노력한다. 언젠가 찍어보고 싶은 CF는 ‘야나두’이다.” 이 가운데 정정할 내용이 있을까요?
요조: 다 사실입니다.
오은: 책에도 시집을 다 읽는 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하시면서 완독한 책 목록에 시집은 없다고 하셨죠.
요조: 비단 시뿐 아니라 에세이, 소설, 영화도 그런데요. 한 번 본 뒤 다시 보면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분명히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 중에서도 시는 다른 장르에 비해 길이도 짧고, 함축적이다 보니까 읽을 때마다 다르다는 감각이 훨씬 더 강하게 오는 것 같아요. 실은 어제도 송승언 시인의 『사랑과 교육』을 다시 읽는데 너무 깜짝 놀랐어요. 처음에 읽었을 때는 분명히 느끼지 못했던 느낌을 받았거든요. 처음 읽은 사람처럼(웃음) ‘너무 좋네’ 하면서 읽었어요. 시는 그런 점이 정말 매력인 것 같아요.
오은: 이번에는 작가님께서 직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 어떤 책인지 설명해주세요.
요조: 저의 산문집이고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제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쓴 산문을 차곡차곡 모아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이라는 물성을 준비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책이 되는 두께가 완성되는 데에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 셈이에요.
오은: 지금의 제목을 결정하게 된 데에는 박연준 시인의 시 「음악에 부침」이 영향을 주었잖아요. 그 시에는 ‘실패’ 대신 ‘패배’가 들어가긴 하지만요. 책 머리에 고마움을 표하기도 하셨는데요.
요조: 처음 박연준 시인의 시집에서 그 시를 읽었을 때는 읽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시인께 문자를 보냈었어요. ‘저한테 친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최근에 찾아보니 그 문자를 보낸 게 2018년이더라고요. 그때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친구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었고요.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는 그 시에서 한 구절을 가져온 거죠. 제목 허락을 받으면서도 너무 벅찬 기분이었어요. 진짜 오랫동안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있던 친구를 내 책의 제목으로까지 쓴다는 것에 대한 벅참이 컸죠.
오은: 책을 읽으면서 동료의 힘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보통은 어떤 인물을 이니셜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아무튼, 떡볶이』부터는 고유명사인 이름을 다 등장시키고 계시세요. 부모님 성함도 마찬가지고요. 이유가 궁금해요.
요조: 왜 굳이 본명을 쓸까, 생각하면 자랑하고 싶어서인 것 같아요. 유명한 사람이건 부모님이나 친구처럼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는 못하는 사람이건 어쨌든 나한테는 똑같이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니까요.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걸 이니셜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의 이름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은: ‘나는 나의 남은 인생을 내 주변의 멋진 사람들을 흉내 내면서 살고 싶다’는 글도 있죠.
요조: 저는 정말 옆에 같이 지내는 사람들을 기웃거리면서 ‘저건 나도 꼭 흉내 내서 따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수시로 해요.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특별히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제가 어떻게 살고 싶다고 하는, 저도 모르는 저의 신조가 타인을 통해서 좀 더 유난스럽게 보일 때 ‘맞아, 저렇게 사는 게 내가 살고 싶어하는 삶에 딱 맞아’ 하면서 흉내 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밖에도 아무 맥락도 없는데 재미있고 신나 보이면 그냥 재미 삼아서 흉내 내기도 하고 그래요.(웃음)
오은: 이쯤에서 낭독을 청해보려고 합니다. 예전에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작가로서 지향하는 글에 대해 “잘 읽혔으면 한다. 재미있었으면 한다. 아름다웠으면 한다.”라고 밝혔어요.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서 그런 글을 꼽아 낭독해주시면 어떨까요?
요조: 그런 글이 너무 많아서요.(웃음) 고르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렵게 하나 골랐습니다.
나는 복잡한 아픔들에 주로 모른다는 말로 안전하게 대처해왔다. 빼어나고 노련하게, 그리고 예의 바르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손사래도 치고. 뒷걸음질도 친다. 그 와중에 김완이나 고승욱 같은 사람은 모르는 채로 가까이 다가간다. 복잡한 아픔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알아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손을 내민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96쪽)
오은: 음악으로 활동을 시작하셨지만 이제는 발매한 앨범보다 출간된 책이 더 많아진 시기를 보내고 계셔요. 작가로서 ‘이럴 때 글 쓰기를 참 잘했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나요?
요조: 얼마 전에 글을 왜 쓸까,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같은 질문을 박상영 작가님께 여쭈었더니 “억울함 때문인 것 같아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멋있었는데요. 저는 그냥 칭찬 받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 글이 좋다는 칭찬이 너무 좋아서 쓰기 시작했던 게 여기까지 온 거란 생각이 들고요. 칭찬은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먼저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조: 이미 사랑 받고 있는 책인데요. 그럼에도 또 한 번 강력추천을 하고 싶어요. 김소영 작가님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추천합니다. 너무 인기 많은 책의 그늘이라는 게 있는 것 같거든요. 너무 인기가 많으니까 오히려 안 읽게 되는 경우도 왕왕 생기는 것 같고요. 노래도 너무 인기가 많아서 잘 듣지 않게 되는 경우도 생겨요. 만약 『어린이라는 세계』를 너무 인기가 많아서 어쩐지 손이 안 간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책에 손을 한 번 가져가 보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은: 아울러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 인기가 너무 많은 것 같다고 하더라도 구입해서 읽으시면 분명히 좋아하실 거란 말씀도 덧붙이고 싶네요.
요조: 제 마음의 소리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웃음)
오은: 두 번째 질문,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 한 권 있다면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으세요?
요조: 딱 한 권 있다면 아무한테도 선물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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