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매거진 『에픽』 편집위원들에게 묻다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신개념 서사 중심 문학잡지
문학의 범주를 문학-비문학 혹은, 소설-비소설로 구분하는 관습적인 분류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에픽』의 가장 큰 의도입니다. (2020.11.06)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문예지 『에픽』이 창간됐다. '에픽(epic)'이라는 단어는, 명사로는 '서사시, 서사 문학', 형용사로는 '웅대한, 영웅적인, 대규모의, 뛰어난, 커다란, 광범위한' 같은 뜻을 지녔다. 이 'epic'의 모음 'i'에 'i' 하나를 덧붙였다. 이야기란, 서사란, 하나의 내[i]가 다른 나[i]와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생겨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픽』은 바로 이 두 겹의 세계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이야기를 모았다. 제목 그대로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나 벌어지는 화학 작용을 다루는 이너 내러티브 'i i'를 시작으로, 전통적인 의미의 서사인 픽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져 온 크리에이티브 논픽션(creative nonfiction)을 두루 다루고자 한다. 이 논픽션에는 르포르타주(reportage), 메모어(memoir), 구술록(oral history) 같은 여러 세부 장르가 포함된다.
문학 안에서 논픽션을 다루는 『에픽』을 만드는 문지혁 작가, 차경희 고요서사 대표, 임현 작가, 정지향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에픽』이 창간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언제부터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작년 가을 무렵 첫 편집회의를 시작으로 약 1년가량 준비했습니다. 새로운 형식의 서사 중심 문예지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는데요. 서사를 소재로써 다루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현장감 있는 주변의 이야기,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목소리가 되어주는 이야기, 특히 기존의 문학장에서 잘 다뤄지지 못했던 사소하지만 ‘가까운’ 이야기들을 『에픽』에서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다른 문예지들과의 차별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문학의 범주를 문학-비문학 혹은, 소설-비소설로 구분하는 관습적인 분류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에픽』의 가장 큰 의도입니다. 이를 위해서 신작 단편소설을 소개하는 ‘픽션’ 코너와 함께, 다른 문예지들과 달리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라는 코너를 무게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은 ‘서사성을 강조한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정도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누군가의 실제 경험이나 체험, 사회적인 현상이나 사건 등을 재구성하여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읽을 수 있도록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더불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이어줄 버추얼 에세이 ‘if i’와 ‘1 1 리뷰’도 준비했습니다. 특히, ‘1 1 리뷰’에서는 한 편의 픽션과 더불어, 함께 읽으면 좋을 논픽션이 소개됩니다. 무엇보다 누구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에픽』의 독자는 말 그대로 『에픽』의 예비 저자인 셈이지요. 독자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다양한 체험이나 관점을 함께 말하는 잡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 레이아웃이 시원시원합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인가요?
『에픽』은 이야기라는 형식과 서사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가독성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최소화하고자 했습니다. 우선은 활자 자체에서 글을 읽거나 내용을 파악하는 데 무리가 없어야 했고, 각 파트마다의 구분이 뚜렷하게 제시되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눈에 띄고 세련된 디자인도 놓쳐서는 안 되겠지요. 함께 『에픽』을 준비하신 송윤형 디자이너님께서 이 부분을 멋지게 해결해주신 것 같습니다.
긴 호흡으로 읽는 글들이 많이 실렸습니다. 작은 꼭지보다 긴 분량의 글들을 실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은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를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감성이나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기존 에세이와의 차별성, 전문적인 비평이나 학술적 성격의 연구물과는 다른 문학적 가치로서 논픽션 문학이 가진 정확성과 사실성 등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너무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게 느껴져야 했거든요. 한국문학을 읽는 독자들에게 비교적 익숙한 형식인 단편소설의 분량과 구성 등이 여기에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내용상의 논픽션을 형식상의 단편소설로서 읽는 셈이지요. 최근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영화의 편집이나 연출을 닮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용상의 ‘정확한 사실’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형식상의 변화로 극의 몰입이나 흥미를 유발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을 투고할 수 있는데요. 물론 픽션도요. 일반 독자들도 투고가 가능한 건가요?
물론입니다. 누구의 이야기, 어떤 목소리라도 환영합니다. 해서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투고란을 열어두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논픽션과 픽션 모두 200자 원고지 기준 80매 이상의 미발표 신작 원고면 누구든 투고가 가능합니다. 논픽션의 경우, 르포르타주, 메모어(회고록), 평전, 구술록, 여행기, 역사 등 분야와 관계없이 서사를 갖춘 작품이면 됩니다. 작품은 언제든 『에픽』이메일([email protected])로 보내주시면 되고요.
주요 타깃 독자층은 누구인가요?
누구보다 한국 문학의 확장과 다양성을 바라는 독자들이 되겠지요. 더불어, 올리버 색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김민섭과 같은 저자들을 즐겁게 읽는 분들이거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죽은 자의 집 청소』,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등을 이미 재미있게 읽은 분들이라면, 아마 『에픽』의 이야기에도 같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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