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화 “영화책방 주인의 인생 영화 뭐냐고요?”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이미화 저자 인터뷰
영화의 매력은 끝이 있다는 것. 주인공이 어떤 시련을 겪든 러닝 타임 안에는 끝이 나기 마련이니 나의 이 구질구질한 상황도, 우울한 시기도 결국엔 끝이 날 거라는 위안을 주거든요. (2020.10.22)
영화를 곁에 두고 글을 쓰는 사람, 책과 영화를 잇는 공간을 꾸리는 사람, 이미화의 세 번째 에세이.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마다 마음의 소리를 들여다보게 해주고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마다 다시 일어나게 해준 27편의 인생 영화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준다.
책에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마다 빙 돌아가는 길만 골라서 택하는 사람의 느리지만 단단한 성장기가 담겨 있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던 학창 시절을 지나, 인생 최초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예술대로의 전과를 택한 이후의 이야기.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퇴사하고 진짜 원하는 무언가를 찾고 싶어 선택한 곳 베를린에서 꿈과 현실 차이를 제대로 느끼며 좌절했던 기억. 마음의 중심에 두고 살고 싶은 ‘영화’를 찾아 한국으로 돌아온 후 영화책방의 주인이 되기까지. 어른이 된 이후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영화에 기대서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천천히 찾아왔다는 이미화 작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꿈에 멀어지지 않는 삶을 위해 매일 조금씩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를 꼭 닮은 영화들과 함께 펼쳐진다.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살면서 겪었던 일들 생각했던 것들과 맞닿아 있는 영화들을 소개하는 영화 에세이입니다. 이 책에는 27편의 영화들이 담겨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제 취향의 영화들이지만 잔잔하고 대사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영화들을 주로 담았습니다.
두 번째 책에 이어서 세 번째 책도 영화 에세이를 출간하셨는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영화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영화의 매력은 끝이 있다는 것. 주인공이 어떤 시련을 겪든 러닝 타임 안에는 끝이 나기 마련이니 나의 이 구질구질한 상황도, 우울한 시기도 결국엔 끝이 날 거라는 위안을 주거든요. 물론 제 인생은 두 시간 안에 끝나지 않고 나는 실수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인간이기에 이 지난하고 뻔한 서사는 매번 반복될 테지만, 불행에도 끝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조금은 견딜 만해진답니다.
‘가까운 길도 빙 돌아가거나 길을 찾는 데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을 낭비할 정도로 방향에 약하다. 삶의 방향도 마찬가지.’라는 소개가 인상적입니다. 그렇게 빙 돌아오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한 가지에 매달리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이 길이 안 돼? 그럼 옆길로 가지 뭐.’의 마인드로 살다 보니 오히려 힘 빼고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수많은 영화 중에서도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27편의 영화를 고른 작가님만의 기준이 있을까요?
엄격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보거나 글을 읽는 사람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만한 영화를 선택하는 편이에요. 극적으로 꿈을 이루거나 화해하는 결말보다는 평범한 주인공이 포기나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든 얻게 되는 것들을 보여주는 영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평소 영화를 볼 때 마음에 들어온 영화 대사를 적어두신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님이 그동안 기록해둔 대사 중 인생 명대사를 하나만 고른다면? 그 이유는?
“가게 문을 닫는 건 용감한 일이야. 감히 다른 인생을 상상해보려 하고 있잖아. 지금은 그렇게 안 느껴지겠지. 실패했다고 생각될 거야. 하지만 아니야. 넌 지금 미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고 있거든. 빈손으로 말이야.”
최근에 본 영화 <유브갓메일>에 등장하는 대사인데요. 2년간 운영해오던 영화책방을 닫는 제게 사적인서점 정지혜 대표님이 추천해준 영화예요.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궁금증이 생기게 해주는 대사라서 종종 떠올린답니다.
부동의 1위는 영화 <와일드>의 “문제는 그저 문제로 남지 않는단다. 다른 것으로 바뀌지.” 예요. 어떤 문제에 닥칠 때마다 이 대사를 떠올려요. 이 문제도 곧 다른 것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승리합니다!
홈 시네마가 대세인데요. 작가님이 추천하는 방구석 영화관 필수 아이템이 있을까요? (추천하는 빔프로젝터 기종이라든지(혹은 본인 쓰시는 것), 영화 볼 때 꼭 곁에 두는 술이나 팝콘 등등)
OTT가 내장되어 있는 빔프로젝터라면 무엇이든 추천합니다. 제가 쓰는 건 LG 시네빔이에요. 넷플릭스, 왓챠, 유투브, 티빙 등 애플리케이션이 내장되어 있어서 인터넷만 있으면 바로 영화관이 됩니다. 영화관에서는 영화만 집중해서 보는 편이지만 집에서라면 텀블러에 얼음을 가득 넣고 따른 맥주가 필수죠. 하리보 곰젤리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지금까지의 작가님의 인생을 영화로 찍는다면 어떤 장르, 어떤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라면 좋을까요?
<프란시스 하> 같은 영화면 좋겠어요. 무용에 재능은 없지만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다가 현실적으로 진로를 변경하는, 그래서 두 번째 목표였던 ‘내 집 마련’은 해내는 프란시스처럼, 첫 번째 꿈은 이루지 못하더라도 두 번째 목표 정도는 이루면서 사는 씩씩한 주인공이 되고 싶어요. 없는 재능에 매달리지 않고 있는 재능으로 인정받으며 현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꿈꾸는 주인공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미화 가까운 길도 빙 돌아가거나 길을 찾는 데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을 낭비할 정도로 방향에 약하다. 삶의 방향도 마찬가지. 그럴 때마다 내비게이션이 되어준 건 영화였다. 회사를 그만둘 때, 베를린으로 떠날 때, 다시 돌아와 책방 문을 열 때도, 영화는 내게 인생에 여러 갈래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물론 그 길엔 아스팔트 대신 자갈밭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계속 걸어갈 수 있었던 건 나처럼 평범하고 지질한, 영화 속 등장인물들 덕분이었다. 베를린에서 보낸 시간을 담은 에세이 『베를린 다이어리』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촬영지를 기록한 영화 여행 에세이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을 썼다. 현재 영화와 책을 잇는 영화책방35mm를 운영하며,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영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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