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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예상 못 한 순간에 찾아오는 위로에 대하여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49회) 『희한한 위로』,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 『무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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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 삼천포책방입니다. (2020. 08. 20)


예상 못 한 순간에 찾아오는 위로에 대하여 『희한한 위로』, 이것은 왜 순정이 아니란 말인가!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 마음이 복잡할 때 명상하듯 읽으면 좋은 책 『무경계』를 준비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희한한 위로』

강세형 저 | 수오서재



강세형 작가님은 첫 책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로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이후에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나를, 의심한다』『시간은 이야기가 된다』를 쓰셨습니다. 이번 책은 3년 만에 나온 에세이고요.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시작이 독특해요.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에 나는 진심으로 위로받아본 적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가끔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을 듣고 화날 때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 상대가 내 상황과 마음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되는 거죠. 그래서 내가 조언을 해주는 입장이 돼도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게 무책임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데요. 작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하는 이야기가, 작가가 이전 책에서 힘들고 아픈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의외로 위로받았다고 말하는 독자들이 많았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고 하는데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위로라는 게 예상치 못한 경로와 방식으로 오기도 하는 것 같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어쩌면 위로는 작정하고 내뱉어진 의도된 말보다 엉뚱하고 희한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 본인이 위로를 받았던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지난 몇 년 동안 작가님이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고 해요. 진행하던 일이 어그러지기도 하고, 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고, 가족들도 아프고, 그리고 작가님도 오랫동안 통증을 앓았어요. 예를 들면 구내염이 동시에 여러 개가 생기는 거예요. 원인을 알 수 없이 허벅지 같은 곳이 아프기도 하고. 그런데 병원에 가도 원인을 못 찾는 거예요.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그렇다, 피곤해서 그렇다, 이런 말만 듣게 됐는데 계속 들으니까 답답함을 넘어서 ‘내가 내 몸을 잘 돌보지 않아서 이런 건가?’라는 생각도 드는 거죠. 그러다가 6년이 지난 후에 한 병원에서 ‘(작가의) 몸 안에 어떤 유전인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돼요. 베체트 환자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유전인자가 몸 안에 있다고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위로를 받았대요. ‘내가 몸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일을 잘 배분하지 못해서, 몸을 혹사시켜서 이런 건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었던 거예요. 이렇게 위로는 굉장히 독특한, 우리가 생각지도 못 한 순간에 생각도 못한 방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거죠.


단호박의 선택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

전혜진 저 | 구픽



부제부터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강경옥의 『별빛속에』, 김진의 『푸른 포에닉스』부터 서문다미의 『END』를 거쳐 천계영의 『좋아하면 울리는』까지 1987년~2020년까지 한국 대표 순정만화를 통해 고요하지만 굵직한 SF의 계보를 찾는다.”

전혜진 작가가 2016년에 부천만화박물관에서 열린 ‘소녀, 순정을 그리다’라는 전시를 보러 갔었다고 하는데요. 1980년대부터 1990년대의 순정만화까지는 너무 전시가 잘 돼 있고, 2000년부터 2015년의 로맨스 웹툰까지도 전시가 돼 있는데, 1990년에서 2005년까지가 이상하게 비어있었대요. 전혜진 작가님도 워낙 순정만화를 좋아하셨고 만화 스토리작가로 활약하셨기 때문에 ‘이건 약간 잃어버린 10년 같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 당시에 신일숙의 『에시리쟈르』나 황미나의 『레드문』 같은 작품들이 나왔는데 전시에 없는 거예요. 그런 작품들은 ‘순정만화를 넘어선’ 같은 표현을 받아 가면서 제외됐던 거죠. 이제 ‘순정’이라는 말이 거의 ‘여류’랑 같은 비하의 의미가 된 거예요. 그래서 순정만화의 계보에서 『레드문』 같은 작품은 ‘순정이라고 하기엔 작품이 더 뛰어나다’라는 식으로 배제시킴으로써 오히려 그 작품들을 비하하는 결론이 나는 거죠. 그래서 전혜진 작가님은 “씩씩한 소녀가 명도가 높은 머리색의 온미남과 흑발 냉미남을 옆구리에 끼고 연애하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묶어서 배제할 때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순정이다”라고 쓰고 있어요. 순정만화의 오랜 독자로서 너무 억울한 거죠. 그래서 ‘너무 억울하다, 이대로 놔두면 역사에서 사라져버리고 그냥 잊힐 거다, 이렇게 걸작들이 많이 나온 시대가 있고 이렇게 엄청난 SF의 계보가 있는데, 그걸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하다니 너무 억울해’ 생각하다가 ‘잠깐, 그러면 나라도 써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국 SF의 엄연한 계보이고 순정만화가 이뤄온 성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은 1부부터 7부까지 나누어져 있는데요. 1부의 제목은 ‘우주를 무대로 인간을 생각한다’이고 우주가 무대가 된 순정만화를 다뤄요. 2부는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 여자들의 서사가 순정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가를 이야기해요. 3부는 ‘만들어 낸 인간의 권리를 묻는다’예요. 안드로이드가 나타난 순정만화는 어떤 식으로 SF를 그렸는가 살펴봐요. 4부는 ‘SF 속 종교의 이미지’인데요. 종교적 모티프들이 강한 작품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고요. 6부에서는 ‘대체 역사와 시간 여행자들’, 7부에서는 ‘미래의 풍경들’로 나누어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톨콩(김하나)의 선택

『무경계』

켄 윌버 저 | 정신세계사



부제는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 대해서 말씀드렸던 적이 있어요. 저에게 영향을 많이 끼쳤던 책이라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제가 몇 주에 걸쳐 말씀을 드렸지만 요즘 아주 불안하고 수면장애를 많이 겪고 있는 시기예요. 

그런데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통화하면서 서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의식의 기원』이라는 책을 본 거예요. 줄리언 제인스가 쓴 1976년에 나온 책인데, 대충 훑어봤더니 저의 취향을 너무 강타하는 책이었던 거죠. 부제가 ‘옛 인류는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였어요. 그 책을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내용은 뭐냐 하면, 고대 문헌 같은 걸 보면 ‘자아’, ‘나의 마음’이라고 하는 게 아직 형성되기 전의 것들이 있다는 거예요. ‘신의 음성을 듣고 그는 진격했다’는 게 나와 있을 때 우리는 그걸 은유라고 생각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은유 이전에 자아라고 하는 게 형성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는 거죠. ‘의식이라고 하는 게 발달되기 전에 인간의 삶이 어땠을까’를 아주 획기적인 주장으로 하나하나 뒷받침하는 책이었어요. 고고의 문헌이나 건축을 해석하는 박력 있는 논지, 그것을 증명해나가는 쾌감 같은 게 제 취향을 강타하면서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그런데 이 책에 영향을 받은 책이, 예전에 저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던 『무경계』라는 거죠. 그래서 연계독서로 『의식의 기원』을 읽고 나서 『무경계』로 넘어가서 다시 한번 읽었어요. 이 책은 십여 년 전에 읽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어도 참 재밌더라고요. 부제에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이라고 나와 있듯이 동서양의 종교 경전들을 다 망라한 내용들이 이 책에 논거로 차곡차곡 들어가 있는데요. 그걸 읽는 게 너무 쾌감이 있어요. 저자의 주장에 점점 설득이 되어가기도 하고요. 

이 책은 저자 켄 윌버가 스물세 살에 학업을 중단하고 갑자기 엄청난 독서와 함께 집대성해서 쓴 거예요. 『의식의 기원』이라는 책과 연계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야기를 종교적인 말들과 함께 담아내고 있어요. 

책에 실린 표를 보면, 제일 위에는 ‘페르소나 수준’이라는 게 있고 그 밑에는 ‘자아 수준’, ‘켄타우로스 수준’,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합일 의식’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옛날 사람들은 아래쪽 단계에 더 가까웠던 거죠. 켄타우로스는 반인반마잖아요. 켄타우로스 시기라고 하는 것은 마음과 신체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를 명명한 거예요. 그러다가 점점 더 시간이 지나고 점점 자아가 분화되면서 마음과 몸도 함께 있는 게 아니라 따로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경계를 짓고 그 경계에 맞춰서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경계의 면을 따라서 투쟁이 생긴다는 거예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지향하는 게 쉽지는 않죠, 하지만 우리가 깨달음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무경계’라고 하는 것이 가장 끝에 있는 이상 같은 것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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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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