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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멜라 “알 수 없음에서 시작한 첫 소설”

소설집 『적어도 두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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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알 수 없음’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해서 알지 못하는 것부터,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음’이 남아 있는 상태요.(2020. 07. 30)


김멜라 작가의 첫 소설집 『적어도 두 번』이 출간되었다. “풍부한 현실 감각과 강렬한 생명력의 매개자”라는 평을 받고 등장한 작가는 연이어 문제작을 발표해오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김멜라 작가는 소수자에 대한 한국문학의 새로운 감수성을 여실히 드러내며 일상 곳곳에서 퀴어적 생활과 퀴어적 정동, 퀴어적 삶의 방식과 인식을 발견하고 창출하는 시도가 매혹적이다. 아울러, 『적어도 두 번』은 여성이 겪는 삶과 여성들의 연대를 때론 얼음 같은 문장으로 때론 유쾌하고 무구한 시선으로 들려준다. 우리가 어떤 목소리에만 익숙한지 되돌아보게 하고, 어떤 새로운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넌지시 일러준다. 여기 한국문학에 새롭고 낯선 목소리가, 김멜라의 소설이 지금 도착했다.



소설집에 있는 소설 중 가장 애착이 가거나 기억에 내내 남을 것 같은 소설은 무엇인지요?

「호르몬을 춰줘요」에 마음이 가요. 아이가 등장하는 소설을 좋아하거든요. 소설 속 ‘도림’은 13살이지만 더 어린 친구가 화자인 소설을 쓰고 싶어요. 아이의 말투와 느낌이 담기고 아이의 사고 흐름대로 흘러가는 소설이요. 조금 산만하거나 논리에 안 맞더라도 그 시기의 생각과 느낌이 깃든 글을 좋아해요. 저란 사람을 돌이켜보면 9살에 했던 생각을 지금도 하는 것 같고요. 그때 세상을 향해 느꼈던 낯설고 두려운 마음을 잃지 않고 싶어요. 「호르몬을 춰줘요」에는 마치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날 것의 말과 생각이 삐죽빼죽 튀어나와 있어 그 느낌이 좋아요. 

작가의 말을 보면 이 소설들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한번 설명해보려고 한 시도들”이라고 서술합니다. 작가님이 소설들을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가 궁금해요. 착상과 쓰기를 이어나가는 방식이랄까요.

음, 동어반복이지만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저는 ‘알 수 없음’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해서 알지 못하는 것부터,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음’이 남아 있는 상태요. 언젠가 지인이 비 내리는 모습을 보며 이런 말을 했어요. 수증기가 올라가 구름이 되는 과정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비 오는 걸 보면 신비한 마음이 든다고요. 그런 마음과 비슷하달까요. 소설을 쓸 때도 인물이나 이야기의 알 수 없는 지점에서 시작해요. 정보가 부족해서, 왜곡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모름이 아니라 투명하게 드러난 상태에서도 도대체 왜 그러한 일이 발생했는지, 혹은 왜 그 사람이 그렇게 했는지, 조금 더 나아간다면, 우리는 왜 존재하는 것인지, 그런 근원적인 ‘알 수 없음’들이요. 그 알 수 없음을 오래 고민한 후에 비교적 명확한 것들을 그려나가요.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상태를 잘 설명하는 소설이 되었으면 해서요.

표제작의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적어도 두 번’이라는 말은 소설에서 한 번 등장하는데, 작중 이테의 말이죠. “적어도 두 번은 해보고 싶다고 했죠.” 그 표현과 제목이 된 맥락이 독특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를 제목으로 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목을 여러 번 바꿨어요. 소설마다 단번에 제목을 정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두 번」은 더 고민한 것 같아요. 소설에서 수동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테’가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목이라 쓰면서도 그 구절이 좋았어요. “적어도 두 번은 해보고 싶다”는 말 외에도 이테는 맛있는 떡볶이집을 알려주거나 별자리 궁합이 잘 맞는다는 이야기도 하죠. 그런 솔직하고 명랑한 모습이 소설의 타이틀이 되었으면 했어요. ‘적어도 두 번’이란 말이 여러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일반적인 표현이기도 하고요. 동시에 자기의 요구나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말이라 쉽게 입 밖으로 내기 어렵기도 하죠. 소설 속 다른 성인들의 말보다 ‘적어도’라는 최소 조건을 가진 십 대의 말에 더 의미를 두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적어도 두 번」의 진짜 주인공은 이테라고 생각했기에 이테가 하는 말을 제목으로 쓰고 싶었고요. 

소설집에 주로 앞에 수록된 소설들(「호르몬을 춰줘요」 「적어도 두 번」)과 뒤에 수록된 소설들(「스프링클러」 「홍이」)의 결이 조금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관련해서 말씀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개인의 내면에 중심을 둔 소설과 관계나 사건에 중심을 둔 소설이 있는 것 같아요. 「호르몬을 춰줘요」와 「적어도 두 번」은 자기의 정체성을 독백의 형식으로 풀어놓는다면 「스프링클러」와 「홍이」는 가족이나 사회에 얽힌 사건을 조금은 거리를 두고 서술해가죠. 두 방식 모두 저에게 필요한 듯해요. 「호르몬을 춰줘요」와 「적어도 두 번」은 제 안에 있는 것들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면 「스프링클러」와 「홍이」는 읽는 사람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여러 번 고쳐 썼어요. 여전히 더 고치고 싶기도 하고요. 제 개인 성향이나 방식에 몰입해 쓰다 보면 제 안에 갇히는 때도 있어서 「스프링클러」와 「홍이」처럼 어떤 목표점을 두고 쓰는 것도 저에게 필요한 방식이 아닌가 해요. 

작품들을 읽고 작가님이 좋아하는 텍스트나 영상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자서전이나 평전 읽는 것을 좋아해요. 어릴 땐 가장 싫어하는 책이 위인전이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선 스스로 찾아 읽어요. 훌륭하거나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만이 아닌 소박하게 자기의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나 악인의 삶이 담긴 책도요. 처음 자서전을 읽기 시작한 건 절박해서였어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남들은 어떻게 사는 거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았던 걸까. 그런 질문이 끝없이 밀려들 때 자서전과 평전을 읽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 그런 말을 물어보면 상대의 표정이 굳어지거나 대답을 망설이곤 하거든요. 때론 실례가 되는 질문이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에게 묻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책에서 찾는 것 같아요. 소설이 좋은 이유는 허구의 인물, 허구의 이야기라 제가 마음껏 숨 쉬고 상상할 수 있지만 실제 저의 삶에서는 어떤 지침이나 방향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나보다 먼저 산 사람, 실수와 시행착오를 반복했지만 자기 삶을 끝까지 살아낸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저도 살아갈 용기와 지혜를 얻어요. 자서전이나 평전을 고를 때 특정 직업군을 정해놓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기준이 있다면 되도록 죽은 사람의 책을 선택해요. 



해설에서 김건형 평론가는 “인간의 운명을 확정하지 않고 매일 각자의 수행성에서부터 세계를 설명해가는 퀴어적 인식론을 새로운 세계의 원리로 만든다”고 썼습니다. 많은 부분이 소설들은 퀴어적으로 읽힐 텐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혹은 어떻게 읽혔으면 하고 바라는 점은 있는지요?

운명을 확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각자의 수행성이란 표현에 공감해요. 좀 더 부연하면 자기 운명을 긴가민가하며 나아가는데 그런 수행의 과정에서 겪는 상처들을 또 수없이 겪어나간달까요.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 대면 화상을 입는다는 걸 자기 손을 대고 나서야 깨닫는 유형이요. 그런 면이 퀴어적 인식론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물질계」의 주인공은 뜨거운 주전자를 앞에 두고 거리를 재고 온도를 측정하며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죠. 하지만 통제의 한계에 다다라 주전자 위로 넘어졌고 그때 주전자의 열에 오히려 내면의 얼음이 녹을 수 있었어요. 운명의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간절함에 자신을 여는 것이랄까요. 소설들이 어떻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은 크게 없어요. 쓴 사람은 저이지만 읽는 분은 독자들이니까요. 다만 소설 속 인물들이 느끼는 어떤 흔들림이나 간절함을 특정 규정에 벗어난다고 해서 낙인찍지는 않았으면 해요.

작가님이 지금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게 무엇인지요? 어떤 소설을 쓰고 있고, 또 쓰고 싶은지, 앞으로는 또 어떤 소설을 쓰게 될 예감이 드는지요?

여행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현실의 장소나 시간이 아니라 미지의 시공간을 헤매는 이야기요. 어릴 때부터 현재보단 미래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도 그래요. 3~4년 뒤의 근미래. 그 정도로만 시간을 앞당겨도 낯설고 기묘해지는 것 같아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지금 같은 시대 상황을 떠올리기 힘들었으니까요. 같은 의미로 과거의 이야기에도 관심이 가요. 머리를 쉬게 하고 싶을 땐 ‘KBS 영상실록’을 보는데 1960년대 모습을 가만히 바라봐요. 흑백 화면에 성우가 들려주는 해설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누군가는 인간은 끊임없이 타락하고 세상은 나빠져만 간다고 말하지만 아주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인류는 분명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래된 필름을 보고 있으면 어렴풋하게 그런 믿음이 생겨요. 그 믿음으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고요. 



적어도 두 번
적어도 두 번
김멜라 저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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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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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두 번

<김멜라> 저11,7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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