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영 “죽음이라는 주제 아래의 콘셉트 앨범”
<어디로 가나요> 발매
과거에는 '나는 왜 스케일이 큰 곡, 밝은 곡,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곡을 쓰지 못할까' 하는 부담이 있었거든요. 많이 덜어내고자 했습니다.
쓸쓸한 목소리로 '기억상실'을 노래하던 2001년의 오소영, 2009년 차분한 목소리로 서정적인 세계를 노래하던 <A Tempo>의 오소영의 공통분모는 쓸쓸함, 고독, 우울, 절제 등의 단어였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20년, <어디로 가나요>의 오소영은 분명 달라졌다. 앙증맞은 일러스트의 앨범 커버 속 그는 애완묘 '순둥씨'와 함께 춤을 추며 앞으로 나아가고, 노래는 꾸밈없이 밝고 명랑하다. 그럼에도 깊고 섬세하다.
인터뷰에 참여한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배경을 모르고 들으면 음악 교과서에 실려도 될 음악이다!”라는 표현으로 베테랑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변화를 요약했다. 무더운 여름의 초입, 11년만의 새 정규작으로 돌아온 오소영은 밝은 햇살처럼 환한 미소로 긴 공백기, 그리고 오랜만의 세상 외출에 대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말해주었다.
앨범 발표 이후 기분은 어떤가.
홀가분해요. 작업한 지 굉장히 오래된 곡도 있었고, 전작이 나온 후로 시간도 많이 흘러서 어떻게든 세상 밖으로 내보고 싶었거든요.
말한 대로 2009년 <A Tempo> 이후 11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작이다. 긴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고싶다.
<기억상실>과 <A Tempo> 사이에도 8년의 간격이 있었죠. 그때는 음악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았어요. 하지만 이번 11년 동안은 음악을 해야겠다는 분명한 뜻이 있었어요. 활동을 많이 못할 때도 꾸준히 곡을 쓰면서 저를 갈고 닦는데 많이 노력했습니다.
긴 시간이 있었던 만큼 음악 팔레트 구축의 기간도 오래 걸렸을 테다. 음악은 어떻게 구상했나.
이번 앨범 전까지는 항상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모두 보여드리자'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어요. 이번 앨범은 다르죠. 특정한 주제 아래의 콘셉트 앨범을 의도했어요.
그 특정한 주제가 무엇인가.
'죽음'이었어요. 굉장히 무거운 주제고, 그 주제에 맞춰 쓴 곡들 중 몇 곡이 이번 앨범에 들어갔고 빠진 곡도 있어요. 곡을 배열하는 과정에서 박경환 프로듀서가 많은 도움을 줬죠. 전체적으로 처음 생각했던 맥락에서 어긋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죽음'은 기존 우리가 오소영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주제다. 하지만 앨범 단위로 감상했을 때 어둡다는 인상은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밝은 음악을 하자고 의도하진 않았어요. 제 자신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변했나.
마음이 굉장히 편해졌어요. 예민한 성격, 불편했던 것들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이 놓아줄 수 있게 되었고, 힘들었던 부분도 많이 내려놓게 되었어요. 비관적인 성격도 긍정적으로 많이 변했고요.
음악적인 측면에서 본인을 정의하는 방법도 달라졌을까.
지금은 '친밀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제 소망이기도 해요. 리스너 분들께서 들으셨을 때 친근하고 꾸미지않은, 친구의 편안한 노래를 듣는 것처럼 들어주셨으면 해요.
사실 <어디로 가나요>가 전체적으로 밝은 음악을 담고 있지만, 2번 트랙 '살아있었다'의 반전은 마냥 해맑은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원래 앨범의 주제였던 '죽음'과 관련된 노래죠. 한창 3집을 준비할 때, 우울한 마음도 많았고 삶이 힘들었던 순간에서 나온 곡이에요. 당시 인터넷에서 '극한직업'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는 업체의 이야기를 보고 있었어요. 그 중 한 사진이 눈에 강렬하게 들어왔어요. 보통 사진을 보면 옷가지나 유품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널브러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진만큼은 너무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는 거에요. '그 분은 어떤 마음이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제 이야기와 정서를 투영하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처절한 가사, 그럼에도 사운드는 그렇게 어둡지 않다. 프로듀서진과의 협의가 있었던 부분인가.
그렇지는 않아요. 이 곡 편곡은 저 혼자 했거든요.
그 다음 트랙 '멍멍멍'은 마지막 합창 부분이 인상적이다. 다만 더 웅장한 느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사람 모으기가 너무 어렵더군요. 저도 많은 분들이 한 데 모여 내는 더 큰 목소리를 담고자 했는데, 상황이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멍멍멍'은 개별 아티스트 한 분 한 분,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따로 녹음해서 한 데 모아 놓은 결과물이에요. 아쉽죠.
'즐거운 밤의 노래'는 정말 오랜만에 대중음악에서 들어보는 요들이다.
어린 시절 김홍철 씨가 항상 TV에 나오셨던 걸 보며 요들을 많이 따라 불렀어요. 공백 기간 동안 곡 쓰는 습관을 들이려고 하루에 한 곡 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나온 곡이에요. 당시에는 작업한 노래들을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하곤 했는데 그때 만든 노래가 '난 바보가 되었습니다', '떠나가지마', 그리고 '즐거운 밤의 노래'에요.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했던 결과물입니다.
다음 트랙은 앨범의 타이틀곡 '어디로 가나요'다. '도망쳐요'라는 표현이 인상적인데.
'어디로 가나요' 역시 힘들때 작업한 곡이에요. 앨범을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힘들때 만든 곡과 그렇지 않았을 때 쓴 곡의 차이가 커요. '어디로 가나요'는 힘든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들께 노래로 건네는 위로와 같은 곡이에요. '도망쳐요' 부분이 이 곡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어디로 가나요'는 물론 앨범 전체 반주와 편곡 역시 세련됐다.
작업할 때 세련되어야 하겠다, 이렇게 해야겠다 하며 의도하진 않았어요. 곡 작업할 때는 먼저 떠오르는 심상을 담고 미리 설계를 해둬요. '살아있었다'를 만들 때도 기타, 하모니카, 쉐이커 이렇게 있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 구상을 미리 하죠. '어디로 가나요' 역시 잔잔히 연주하지만 힘을 싣고자 했어요. 목소리와 기타 플레이가 앞에 나서는 것도 생각했죠. 그게 제 음악의 색이라 생각해요.
'떠나가지 마'의 메시지도 앨범에서 주요한 내용으로 들린다.
떠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붙잡고 싶지만 붙잡지 못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곡인데, 곡을 녹음할 땐 다른 심상으로 불렀던 것 같아요. 나에게 있는 어떤 것들이 모두 다 떠나가는 느낌, 그런 생각을 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난 바보가 됐습니다'은 트로트 곡이다.
어릴 적부터 트로트를 좋아했어요. 어머니께서 항상 집안일 하시며 트로트 부르시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있어요. 물론 20대 때 듣진 않았죠.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그 감성을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공연에서도 트로트 곡을 많이 불렀고요. '동백 아가씨', '봄날은 간다'… 앞으로도 기타를 치며 더 많은 트로트 곡을 시도해보려 해요.
9번 트랙 '난 알맹이가 없어'의 경우 앨범을 마무리하는 트랙이다. 전진 배치되었다면 어땠을까.
앞서 말씀드린 '죽음'의 주제대로 말씀드리면, 사실 이 앨범의 주인공은 1번 트랙에서 이미 죽었어요. 2번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고, 3번과 4번부터는 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구성을 의도했죠. 거슬러 올라가보는 진행인 거죠. '난 알맹이가 없어'는 계속 의문을 만드는 곡이에요. 사운드에 공백을 넣으면서 알맹이가 없는 느낌을 그대로 전하고자 했어요. 세상을 떠나기 전 내가 갖고 있던 희망, 사랑, 허무함 등 다양한 감정을 담고 싶었죠.
실제로 무게를 덜어낸 편안한 곡이다. 마치 1번 트랙에서 사망한 주인공이 현실을 천천히 돌아보고 난 후 미련 없이 훨훨 떠나려는 듯.
너무 멋진 설명인데요? 사실 이 곡은 제 음악하는 자세를 소개하는 노래이기도 해요. 과거에는 '나는 왜 스케일이 큰 곡, 밝은 곡,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곡을 쓰지 못할까' 하는 부담이 있었거든요. 많이 덜어내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마무리 메시지를 건네는 '그 사람'의 뜻은.
쭉 진행했던 내용을 정리하는 곡이죠. 노래의 분위기도 그렇고, 화자가 말하는 감정과 모든 것들이 한족에 치우치지 않고, 그리워하는 감정 그 자체에 오롯이 집중한 모습이에요. 뭔가를 더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기다림. 그 기다림이 '정리'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봤어요.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그럼에도 살아있고,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계속 이 자리에서 그리워하면서도, 기다리자. 이런 뜻을 담았어요.
앨범 작업하며 많이 들었던 앨범 혹은 아티스트가 있나.
평소에도 한국 인디 음악을 많이 들어요. 김사월 씨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김사월 X 김해원의 <비밀>도 많이 들었고요. 키라라도 많이 들어요.
한국 인디 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환경 덕인가, 혹은 예술적인 접근인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메인스트림 음악을 안 듣는 건 아니고요. 아이돌 음악도 좋아합니다. 3집 작업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케이팝 그룹은 레드벨벳이었어요. 'Bad boy'를 좋아해요.
전체적으로 앨범을 만들면서 '홀가분'하다는 감정을 내비쳤지만, 긴 시간 동안 작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장 힘이 된 존재가 있다면.
오래도록 저와 함께한 고양이 '순둥씨'에요. 지난해 8월 무지개 다리를 건넜는데 그 때 참 많은 감정이 북받쳐 올랐어요. 순둥씨가 나와 함께할 때의 기억들, 순둥씨가 내 곁을 떠나던 순간의 허무함, 이후 극복하려 하기도, 차오르는 감정을 받아내기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빈 자리가 생겼지만 다른 느낌이 차오른다고 할까요. 오히려 더 살고 싶고, 재미있게 지내고 싶고… 순둥씨가 제게 준 선물이에요.
*인스타그램 inspirace74님의 질문 : 차기작은 어떤 방향이 될까?
4집 앨범은 더욱 편안한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 노래는 슬플 때 같이 울어주는 노래들이었거든요. 3집에서 기존 스타일 반, 편안한 새 스타일 반을 담았다면 다음 작품에서는 더 밝은 노래를 담고 싶어요. 어쿠스틱 기타 연주 앨범도 내고 싶고요.
스스로 자신의 음악을 한 단어로 압축해본다면.
'이불'이라 말하고 싶어요. 덮어주고 싶은 마음의 음악.
<어디로 가나요>에 시인과 촌장 하덕규, 낯선 사람들의 고찬용, 어떤날 조동익 세 명의 레전드 아티스트들이 추천사를 남겨주었다. 이번 앨범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 동료, 혹은 선배의 찬사 혹은 묘사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며칠 전 5월 30일 단독 공연을 했어요. 그 때 찾아온 제 10년지기 친구들이 '이 앨범이 얼마나 좋은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어요. '종합선물세트'같다는 의견도 있었고, '언니의 모든 게 담겨있는 앨범이다'라는 말도 들었어요. 그 말들이 기억에 남네요. 저를 10년 넘게 바라봐 주고, 힘이 되어준 친구의 칭찬이니까요. 뮤지션 분들 중에선 코멘트 요청 드린 세 분의 말씀이 가장 인상적이었죠. 하덕규 선생님께선 '어디로 가나요' 싱글을 먼저 들어주시고, 박경환 씨에게 '너무 잘 들었다'는 칭찬을 남겨주셔서 더욱 좋았습니다.
선배 아티스트들 중 삶의 측면에서 롤 모델로 삼는 뮤지션이 있다면.
조동진 '형님'이에요. 어떤 것에 있어서도 벽을 두지 않았던 모습, 편견 없는 모습, 모두에게 공평하게 대하는 모습이 기억에 아직도 남아있어요. 최근 조동익, 장필순 선배님께서 앨범을 내신 것도 저에게는 너무 감사한 일이었어요. 하나음악에서 선배님들이 활동하시는 모습을 꾸준히 봐왔기에, 지금 활동하시는 모습이 제게 남다르게 다가왔어요. 그 분들께서 음악을 하신다는 사실 자체가 좋아요.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있다는 느낌도 들고요.
마지막으로 <어디로 가나요>를 듣는 모든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을 남겨달라.
오소영 3집 많이 사랑해주세요! 유튜브에서 오소영 '멍멍멍'을 검색하시면 사랑스러운 뮤직비디오도 보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음악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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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오소영, 어디로 가나요, 밝은 곡, 기억상실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