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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진“‘어른의 일’ 잘 하고 있나요?”

『어른의 일』 손혜진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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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하는 것보다 내가 하기로 하면 훨씬 재미있어요. 내 것이 되니까. 또 취향은 시작부터 능동적일 수 있는 어른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취향은 내가 움직이고 정의 내리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영역이니까요. (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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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돌이켜 보면 참 굴곡 없는 인생이었다.” 작가는 책을 시작하며 이렇게 말한다. 커다란 성공도 그렇다고 나락에 빠질 정도의 심각한 실패도 없이 ‘초중고대-취업연애결혼’이라는 공식이 내재화된 채 정신없이 살아왔을 뿐인데 어느덧 장성한 나이가 되었다고. 하지만 신체적 나이와 무관하게 ‘내가 정말 어른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어쩐지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이 책은 우리가 온전한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말해준다. 나를 먹여 살리는 일(출근), 내 살림을 챙기는 일(독립),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취향) 그리고 나를 반짝반짝하게 만드는 일(연애)이 그것이다.

 

어른이 되고 스스로에게 요구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생겨났고 그때마다 쓴 글들을 모아놓으니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이 책이 정답을 말해주는 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당신의 어른의 일은 무엇인가요?”를 질문하는 책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주제에 마음을 할퀴어 놓는 숱한 ‘어른의 일’의 힌트가 되어도 좋겠다. 오늘도 울퉁불퉁한 길을 걷고 있을 현대인들을 응원하며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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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른의 일』 은 독립출판으로 먼저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정식으로 출간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같은 팀 동료들이 ‘독립출판 책 만들기 워크숍’에 함께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가 책을 만들게 됐어요. 처음에 50권을 만들까 100권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큰맘 먹고 100권을 만들었어요. 친구와 동료들에게 팔고, 독립서점 2곳에 입고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인스타그램 DM으로 구매 문의가 오고, 독립서점에서 입고 문의가 오기도 하고요. 금방 100권이 다 나가고 이후로 100권, 200권씩 추가 인쇄하면서 꾸준히 판매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독립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가나출판사 편집자님이 제 책을 보셨고 책에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메시지가 왔어요. 책을 정식 출간하고 싶다고요.


제안이 왔을 때 제가 해외지사로 발령이 난 상황이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조금 망설였어요. 독립출판 『어른의 일』 은 90페이지 정도에 꼭지도 스무 개가 안 됐거든요. 정식 출간하려면 이보다 두 배는 더 써야 한다는데 그걸 언제 쓰나 싶었죠. 그런데 편집자님이 마음 편하게 천천히 해도 된다고 하셔서 덜컥 계약 먼저 해버렸어요. 계약하고 1년이 훨씬 더 지나서야 책이 나왔는데요. 천천히 써도 된다고 하셨던 편집자님도 제가 이렇게까지 천천히 쓸 줄은 아마 모르셨을 거 같아요.

 

제목이 ‘어른의 일’이고 부제가 ‘출근, 독립, 취향 그리고 연애’잖아요. 처음 어른의 일이란 제목과 부제를 정하신 배경이 궁금해요. 또 가장 최근에 “아 이것은 어른의 일이다.”라고 느꼈던 일이 있었나요?


정식 출간된 책에는 <나의 첫 집 구하기>로 제목이 바뀌었는데 그 꼭지의 원래 제목이 <어른의 일>이었어요. 독립을 준비하던 시기에 쓴 글인데 거기에 “겪어본 적도, 생각할 필요도 없었던 영역이라면 이건 과연 ‘어른의 일’이군”하는 문장이 나와요. 이 문장이 제가 써온 글들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겪어보지 못해서, 가지고 있던 내 상식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일을 만났을 때 주로 글을 썼더라고요. 그럼 ‘어른의 일’이라는 제목으로 다 묶이겠구나 싶어서 책 제목으로 썼어요. 부제는 나중에 붙였어요. 글들을 다시 비슷한 성격으로 모아보니 넷으로 나뉘더라고요. 회사나 일에 관련된 건 출근, 혼자 살게 되면서 생긴 일은 독립,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취향, 그리고 (이건 이견이 없을 것 같은데) 연애로요. 이 넷 말고도 어른의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많겠지만 제가 쓴 글들이 그 넷에 담겨서 부제로 쓰게 됐어요.

 

최근에 “아 이것은 어른의 일이다.”라고 느꼈던 일은 ‘이사’예요. 제가 작년 11월에 4년 동안 살던 집에서 이사했거든요. 개인이 하는 프로젝트 중에 ‘결혼’ 다음으로 복잡도가 높은 게 ‘이사’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결혼은 안 해봤지만, 보통의 결혼은 이사까지 포함하니까 비교해볼 필요도 없이 가장 쎈 어른의 일 같습니다.) 결정해야 할 것도 고려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아서요. 예를 들어 이사하고 커튼을 설치하는데 석 달이 걸렸어요. 커튼이 필요한가 고민하는데 한 달, 설치 방법을 고르는데 한 달, 커튼을 고르는데 한 달 정도 걸렸나 봐요.

 

책을 읽다가 출근을 좋아한다는 대목에서 살짝 놀랐어요. 월요병이 있을 만큼 직장인에게 출근은 스트레스받는 일 중 하나이고 퇴사를 권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요즘인데, 출근을 장려하는 느낌을 받았달까요?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웃음) 그렇게 쓰신 이유가 있을까요?

 

진짜 출근을 좋아해요. 이건 좀 성격인 거 같은데 학창 시절에도 학교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집에 있는 건 너무 심심했어요. 학교 가면 친구들도 있고, 새로운 것도 배우고 시간도 잘 가잖아요. 물론 저도 노는 거 좋아해요. 하지만 놀기만 하는 건 싫거든요. 노는 데도 월급을 주고 제 커리어가 쌓인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수는 없잖아요. 저는 제 몫의 일을 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게 좋아요. 일과 대가가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도 생길 수는 있지만, 회사라는 시스템이 굉장히 효율적인 면이 있거든요. 회사에서 제공하는 사무실, 책상, 의자, 노트북 이런 것들이 제가 혼자 마련한다고 생각하면 꽤 비싸요. 제가 하는 일의 규모도 그렇고요. 회사에서는 개인이라면 다룰 수 없는 예산을 집행할 기회가 있어요. 그러면서 경험하는 것도 많고요. 또 ‘이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어보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출근을 이어가는 동력이 됩니다.


물론 제가 운도 좋았던 거 같아요. 회사나 출근이 싫은 사람들도 가만 보면 일이 싫다기보다는 사람이 싫은 경우가 많은 거 같은데 저는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도 출근하기 싫어지면 이직을 하기도 하고요. 좋은 사람 만나러 가는데 월급도 주고 일도 배우고 성취감도 느끼고 그래서 저는 출근이 좋아요.

 

어른의 일 연애 파트에서 예순 번의 소개팅을 하고 난 감회와 소개팅 리뷰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엄청 공감하며 낄낄 웃다가 어느 순간 명치를 맞은 듯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도 있었어요. 경험이 쌓이면서 연애관도 변하잖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성숙하고 좋은 어른의 연애는 어떤 건지 궁금해요.


소개팅을 예순 번 했으니 소개팅 말고 다른 경로(?)로 스쳐 지나간 사람들까지 하면 얼마나 많겠어요. 저는 제가 연애를 안 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열심히 연애를 찾아다니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깨달은 게 인연이란 게 진짜 귀하다는 거예요. 시작은 가볍게 부담 없이 할 때 잘되고 그 관계의 성장은 소중함을 알고 귀하게 대할 때 잘 크는 거 같아요. 말하자면 매너랄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매너가 좋은 연애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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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먹여 살리고(출근), 내 살림을 챙기고(독립), 나를 나답게 만들고(취향), 나를 반짝반짝하게 하는 일(연애)들은 결국 ‘나’를 세심히 살피고 가꾸라는 의미 같아요. 탈색에 대한 에피소드나 하지(夏至)를 기념하는 에피소드도 뭐랄까. 굉장히 열정적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찾아서 해보는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어른의 일은 바꿔 말하면 나를 위한 일을 능동적으로 해보라는 뜻인 걸까요?


모든 어른의 일의 시작이 능동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난 어른의 일은 예상 못 한 일, 내가 통제하거나 계획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았거든요. 하지만 과정은 달라요. 과정은 능동적일 수 있죠. 남이 시켜서 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보다 내가 하기로 하면 훨씬 재미있어요. 내 것이 되니까. 또 취향은 시작부터 능동적일 수 있는 어른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취향은 내가 움직이고 정의 내리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영역이니까요.

 

남의 취향을 부러워한 적이 많아요. ‘와 저 사람은 언제 저걸 알게 됐을까? 어쩌다 좋아하게 됐을까? 어떻게 저런 깊이를 갖게 됐을까?’ 나만 취향이 없는 거 같고 그게 나의 심리적, 물질적 가난을 의미하는 거 같았어요. 이제는 조금 달라졌어요. 관심이 가면 일단 맛이라도 봐요. 그래서 맛있으면 더 먹는 거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좋아하는 영역이 생겨요. 그걸 사진을 찍거나 글로 써서 남기면 내 것이 돼요. SNS에 올리거나 주변에 소문내면 사람들도 알게 되죠. 그게 브랜딩인 거 같아요. 제 주변 사람들은 이제 하지(夏至)가 되면 저를 떠올리거든요.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것도 비용이라 시작이 쉽지는 않지만 맛보기 정도는 겁내지 않고 해보자. 그게 어른의 일 같아요.

 

어른의 일에 대한 인스타그램 후기를 보면 공감을 나타내는 독자 리뷰가 정말 많더라고요. 본문에 소개된 어른의 일 중 독자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에피소드는 어떤 것인가요?


연애 파트가 많은데요. <그 남자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예순 번 정도의 소개팅을 하고 나니> 같은 소개팅 에피소드들을 좋아하시더라고요. 원래 남 얘기 중에 연애 실패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잖아요. 연애담, 이별담은 많은데 소개팅담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참신하게 읽어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공감하는 포인트들이 최근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최근에 이별한 독자는 연애 에피소드에 공감하고, 최근에 독립한 독자는 독립 에피소드에 공감하고요. 다양한 부분에서 공감을 해주셔서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같은 걸로 반응을 검색할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울퉁불퉁한 길을 걷고 있을 어른의 일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려요. 또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해요.


제 책이 독자님들의 울퉁불퉁한 길의 길잡이까지는 아니더라도 길벗쯤은 됐으면 좋겠어요. 길벗이 있으면 재잘재잘 수다 떠는 것만으로도 심심하지 않고 또 서로 힘도 되잖아요. 저한테 글은 쓰면서 위로도 받고 복잡한 머릿속도 정리시켜 주는 좋은 친구인데요. 독자님들도 울퉁불퉁한 길을 걸을 때마다 글을 써보시는 것을 추천해요. 그러면 제 책보다 훨씬 좋은 길벗이 생길 거예요.


앞으로의 계획은 계속해서 출근 잘하고, 꾸준히 글을 쓰는 거예요. 오랫동안 출근할 수 있으려면 무얼 해야 할까를 생각했는데 나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저는 ‘글’을 나만의 콘텐츠로 만들고 싶어요. 아직 모자라지만 계속하다 보면 ‘손혜진의 콘텐츠는 글이다’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 손혜진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 국문학과 창작을 전공했지만 소설가가 되지는 못했다. 글 쓰는 일과 가까운 줄 알고 광고대행사 AE로 일을 시작해 ‘펜타브리드’와 ‘포스트비주얼’에서 일했다. 2017년부터 ‘우아한형제들’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며 배민 신춘 문예,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 TVCF 캠페인 등을 담당 했다.

 

지금까지는 회사를 그만두고 캐나다 밴쿠버에서 영어공부를 했던 1년과 해외사업부에 지원해 베트남 사이공에 머물렀던 1년이 평범한 인생에서 가장 특이한 일이었다. 이제는 책을 낸 일이 가장 특이한 일이 될 것 같다. 흥과 호기심이 많다. 힘들 땐 글을 쓰고, 기쁠 땐 먹는다. 독립출판물 『어른의 일』과 『김밥의 미래』를 만들었다.

 

 

 



 

 

어른의 일 손혜진 저 | 가나출판사
스스로 ‘이렇게 어른이 되는 건가?’ 싶었던 순간과 '과연 어른의 일이군!' 하고 깨달았던 시간을 담았다. 누군가 읽어주길 기대하면서 썼지만 아는 사람이 읽을까 숨기기 바빴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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