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사로 살펴본 ‘소수자 여성’ 이야기
『나는 숨지 않는다』 세상에 가려지기보다 세상을 바꾸기로 선택한 11명의 이야기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궁금했어요. 특히, 사회적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집단화되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삶이요. (2020. 03. 12)
박희정 / 유해정 / 이호연
차별과 혐오가 들끓는 사회에서 약자는 언제나 타깃이 되었다. 배제의 대상이 되거나 쌓여 있던 사회구조적 분노를 몰아 받는 총알받이가 되거나. 『나는 숨지 않는다』 는 ‘피해자, 소수자’라는 사회의 시선에 저항하며 ‘주체자’ ‘행위자’로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간 이들의 구술기록이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회비평 에세이이다. 소수자를 차별하는 가장 무서운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선 긋고 타자화하거나,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 박희정, 유해정, 이호연은 인권기록활동가로서 차별받는 자, 저항하는 자를 직접 찾아가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을 해왔다. 그들에게 약자의 말하기란 “우리 사회를 성찰하고 변화하게 하는 힘”이다. 세 사람은 더욱 활발한 인권활동을 위해 ‘인권기록센터 사이’를 만들었고, 이 책은 약자의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 각각의 분투를 기록하고 사유거리를 이끌어낸 ‘사이’의 첫 책이다. 『나는 숨지 않는다』 에 등장하는 11명은 한부모 여성가장이거나 스쿨미투 당사자이거나 홈리스 여성, 탈북여성, 장애여성 등이다. 사회는 이들을 경계에 내몰지만, 이들은 모두 닥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세상에 대항하고 협상하며 길을 만든다. 동시에 ‘자기 자신’부터 변화시키며, 생생한 목소리로 주류사회가 삭제한 이야기를 과감하고 명랑하게 폭로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충격적이고 도전적인 자극과 함께 묵직한 질문을 받게 된다.
세 분이 구술기록활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는데요, 구술기록활동가가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호연: 제가 기록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2009년 용산참사입니다. 당시 저는 인권활동가로서 인권실태조사를 하면서 기록 활동을 만났고 공동작업으로 『여기 사람이 있다』 책을 같이 썼습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청소년 인권, 빈곤, 재난참사에 대한 기록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희정: 저는 초고압송전탑 반대운동을 하는 밀양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밀양을 살다』 ) 구술 기록 활동을 시작했어요.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만나는 과정이라서 참 좋았습니다.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폭력과 억압과 차별을 해소하려는 운동에 함께하고 싶었고요.
유해정: 인권활동을 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경력단절 여성이 되었어요. 깊은 우울의 시간을 보내다 시작하게 된 작업이 『밀양을 살다』 였어요. 시댁이 밀양이라 늘 밀양에 가면서도 정작 송전탑 문제로 싸우고 있는 주민들을 만날 기회는 없었는데, 작업 시작하고 밀양을 도둑고양이처럼 드나들었죠. 기록하는 일이 삶의 지향이라면, 대학에서 강의하고, 대학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일이 생업이죠. 재난참사, 국가폭력, 사회적 치유를 공부하는 연구자이기도 해요.
홈리스여성, 한부모 여성가장, 장애여성 등 7가지 주제로 고루 다룬 점이 흥미롭습니다. ‘여성의 말하기란 이런 것이다’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7가지 주제 선정과 11명 구술자 선정의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궁금했어요. 특히, 사회적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집단화되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삶이요. 그래서 머리를 맞대어 흔히 쉽게 알고 있다고 ‘예단’하는 삶, 존재는 알지만 ‘낯선’ 삶, 기존의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삶들을 찾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중증 장애를 가진 여성, 이혼여성이었고, 젊은 탈북여성과 여성노숙인, 조현병을 가진 엄마였고, 탈가정 청소년과 스쿨미투 청소년이었던 것 같아요. 주제를 정하고 이야기를 잘 해줄 사람들을 찾았지만 딱 ‘그 사람’으로 누군가를 특정한 건 아니었어요.
인연과 우연으로 인터뷰이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정말 놀라웠던 건 모든 인터뷰이들이 보여준 삶의 역동성과 주체성이었어요. 정말 어디서 저런 저력이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인터뷰이들이 매력적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한 세계를 만나는가에 따라, 삶은 저렇게 깊고도 너울지며 다양하구나를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동시에 삶에서 필요한 것은 개인의 결단보다는 그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관계와 조건이라는 점이었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 책에 구술자 인터뷰마다 에세이를 적게 된 것 같아요. 좀 더 깊이 있게, 관계와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뉴스에서 접하는 ‘소수자 여성’의 이야기와, 이렇게 구술사로 살펴보는 ‘소수자 여성’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보통 우리가 뉴스에서 만나게 되는 ‘소수자 여성’은 불쌍하고 안타까운 이미지로 그려지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싸우는 전사의 모습으로 이분화되곤 하는데 어떤 삶도 예를 들어 ‘흑과 백’처럼 명확하게 구분되거나 단순하진 않잖아요? 그래서 뉴스는 장면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사건 중심이라면, 우리가 하는 기록은 삶의 맥락에서 연결된 사건의 위치를 살피고 의미화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개인의 삶에 더 깊이 귀 기울이면서 그가 경험했던 사건, 정체성들이 그의 삶에서 어떻게 펼쳐졌고,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다 찬찬히 듣는 거죠. 듣다보면 세상에 고유하지 않은 삶이란, 아름답지 않는 삶이란 없다는 것을 여러 측면에서 깨닫게 됩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 특히 다양한 정체성으로 고정화된 소수자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 규범, 관계들의 촘촘한 그물망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정말 놀라운 건 우리가 만난 모든 분들이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이 그물망을 끊어내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무엇이 이 힘들의 근원이었는지 더욱 귀를 쫑긋 세워 듣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소수자에 대한/관한 이야기이기보다는, 세상에 저항하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낸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책에는 싣지 못했지만 추가로 다뤄보고 싶은 여성 서사라면 무엇인가요? 또 우리 사회에서 ‘더 들어야 할 목소리’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희가 하는 기록 작업은 지금 이 시기에 어떤 목소리가 가시화되어야 하는지를 질문하고 찾는 일입니다. 여기서 ‘어떤’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도 있지만 메시지를 전하는 이유를 포함하고 있어요. 들어야 할 목소리가 정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전할 이유를 찾는 것인데 이것은 지금의 사회 변화를 읽고 사람들의 고정된 감각을 바꾸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은 아직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회에 틈을 만들어 목소리가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일 때도 있고, 고정된 메시지를 바꾸기 위해 기존의 서사를 바꾸는 시도일 때도 있습니다. 목소리가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여성 서사의 전형성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고민하면서 기존에 깨야 할 서사의 전형성은 무엇인지를 세심하게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고민 속에서 진행 중인 기록이 있습니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말의 세계에 감금된 여성’들의 서사를 국가보안법이라는 주제로 살펴보는 구술 책의 출판도 준비 중입니다.
한국에서 자신의 가게를 차린 20대 탈북여성 얘기도 흥미롭고, 스쿨미투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5명 학생들 얘기도 감명 깊습니다. 책에 실린 11명 중에 가장 섭외하기 어려웠다거나 인터뷰하기 어려웠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스쿨미투 활동을 하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이야기는 처음에 집단인터뷰를 하고 이후에 개별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섭외는 어렵지 않았는데 여러 사람이라 인터뷰 시간과 글의 구성, 글 쓰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주제입니다. 20대 탈북여성과 홈리스여성은 인터뷰이 섭외가 조금 어려웠어요. 다른 구술자들은 기록자들이 인권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인데, 탈북여성과 홈리스여성은 주제를 먼저 잡고 구술자를 찾아야 했거든요. 탈북여성의 경우 처음에는 몇 차례 인터뷰를 거절당했는데, 가명을 써도 자기를 드러내기 부담스럽다는 이유였습니다. 책에 실린 ‘제시킴’(Jessie Kim)은 북한인권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는데, 제시 역시 처음에는 자기를 드러내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고 해요. 한국사회에서 탈북자를 보는 편견 때문이죠. 제시는 그 편견을 해체하고 싶어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제시를 만나기까지는 어려웠지만 인터뷰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구술기록 뒤에 이어진 에세이에서, 소수자 문제를 바라보는 작가님들의 놀라운 통찰력을 보았습니다. 이 사회에 소수자 담론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고, 우리 사회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삶은 한 순간도 고정돼있지 않아서, 매일매일이 또 다른 사건의 연속이고, 어떤 삶도 24시간 365일 평생 모든 순간이 매일 슬프거나 아프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비록 ‘진창’일지라도 기쁘고, 아름답고, 찬란한 때가 있는 거죠. 정체성 역시 늘 고정돼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세 명의 필자들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소수자이겠지만 나이 들었다는 점에서 아이, 청소년에 비해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집단이기도 합니다. 삶은 이렇게 많은 요소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서 늘 진동하며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어떤 삶도 하나의 생, 사건, 정체성으로 단순화되어 정형화될 수 없는 거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삶 앞에 딱지를 붙이고 이렇게 말하죠. 불쌍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혼자서는 안 되는 사람…. 우리는 이 딱지들에 태클을 걸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에서 다양한 굴곡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 그 굴곡들은 개인적 불운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부정의에 따른 굴곡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 피해가고 싶지만 피해갈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점에서, 개인적 불운에 필요한 것이 따뜻한 곁의 존재라면, 사회적 부정의에 필요한 것은 사회구성원들의 성찰과 변화일 겁니다.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에서 친구, 이웃, 동료의 관점에서 주변에서 목도할 수 있는, 혹은 내가 당사자가 되어 처하게 되는 다양한 삶에 대해 잠시라도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삶이 자유롭고 존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삶 역시 그렇게 빛나야 한다고. 그렇지 않을 때 나는 세상의 부정의 위에 딛고 서 있는 거라고. 좀 무거운 질문이지만, 잊지 않고, 읽고 있는 나, 사회에 던져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구술기록’에 크게 관심이 생겼습니다. 구술기록의 매력은 무엇이고 유념하거나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구술기록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만남을 통해 창출되어지는 고유한 세계, 시간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인터뷰가 ‘2시간의 마법, 선물’이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때 2시간이란 타인의 인생에 다가서는 ‘최소한’의 시간인 셈이죠. 타인의 생에 대해 ‘깊이’, ‘편견 없이’ 듣겠다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생에 최소한 2시간만 깊이 경청한다면, 아마 독자분들도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혹은 알았으나 ‘제대로’ 몰랐던 타인의 존재를 한층 깊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겁니다. 다만 인터뷰가 두 세계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묻는 나, 듣는 나 역시 나를 진정성 있게 내보여줄 수 있을 때, 말하는 그 역시 진정성 있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상호간의 초대와 환대, 신뢰가 필수적이라는 거죠. 또한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방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입는 옷처럼, 광장에 벌거벗지 않고 서 있을 수 있게끔 해주는 최소한의 방어막 같은 거죠. 그건 ‘가면’과는 다른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해서 인터뷰는 그 옷마저 벗겨내 투명하게 모두 알겠다는 마음으로 다가가서는 안 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삶과 고유성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필요한 거죠.
나는 숨지 않는다박희정, 유해정, 이호연 저 | 한겨레출판
등장하는 11명은 한부모 여성가장이거나 스쿨미투 당사자이거나 홈리스 여성, 탈북여성, 장애여성 등이다. 사회는 이들을 경계에 내몰지만, 이들은 모두 닥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세상에 대항하고 협상하며 길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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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