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 정철,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

『사람사전』 정철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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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우유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휴대폰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는 것을 책 한 권을 쓰며 확인한 것입니다. (2020. 0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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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다’ 올해로 경력 35년차인 카피라이터 정철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장이다. '사람 ; 모든 생각의 주어'(『사람사전』 중에서) 35년간 수천 개의 카피로 온 국민을 울리고 웃기며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그의 카피에는 언제나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담겼다. 그의 카피가 우리들의 마음에 와 닿았던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던 일.


그런 그가 이번에는 단어에 ‘사람’이 담긴 특별한 사전을 펴냈다. 우리가 평범한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사물과 단어 1234개를 정철만의 시선과 감성으로 재해석해낸 것. 국어사전은 알려주지 않는 단어 뜻 너머의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 정철이 고르고 다듬은 ‘사람’이 담긴 특별한 사전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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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많은 사전의 종류가 있지만 ‘사람사전’은 처음인데요. 왜 『사람사전』 인지 궁금합니다.

 

이 사전에서 사람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모든 생각의 주어. 모든 행동의 목적어. 모든 인생의 서술어.(후략)”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희로애락은 모두 사람과 엉켜 있고 얽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늘 사람 때문에 아파하고, 다시 사람 덕분에 그 아픔에서 벗어납니다. 사람이 병이고 사람이 약입니다. 우리 주위를 서성대는 명사, 동사, 형용사도 사람이라는 잣대를 들고 다시 들여다보면 그 속엔 무궁무진한 사람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싶었습니다. 끄집어내 독자들에게 보여드리며 같이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하하 웃고 싶었습니다. 독자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면 책은 그가 할 일을 다한 것이라 믿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 어느 한 모퉁이에라도 이 책이 놓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이 책을 쓰게 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쓴 모든 책은, 이 한 권을 쓰기 위함이었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이 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엿보이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평생을 카피라이터로 살았습니다. 지금도 정 작가라는 말보다 정 카피라는 말을 더 자주 듣습니다. 카피라이터는 ‘남의 얘기를 대신해주는 사람’입니다. 삼양라면 이야기도 대신 해주고, 하이트맥주 이야기도 대신해주는 사람입니다. 남의 얘기 실컷 대신한 정 카피는 언제부턴가 내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겁니다. 내 얘기가 마려웠을 겁니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을 꺼내 날것으로 사람들에게 던지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궁금했을 겁니다. 그래서 책이라는 걸 쓰기 시작합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한 카피라이터의 조금 다른 생각, 조금 다른 시선, 조금 다른 글을 수용해주었습니다. 책 계속 써도 좋다고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썼습니다. 지난 10년 제법 다양한 형식의 책을 썼습니다. 두 해 전부터 그는 그의 10년을 총정리하는 책 한 권을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생각을, 그의 관찰을, 그의 글쓰기를 스스로 크게 한 번 정리해서 매듭 하나를 만들고 다음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 책으로 사전이라는 형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수천 단어들을 붙들고 꼬박 2년을 씨름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사람사전』 입니다. 애정은 쏟은 땀과 비례합니다.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라는 부제가 인상 깊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은 사람의 선생님입니다. 그들은 무심한 척 우리 곁에 살고 있지만 저마다 가르침 하나는 손에 꽉 쥐고 있습니다. 꽉 쥐고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들여다보면 그들 손에 쥔 가르침이 보입니다. 작가란 들여다보는 사람입니다. 그냥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입니다. 어떤 시선으로 들여다보는가에 따라 관찰의 결과는 달라집니다. 저는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세상 단어들을 들여다보았고 단어 하나마다 우리 인생을 간섭하는 가르침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커피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우유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휴대폰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는 것을 책 한 권을 쓰며 확인한 것입니다. 지금 고개 들어 주위를 한 번 쭉 둘러보십시오. 무엇이 보입니까. 명함이, 벽시계가, 연필깎이가 보입니까. 그들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주는 크고 작은 가르침이 살고 있습니다. 봐야 보입니다. 치열하게 들여다보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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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가지 단어를 고르셨는데, 이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단어와 가장 힘들게 쓴 단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무려 1234개입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단어 하나를 고르라는 건 제게 고통을 주겠다는 뜻과 같습니다. 못 고르겠습니다. 가족이라는 단어, 꼴찌라는 단어, 두부라는 단어, 독서라는 단어, 돈이라는 단어, 징검다리라는 단어 모두 강하게 애착이 갑니다. 이들을 어떻게 해석했기에 그렇게 애착이 가느냐고 묻지는 마십시오, 책을 사서 직접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가장 힘들게 쓴 단어는 또 무엇이었을까요. 이것 역시 딱 하나를 꼽기는 어렵지만 아마 이런 단어들일 것입니다. 가만히, 세월. 리본. 이 단어들은 세월호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단어입니다. 아픔을 글로 쓰는 건 늘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가장 힘들게 쓴 단어들일 것입니다. 힘들게 쓴 글들이니 이 글들을 읽어내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힘들겠지만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이 단어들과 마주해주십시오. 물론 이 단어들도 책을 사서 확인하실 것을 권합니다.

 

『사람사전』은 제목처럼 왠지 읽으면 사람의 체온처럼 온기를 품고 있을 거 같은데요. 이 책을 보다 재미있고 의미 있게 읽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기역’에서 ‘히읗’까지 한 장 한 장 순서대로 읽어도 좋지만, 책 맨 뒤에 붙은 찾아보기를 이용하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법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소설처럼 정주행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예를 들면 매일 잠들기 직전 침대에 엎드려 단어 셋만 읽겠다, 이런 독서법도 괜찮을 듯합니다. 오늘 하루 나를 힘들게 했던 단어나 내게 큰 기쁨을 준 단어 셋을 그날그날 골라 들여다보는 것이지요. 물론 이 책이 세상 모든 단어를 다 수용할 수는 없었으니 기껏 고른 단어가 책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좋은 찬스입니다. 그럴 땐 그대가 그 단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작가의 생각을 받아먹는 독서가 아니라, 내 생각이 참여하는 독서가 될 테니 더욱 의미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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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나요?


카피라이터 정철의 억지스러운 글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호소한다 해도 그들 귀엔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이런 혼잣말을 할 사람을 독자로 모시고 싶습니다. “아, 이걸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네.” “나도 이런 접근 한 번 해봐야지.” 이런 혼잣말을 할 사람. 내 글쓰기를 구경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자신의 글쓰기를 위한 재료로 이 책을 씹어 먹을 사람. 이런 분들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이 책 제목은 『사람사전』 이지만 순전히 정철의 생각을 정철 식으로 표현했으니 ‘정철사전’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정철사전’처럼 사전 앞에 누군가의 이름이 붙은 책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정미 사전을 기대합니다. 김정미 사전을 기대합니다. 박정미 사전을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한 줄 카피로 소개한다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이 카피를 다시 들고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사람이 먼저다.”

 


 

 

사람사전정철 저 | 허밍버드
언제나 ‘사람’을 먼저 이야기해 온 카피라이터 정철이 사람 사는 세상, 우리네 인생을 일상 단어 1234개에 비추어 읽고 또 썼다. ‘엄마’, ‘커피’, ‘눈물’, ‘귀찮다’, ‘가만히’처럼 우리 주위를 서성이는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에 ‘사람’이라는 잣대를 들고 치열하게 관찰하고,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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