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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SF 작가가 되다!

『푸른 머리카락』 남유하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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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르에 걸쳐서 두루 잘 쓸 수 있는 건 엉뚱한 상상력과 혹독한 트레이닝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10년 동안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의원님이 주문하신 대로 뚝딱뚝딱 글을 만들어 내야 했거든요.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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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지루한 일상을 구할 것 같은 2020 새해를 앞두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 과학소설 분야의 신인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제정한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도 어느덧 5권째가 되었다. 우리나라 아동청소년 과학소설의 개척자 고(故) 한낙원 선생의 이름으로 2014년 제정한 ‘한낙원과학소설상’은 국내 최초 과학소설가의 이름으로 수여하는 상이다. 5번째 수상 작품집 『푸른 머리카락』 에는 남유하 작가의 수상작 「푸른 머리카락」과 신작 「로이 서비스」와 함께, 우수 응모작 4편이 실려 있다. 5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자 남유하 작가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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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남유하’로 검색하면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회원으로 나옵니다. 거기에 소개된 이력이 굉장히 특이한데요,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직업을 거치셨더라고요. 정치판의 세계에서 베스트셀러를 쓰리라는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계셨던데요?

 

저는 장래 희망이 없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기 초에 장래 희망을 적어 냈거든요. 그럼 저는 뭐가 되고 싶은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떠오르지 않아서, 짝이 쓴 걸 고대로 베껴 썼어요. 짝이 대통령이면 저도 대통령, 짝이 의사면 저도 의사, 이런 식으로 6학년 때까지 쭉 그랬어요. 아, 5학년 때 짝은 현모양처라고 적었길래 그때는 과학자라고 했어요. 그러다 대학교에서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간신히 장래 희망, 아니 진로를 정했죠.

 

결국 기자는 되지 못했어요. 일반상식 공부가 죽도록 하기 싫었거든요. 기자가 사건 잘 취재하고 글 잘 쓰면 되지, 일반상식을 알아서 뭐 하나 하는 오만함도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때도 ‘글부심’은 있었네요. 맞아요, 작가가 될 거라고는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어요. 성공적으로 은퇴를 하고 나서 죽기 전에 베스트셀러 하나는 쓰고 죽자, 이런 정도였던 것 같아요. 나름 성공하고 싶다는 야망은 있었거든요. 그런데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제 야망은 허울뿐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저란 인간은 정책에 대해 논할 수는 있어도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죠. 그리고 작가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아, 내 꿈은 작가였구나. 나는 정말 작가가 되고 싶었구나. 정말 쉽고 확실한 답을 눈앞에 놓고 빙빙 돌아온 기분이에요.

 

어릴 때부터 기묘한 상상을 하셨다고 되어 있는데, 찾아보니 SF, 웹소설, 로맨스, 호러,  동화, 청소년소설까지 다양한 분야와 장르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업 작가 선언을 한 게 2016년인데 몇 년 되지도 않아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하셨고요. 철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고 나오는데, 이런 글쓰기 능력은 어떻게 키우신 건지요? 또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른 세계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다 통할 것도 같은데 이렇게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건 선생님만의 능력인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체육도, 노래도 못했는데요. 그림은, 선생님은 인정해 주지 않는 저만의 세계가 있긴 했어요. 어쨌든 모든 게 서툰 아이였죠. 일상생활도, 친구를 사귀는 일도. 그런데 글쓰기는 잘했어요. 삼신할머니가 저를 대충 만들고 “옜다, 이대로 내보내면 굶어 죽을지도 모르니 글 쓰는 재주 하나는 주마” 하신 게 아닐까요.

 

여러 장르에 걸쳐서 두루 잘 쓸 수 있는 건 엉뚱한 상상력과 혹독한 트레이닝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엉뚱한 상상은 뇌 어딘가에 기본 옵션으로 장착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 삼신할머니가 글 쓰는 재주에 상상 주머니를 달아서 보내셨나 봐요. 그리고 혹독한 트레이닝의 결과라는 건, 제가 거의 10년 동안 보좌관 생활을 했는데요. 그때는 의원님이 주문하신 대로 뚝딱뚝딱 글을 만들어 내야 했거든요. 축사면 축사, 보도자료면 보도자료, 질의서면 질의서… 그러다 보니 훈련이 돼서 어떤 장르든 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2018년은 선생님에게 정말 특별한 해였을 것 같습니다. 「미래의 여자」로 과학 분야 장르 소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여성작가 SF 단편집에 실린 「국립존엄보장센터」는 미국 SF 잡지 클락스월드에 번역되어 실리기도 했고요, 웹소설 공모전 우수상과 「푸른 머리카락」으로 5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으셨습니다. 이게 다 한 해에 일어난 일이 맞는지요? 최근에 『푸른 머리카락』 이 책으로 나왔는데 기분은 어떠신지요? 선생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요?

 

2018년은 정말 특별한 해였습니다.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서 주최한 과학소재장르문학 공모전을 시작으로 웹소설 공모전 2개, 한낙원과학소설상, 안전가옥에서 주최한 얼럼나이 공모전 등 총 5개의 공모전에서 수상했어요. 그동안의 노력이 보답받는 기분이었죠. 솔직히 2016년과 2017년은 정말 힘들게 보냈어요. 회사에 다니면 매달 월급이 나오는데, 그때보다 백배 천배 더 열심히 노력하는데 성과가 미미하니까 너무 섣불리 전업 작가가 된 게 아닐까 후회도 많이 했었고요.


그리고 미국 SF 잡지 클락스월드에는 올해 10월에 실렸습니다. 올해 초에도 웹소설 공모전에서 수상했고요. 얼마 전에는 국립생태원의 생태 동화 공모전에서도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푸른 머리카락』 이 아주 예쁜 책으로 나와서 정말 기뻐요. 일상에 일어난 변화라면 매일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순위를 확인하는 것! 농담이고요. (웃음) 예전에는 무조건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면, 이제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심한 척 툭 건드릴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심과 부담이 마음 한쪽을 지그시 누르고 있어요. 그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푸른 머리카락』 은 자이밀 행성과 지구인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과 지구인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자이밀리언의 운명은 어떻게 보면 가혹한데요, 지구에서 자신의 종족을 번식하는 대신 지구인을 위해 평생 코쿤 상태로 지내며 바닷속에서 해수를 담수로 정화하며 생을 마쳐야 합니다. 또 자이밀리언과 결혼한 지유의 고모나 푸른 머리카락 소년 재이를 보면 난민들 생각도 나고, 이주 노동자 생각도 나고, 오히려 우리 현실에서 마주치는 마이너리티의 운명보다 더 선명하고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제 머릿속에는 오래전부터 가재처럼 생긴 외계인들이 있었어요. 몇 년 전 가족들하고 랍스터를 먹고 나서 꿈을 꿨는데, 꿈에서 가재 외계인들이 사람들의 뇌수를 빨아 먹더라구요. 저는 대개 그날 하루에 겪은 일들이 꿈에 나타나는데, 식사하면서 은연중에 ‘가재야 미안해’라는 느낌이 들었나 봐요. 랍스터 보면 새카만 눈이 구슬같이 똘망똘망하잖아요. 어쨌든 이 가재 외계인의 이미지는 제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처음에는 꿈 내용 그대로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는 얘기를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외계인들이 왜 나빠야 해? 하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서부터 자이밀리언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난민 문제가 뉴스에서 많이 보도되어서 영향을 받게 된 측면도 있었죠. 심사위원분들도 그 부분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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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시상식 뒤풀이는 ‘조경철천문대’에서 열렸다. 우주인의 꿈을 안고 찍은 사진.

 

 

「로이 서비스」는 죽음과 관련한 독특한 장례 서비스를 다루고 있습니다. 고인의 생전 모습과 동일한 신체조직과 음성, 감정을 장착한 안드로이드 로봇을 통해 죽은 이를 살아 있는 것처럼 여기는 모습은 그런 서비스가 진짜로 도입될 것 같아 섬뜩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다인이처럼 어른들의 위선과 상술처럼 여겼는데 다 읽고 나니 혼란스럽더라구요.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로이 서비스를 신청하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작가님은 어떠실 것 같은지요?

 

오, 저도 처음에는 다인이처럼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 쓰고 나니 혼란스럽더라고요. 그럼에도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신청할 것 같지는 않아,라는 입장을 고수하려 했었죠. 그런데 주변에서 「로이 서비스」를 읽은 분들이 하나같이 로이 서비스를 신청할 거라고 하시는 거예요. 어떤 분은 6개월은 너무 짧다, 적어도 3년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고, 어떤 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이가 들도록 업그레이드해 주는 서비스는 없냐고 하셨어요. 저는 아직도 고민 중이에요. 아마 신청하는 쪽이 될 것 같긴 하지만요.

 

SF 작가 입장에서, 또 SF 독자 입장에서 『푸른 머리카락』 에 실린 다른 단편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출판사 책 소개에 보면 과학적 상상력으로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여섯 편의 강력한 스토리라고 나와 있는데요. 『푸른 머리카락』 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모든 작품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솔직히 다른 분들의 작품은 순수한 독자의 입장에서만 읽었어요. 사실 글을 쓰고 나서부터는 순수한 독자로 책을 읽기가 힘들거든요. 본문을 읽어 내려가다가도 플롯을 분석하게 되고, 이 작가는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푸른 머리카락』에 실린 작품들은 딴생각할 틈도 없이 술술 읽혔어요. 오랜만에 독자로서의 기쁨을 느끼게 해 주신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2020이라는 해는 듣기만 해도 뭔가 SF적인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미래에서 온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SF 작품들의 향연이 이어질 것 같고, SF 영화나 드라마들도 대거 쏟아질 것 같은데요, 작가님은 어떤 작품들을 선보일 계획인지요?

 

일단 SF 장르 위주로 말씀드릴게요. 외계인들에게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온 소녀들이 거인이 되는 이야기, 테라포밍해서 살던 행성이 멸망할 위기에 처해 다시 지구로 돌아오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심각한 미세먼지로 사람들이 바닷속에 살게 된 이야기 등으로 다양한 테마의 앤솔로지 작업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SF 관련 에세이랑 특이한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도 출간될 예정이고, 개인적으로는 청소년 장편도 준비하고 있는데, 이렇게 말로 설명하니까 별로 재미없게 들리는 것 같아 말을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말보다는 글에 특화된 사람이니까요. 책이 나오면 직접 읽어 주세요. 흠흠.

 

저는 2020년에도 제가 잘하는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할 것 같고요. 어떤 작품이든 그 안에 재미와 감동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여러분의 시간이 절대 아깝지 않은 작품을 선보이겠다고 약속드리고 싶어요.

 

 

 

 

 

 

* 남유하


SF와 동화, 로맨스, 호러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다. 2018년 제5회 과학소재 장르문학 단편소설 공모전에서 「미래의 여자」로 우수상을 받았고, 「푸른 머리카락」으로 5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았다. 단편 「국립존엄보장센터」가 미국 SF 잡지 클락스월드에 번역, 소개되었다.

 

 

 

 

 


 

 

푸른 머리카락남유하, 이필원, 허진희, 이덕래, 최상아 저 | 사계절
재이는 자이밀리언과 지구인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으로 자이밀 행성의 상징인 푸른 머리카락을 하고 있다. 물에 닿으면 온몸이 푸른색 갑각으로 뒤덮이며 자이밀 행성인의 본모습으로 돌아간다. 지유는 재이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던 편견을 직시하고 조금씩 변화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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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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