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싸름한 연애의 맛을 기억하나요?

『가만히 손을 보다』 구보 미스미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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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상처를 받아도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갖죠. 다시는 절대 사랑 같은 건 안 하겠다고 결심해도, 3년 뒤의 일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법이에요.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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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 최종 후보에 오른 구보 미스미의 신작 『가만히 손을 보다』 가 출간되었다. 구보 미스미는 섬세한 문장과 뛰어난 심리묘사, 여성 입장에서 그린 성애로 젊은 여성 독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다. 생생한 취재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배경과 캐릭터를 축조해낸 이 소설은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화제의 책으로 떠올랐다.

 

연애의 달콤함과 씁쓸함을 담은 장편소설 『가만히 손을 보다』 는 사랑에 대해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네 남녀의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을 균형감 있게 풀어낸다.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여자, 사랑에 목매는 남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여자, 그리고 남을 사랑할 수 없는 남자. 그들의 인생은 상처와 모순으로 울퉁불퉁하지만 서로에게 상처받기도, 구원받기도 하면서 삶의 의미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간다. 상처 많은 열매가 맛있듯이, 그들의 사랑은 매끄럽지 않아 우리의 마음을 더 애틋하게 울린다. “산다는 것의 애달픔을 마음껏 음미해주세요”라는 구보 미스미 저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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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신작 『가만히 손을 보다』 는 연애소설이면서 동시에 삶의 애달픔을 담은 소설입니다. 연애소설 주인공의 직업으로 요양보호사는 생소한데, 맨 처음 어떻게 소설을 구상하시게 되었나요?

 

저는 소설가가 되기 전에 프리랜서 작가로 일했어요. 그 당시 요양보호사가 되기 위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후지산이 잘 보이는, 도쿄에서도 가까운 야마나시현 고후시(市)에 있는 학교였지요. 그때 한 남학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나는 이 마을에서 살아가기 위해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라고요. 젊은 10대들이 요양보호사라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일을 굳이 선택했다는 점에, 그리고 심지어 강렬한 눈빛으로 “이 마을에서 살아가기 위해”라고 말한 것에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만남이 계기가 되어 요양보호사가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졌어요.

 

여성의 시각으로 그린 성애로 일본에서 많은 여성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 계신데요. 여성의 사랑에서 ‘성(性)’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성애 묘사를 할 때 특별히 의식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연애를 할 때는 육체와 마음의 두 가지 움직임이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움직임을 묘사한 소설이나 영화는 많이 있지만, 저로서는 마음의 움직임만으로는 자전거 바퀴가 하나밖에 없는 상태에서 질주하고 있는 듯한 불안감이 느껴지거든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상대를 만지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 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글로 쓰고 싶은 생각이 항상 있답니다.


하지만 저도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수치심을 가진 인간이라 성애 장면을 묘사하는 일은 매우 힘듭니다. 그래도 인간의 ‘진실한 면’을 그려내고 싶기에, 성애 장면에서 가능한 한 솔직하게 육체와 마음의 움직임을 묘사하려고 해요.

 

일본의 한 인터뷰에서 제목 ‘가만히 손을 보다’가 편집자의 추천으로 정해졌다는 내용을 보았어요. 원래 구상했던 제목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가만히 손을 보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 책은 몇 개의 작품이 묶여 있고 각각 다른 소제목이 붙어 있어서(소설은 일곱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타이틀을 어떻게 할지 논의가 오갔어요. 그때 편집자 두 분이 ‘가만히 손을 보다’를 미셨어요. 그 결과 ‘가만히 손을 보다’가 이 책의 제목이 되었고, 저도 이론은 없었습니다.


저는 사람 손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손의 표정은 얼굴의 표정보다 뭔가 웅변하듯 말하고 있을 때가 있거든요), 문득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에 빠졌을 때 무심코 자기 손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도, 그 사람의 일부인 손을 볼 때가 있지 않나요? 이 제목에는 그 순간과 찰나의 것들이 응축되어 있는 것 같아요.

 

주인공 히나와 가이토는 어디에서나 후지산이 보이는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후지산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평소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탐방하시는 편인가요?

 

첫 번째 질문과 겹치는데, 우선은 후지산이 보이는 장소에 있는 요양보호사 양성 학교를 취재한 경험이 큽니다. 후지산이 보이는 웅장한 경치 속에서(마치 천국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젊은이들이 나이 드신 분들을 열심히 돌보고 있는 모습이 저한테는 충격적인 풍경이기도 했어요.


또 일본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후지산은 산기슭에 ‘수해(樹海)’라는 곳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자살하는 장소로도 유명해요. 후지산은 햇살이 닿는 장소지만 그런 그늘 또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깊이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소설의 배경이 된 장소는 거의 다 방문한 것 같네요. 도쿄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작품을 쓰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중에서 히나의 집 정원에 갑자기 나팔꽃이 자라납니다. 히나는 미야자와가 나팔꽃을 심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팔꽃을 애지중지하는데요. 그건 정말 미야자와가 심은 게 맞을까요? 히나에게 나팔꽃은 새로운 사랑이자 아픈 사랑의 과거를 의미하기도 해서, 누가 심은 건지 정말 궁금했어요.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네요. 미야자와가 심었다고 생각해주셔도, 그 반대여도, 독자분이 어떻게 느끼든 그 답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미야자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약간 어긋나 있습니다. 누군가가 곁에 오래 있는 것을 못 견뎌 하고, 남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이런 성격의 탄생 배경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석류의 표지’(미야자와 시점의 챕터 소제목)를 구상하셨나요?

 

소설을 쓰다 보면 아무리 나와 친한 사람이라도, 그 누구라도 들어오길 원치 않는 성역 같은 장소가 생겨납니다. 소설가가 아닌 사람의 경우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리 가까운 연인이라도 더 이상 파고들어 오지 말아 달라는, 자기만 아는 비밀의 장소 말이에요. 그런 장소를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네 명의 주요인물 중(히나, 가이토, 미야자와, 마유미) 어떤 인물에 제일 깊이 공감했나요? 혹은 가장 마음이 쓰인 인물이 있다면요?

 

미야자와요. 제 분신 같은 존재로도 느껴져요. 위의 질문에서도 말했지만 ‘더 이상 먼저 파고들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제 자신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많아서… 가장 행복해지길 바라는 인물은 마유미인 것 같아요.

 

히나가 치매에 걸린 혼다 씨를 돌보면서 ‘살아 있는 동안에 푹푹 쌓인 잡동사니와도 같은 기억을 품고 있다가 비눗방울이 터지듯이 그 기억들이 하나둘 사라져버릴 때, 과연 난 누구의 이름을 부를까?’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어요. 만일 히나가 혼다 씨처럼 기억을 잃는다면, 가이토와 미야자와 둘 중에 누구를 떠올릴 것 같으세요?

 

글쎄요. 히나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람은 미야자와이기 때문에, 그일지도 모르겠네요.

 

연인과 이별하면 다시는 새로운 사람을 못 만날 것처럼 생각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사랑을 합니다.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상처는 받았지만 그럼에도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주 원시적인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질리지 않는 동물이잖아요. 다시는 절대 사랑 같은 건 안 하겠다고 결심해도, 3년 뒤의 일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법이죠.

 

『가만히 손을 보다』 도 그렇고, 지금까지 출간된 소설의 내용을 보면 여성의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앞으로의 소설에 담고 싶은 여성의 삶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혹은 여성의 삶 외에 도전해보고 싶은 다른 분야가 있으신가요?

 

시대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오늘날처럼 여성의 권리조차 아직 확실치 않았던 시절을 살았던 게이샤의 이야기를 지금 쓰고 있는 중이에요. 그리고 또 어느 지방 도시를 무대로 한, 불량소년들의 이야기를 구상 중이기도 합니다. 


 

* 구보 미스미


1965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대학 중퇴 후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거쳐 광고제작회사에서 근무했고, 결혼 후에는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했다. 2009년 『미쿠마리』로 제8회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가 2010년 〈책의 잡지〉 선정 소설 베스트10 1위, 2011년 서 점대상 2위에 올랐고, 전례없는 만장일치로 제24회 야마모토슈고로상 수상이 결정되면서 일약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2012년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으로 제3회 야마다후타로상을 수상하고, 2018년 『가만히 손을 보다』로 제159회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만의 감각적인 문장과 여성의 시각으로 그린 담담하고 섬세한 성애 묘사로 특히 젊은 여성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가만히 손을 보다구보 미스미 저/김현희 역 | 은행나무
네 사람은 일상이 주는 익숙함에 점차 ‘열광 같은 감정’을 잃어간다. 사랑을 갈구하다가도 익숙함에 무감각해지는 과정을 저자는 차분한 호흡과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사랑의 끝에 씁쓸함만 남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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