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숙 “청소년의 6만 시간, 결코 짧지 않아요”
『6만 시간』 박현숙 저자 인터뷰
그 시간은 잠시 우리 곁에 머물다 떠나지요. 그 이야기를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곁에 있을 때 마음껏 그 시간을 즐겨! ‘6만 시간’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2019. 10. 25)
뛰어난 상상력과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킨 장편소설 『구미호 식당』 박현숙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6만 시간’에는 많은 함축적 의미들이 담겨 있다. 그것들과 얽혀 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짜여져 있어 마치 흥미로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13살부터 19살까지의 청소년기를 어림잡아 계산한 시간이 바로 ‘6만 시간’이다. 저자는 십대의 ‘6만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소설 곳곳에 보물찾기를 하듯 에피소드들을 이곳저곳에 숨겨 놓았다. 학창시절 소풍을 가서 보물찾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저무는 것처럼 이 소설도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게 된다. 베스트셀러 동화로 이야기꾼의 재능을 인정받은 박현숙 저자에게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들어 보았다.
『구미호 식당』 , 『수상한 시리즈』 , 『발칙한 학교』 , 『금연학교』 등 작가님이 집필하신 작품들을 보면, 개성 있고 흥미로운 소재들을 소설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신 것 같아요. ‘6만 시간’이라는 소재는 어떻게 생각해 내셨는지요?
저의 청소년기는 우울했습니다. 빨리 그 시절이 지나고 어른이 되길 바랐었지요.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보니 저의 청소년기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죠.
그 시절 저는 어떤 모양의 아이였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을 지나온 게 맞긴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지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나? 꿈은 있었나? 하고 싶은 건? 단 한 순간이라도 그 시간을 즐겼던 적은 있었나? 아니었습니다. 단 한 번도 마음껏 환하게 웃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를 우울의 늪에 빠지게 했던 것은 저 스스로였습니다. 누구나 힘들고 누구나 난관이 있는데 그게 꼭 저에게만 있는 듯 생각하고 살았으니까요. 같은 것을 봐도 그 나이 때만 느끼는 게 있을 텐데, 그 나이 때의 웃음 코드, 감동 코드, 그 모든 것이 지금과는 다를 텐데. 안타깝게도 제 인생에서 그 시절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제가 잃어버린 그 시간의 진가가 어떤 건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지요. 문득 그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고 계산해보니 ‘13세에서 19세’까지가 6만 시간 정도였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잠시 우리 곁에 머물다 떠나지요. 그 이야기를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곁에 있을 때 마음껏 그 시간을 즐겨! ‘6만 시간’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에, 공부도 잘하고, 잘생긴, 어느 것 하나 부족해 보이지 않는 ‘영준’과 초등학교 때부터 맞고 사는 ‘서일’. 이 둘의 관계를 엮은 작가님의 숨겨진 의도는 무엇인가요?
누구에게나 상처와 아픔은 있습니다. 설사 다른 사람 눈에는 완벽해 보인다고 해도 말이지요. 영준이와 서일이가 서로 다른 상처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한층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치킨집 아르바이트생 ‘짱구’의 존재감이 남다른 것 같아요. ‘6만 시간’의 비밀을 풀 열쇠를 쥔 키맨이랄까. ‘짱구’를 통해 작가님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어떤 것이었나요?
어떤 인물을 내세워 청소년들에게 6만 시간의 소중함을 알려주어야 하나 많이 고민했습니다. 책을 읽는 독자가 깊이 공감할 만한 인물이 필요했거든요. 짱구는 그런 고민 끝에 태어난 인물입니다.
짱구는 많은 청소년들이 겪는 여러 가지 문제와 걱정 그리고 아픔을 거의 모두 껴안은 한마디로 종합세트와 같은 인물입니다. 짱구는 6만 시간을 엄마와 세상을 향한 미움과 증오로 보냅니다. 그러다 6만 시간을 다 보낼 즈음 진실과 마주하게 되고 자신이 6만 시간을 얼마나 헛되게 보냈는지 깨닫게 되지요.
작품 속에서 짱구는 말합니다. 방귀를 뀌고 싶으면 그때, 그때 바로 뀌라고. 그냥 두면 가스가 차고 나중에 폭발하게 된다고. 짱구가 말하는 방귀라는 것은 자신의 존재입니다. 짱구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라고 말하는 거지요. “나는 나다. 나는 여기에 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야말로 6만 시간을 멋지게 살 수 있는 거니까요.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부족할 것 같지 않던 ‘영준’이에게도 큰 결핍이 존재하죠. 그 결핍으로 인해 비뚤어진 관념이 자리 잡게 되고 타깃을 계속 변경해가면서 자신의 분노를 행동으로 표출합니다. 영준이가 정말 원한 건 뭐였을까요?
영준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결핍이 있었어요. 세상 밖으로 나가 “나, 여기 있다!” 외치고 싶은데 자신의 처지가 그렇지 않다고 믿는 거고 그 이유가 바로 엄마와 신 의원인 아빠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엄마는 자신을 떠났고 아빠는 영준이의 존재를 숨기려 합니다. 영준이가 품고 있는 엄마와 아빠에 대한 미움과 증오의 화살은 엄마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여자아이들에게 향합니다. 물론 자신이 괴롭히고 싶은 여자아이들과 엄마가 닮았다는 것은 영준이 혼자만의 잘못된 생각이지요. 작품에서 누구보다 가장 안타까운 아이이지요. 영준이가 바라는 것은 자신이 존재를 모두가 다 알아주는 거 아닐까요? 결국은 짱구 형이 했던 말과 통합니다.
큰누나가 반전 인물이었어요. 서울대를 나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중도 포기한 채 돌아와 ‘치킨의 장인’이 되겠다는 그 결심. 큰누나를 통해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큰누나는 타인의 눈으로 보면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큰누나가 살아온 걸음을 보면 정해져 있는 인생이 있었습니다. 교수가 되거나 그와 걸맞은 사람이 되는 거였지요. 하지만 그 끈을 중간에 놨을 때 그동안 큰누나가 쌓아놓은 탑은 송두리째 무너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쌓아놨던 그 탑이 무너진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타인의 눈에 자신을 모두 맡기고 타인에 의해 평가받는 삶이 진짜 삶이 아니라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마지막에 ‘서일’이가 ‘영준’이에게 할 말을 혼자 연습하잖아요. 과연 ‘서일’이는 ‘영준’이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고백하고 또 영준이는 그런 마음을 잘 받았을까요? 작가님께 꼭 들어보고 싶어요.
책이 나오고 나서 누군가 물었습니다. 영준이가 과연 서일이의 말을 들어주었을까? 영준이의 잘못된 가치관이 과연 서일이로 인해 달라졌을까? 저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일이는 자신을 인정해준 사람이 영준이가 최초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서일이에게 영준이의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모든 면에서 내성적인 서일이가 영준이를 위해 생전 처음 용기를 냈습니다. 어쩌면 영준이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는 인물도 서일이가 최초일 수 있지요. 영준이는 그런 서일이를 보면서 서일이가 처음 느꼈던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리고 가장 큰 행운은 서일이와 영준이 옆에는 짱구가 있습니다. 영준이와 서일이의 6만 시간 중 남아 있는 시간은 멋질 거라고 믿어도 됩니다.
작가의 창작 노트에서 “살아보니 인생의 계절은 조금 달랐다. 봄에 개미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인생이 망쳐지는 것은 아니었다.”라고 멋진 말씀을 남기셨어요.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마디 해주세요.
청소년들이 6만 시간의 봄을 만끽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먼 훗날 자신의 6만 시간을 이야기할 때 신나서 말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6만 시간을 멋지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현재에 주눅 들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누구나 다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짱구 형 말대로 이 세상에 이유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디서고 자신이 존재를 알리는 당당함이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될 겁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청소년 소설과 동화를 집필하신 작가님께서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작가가 되신 건지 매우 궁금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작품들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으신지요?
처음 작가가 되어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는 딱히 목표가 없었습니다. 그저 글 쓰는 것이 좋아 작가가 되고 싶었고 운이 좋아 꿈을 이루게 된 거지요. 하지만 독자들과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차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목표가 생겼습니다. 뭔가 잔뜩 넣어 가르치려고 하는 작품이 아닌 재미있게 읽고 오래오래 기억해줄 그런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박현숙
어렸을 땐 그림을 잘 그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선생님은 공책에 만화를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고, 글을 잘 쓴다는 말도 듣게 되었다. 백일장에서 상을 받게 되면서 꿈이 작가로 바뀌었다.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어 동화작가가 되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받았고, 제1회 살림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지은 책으로는 『그 집에서 생긴 일』 『수상한 아파트』 『수상한 우리 반』 『수상한 학원』 『할머니가 사라졌다』 『아디닭스 치킨집』 『지하철역에서 사라진 아이들』 『국경을 넘는 아이들』 『우리 동네 나쁜 놈』 『어느 날 목욕탕에서』 등이 있다.
6만 시간박현숙 저 | 특별한서재
‘6만 시간’에는 많은 함축적 의미들이 담겨 있다. 그것들과 얽혀 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짜여져 있어 마치 흥미로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관련태그: 박현숙 작가, 6만 시간, 청소년, 보물찾기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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