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세계문학의 경계는 이제 무의미해요”
『살다, 읽다, 쓰다』 김연경 저자 인터뷰
요즘은 나라 간, 언어 간 소통이 워낙 활발하고 속도도 빨라서 세계문학의 경계도 사실상 무의미해요. 이런 걸 통째로 ‘세계문학’ 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2019.10.17)
ⓒ황성규
세계문학의 충실한 길잡이 김연경 저자에게 읽고 쓰는 일은 곧 삶이다. 열심히 읽다 보니 쓰는 사람이 된 저자는 연구, 소설, 번역에 이어, 이번에는 10년 동안의 문학 공부를 담은 『살다, 읽다, 쓰다』 를 출간했다. 세계문학 80편을 소개하는 이 책은 단순히 혼자 읽은 기록이 아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문지 문화원 사이 등에서 다년간 세계문학 읽기 강좌를 진행하고, 네이버 문학 캐스트에 글을 연재하며 독자들과 소통해왔다. ‘딱딱한 고전도 결국 우리처럼 욕망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김연경 저자의 제안을 따라, 고전의 다채로운 세계를 만나 보자.
연구, 강의, 글쓰기 등으로 세계문학을 소개해오셨어요. 10년 동안 공부하신 기록을 이번에 묶으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작가 서문에 썼듯, 번역한 책이 아니라 쓴 책임에도 소설이 아니어서 느낌이 새롭습니다. 독서에세이집은 처음인데, 반응이 좋아 당혹스럽기도 하고요. 소설 나올 때의 반응과 아주 대조됩니다.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읽고 쓰는 법을 배운 순간부터 단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만났다”고 회고하셨어요. 작가님은 유년 시절, 책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 첫 장면이 기억나시나요?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읽은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자랄 때 부모님이 공부를 봐주실 형편이 아니었어요. 심지어 집에 책이라곤 단 한 권도 없었고요. 교과서가 거의 유일했고 이런 상황이 오히려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둘째는, 아이를 키워 보니 느끼는 부분이지만, 이 역시 소위 재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동생이 뇌종양 수술을 하여 최근에 부산에 다녀왔는데, 아버지께서 손자 손녀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시면서 조용히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니는 하나도 가르칠 것이 없었다, 그냥 이렇게 보여주면 다 알더라.” 책, 활자에 대한 사랑도 타고나는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한 아이의 엄마로서는, 아이들의 취향과 수준을 살피면서 억지로라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아이 독서 교육을 주제로 한 ‘아줌마 수다’에도 기꺼이 응할 용의가 있습니다. (웃음)
80편의 세계문학 등장인물 중 가장 작가님과 닮았다고 느낀 캐릭터가 있나요?
대학교 1학년 때 신입생 환영회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라스콜니코프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마 ‘닮았다’라기보다는 ‘닮고 싶다’가 더 맞지 않았나 싶어요. 이 책에 실린 작품 모두가 저에게 제각기 큰 의미를 지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굳이 숨길 필요가 있겠는가 싶고요. 중학교 때 처음 읽은 『죄와 벌』 의 충격이, 그 감수성이 요즘은 더더욱 그립습니다. 나이 들수록 무뎌진다는 것의 의미를 알겠어요.
작가님은 『죄와 벌』 등을 번역한 역자이자 등단 24년차 소설가이기도 하시지요. 다양한 방법으로 문학과 만나시는 셈인데요. 각각의 방식에 따라 문학에 접근하는 태도가 다른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일이 안 풀릴 때마다 제가 ‘양다리’, 심지어 ‘세 다리’를 걸쳐서 그렇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마흔을 넘기면서 적당히 체념하고 이 역시 저의 ‘실존’으로 받아들입니다. 번역은 정직한 작업이라,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만큼 결과가 나와요. 좋아하는 고전을 주로 번역하니까 공부도 많이 되고 심지어 ‘공익’에도 보탬이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강의와 문학 연구도 기꺼이 하고 있고, 보통 이상의 성취는 나옵니다. 이쪽이 저의 주된 수입원이지요.
하지만 소설은 전혀 달라요. 꾸준히 열심히 쓰고 있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어요. 소설 쓸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가족들도 피해가 크고요.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자비출판에 가깝지요. 남편 표현을 빌자면, 저는 ‘불행해지기 위해’ 소설 쓰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 소설과 마주할 때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느낍니다. 죽을 때는 소설가로 죽고 싶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소설가들은 각기 다른 ‘소설’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소설을 쓰시는 작가님은 ‘소설’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참 대답하기 힘들지만, 답을 내놓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살다, 읽다, 쓰다』 이후에, 핵심적인 소설 몇 편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보다 아카데믹한 책을 쓰고 싶어요. 일종의 소설론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언급하신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 그리고 어릴 때부터 좋아한 스탕달의 『적과 흑』 같은 작품은 꼭 들어갈 것이고요. 이 소설들에 대한 해석이기도 한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도 무척 좋아하는 연구서입니다. 한편, 소설가로서는 이런 이론은 별로 필요가 없지요. 무조건 소설을 써야 하고, 소설이 잘 안 써지니까 이론을 생각하는 겁니다.
80편의 ‘세계문학’을 뽑을 때,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80편을 한 번에 뽑은 것이 아니라 10년에 걸쳐 그때의 강의 주제나 지면의 성격을 고려하며 추려 왔어요. 셰익스피어의 경우 4대 비극 중 『오델로』 만 빠져서 아쉬워요. 『신곡』 처럼 두툼하고 어려운 책은 시간을 많이 낼 수 있는 방학 때 채택했고요. 어느 경우든 항상 언어권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창작의 세계> 수업을 할 때도 특히 한중일 동양어권이 꼭 들어가도록 신경을 써요.
이런 걸 통째로 ‘세계문학’(원래 괴테가 내놓은 정의와는 다소 다를 수 있겠지만)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요즘은 나라 간, 언어 간 소통이 워낙 활발하고 그 속도도 빨라서 세계문학과 민족 문학, 지역 문학 사이의 경계도 사실상 무의미한 것 같아요. 게다가 책이 정말 너무 많죠. 정독할 책 한두 권을 추리기 위해서라도 통독, 속독의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작가님의 추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위에 잠깐 썼듯, 장기적으론 『살다, 읽다, 쓰다』 의 조금 묵직한 버전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그동안 발표한 중단편 몇 편을 소설집으로 묶고 위에서 언급한 장편도 출간하고 싶습니다. 25살에 번역한 『악령』 개역 작업이 현재, 삼 분의 이 정도 진척되었어요. 마무리되는 대로 청소년을 위한 톨스토이 대표 단편을 번역하려고 합니다. 끝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를 쉰 살이 되기 전에 번역하고 싶습니다. 대략적인 초고가 있는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서 집필도 마무리하고 싶고요.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이라고 하지요. 내년 1월이면 만으로도 45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카뮈를 탐독하며 ‘자살’에 골몰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세상 그 어떤 가치보다도 저와 가족의 건강이 가장 걱정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겁이 많아졌고, 인생의 목표도 소담해졌습니다.
*김연경
1975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학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이래 소설집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 『파우스트 박사의 오류』, 장편 소설 『고양이의 이중생활』, 『다시, 스침들』 등을 펴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등을 번역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소설 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살다, 읽다, 쓰다김연경 저 | 민음사
현장에서 고전을 가르치며 좀 더 제대로 된 세계 문학 길잡이란 어떤 것일까 고민해 온 저자는 경직된 문학사에서 작가를 생생한 캐릭터로 건져 올려 독자들이 세계 문학을 좀 더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관련태그: 김연경 작가, 살다 읽다 쓰다, 세계문학,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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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경이 쓴, 세계 대표 고전 문학 80여 권 깊이 읽기 『살다, 읽다, 쓰다』는 혼자 읽으려고 할 때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작품은 물론, 누구나 알아야 할 교양이 되는 고전 세계 문학을 한데 모은 세계 문학 읽기 길잡이다. 이 책은 네이버 문학 캐스트에 글을 연재하고, 서울대학교 강의를 하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