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송태욱 “시대의 불안을 드러낸 작가, 아쿠타가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집』 역자 송태욱 인터뷰 옳은 말은 없다. 쓰임이 다를 뿐이다.
사전에 올라와 있는 말이 옳고, 그렇지 않으면 틀리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말이 먼저이고 기준입니다. (2019.10.14)
서른다섯에 요절한 천재,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빛내는 말들이다. 그러나 화려한 이름 뒤에는 ‘시대의 불안’을 느꼈던 한 인간이 있다. 광인인 어머니의 그림자를 떨치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 사람. 빛나는 허구의 세계를 창조했지만, 말년에는 자신의 삶조차 조롱했던 사람. 이토록 모순적인 아쿠타가와의 세계에 문 하나가 생겼다. 일본 근대문학의 믿음직한 안내자 송태욱의 번역으로 읽는 43편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집』 . 『나쓰메 소세키 전집』 에 이어 또 하나의 산을 넘은 송태욱 번역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수수께끼 가득한 아쿠타가와의 세계
『나쓰메 소세키 전집』 에 이어, 이번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집』 역시 긴 시간과 노력이 든 작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번역을 끝낸 소감은 어떠신지요?
특별한 건 없고, 또 한 작가를 해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나쓰메 소세키 전집』 ,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 (내년쯤 간행 예정), 그리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집』 을 끝냈으니 이제 모리 오가이, 미시마 유키오,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의 작품들도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쿠타가와의 단편 150여 편 중 43편을 고르셨습니다.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요?
대부분 출판사 대표가 정했습니다. 작품의 질과 안팎의 평가가 기준이 되었을 거라고 봅니다. 저는 꼭 해야 하는 작품 몇 개만 더하는 정도였습니다. 처음에는 30편 정도를 골라서 작업을 시작했으나 진행하는 과정에서 넣어야 할 작품이 하나하나 늘어나 결국 43편이 되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이름만 들어도 무게가 느껴지는 작가들입니다. 그럼에도 역자님의 이전 인터뷰에서 이들을 우상화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작가 개인이나 그들의 작품 세계에 빠져 우상화할 만큼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어떤 작품, 작가의 어떤 면을 좋아하는 정도에 그치고, 그것도 늘 변합니다. 예컨대 소세키의 『행인』 을 좋아했으나 지금은 『문』 을 더 좋아하고, 아쿠타가와의 「갓파」를 좋아했으나 지금은 여기에 실리지 않았지만 아포리즘 모음집인 『난쟁이 어릿광대의 말』 을 좋아합니다. 이미 여러 군데서 번역되어 나온 책을 작업할 때는 그것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정도입니다.
짧은 생애였지만, 아쿠타가와의 작품은 상반된 2가지 경향으로 나뉩니다. 작가 자신이 노출되지 않는 허구적인 이야기와 사소설에 가까운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인데요. 이런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다이쇼 시대가 자기 고백적인 사소설의 시대였기 때문에 그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저는 철저하게 아쿠타가와의 신병과 관련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약물에 의존하다가 환청과 환각을 경험하게 되면서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데서 나온 자연스러운 변화 같습니다. 여자 문제를 포함한 사람들과의 관계, 경제적인 압박 같은 것도 질병과 함께 영향을 끼쳤겠지요.
소세키와 아쿠타가와, 이 개성 강한 두 작가를 뚜렷하게 구별하는 점이 있다면요?
두 작가는 정말 공통점이 많습니다. 대략 10년간 활동하다가 사망한 것까지 비슷합니다. 그리고 1916년에 소세키가 사망하는데, 아쿠타가와의 「코」 가 소세키의 절찬을 받음으로써 그가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한 것도 그해입니다. 마치 바통이라도 건네받은 것처럼요. 그러나 작품 경향은 아주 다릅니다. 소세키가 장편 중심이라면 아쿠타가와는 단편 중심입니다. 그리고 소세키의 장편은 사전 계획도 없고 특별히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도 없습니다. 그저 배경에 인물을 넣어 놓으면 인물들이 알아서 움직이는 식입니다.
하지만 아쿠타가와의 단편, 특히 왕조물이나 그리스도물은 사전에 다 계획되어 있고 수수께끼 풀이처럼 정답도 숨어 있습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논쟁적인 문제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은 모리 오가이의 단편과 유사합니다. 다만 굉장히 세련된 문장에 고상하게 포장되어 있어 알레고리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그만의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천재의 자살과 함께 한 시대가 끝났다
역자 후기에서 아쿠타가와의 세계를 보여주는 키워드로 ‘불안’을 언급하셨습니다. 아쿠타가와의 불안을 “시대의 불안”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메이지 유신 이래 줄기차게 추진되어온 유럽 중심의 근대화가 한계에 봉착한 시대에, 아쿠타가와는 근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첨예하게 드러내 시대의 불안을 가장 명확하게 체현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살이 개인적인 자살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한 시대(다이쇼)의 종언으로 받아들여졌지요.
다시 말해 1923년에 간토대지진이 일어났고, 1925년에 치안유지법이 제정되었으며, 1926년에는 다이쇼 시대가 끝나고 쇼와 시대가 시작되는데, 이 시기는 바로 다이쇼 데모크라시(문화적인 면에서 나타난 민주주의적 경향)가 붕괴되고 파시즘 체제로의 이행이 개시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1927년 아쿠타가와를 자살로 몰아갔던 그 막연한 불안은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시대의 불안으로 인식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소설 속 인물을 그려내는 아쿠타가와의 태도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자살하기 2, 3년 전의 자기 고백적인 작품들과 구별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전의 작품은 철저하게 허구라는 의식이 강합니다. 그래서 작가(화자)와 인물 사이의 거리는 냉정하게 유지됩니다. 물론 「손수건」, 「밀감」 같은 작품은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아쿠타가와의 단편은 인물이 중심이 아니라 상황(또는 논리적인 전개)이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토론하기에 좋은 작품들이 아주 많습니다. 예컨대 ‘가짜뉴스’에 대한 토론을 하고 싶다면 「용」을 보면 의미 있는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 속 마음에 드는 한 문장만 발견해도 그 작품의 존재의의가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지요. 아쿠타가와의 작품에서 문장 하나를 소개해주신다면요?
“인생은 보들레르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
책의 뒤표지에서도 소개한 「어느 바보의 일생」 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죽기 한 달 전에 쓴 이 작품에서 아쿠타가와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전해지는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스무 살의 그가 서점의 사다리 위에서 책들 사이를 움직이고 있는 점원과 손님을 내려다보며 “그들은 묘하게 작았다. 뿐만 아니라 참으로 초라했다”고 하며 이 문장을 떠올립니다. 작고 참으로 초라한 존재는 그 자신이었던 것이지요. 또 「점귀부」 의 첫 문장 “나의 어머니는 광인이었다”도 마음에 남습니다. 그의 인생을 지배한 한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끝내 이 문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고심한 단어나 문장이 있으신가요?
특정한 단어나 문장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요즘은 잘 쓰지 않는 한자어들을 그대로 쓰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어려운 말은 풀어써야 한다는 자기검열 때문입니다. 그리고 ‘순화어’에 대한 스트레스도 늘 느끼고 있습니다. 깨끗하고 더러운 단어가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쓰임이 다를 뿐입니다.
사전에 올라와 있는 말이 옳고, 그렇지 않으면 틀리다는 생각, 말에, 단어에, 문장에 반드시 옳고 틀리고가 있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말이 먼저이고 기준입니다. 사전은 그 빈도를 보여주는 사례집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즘은 사전이 마치 검찰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것만이 옳다는 잣대들의 힘이 너무 강해서 불편합니다.
*송태욱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대학에서 강의하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 『환상의 빛』 『눈의 황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살아야 하는 이유』 『사명과 영혼의 경계』 『금수』 『밀라노, 안개의 풍경』 『말의 정의』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등이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집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송태욱 역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자신의 삶을 무자비하게 조롱하고 야유하는 말년의 자전적인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아쿠타가와의 창작의 변천 과정과 작가 개인의 내면의 갈등과 불안 속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하기까지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관련태그: 송태욱 역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집, 불안, 아쿠다가와
좋은 책, 좋은 사람과 만날 때 가장 즐겁습니다. [email protected]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송태욱> 역22,500원(10% + 5%)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일본 근대 단편 소설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스물넷의 나이에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 뒤 서른다섯에 음독자살로 생을 스스로 마감할 때까지 아쿠타가와는 150편이 넘는 단편을 발표했다. 1922년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네 개의 문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