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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화가’로 보는 명화의 새로운 세계

『국민화가를 찾아 떠나는 세계 여행』 이명옥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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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명화는 다양한 시각으로 여러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명화의 정의를 국민화가라는 콘셉트를 통해 전하고 싶었습니다. (2019. 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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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 예술계의 뛰어난 기획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늘 새로운 시선을 지닌 전시로 호평받는 사비나미술관의 이명옥 관장이 신작  『국민화가를 찾아 떠나는 세계 여행』  을 내놓았다. 새롭고 독특한 콘셉트의 예술 여행을 권장하는 이 책은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와 빈센트 반 고흐,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뭉크, 오스트리아의 구스타프 클림트,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 벨기에의 르네 마그리트, 한국의 백남준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23명의 예술가들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자연스럽게 각 나라를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예술가와 관련된 장소를 안내한다.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교양서의 역할을 하는 책이다. 우리를 그 길로 안내할 이명옥 관장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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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시를 좋아하세요…』  가 출간된 지 3년여 만에 신작 『국민화가를 찾아 떠나는 세계 여행』  으로 독자들에게 돌아오셨는데요. 그동안의 근황과 3년 만에 책을 쓰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제게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던 사비나미술관을 개관 22년 만에 서울 은평구 진관동으로 신축 이전했습니다. 집을 지은 경험이 있는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그 일이 얼마나 어렵고 고달픈 것인지. 그런데 집이 아닌 미술관을 신축했으니 그 고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요. 또 2018년 10월 31일 개최한 사비나미술관 이전 개관기념전을 준비하는 데도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원래는 매일 새벽에 글을 쓰는 습관이 있었는데 체력이 달려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간혹 몸의 컨디션이 좋은 날이 있었는데, 그날 새벽에 집중적으로 원고를 써서 3년 만에 새 책을 출간하게 된 겁니다.

 

이번 책은 ‘국민화가’라는 콘셉트가 독특합니다. ‘국민화가’를 주제로 삼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요즘 미술에 관한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외적으로 ‘국민화가’를 주제로 한 책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존에 없던 주제를 책과 전시로 최초로 시도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 지금껏 제가 출간한 책이나 기획한 전시 주제 중에는 국내외적으로 최초인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국민화가를 책의 주제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일반적인 여행이 아닌 새롭고 독특한 콘셉트의 예술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각 나라에는 국가를 대표하는 국민화가들이 있습니다. 국민화가는 말 그대로 국가를 대표하는 위인 중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미술가를 가리킵니다. 국민화가들은 그 나라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인류 문화유산입니다. 따라서 각 나라의 국민화가를 만나고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그곳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미술을 좋아하거나 미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각 나라를 빛낸 위대한 국민화가의 작품이 소장된 미술관과 생가(生家)를 찾아가 국보급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 및 사회적 환경을 들여다보고, 예술가의 삶과 예술을 경험한다면 명화를 새롭게 감상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술과 여행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입니다. 이제는 여행의 패턴도 많이 바뀌어 테마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요.  『국민화가를 찾아 떠나는 세계 여행』  도 색다른 콘셉트의 여행을 제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는 것과 읽지 않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요즘 세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는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특별한 세계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인문학적 배움을 얻고 미술에 대한 안목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각 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관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저는 세계 유명 미술관을 방문해 눈도장 찍듯 명화를 훑어보는 틀에 박힌 감상법을 벗어나 더 오래, 더 주의 깊게 바라보는 새로운 감상법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국민화가의 작품은 대부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화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이라도 보는 방법을 새롭게 하면 감상자의 흥미를 불러일으켜 다른 해석이 가능하게 됩니다. 평소 명화는 다양한 시각으로 여러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명화의 정의를 국민화가라는 콘셉트를 통해 전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국민화가’라는 주제로 돌아와서, 한 나라의 국민화가를 선정한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화가가 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국민화가는 각 나라의 국가 정체성 및 국가 브랜드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국민화가를 선정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국가와 민족 발전에 기여도가 높고, 세계 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국내외 학자와 전문가의 연구물에 자주 인용되며, 시대적 검증을 통과한 거장 가운데 국민 여론을 수렴해 최종 선정됩니다. 한 나라가 국민화가를 가짐으로써 얻게 되는 긍정적 효과는 생각보다 큽니다. 대내적으로는 나라 사랑과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며, 공동체 의식을 결속시켜 국민 대통합에 기여합니다. 대외적으로는 독창적 문화 콘텐츠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전파하고 고품격 문화 관광 상품으로 개발되는 등 외교, 경제, 관광 활성화에도 보탬이 됩니다.

 

이 책에는 총 23명의 예술가들이 나옵니다. 혹시 이 중에 관장님께서 가장 애착이 가는 예술가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네덜란드의 국민화가 렘브란트를 무척 좋아합니다. 렘브란트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화가들이 개성을 발휘해 독자적으로 작품을 제작하지 않았어요. 고객이 그림의 크기나 주제, 색채 등을 계약서에 명기하면 화가는 이를 관습적으로 따라야만 했어요. 주문자의 입김이 강했던 시절인데도 렘브란트는 고객의 취향보다 예술가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그런 자신의 생각을 작품을 통해 보여 주었습니다. 렘브란트의 걸작 <야간 순찰>은 진정한 예술가는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한다는 그의 예술혼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저는 네덜란드인들이 렘브란트를 국민화가로 숭배하고 그의 대표작 <야간 순찰>을 국민그림으로 사랑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어요.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국토가 작은 나라 중 하나인 데다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아요. 네덜란드인들은 홍수의 위험과 해수의 범람으로 끊임없이 생존을 위협받았지요. 일찍부터 넓은 바다로 눈을 돌려 세계를 돌아다니며 동서양을 잇는 항로를 개척하고 국제 무역을 시작했어요. 그런 모험심과 도전정신이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꽃피우게 된 배경인 거죠.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진보, 개인의 자유를 권장한 네덜란드 황금기의 시대정신과 렘브란트의 예술 세계와 인생관은 일치하는 점이 많아요. 그래서 영국의 렘브란트 연구자인 존 몰리뉴는 “네덜란드가 배출한 최고의 예술가는 렘브란트이고 그의 그림들은 황금시대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던 거지요.

 

우리나라의 국민작가로 백남준을 선정하셨는데요.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국내 미술계는 대체로 대가, 거장, 유명 작가, 인기 작가 등을 편의에 따라 선택해 국민화가로 부르고 있어요. 그러나 선정과 자격 기준, 업적 평가에 대한 검증 절차 없이 국민화가라는 칭호를 임의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신화가 된 사람들』  의 저자 진 랜드럼은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인물을 선정할 때 업적뿐만 아니라 국내외 학자와 전문가들의 연구물에 얼마나 많이 인용되었는가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다시 말해 예술적 업적에 대한 영향력을 측정해 점수에 반영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런 기준을 적용하면 백남준은 한국의 국민작가로 선정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백남준은 세계인들로부터 비디오 아트(video art)의 창시자라는 업적을 인정받았고, 세계 미술사에 등재된 유일한 한국 출신의 예술가입니다. 그 증거로 세계적인 미술관 중 하나인 영국 테이트 모던이 2020년 10월 17일, 백남준의 선구자적 업적을 재조명하는 대규모 국제 순회전을 개최한다고 밝혔어요. 전시회 제목은 <백남준: 미래가 지금이다(Nam June Paik: The Future is Now)>로 정해졌고요. 테이트 모던은 순회전을 통해 백남준이 인터넷 시대를 예견한 천재 예술가, 현대 미술사에 혁명을 이룬 거장, 탁월한 분별력과 통찰력을 가진 사상가였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백남준은 한국이 낳은 최초의 국제적 예술가로 한국 미술의 우수성을 상징하는데도 정작 그의 업적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아닌 영국의 국립미술관이 앞장서는 모양새가 되어 아쉬움이 큽니다. 한국이 국보급 예술가를 전 세계에 알리는 전략이 부재한 반면 이 책에 등장하는 각 나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화가를 기념하거나 홍보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국가 이미지를 드높이는 소중한 유, 무형 문화유산인 국민화가의 공적과 위상을 국내외로 널리 알리고 활용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장님께서 미술 감상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분들을 위해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부탁드려요.


가끔씩 미술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미술과 친해지려고 시간이 날 때마다 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가는데 솔직히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요. 왜 현대 미술은 이렇게 어려운가요? 예술가들은 대중의 반응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비단 이뿐만이 아니라 일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관객이 미술 감상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술을 쉽게 감상하는 비결은 없습니다.


미술을 이해하려면 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미술은 느끼고 즐기는 것인데 웬 공부?’라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미술 감상의 즐거움을 느끼는 단계에 도달하려면 공부하는 습관부터 길러야 합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훌륭한 예술 작품에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지혜를 얻는 방법은 무엇인지, 왜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길 앞에 고난과 역경이 놓여 있는지 등에 관한 심오하고도 다양한 질문이 들어있습니다. 미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고 관객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질문을 던지는 방식도 직접적인 전달이 아니라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기법인 은유와 비유, 상징을 사용합니다.


예술가들이 은유와 상징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직접적인 표현에 비해 상상력을 자극하고 작품 의도를 강조할 수 있는 데다 새로운 사고를 이끌어내는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조성의 핵심인 은유와 상징을 이해하려면 작품이 제작된 시대적 배경과 창작 환경, 예술가의 심리 분석은 물론 조형 언어인 구도, 형태, 색채 등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예술가는 관객 반응에 초연하다는 오해도 풀어야 합니다. 예술가는 관객이 자신의 작품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기뻐합니다. 그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 중의 하나는 “작품 메시지에 공감했어요.”입니다. 그러니 독자들도 미술을 열심히 공부해서 미술 애호가로의 변신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명옥


한국 문화ㆍ예술계의 뛰어난 기획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현재 사비나 미술관장이다. 대표 저서로는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2005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2006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2006년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 『명화 경제 토크』(2007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 도서),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 이야기』(2005년 청소년 권장 도서),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국립중앙도서관 선정 ‘2014년 이달의 책’), 『시를 좋아하세요...』(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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