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뷔페 같은 ‘대멸종’ 이야기입니다
『대멸종』, 『아무튼, 비건』, 『최소한의 밥벌이』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죠. 삼천포 책방 시간입니다. (2019. 06. 13)
뷔페처럼 골라 먹는 ‘멸종의 날’ 이야기 『대멸종』 , 타자와의 연결을 말하는 책 『아무튼, 비건』 , 세상의 빈틈을 찾아가는 퍼포먼스 『최소한의 밥벌이』 를 준비했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 『대멸종』
시아란, 심너울, 강유리, 범유진, 해도연 저 | 안전가옥
SF 소설들을 묶은 앤솔로지예요. ‘안전가옥’이라는 장소이자 플랫폼에서 기획해서 나온 책이고요. 안전가옥은 장르문학 창작자를 위해서 만든 공간이에요. 장르문학 창작자를 위한 플랫폼이자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 안전가옥이 성수동에 있는데 작가가 머무르면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도 있고요. 장르문학을 모아놓은 도서관도 있고, 행사를 주최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멸종』 이전에 『냉면』 이라는 앤솔로지가 있었다고 해요. 작가들이 모여서 냉면을 소재나 주제로 한 작품들을 모아서 냈고, 이번에는 대멸종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이야기를 모은 거죠. 저는 되게 재밌게 읽었어요.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재밌게 만든다는 기치 아래 모인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정말 이야기가 재밌고, 걸리는 부분 없이 쭉쭉 읽어 나가면서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한 작품의 줄거리를 조금 설명해드릴게요. 시아란 작가님이 쓴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이라는 소설인데요. 어느 날 지구가 멸망한 거예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다 죽어서 저승이 난리가 났어요. 이 소설에서는 본인이 어떤 문화권에 속해 있었는지, 어떤 저승을 믿었는지에 따라서 다른 저승에 가게 된다고 하는데요. 한국 저승뿐만 아니라 미국 저승, 중국 저승, 유럽 저승 등 다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저승끼리 모여서 대책 회의를 하다가 난리가 난 이유가 뭔지 알아보라고 저승사자들을 보내요. 그리고 죽은 사람들 중에 전문가들을 다 찾아오라고 해서 항공우주학자, 철학자, 문화인류학자 같은 사람들이 와서 저승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을 하게 됩니다.
다섯 편의 소설의 세계관이 진짜 다양해요. 현실적인 이야기, 판타지적인 이야기도 있고요. 일어날 만한 미래 상황을 가정한 이야기도 있고, 인간의 탐욕에 의한 대멸종 이야기도 있고요. 아주 뷔페 같은 책입니다.
톨콩(김하나)의 선택 - 『아무튼, 비건』
김한민 저 | 위고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어요. 제가 지난해의 마지막 삼천포책방에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을 소개하면서 저의 올해의 책이라고 했잖아요. 그에 이어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같은 비건에 관련된 책들을 읽었는데요. 물론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책도 정말 생각할 지점들이 많아요. 아주 잘 쓴 책입니다. 그런데 너무 두꺼워서 선뜻 추천하기는 어려운 것 같고 『아무튼, 비건』 은 작고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짧은 책이지만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을 열심히 읽을 때는 식생활에 신경을 많이 써서 육고기의 경우에는 거의 입에 안 댔었고, 먹을 거나 여러 가지 것들을 신경을 많이 썼었는데요.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읽었더니 조금은 마음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처음의 시작을 읽어드릴게요.
이 책은 타자에 관한 책이다. 한 편의 시 같은,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로 시작해보자.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저희가 지난 삼천포책방에서 도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듯이, 세상은 계속 바뀌어가고 도덕관도 바뀌어가는 거잖아요. 이전에는 타자라고 생각했던 대상들에게까지 감정 이입과 공감을 할 수 있는 게 우리가 계속해서 변해가는 방향성이고요. 그 타자라고 생각했던 대상들이 이 책 안에서는 동물들인 거죠.
유튜브에서 비건 또는 동물권에 관련한 동영상을 보면 댓글 중에 이런 말이 있대요. ‘Are you connected too?’. 타자라고 선을 긋는 게 아니라, 나와 남을 구분해서 ‘저들은 대상이니까’라고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이 현재 느끼는 감정과 고통에 공감하는 것을 ‘Are you connected too?’라고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이어서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는 거예요. 이 부분이 『아무튼, 비건』 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요. 표지를 보면 제목 위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당신도 연결되었나요?’
그냥의 선택 - 『최소한의 밥벌이』
곤도 고타로 저/하완 그림/우석훈 해제/권일영 역 | 쌤앤파커스
저자는 아사히 신문에서 30년 넘게 기자로 일했어요. 어느 날 자신의 상사에게 지방에 있는 1인 지국으로 보내 달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유를 물어보자 계획에도 없이 ‘난 얼터너티브 농부가 될 거야’라고 말해버립니다. 그런데 진짜로 자신의 요구대로 발령이 나요. 그래서 이후 1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직접 농사를 짓게 됩니다. 도쿄 출생으로 수도권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벌레만 봐도 질색하는 ‘도시남’이 농사를 짓는 과정이 책에 실려 있는데요. 무척 흥미로워요. 이 이야기는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도 저자는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었어요. 신문사 안에서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만 쓸 수 없고, 그런 현실에 대한 염증과 고민도 있었거든요. 하루에 한 시간만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그 외의 나머지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쓰고 싶어서예요.
책 속에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요. 곤도 고타로 저자는 자본주의가 우리의 불안을 자극하면서 그 힘으로 굴러간다고 이야기해요.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반기를 든 거예요. 우리가 굶어 죽는 게 두려워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어떤 일이 주어지든 견뎌야 하는 게 현실이라면, 굶어 죽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거죠, 최소한의 쌀만 있으면 굶어 죽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1년 동안 저자가 경험한 일들이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느껴졌는데요. 자본주의가 거대한 흐름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에 질질 끌려가고 싶지는 않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았어요. ‘반드시 자본주의를 따라야 하는 거냐! 그렇게 안 하면 죽기라도 한 단 말이냐?’라고 말하는 것 같은 거죠. 그리고 수확을 마친 후에 “내가 그렇게 쉽게 세상으로부터 내쫓길 줄 아는가? 이 세상을 살아갈 빈틈을 어떻게든 찾아내고 말겠다”고 말하는데, 뭔지 모를 뭉클함이 있었습니다.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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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